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과 영적 성숙
손경구 지음 / 두란노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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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과 영적성숙
-평소의 생활이 습관으로 만들어져 간다.

  습관은 어디에 있다고 딱 짚어 말할 수 없다.  왜냐면 습관은 어떠한 동기부여를 통해 전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습관은 어떠한 환경을 통해 전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습관은 배움이나 환경이나 함께하는 은사나 공동체 안에서 저져 들어가는 생활습관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습관을 말하겠다면 갓난아이가 출산하기 전에 여자의 몸속에서 인격이 형성되어지므로 부모의 삶이 그대로 점염되어 생길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마치 사자성어에도 부전자전이요. 모전여전이란 말이 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고, 그 어머니에 그 딸이란 말이다.
  이 영적성숙도 영적성숙에 이르는 길을 선택하면 영적성숙이란 정상에서 영적성숙에 기쁨을 누릴 수 있으나 영적성숙도 없이 마냥 자기중심에 이르면 미숙함으로 인해 믿음생활에 있어 갈등과 다툼과 또는 시험에 빠져 믿음생활을 뒤로하며 방황하는 사람도 발견해 볼 수 있다.

  영적성숙은 영적훈련을 통해 쌓여져가는 것으로 매일같이 기도와 묵상과 실천이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  다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든지 세상에서도 영향력 있는 삶으로 도움을 주어야 한다.  그럼 성숙한 그리스도인인 것을 삶속에서 열매로 알려지며 자신의 수준도 파악할 수 있다.
  영적성숙은 말씀에 기초하여 삶속에서 하나하나씩 실천하므로 나중에는 습관으로 형성되는 것이다.  옹달샘에서 흐르는 물이 모여 모여서 나중에는 넓고 넓은 바다로 형성되듯. 영적성숙도 말씀에 기초하던 삶이 어느새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전진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영적성숙을 만류인류의 법칙에서 보자.  사물을 공중으로 던져도 동시에 공중에서 밑으로 떨어지듯. 새나가 공중에 있는 것은 두 날개를 펴서 날라 가기에 그러나 날갯짓하지 않으면 떨어진다.  이렇듯 영적성숙도 계속된 영적훈련 속에서 거룩해져가나 게으르면 예전 사람대로 살게 된다.

  한번쯤 깊이 생각하며 넘어가야 할 것이 삶에 변화와 습관이다.  만물도 변화하면서도 만물 위에 있는 인간이 지배하고 다스리는 존재가 자신의 변화와 습관에 관리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문제가 있다.  그것이 죄이다.  죄의 습관을 영적훈련으로 벗어내면 영적성숙은 기다렸듯 만난다.

  내가 경험한 것은 이렇다고 결론지을 수 있겠다.  잠13:20에 지혜로운 사람과 동행하면 지혜를 얻으나 미련한 사람과 사귀면 해를 받는다는 말씀이 있다.  영적성숙에 미흡하면 영적인 지도자의 가르침을 배우며 실천하는 것이 지혜이며 이것이 성숙함에 이르는 공통점이다.
  습관도 좋은 습관이냐 아니면 나쁜 습관이냐에 따라서 영적성숙이 결정되어 진다.  이것이 습관에서는 오는 법칙인 것이다.  자신부터 말씀에 거울을 보며 이미지를 색다르게 꾸미도록 나부터 알아 나의 가치를 업그레이드 시키는 시간이 필요하겠다.  왜! 영적성숙을 위함이기 때문이다.

습관이 미래를 바꾼다.<p41>
 생각을 심으면 행동을 낳는다.
 행동을 심으면 습관을 낳는다.
 습관을 심으면 성격을 낳는다.
 성격을 심으면 운명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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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사랑할까요? Q&A
박수웅 지음 / 두란노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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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랑할까요.


