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주호는 김수영의 결정을 애써 말리고 싶진 않았다. 저 멋진 친구도 계속 이 야바위판에 있다 보면 얼굴은 짜증과 탐욕이 서리고 언어는 위선과 허풍으로 느물거릴 것이다. - p.58
김수영과 오소영은 아우슈비츠 가스실 속의 벌거벗은 유대인 남매처럼 절망했다. 인간의 의지는 궁극적으로 불의의 폭력에는 주눅 들지 않는다. 다만 세상의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은 어이없음에 낙담하고 마는 것이다. - p.148
헌신하지 않는 역사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어차피 모든 역사는 승자의 조작이므로 가치 있는 것을 위해 투쟁하지 않는 역사는 악마의 기록일 뿐입니다. 자네는 역사가 오용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하네. 저는 그런 오용이 아름답습니다. 사과나무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죠. 빛나는 사과나무에만 의미가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의미를 줄 수가 있습니다. 빛나지 않는 것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 p.166
"당신의 내 인생의 책 한 권은 뭐지? 가장 영향 받은 책." "책 한 권에 의해 인생이 변화 받았노라고 떠벌리는 인간들과는 상종하지 마라. 그들은 언제 너를 책 한 권 정도의 값어치로 팔아넘길지 모른단다." (…) "내 인생의 책까지는 아니지만, 굳이 그렇게 꼽자면, 나는 시턴 동물기." "과연." "왜?" "과연 동물다우시다고." "나는 철들고 나서부터 인간이 동물보다 낫다고 생각한 적 한 번도 없어. 인간이 짐승만큼 아름답고 조화로웠다면 지구가 이렇게 되진 않았겠지. 인간이 짐승보다 열등하다는 건 인류의 역사가 증명한다." - p.189
이러니 벤저민 프랭클린이 이렇게 말했던 거다. 우리를 망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눈이다. 만약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 모두 장님이라면 나는 굳이 고래 등 같은 집도 번쩍이는 가구도 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라고. 괜히 프랭클린이 토머스 제퍼슨과 함꼐 미국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게 아닌 것이다. 김수영과 오소영은 대한민국에서 독립하고 싶었다. 전직 판사에다 현직 여당 국회의원 겸 검도장 관장인 남자가 현직 야당 대표이자 국회의원인 애인 앞에서 짭새에게 삥을 뜯긴 것이다. - p.212
역사라는 게 껍질을 까서 가만 들여다보면 기실 죄다 왜곡과 과대평가와 오해의 제비뽑기인 것이다. - p.220
작가는 대신 절망해 주는 사람이야. 근데 너희들을 가만 보면 참 존나 건강해. 풍자를 못하면 자살이라도 좀 해 봐라. 외국 작가들 노벨 문학상을 타고서도 자살 많이들 했어. 왜? 절망했으니까. 절망할 줄 알았으니까. 딴따라들도 하는 자살을 작가란 놈들이 글도 못 쓰면서 왜 안 할까? 석연치가 않아. 살아 있는 거야 좋은 거지. 훌륭한 거지. 하지만 내 눈엔 너희들이 절망을 극복해서 살아 있는 놈들로 보이질 않아. 밖으로는 뻔한 사기를 뻔뻔하게 치고 밀실 안에서는 오방 주접들을 떨면서 난교 파티를 벌이고 있는 게 분명해. 으이그. - p.261
사람들은 로보가 블랑카를 잃은 슬픔에 정신을 놓고 경솔해져서 잡혔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아. 로보는 블랑카가 어떠한 경우에도 아직 죽지 않았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그랬던 걸 거야. 어서 구해 내야 한다고, 그러다 죽으면 어쩔 수 없다고 결심했던 거지. 로보는 그런 남자였고 그래서 죽었고 그의 사랑은 그랬던 거야. 이성을 잃었다고? 웃기지 말라 그래. 교활한 자들은 교활한 해석밖에는 내리지 못한다. - p.267
공자 왈, 윗사람과의 교제에서 삼갈 사항 세 가지. 묻지 않았는데도 조급하게 말참견하는 것. 물었는데도 대답하지 않고 잔머리 굴리며 숨기는 것. 안색을 살피지 않고 혼자 떠들며 눈치 없이 구는 것. - p.288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쓰레기인지도 모르고 확신과 결의에 가득 차 있어요. 반면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얼마나 훌륭한지도 모르고 늘 근심과 자책에 시달리고요. 의원님이 바로 그렇습니다. - p.308
그는 문봉식의 '우리'와 맞서 싸우기로 결정한 것이다. 암흑 속에서 심해어는 꿈을 꾼다. 위에서 해일이 일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다. 누구도 나를 죽일 수 없다면 아직 진 것이 아니다. 전쟁이란 그렇다. 끝나기 전에는 끝난 것이 아니다. - p.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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