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마지막 장미 - 조세핀과 나폴레옹의 사랑 이야기
발트라우트 레빈 지음, 두행숙 옮김 / 아일랜드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조세핀과 나폴레옹-둘 모두 당시에는 다른 이름을 쓰고 있었지만-의 만남으로부터 시작해, 당시의 프랑스 역사상와 두 사람의 관계, 죽음까지를 그려낸 소설이다. 조세핀은 보아르네 자작과 결혼했으나 이혼했고, 전남편이 처형당한 뒤 한동안 투옥되지만 곧 풀려난다. 그녀는 아름답지만 지나치게 사치스러운 여자다.


'조세핀 황후, 이탈리아군 사령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부인.'


외젠 보아르네는 "모두가 실수를 저질렀다. 오로지 단 한 사람, 외젠만은 한 번도 실수를 범한 적이 없다(p.362)" 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나폴레옹에게 충실했다. 위키의 조세핀 드 보아르네 항목에는 조세핀의 결혼에 대해 외젠이 반대하고 오르탕스가 찬성했다고 씌여 있지만, 소설에서는 반대로, 오르탕스가 반대하고 외젠이 찬성했다고 한다.


"우리 카드놀이를 하지 않을래요, 부오나파르테 씨? 우리 미래에 대해 점을 쳐볼까요?"

"우리의 미래라니요? 그것은 카드 속에 들어 있지 않습니다. 미래는 우리 스스로 만듭니다. 행운의 여신의 도움을 받아서요."

그녀는 그 말에는 대꾸하지 않았다.

"언젠가 누가 카드로 나에게 이렇게 예언을 해준 적이 있어요. '당신은 불행한 결혼을 하게 될 겁니다. 당신은 과부가 되었다가 훗날 어느 황제의 아내가 될 겁니다' 라고요. (그녀가 마르티니크 섬에 살고 있을 때 실제로 누군가 그런 예언을 했다고 한다!) 이제 그 예언 가운데 두 가지는 이미 일어났어요, 유감스럽게도……."

"어쩌면 세 번째 예언도 실현될지 모릅니다. 당신 같은 부인이라면 말입니다!"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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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부르는 소녀 바리>를 읽었다.

 

"버려지는 존재의 슬픔이 있는 한 오늘도 이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신화나 설화를 통해서 너무나도 익숙한 바리공주 이야기를 작가가 어떻게 풀어갈지 궁금증과 함께 시작했는데, 단숨에 읽고야 말았다."

 

책 뒷표지에 더할 것 없는 감상을 느껴, 옮겨쓴다. 바리는 참 익숙한 이름인데, 문장도 참 예쁘고 이야기 곳곳이 꽉 찬 듯 느껴졌다. 바리를 소재로 한 동화책은 물론이고 다른 소설들도 있는데, 한 번쯤 읽어볼까 하고 추가해둔다. :-)

 

 

 

 

 

 

 

 

 

 

 

 

 

 

 

 

 

 

 

 

p.18
버려도 버릴 것이고 던져도 던질 것이니 바리공주라 지으라는 오구대왕의 마지막 말이 떨어지는 순간, 눈물로 낭자해진 길대부인의 얼굴이 체념으로 일그러지는가 싶었다. 마침내 고개를 떨군 채 갓난아기를 품에 안고 일어서는 길대부인의 얼굴에서 살기가 이는 듯한 푸른 서슬에 돋는 것을 지켜보던 노老상궁이 흠칫 몸을 떨었다. 이십여 년 간 길대부인을 모셔왔으나 오구대왕 앞에서 저토록 싸늘한 서슬이 서는 것을 처음 보았다.

p.68
노을빛을 머금으며 초저녁 달빛이 익어갈 즈음 너럭바위로 돌아와 가부좌를 틀고 앉은 바리공주가 손바닥에 놓인 동백나무 잎사귀 한 장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자신이 피운 꽃을 모가지째 발밑에 떨구고 서있던 동백나무가 떠올라 마음이 아팠다. 수미산 정상 만년설이 얼음 깨지는 소리를 내며 우릉, 울었다. 해토머리에 이르면 먼 산봉우리의 얼음 깨지는 소리는 한층 더 처연해지곤 했다. 바리공주가 천천히 숨을 고르면서 동백나무 잎사귀의 가장자리를 가볍게 접어 입술에 갖다 대었다. 두 손으로 살풋 쥔 짙푸른 동백나무 잎사귀가 붉은 입술 사이를 칼끝처럼 가르는가 싶더니 구슬프고 비장한 소리를 뿜어 올렸다. 희디흰 만년설이 달빛을 튕겨 올리는 듯한 소리였다. 수미산의 만년설을 독대하며 불기 시작한 초적이라 그런 걸까. 바리공주의 초적 소리는 고독하고 단단했다.

