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통의 원리를 상속하라
강준민 지음 / 두란노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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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통의 원리를 상속하라.


  형통은 통하는 것이다.  길이 통하고 길이 열리는 것이다.  좋은 길이 열리는 것이다.  형통이 좋은 것은 다른 사람이 형통하도록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성경적인 형통이란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발견하는 것이다.  또한 은사를 개발해서 사용함으로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완수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영원한 형통함은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얻는 것이다.  성경에서 배우는 형통의 비결은 남이 안 된다고 할 때는 잘되는 비결이다.  남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비결이다.  환경을 초월해서 형통하는 비결이다.

  그중 이삭의 생애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성경적인 형통의 비결을 본다.  이삭이 형통한 것은 아버지 아브라함에게서 형통의 비결을 배웠기 때문이다. 형통의 비결을 배우기 위해서는 먼저 형통한 사람을 가까이해야 한다.
  형통한 사람은 몇 가지 있다.  첫째, 형통한 사람은 형통의식이 있다.  둘째, 형통한 사람은 긍정적이다. 셋째, 형통한 사람은 원리적용에 탁월하다.  넷째, 형통한 사람은 상대를 형통케 한다. 다섯, 형통한 사람은 미래지향적이다.
  형통의 비결을 실천해야 한다.  첫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둘째,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다.  셋째,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것이다.

  이삭이 환경을 초월하여 축복을 받은 비결이 있었다.  이삭은 복을 약속하며 복을 주시는 하나님께 뿌리를 내렸다.  그 결과 환경을 초월해서 형통하는 축복을 누렸다.
  환경은 직시하더라도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21세기를 살면서 형통하는 길은 앞을 내다보는 안목과 함께 변화를 직시하면서 변화에 빠른 속도로 대처하는 지혜를 갖추는 것이다.  21세기를 살아가는데 있어 변화에 민감해야 하는 것이다.
  환경을 따라 살지 않고, 믿음의 법칙에 따라 살아가야 한다.  첫째, 바라봄의 법칙이다.  둘째, 언어에 법칙이다.  셋째, 기도에 법칙이다.  넷째, 행동에 법칙이다.
 
  훌륭한 거부가 되는 비결이 있다.  먼저는 훌륭한 거부의 자아상을 가져야 한다.  거전한 자아상, 긍정적인 자아상, 성경적인 자아상을 갖는 것이다.  부정적인 자아상 또는 가난하고 빈고한 자아상은 버려야 한다. 대신 풍성한 자아상을 갖는 것이다.
  훌륭한 거부가 의미하는 것이 있다.  첫째, 깨달음이 깊다.  둘째, 지식과 지혜가 있다. 셋째, 하나님을 의지한다.  넷째, 존재가 넉넉하다.  다섯, 상대를 부유하게 한다.
  농작의 법칙을 터득함으로 훌륭한 거부가 된다.
  첫째, 농작의 지식을 소유하는 지식의 법칙이다.
  둘째, 때를 따라 심고 거두는 때의 법칙이다.
  셋째, 심은 종류대로 거두는 정직의 법칙이다.
  넷째, 심은 양을 따라 거두는 투자의 법칙이다.
  다섯, 심은 것이 열매 맺기까지 기다리는 인내법칙이다.

  형통의 원리는 형통에 있지 않으며, 형통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통하여 비로소 정상을 정복하는 법칙과 같은 것이다.  바로 이삭이 형통했던 것도 아버지 아브라함의 믿음을 상속 받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예기서 형통해질 수 있느냐는 아니다.  믿음의 원리를 상속한 다음에 그 원리를 적용한 나머지 아버지와 같이 적용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아버지가 누렸던 형통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이 형통은 하나님으로 비롯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려주는 성경말씀과 하나님을 경험하는 실천에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형통함을 누리는 것이다.  시대가 변해도 사람이 변해도 변함없이 누릴 수 있는 것이 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는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이시다.  이 말씀에 형통이 있으며, 말씀이 생활화하면 형통함을 누리는 것이다.  성경도 내적으로 묵상하며 외적으로 실천할 것을 강조하는 부분에서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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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뉴스
전병욱 지음 / 규장(규장문화사)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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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 news  -좋은 소식

  아주 좋은 소식이다.  그 소식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이야기이다.  또한 복음의 소식이다.  좋은 소식에서 희망이 생기며 더 나가면 소망을 갖고 살아간다.  이것이 좋은 소식이 가져다주는 포인트이겠다.
  저자도 좋은 소식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이야기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 이야기이다.  그리하여 나를 구원하셨다는 것이다.  더는 하나님과 함께 임마누엘하자고 데이트를 신청하고 계신다.  즉, 마음의 문 앞에서 좋은 소식으로 말씀하며 영접하기를 기다리고 계시는 것이다.