  그리스도인이라면 이성에 대한 고민이 있으리라 공감하며, 잘못된 편견도 있겠다.  서적은 궁금한 나머지 그리스도인이 어떤 방법으로 사랑하며 사랑의 선을 넘어서 되지 않을 부분에 참조하려 독서한 나머지 경건생활에 필독임과 함께 자기 자신에게 유익함을 가져다줌을 알게 되었다.
  또한 처음부터 끝까지 문답형식으로 고민하는 그리스도인에게 잠언같이 뜻을 찾는 해결의 길을 떠나듯 사랑은 서로 만나 알아가며 가까워지는 모습으로 참으로 아름답다.  때론 성경차이로 갈등과 다투겠으나 이것은 내적치유나 말씀교제로 회복해 가는 것이 가장 현명한 처술 이겠다.
  그리고 믿음차이는 대화와 예배참석으로 전환되는 모습에 따라 교제하는 것이 슬기롭다.  더욱이 신앙관이 다르면 결혼생활에 짐 지는 것은 인정해야하며, 다만 장단점으로 교류할 수 있으면 좋은 유익함을 얻게 된다.  너무나 믿음에서 벗어나면 헤어지는 것이 지혜이다.
  때론 믿음이냐! 정욕이냐며 이성에 갈등한다.  저자는 회개와 변화를 권면한다.  다음으로 미혹하는 마귀를 대적하며 영적전쟁임을 시사한다.  성관계는 순결을 지키는 것이 우선으로 음욕이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원만하면 결혼으로 자유롭게 생활하는 것이 슬기로운 처세술이다.
  성숙함은 배려에 있어서 좋은 만남을 이룬다.  취미와 기질은 교차하기에 장단점을 보완해주는 것도 성숙함이다.  행복함도 쌓아가며 충만한 생활을 한다.  취향 중 믿음에 도움이 없는 문화는 그리스도의 문화를 바꾸어 경건 생활하는 것이 좋은 처세술이다.
  결혼할 처지에 놓이면 가정환경을 짚어보며 결혼생활이 연애시절같이 행복함을 누리기 위함이다.  만일 물질 문제가 연관되었으면 결혼을 거부해한다.  웬만한 가정환경에 스스로 감당하겠으면 괜찮은 일이다.  왜냐하면 결혼은 가정환경보다 부부생활이기 때문이다.
  결혼도 주위반대에 만만치 않아 너무나 황당하다.  그중 부모님의 선입견이 문제이다.  이는 앞날에 겪는 무거운 짐(물질∙지적∙믿음) 때문이다.  부모님 입장은 편안하기를 부유하기를 소원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결혼하겠다면 부모님을 설득할 수 있는 변화가 필요하다.
  남녀 간에 겪는 것은 관심이다.  남자는 일중심이나 여자는 관계중심인 고로 남자는 여자에게 감성적으로, 여자는 남자에게 도와줌으로 더 깊이 관심을 가져갈 수 있다.  정말로 사람의 눈높이를 알아 대처하는 처세술이 중요하다.  아주 성숙함이다.
  사랑을 실패하면 아픔도 있다.  짝사랑도 실패하면 상실감도 있다.  상실감이 깊으면 내적치유를 받아하며, 헤어진 사람을 축복해야 한다.  다음은 좋은 만남을 간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참으로 지내보면 알겠으나 아픔을 견뎌내기란 벅찬 일이며 성숙함에 이르는 길이다.
  결혼정년에 이르면 결혼 못한 것에 고민에 빠진다.  저자는 내외면적으로 단점과 약점을 보완하기를… 신앙관과 자기능력을 갖추기를 권면하신다.  더욱이 성문제는 강조되는 부분이다.  저자는 회개와 새 삶을 강조한다.  그리고 객관적으로 함께 사역할 사람인지도 분별하도록 말한다.