p.71
똑같은 나뭇잎도 계절에 따라 소리의 질감이 달라졌다. 봄 잎들과 야들야들한 얇은 잎새를 지닌 것들이 날카롭고 맑은 음색을 주로 내는 데 비해 겨울 잎들과 두텁고 단단한 잎새를 지닌 것들은 선이 굵고 힘찬 소리를 주로 내었다. 바리공주가 특히 좋아하는 잎사귀는 몇 차례 눈보라를 맞으며 붉은 꽃을 매단 동백나무 잎사귀와 배꽃 질 무렵의 산배나무 잎사귀였다. 동백잎과 산배나무잎은 화려하고도 깊은 공명을 지니고 있었다.

p.95
버려졌기 떄문에 바리는 자신을 더욱 사랑했다. 한 번 버려졌으니 절대로 두 번은 버려지지 말아야 한다고, 자신을 더욱 사랑해줘야 한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비럭공덕할멈과 할아범의 지극한 사랑은 바리를 그렇게 키웠다.

p.127
휘여, 불나국 내 아버지도 지옥불의 고통을 면치 못하겠구나. 남아에게 권좌를 전수하여 대통을 잇게 해야 한다는 법도는 대저 어디에서 왔으며 그 관습의 감옥에 갇혀 제 자식을 버린 우매한 영혼은 어찌 구제받을까나. 인간의 제도 자체가 악이라면 그 구렁텅이 속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인간이란 도대체 누구인가. 생로병사가 애초에 고통일지라도 생로병사는 자연의 이치건만, 인간의 제도와 관습이 갖에하여 생긴 우매한 마음의 생로병사는 도대체 어찌 치유한단 말인가.

p.134
지옥을 건너오면서 눈물을 속으로 삼킨 얼굴에 드리워진 그늘이 수척하게 깊었다. 그간 무쇠 옷은 옷소매며 앞섶이 많이 닳아있었다. 손등이며 손가락 끝이 죄다 갈라터지고 얼굴의 살결도 거칠게 터서 외형은 남루하기 짝이 없었으나, 바리공주의 얼굴에선 단단하고 투명한 빛이 그윽하게 배어 나오고 있었다. 강하고 고독한 바리의 눈빛은 첫새벽 이슬을 그대로 얼려놓은 듯한 영롱함으로 가득했다. 목표를 향해 두려움 없이 나아가고자 매 순간 자기 자신과 맨얼굴로 만나온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당당하고 환한 빛이 바리로부터 뿜어져 나왔다.

p.167
어떤 때엔 반짝이는 은빛 억새꽃들이 물결치는 애기봉 산마루에서였고 어떤 때엔 핏물이 들 것 같은 철쭉밭에서였고 원추리 가득한 능선이거나 연둣빛 새 잎이 막 돋기 시작하는 산죽밭이거나 산목련이나 후박나무꽃이 지등처럼 어여쁜 꽃그늘을 만든 산비탈이기도 했다.

p.168
아름다운 꽃 한 송이를 지극한 공경의 마음으로 오래 들여다볼 때 꽃의 빛깔과 향기가 매 순간마다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듯이

p.174
휘여…… 달이여…… 달의 물속에 핀 수천의 꽃이여…….
달 속으로 수천수만 장의 꽃잎이 흘러가는 밤이었다. 달의 즙이 지상의 아픈 나무들의 산도産道를 타고 흐르면서 상처를 어루만져 주고 있었다.

p.195
"저를 필요로 하는 이들은 이 궁 안에 있지 않습니다. 어머니. 소녀는 이제 처처에 가득한 슬픔을 위로하고 억울한 혼령들을 쓰다듬어 씻기는 만신의 인로왕이 되겠나이다."

