6.25사변은 김일성 괴뢰가 일으킨 동족상잔의 전쟁이라는 단순한 사실로만 기억하고 있다.
냉전체제의 교육에서는 이념적으로 정해진 사실이나 사실화한 내용의 교육으로 사실을 알기 힘들다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과 함께 일본인이 기술한 사실을 통하여 왜전쟁이 발발했고 국제적 이해관계를 이해 할 수 있을 듯하다
전쟁발발의 배경은 한국을 전략적 경계선에서 배제했던 애치슨 라인이나 마샬플랜이 있고 중국의 국공내전 종료, 소련의 묵인 등 여러가지가 있었다.
그러나 미국은 전쟁발발 전일인 24일 이미 징후를 알고 있었으며 전쟁이 일어난지 불과 5일만에 한국파병과 유엔결의안을 이끌어 낼만큼 적극적으로 대응한 것이나 그런 대단한 일이 가능했던 상황은 기적인듯 싶다
안보리 이사국 소련이 불참했고, 불참이 거부가 아닌 기권으로 처리된 것도 한국엔 행운이었다
불과 3일만에 서울을 내주고 퇴각하기 바빴던 전황상
미국의 발빠른 움직임을 주도한 트루먼을 당시 야당 이었던 공화당도 초당적으로 협조를 했던건 참으로 기대하기 쉽지 않은 시대적 상황이었다.
극우주의자로 이념의 프레임을 만들어낸 매카시 상원의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부산까지 밀린 전국을 뒤집기 위한 인천상륙 작전
은 성공 가능성이 거의없는 위험한 전술로 맥아더
를 제외한 누구도 동의하지 않았으나 결과적으로
큰 성과를 만들어 냈다. 최초 7.15일에서 2달이 연기된 9.15일에 시행을 하였고 덕분에 9.28일 서울을 수복하게된다.
이후 38도선을 넘게되자 중공의 전쟁개입으로 반전이 된다
식민지에서 막 벗어나 국공내전을 치뤘던 중국이
항미원조란 명분으로 전쟁에 참여한 목적이 무엇이었을까? 국공내전을 지원해주었던 북한에 대한 의리만으로 그리 하지는 않았을 거다
애치슨 라인으로 일본의 재무장, 동아시아 패권을 지키려는 자위책, 소련의 강요, 한반도에 이은 대만에 의한 본토침략에 대한 경계 등 아직까지는
알 수 없다
맥아더는 한국전쟁의 수호신이었다. 다분히 정치적 이었다는 평가도 있지만 중국개입에 대하여 만주 폭격을 주장하였으나 유럽으로 까지의 확전을 경계 하는 워싱턴은 물론 기타 유엔 참전국의 반대로 해임 된다. 항복한 일본에 대한 점령군 사령관이었던 맥아더의 귀국시 감사결의를 하고 전국민이 애석해 하고 눈물까지 흘리는 일본인들의 속내는 참으로 아이러니 하다
자업자득이기는 하나 천황으로 하여금 무조건 항복
을 강요하여 치욕을 겪게만든 침략군 장수에게 아첨 으로 목숨을 구걸하여 오늘에 이른 표리부동함이 존경(?)스러울 지경이다
2차대전 당시 트루먼이 소령이었다 하니 아집과 독선이 이해가 된다
전쟁발발 6개월도 되기전에 휴전을 추진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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