  먼저 사랑에도 양면성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물론 사랑에 고민하면서 서로에 눈높이를 맞추는 것은 성숙한 사랑이겠으나 너무나도 어린아이같이 자기중심에 치우치면 원하던 사랑은 몽상에 빠져버려 마음에 상처로 배려하는 자세로 전환시키는 것이 깊은 사랑의 여행길로 떠나게 된다.
  사랑도 양면성이 있으면서도 사랑으로 받은 상처와 사랑으로 얻는 행복함도 있다.  그중 사랑에 상처가 있으면 치유 받으며 새롭게 사랑을 만들어가는 아픔도 있다.  결국 사랑의 행복함은 이해와 헌신 속에서 성취되어 가는 것임을 알아가야 할 과제이다.

  이것이 우리… 사랑할까요? 담긴 사랑의 스토리임을 고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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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천로역정 -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김홍만 지음 / 생명의말씀사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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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로역정 -모자이크하는 믿음을 보여준다.

  천로역정은 쉽게 표현하면 스케치북에 스케치하는 것과 같다.  마치 예술가가 스케치할 대상을 상상한 다음에 스케치북에 스케치 하듯 말이다.  존도 믿음의 예술가가 되어 내면에 믿음의 스케치하며 차츰차츰 천국을 향한다.
  그런 중 삶 속에서 믿음의 스케치에 방해되는 요소가 발생하여 믿음의 스케치를 삶 속에서 스케치하지 못하게 된 존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절제에서 또는 자기관리로서 믿음으로 바랐던 것을 삶이란 스케치북에 삶으로 스케치해 나간다.
  존이 천국에 이르는 모습을 그리스도인이 겪는 내적갈등과 고민과 연약함을 집필한 서적으로서 믿음의 삶이란 스케치북을 보여준다.  때론 모자이크같이 세심하게 신경 쓰며 비로소 믿음의 작품을 보여준다.  또는 풍경화같이 엉거주춤한 삶 속에서도 믿음의 작품이 무엇인 줄 생각하도록 보여준다.
  곤경에 빠진 사람은 구원에 고민하며 심판에 두려워 구원의 노선에 주행하던 중 속사람과 다툼이 일어나는데, 결국 믿음의 노선으로 주행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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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준비하는 미래 - 하늘 비전의 신을 신고 미래로 간다 KOSTA 시리즈 6
홍정길.박성수 외 지음 / 규장(규장문화사)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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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준비하는 미래 -성령님 안에서 복음의 열정을 불태우면…….


  세상에 속한 사람은 자기영광을 위해 준비한다.  여기 20인은 복음을 위해 다양한 삶 속에서 준비하는 모습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어쩌면 복음에 쨈을 발라 놓은 듯싶다.  사람들은 밝은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노을에 시드는 꽃의 화려하고 화사한 영광을 찾으나 20인은 천국에 영광을 목마르게 찾고 계셨다.  이는 복음의 열정 서서 준비하며 섬기며 헌신으로 불태우는 모습에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참으로 감동된다.  참으로 20인은 인생의 목적이 분명하며 뚜렷했다.  저자는 이런 의도에서 집필한 듯싶다.  이 20인은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여주며 따라오도록 징검다리 역할을 해주는 것에 고마움을 표한다.

  그중 복음에 관통하신 사역자의 메시지에 동의한다.  하나님의 자녀 된 차세대는 후세대 자녀를 복음으로 양육하며 양성시키므로 말미암아 다가오는 세대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물결이 파동 치도록 준비해야 하는 것을 성경을 열정적으로 해석해 주시기 때문이다.  다윗시대도 은혜의 물결이 파동 쳤던 것처럼 오늘날도 은총의 통로로 축복의 근원으로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도록 양육하며 양성시키자고 열정을 가하시는 가르침에 동의하게 된다.

  다음은 교회의 사명에 열을 하시는 메시지이다.  제자사명인 것과 이에 신앙에 회복과 함께 초대교회를 모델 삼아야 할 것을 강조하는 가르침 말이다.  이를 영국 예배당같이 나이트클럽과 유흥업소로 변해가는 것을 중국처서교회와 북한지하교회가 교회다운 모델을 비교하면서 오늘날 한국교회도 전자의 교회같이 건물만 교회가 아니라 후자의 교회같이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충만함이 있는 곳이 교회다운 교회인 것과 앞으로 자신이 준비해야할 사명인 가르침에 충만함을 얻는다.