p.196
"세상에 하고많은 공덕이 있건만, 왜 하필 죽은 사람들을 이끄는 고된 일을 하려 하느냐?"
애처롭게 바리공주의 어깨를 붙안는 길대부인에게 따스한 목소리로 바리공주가 말하였다.
"죽음은 삶과 한 쌍이더이다. 죽음이 죽음으로만 방치되면 재앙일 것이로되 사랑을 얻으면 삶이 되더이다. 갓 태어났을 때 이미 한 번 죽은 저를 어머님의 사랑이 살리셨고, 수미산에 버려져 다시 죽은 저를 비럭공덕할멈과 할아범의 사랑이 살리셨고, 버려진 존재라는 덫에 걸려 내가 누구인지 찾지 못한 채 헤매던 저를 약수지킴이 무장승의 사랑이 살렸습니다. 인생에는 매번 죽음의 순간이 닥치나 사랑이 없으면 죽음 앞에 엎어질 것이요 사랑이 존재한다면 삶이 되는 것이 생사의 이치임을 알았나이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이 될 수 있도록 이끌고 인도하는 일이야말로 제가 세상에서 하고픈 일임을 생명수를 구해 오는 여정을 통해 깨달았사오니 어머님은 부디 통촉하시어 제가 행복한 길을 가도록 축원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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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살 로즈의 아주 특별한 일 년>.

(<사랑스런 소녀 로즈와 일곱 명의 사촌들>의 개정판이다)

 

p.82
"피비는 아주 건강한 아가씨야. 너희 소녀들이 진정한 아름다움이 뭔지 안다면 좋겠구나. 벨트 따위로 허리를 조이지도 않고, 굶지도 않고, 얼굴을 허옇게 하고 다니지 않는다면, 많은 시간과 돈을 낭비하지 않고 고통도 당하지 않을 테니까. 남자든 여자든 몸이 건강하고 행복한 사람이 가장 아름답단다."

p.90
"넌 가진 게 없는데 나만 많이 갖는다는 건 불공평하다고 생각해. 난 네게 잘 대해 주고 싶어. 피스 할머니께서 우린 모두 한 가족이라고 말씀하셨거든. 난 너와 자매가 되고 싶어. 그렇게 하자, 피비!"

p.156
"하지만 옛날에 어느 지혜로운 노인은 '용기란 행복해지기 위해서 필요한 게 아니라, 옳은 일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라고 말했지."
로즈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러고는 환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진정한 희생은 좋아하는 거나 원하는 걸 포기할 수 있는 거지요?"
"그래."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 사람이 행복해지길 바라기 때문에 스스로 희생하는 거구요?"
"그렇지."
"그리고 칭찬을 받지 못해도 기꺼이 희생하고 칭찬에 연연해하지 않는 거구요?"
"그래, 로즈. 잘 이해하고 있구나. 그게 바로 진정한 희생 정신이란다. 앞으로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거라. 하지만 너무 힘들게는 하지 말고."

p.189
하지만 맥을 간호하는 동안 로즈는 맥에게도 장점이 많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맥은 참을성 있고 용감하고 명랑해지려고 애써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이제 로즈는 불쌍한 책벌레를 동정할 뿐 아니라 존경하고 사랑하게 되었다.

p.278
"저렇게 아이들에게 인생과 일에 대해 그릇된 환상을 심어 준다니까. 굳이 몰라도 되는 악당이나 건달을 보여 주면서, 돈을 벌어서 주인 딸과 결혼하거나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 게 가치 있는 성공이라고 말하고 있어. 성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수많은 시간을 가치도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고. 자연스럽고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써야지. 비록 결점이 있다고 해도 주인공은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착하고 도덕적인 사람이어야 해. 난 아이들이 이런 걸 보면 참을 수가 없어. 악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좋은 것을 필요로 하는 어린 영혼의 양식이 되기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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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 리쿠의 라틴아메리카 여행기.

 

온다 리쿠라는 이름에 끌리기도 했지만, 사실 모 소설을 읽다 어떤 구절이 '메갈로마니아' 에서 인용되었다는 것을 보고, 번역본이 나오면 이 구절이 들어간 '메갈로마니아'라는 책을 꼭 한 번 읽어봐야겠다 생각했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소설이 어떤 것이었는지, 어떤 구절인지는 기억해내지 못했다) 그리고 메갈로마니아를 펼쳐들게 되었다.  