  사람은 사람의 존재를 발견한 다음에 자신의 가치에 의하여 살아간다.  그런 하나님도 사람의 가치를 가르쳐주시며 하나님과 임마누엘하시기를 원하신다.  이를 믿는 사람이 진정한 지성적인 사람이다.  참으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참 지식으로서 하나님을 알아 자신을 발견하며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는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이다.

  그런 하나님은 자신과의 임마누엘을 위해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상에서 죽이시며 여기서 은혜를 받은 사람 안에서 사랑을 나누신다.  왜냐면 하나님도 인격자이시기 때문이다.  마음을 두드리시며 문을 여는 사람과 임마누엘 하시는 반면에 그냥 무관심한 사람과는 임마누엘을 하지 않으시며 기다리고 계신다.  좋은 소식을 위하여 그 은혜를 임마누엘로.

  데이트하면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끊임없는 사랑 속에서 하나 되어 가는 것이며 결국은 결혼하며 자녀를 낳으며 가정 안에서 행복감을 얻는다.  이것은 남녀 간에 만나면서 사랑의 여행으로 주행하는 사람들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이렇듯 하나님과의 사랑도 임마누엘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하나님과 깊은 사랑을 경험할 수 없게 되는데, 그 사랑을 막는 것이 죄인 고로 이 과거의 망령된 행실을 보혈로 피로 그리고 성령의 힘으로 새로워져야만 그 사랑을 경험하며 영생의 기쁨과 즐거움 속에서 살아갈 수 있다.

  사랑한 결국으로 자녀를 출산하며 가정 안에서 행복을 만들어 간다.  임마누엘 또한 하나님과 끊임없는 열매로서 영적성장과 영적성숙에 양면성을 균형 잡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만일 사랑했던 관계가 식으면 점점 멀어지듯. 하나님과 멀어지게 것은 과거의 망령된 죄와의 연합이다.
  사랑은 즐거우면서 책임이 뒤따르는 것을 알아야 깊은 사랑을 이루어 갈 수 있는 것이다.  이 하나님과의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처음 구원받았다는 믿음에 환희를 경험한다.  성령 받은 충만함에 세상이 내것같은 소망과 열정도 경험한다.  그리고 임마누엘에 행복함 밖에 모른다.

  믿음의 만남과 믿음의 생활을 한다.  즉,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  포도나무에 접붙임을 받아 꽃을 피어나가는 것이다.  다음으로 열매를 맺는 과정이 있다.  그것이 사랑에 책임이 따르듯 믿음에 책임이 따르는 이것을 결실로 맺느냐! 아니면 결실이 떨어지느냐로 결정된다.
  열매가 결실로 맺어가는 과정은 빛과 영양흡수를 받으면서 동시에 비바람을 맞아가며 더욱더 당도가 높은 열매로 맺는다.  이 비바람은 내적으론 미혹으로 다가와 속사람을 바로 세워가는 아픔도 있다.  외적으론 공격받는 것을 방어하며 믿음을 지켜야하는 수고와 노력도 있다.

  당도가 놓은 결실 뒤에는 농부의 수고와 자연의 도움을 받은 것을 알듯. 이 좋은 소식 뒤에는 신구약에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수고를 알아본다.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믿음의 열매를 맺는 과정에는 자신과 싸움과 투자가 있는 결과로 맺어가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쉽게 얻는 것은 쉽게 빼앗기며 잊어버리나
  어렵게 얻는 것은 쉽게 빼앗기지 않으며 보석같이 귀하게 여긴다.
  좋은 소식도 많은 아픔과 괴로움을 겪으며 그 가치를 사모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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