  20인 믿음은 복음을 열정 시켜 주는 성령의 능력이 발전소가 되었다.  왜냐면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기 위하여 믿음의 영향력을 잠자는 이들에게 비추어 주기 위함 때문이다.  특히 타오르는 복음의 열정을 불태우기에 역동적이며, 나날이 갈수록 빛을 비추기를 소망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각자마다 은사로 무장하는 것과 이에 동의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조건들을 제시해 준다.  더 말하면, 아주 부르신 소명에 확신과 보냄을 받은 사명이 투철한 20인이었다는 것이다.

  아무리 독서해도 미래를 준비하는 각자의 심령에는 복음의 열정을 발전시켜 주는 성경구절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이 그들의 믿음의 원동력이었기 때문이다.(고전1:17-18). “[17]그리스도께서 보내심은…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니… [18]구원을 얻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능력이라.”
  다시 한 번 꺼져가는 불길에 타오르는 불길로 열정이 일어나기를…

  진리와 성령님 안에서 나를 발견하면 나는 미래에 준비할 것을 찾으며 구하며 얻는다.  이에 심령의 부뚜막에서 성령님이 복음의 불을 지펴 주시면 열정은 타오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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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low 친밀감의 적 수치심 어글로우 성경공부 시리즈
마리 파워스 지음, 김혜경 옮김 / 예수전도단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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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밀감의 적 수치심.  -죄의 속성이 죄의 본질이

  웃어른들은 수치심이 많으면 겸손한 사람으로 인정하였다.  그 사람 겸손하게 생겼다고 말이다.  본 서적에서는 수치심이 겸손이 아니라 나의 죄의 속성임을 요소임을 강조하고 있다.
  내향적인 부분이 있어 어디 한번 수치심 서적을 참조하며 필요한 지식을 얻고 구입한 서적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수치심은 죄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창세기에 아담과 하와가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자 나뭇잎으로 감춘다.  바로 자기의 수치심이 보였기 때문이며 들어났기 때문이다.

  믿음 생활하면서 말씀을 알며 경험하게 되면, 확실하게 나의 죄의 모습과 복음에 의의 본질을 대조하는 것을 알게 되어 내적인 사람은 수치심이나 부끄러움이나 그리고 시험에 빠져 침윤에 절망에 또는 낙심하며 믿음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는 시간이 된다.  세상에 속한 사람은 무디거나 양심에 화인 맞아 모르는 지식이다.

  서적도 사람의 수치심에 요소들을 보여주며, 수치심에 해결책을 제시하며 이 수치심을 나누는 가이드도 참조되어 있어 유익한 서적이다.
  그러므로 수치심은 좋은 것이 아니라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나의 죄부터 발견하며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도록 알려준다.  세상에 죄로 거한 사람은 무슨 번거롭게 상활하냐고 말하겠으나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와 평안과 영생복락을 경험한 사람은 더욱더 민감하며 예민한 것을 경험한다.

수치심은 죄의 속성이요.
수치심은 죄의 본질이요.
수치심은 죄인을 발견함.
수치심은 나부터 알게함.
수치심은 구원의 신호요.
수치심은 회개의 신호다.
수치심은 숨겨진 상처요.
수치심은 가로막 장애물.
수치심은 관계를 깨트림.

  수치심에 본질과 속성을 알면 의기소침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복음 안에서 나라는 존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며 사랑이시겠다.  죄인이면서 동시에 의인이 것이다.  충만함을 공급받으며 기쁘며 즐거우나 속사람에 미숙함으로 갈등할 때가 만만치 않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알기에 죄의 속성을 갖는 수치심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나아간다.  이것이 친밀감의 적 수치심을 해결하는 동시에 더욱더 친밀감 있게, 더욱더 충만하게 생활하는 방법이겠다.  아무튼 수치심이 있는 사람은 독서하며 유익을 얻는 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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