 

 

 

 

 

 

라틴아메리카를 누빈, 약간 특이한 형식의 여행기다. 온다 리쿠라는 작가 개인에 대해서도 좀 더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겠다.

 

 

 

 

 

 

 

 

p.21
그때 불현듯 내 머리에 떠오른 것이 '빛바랜 보석'이라는 문구였다.
...
생각해보니 중남미 고대유적과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린다.
저마다의 기술로 서로 다른 광채를 내뿜던 문명이 식민지주의와 가톨릭으로 인해 획일화되면서 한 가지 색으로 덧칠되어가는 모습은, 보석을 다듬어지기 전 상태로 되돌려 그 지금地金에 돌을 차곡차곡 박아넣는 꼴과 비슷하지 않을까.

p.22
원래 나는 제목이 정해지지 않으면 글을 쓰지 못한다. 프로그램과 관련된 책과는 별도로 여행기를 써보자는 제안을 받았을 때도 가장 먼저 제목을 생각했다. 그것이 '메갈로마니아megalomania'(과대망상에서 고대 망상을 연상시키려는 의도)였는데 너무나 막연해서 부제라고 해야 할지, 아무튼 주제가 필요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이 여행을 위해 준비한 노트 첫 페이지에 '빛바랜 보석'으로 떠나는 여행, 이라고 적었다.

p.39
하늘 저편에서 무언가가 다가온다. 거대한 존재가 그 모습을 드러내면서 우리 위로 강림한다.
어쩌면 이런 이미지는 인간의 유전자 속에 근원적으로 각인되어 있어서, 인류 대대로 내려오는 태곳적 기억 혹은 자손에게 전하는 아득한 예감으로서 건축물이나 영상물을 통해 되풀이해 확인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p.65
터키의 부적 중에 안구를 모방한 나자르 본주nazar boncugu 라는 것이 있다. 이는 질투나 시샘으로 가득찬 사악한 눈'evil eye'으로부터 몸을 보호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예로부터 타인의 시선이야말로 강렬한 저주인 동시에 에너지였다. 보다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고 이를 극복하기만 한다면 반대로 저주에서 벗어나 성장해 강한 신성神性을 얻게 된다.

p.96
화려한 색채의 민속공예품, 그리고 발랄한 해골 모양의 설탕과자가 가득한 멕시코의 백중날 '사자死者의 날Dia de Muertos'.
...
요즘에는 영화의 영향으로 화가 프리다 칼로Frida Kahlo가 유명하다. 하지만 멕시코 국민은 벽화운동을 이끌었던 그녀의 남편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를 위대한 국민 화가로 꼽는다.

p.107
이번에 챙긴 책 가운데 요시다 겐이치의 여행기를 집어들었다.
이런 환경에서 농후하고 개성이 강하면서도 확고한 일본어가 머릿속에 쏙쏙 들어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존재의식이 불안하게 흔들리는 이국땅에서 마주하는 견고한 모국어는 나를 모국이라는 항구와 이어지는 듯한 안정감을 준다.
맥시코에 있는 이 시간, 내가 살고 있는 현대 일본의 시간, 요시다 겐이치가 살았던 과거의 시간이 정글 속 호텔방 안쪽에서 끈적하게 얽힌다. 이런 감각이야말로 잠시나마 다른 인생을 사는 여행의 가장 큰 묘미일 것이다.

p.132
세계 공통적으로 기둥이란 신 그 자체, 혹은 신과의 교감을 의미한다. 전사의 신전을 둘러싸듯 정연하게 늘어서 있는 돌기둥은 그 자체로 존재감이 엄청나서 공연히 섬뜩하기까지 하다. 돌기둥에는 전사의 모습이 아름답게 조각되어 있는데, 회랑을 걷노라면 마치 기둥 속에 그들의 혼이 갇혀 있는 듯한 착각이 들면서 머릿속이 점점 무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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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맹주호는 김수영의 결정을 애써 말리고 싶진 않았다. 저 멋진 친구도 계속 이 야바위판에 있다 보면 얼굴은 짜증과 탐욕이 서리고 언어는 위선과 허풍으로 느물거릴 것이다. - p.58

김수영과 오소영은 아우슈비츠 가스실 속의 벌거벗은 유대인 남매처럼 절망했다. 인간의 의지는 궁극적으로 불의의 폭력에는 주눅 들지 않는다. 다만 세상의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은 어이없음에 낙담하고 마는 것이다. - p.148

헌신하지 않는 역사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어차피 모든 역사는 승자의 조작이므로 가치 있는 것을 위해 투쟁하지 않는 역사는 악마의 기록일 뿐입니다.
자네는 역사가 오용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하네.
저는 그런 오용이 아름답습니다. 사과나무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죠. 빛나는 사과나무에만 의미가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의미를 줄 수가 있습니다. 빛나지 않는 것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 p.166

"당신의 내 인생의 책 한 권은 뭐지? 가장 영향 받은 책."
"책 한 권에 의해 인생이 변화 받았노라고 떠벌리는 인간들과는 상종하지 마라. 그들은 언제 너를 책 한 권 정도의 값어치로 팔아넘길지 모른단다."
(…)
"내 인생의 책까지는 아니지만, 굳이 그렇게 꼽자면, 나는 시턴 동물기."
"과연."
"왜?"
"과연 동물다우시다고."
"나는 철들고 나서부터 인간이 동물보다 낫다고 생각한 적 한 번도 없어. 인간이 짐승만큼 아름답고 조화로웠다면 지구가 이렇게 되진 않았겠지. 인간이 짐승보다 열등하다는 건 인류의 역사가 증명한다." - p.189

이러니 벤저민 프랭클린이 이렇게 말했던 거다. 우리를 망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눈이다. 만약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 모두 장님이라면 나는 굳이 고래 등 같은 집도 번쩍이는 가구도 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라고. 괜히 프랭클린이 토머스 제퍼슨과 함꼐 미국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게 아닌 것이다. 김수영과 오소영은 대한민국에서 독립하고 싶었다. 전직 판사에다 현직 여당 국회의원 겸 검도장 관장인 남자가 현직 야당 대표이자 국회의원인 애인 앞에서 짭새에게 삥을 뜯긴 것이다. - p.212

역사라는 게 껍질을 까서 가만 들여다보면 기실 죄다 왜곡과 과대평가와 오해의 제비뽑기인 것이다. - p.220

작가는 대신 절망해 주는 사람이야. 근데 너희들을 가만 보면 참 존나 건강해. 풍자를 못하면 자살이라도 좀 해 봐라. 외국 작가들 노벨 문학상을 타고서도 자살 많이들 했어. 왜? 절망했으니까. 절망할 줄 알았으니까. 딴따라들도 하는 자살을 작가란 놈들이 글도 못 쓰면서 왜 안 할까? 석연치가 않아. 살아 있는 거야 좋은 거지. 훌륭한 거지. 하지만 내 눈엔 너희들이 절망을 극복해서 살아 있는 놈들로 보이질 않아. 밖으로는 뻔한 사기를 뻔뻔하게 치고 밀실 안에서는 오방 주접들을 떨면서 난교 파티를 벌이고 있는 게 분명해. 으이그. - p.261

사람들은 로보가 블랑카를 잃은 슬픔에 정신을 놓고 경솔해져서 잡혔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아. 로보는 블랑카가 어떠한 경우에도 아직 죽지 않았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그랬던 걸 거야. 어서 구해 내야 한다고, 그러다 죽으면 어쩔 수 없다고 결심했던 거지. 로보는 그런 남자였고 그래서 죽었고 그의 사랑은 그랬던 거야. 이성을 잃었다고? 웃기지 말라 그래. 교활한 자들은 교활한 해석밖에는 내리지 못한다. - p.267

공자 왈, 윗사람과의 교제에서 삼갈 사항 세 가지. 묻지 않았는데도 조급하게 말참견하는 것. 물었는데도 대답하지 않고 잔머리 굴리며 숨기는 것. 안색을 살피지 않고 혼자 떠들며 눈치 없이 구는 것. - p.288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쓰레기인지도 모르고 확신과 결의에 가득 차 있어요. 반면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얼마나 훌륭한지도 모르고 늘 근심과 자책에 시달리고요. 의원님이 바로 그렇습니다. - p.308

그는 문봉식의 '우리'와 맞서 싸우기로 결정한 것이다. 암흑 속에서 심해어는 꿈을 꾼다. 위에서 해일이 일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다. 누구도 나를 죽일 수 없다면 아직 진 것이 아니다. 전쟁이란 그렇다. 끝나기 전에는 끝난 것이 아니다. - p.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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