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다 리쿠의 라틴아메리카 여행기.
온다 리쿠라는 이름에 끌리기도 했지만, 사실 모 소설을 읽다 어떤 구절이 '메갈로마니아' 에서 인용되었다는 것을 보고, 번역본이 나오면 이 구절이 들어간 '메갈로마니아'라는 책을 꼭 한 번 읽어봐야겠다 생각했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소설이 어떤 것이었는지, 어떤 구절인지는 기억해내지 못했다) 그리고 메갈로마니아를 펼쳐들게 되었다.
라틴아메리카를 누빈, 약간 특이한 형식의 여행기다. 온다 리쿠라는 작가 개인에 대해서도 좀 더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겠다.
p.21 그때 불현듯 내 머리에 떠오른 것이 '빛바랜 보석'이라는 문구였다. ... 생각해보니 중남미 고대유적과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린다. 저마다의 기술로 서로 다른 광채를 내뿜던 문명이 식민지주의와 가톨릭으로 인해 획일화되면서 한 가지 색으로 덧칠되어가는 모습은, 보석을 다듬어지기 전 상태로 되돌려 그 지금地金에 돌을 차곡차곡 박아넣는 꼴과 비슷하지 않을까.
p.22 원래 나는 제목이 정해지지 않으면 글을 쓰지 못한다. 프로그램과 관련된 책과는 별도로 여행기를 써보자는 제안을 받았을 때도 가장 먼저 제목을 생각했다. 그것이 '메갈로마니아megalomania'(과대망상에서 고대 망상을 연상시키려는 의도)였는데 너무나 막연해서 부제라고 해야 할지, 아무튼 주제가 필요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이 여행을 위해 준비한 노트 첫 페이지에 '빛바랜 보석'으로 떠나는 여행, 이라고 적었다.
p.39 하늘 저편에서 무언가가 다가온다. 거대한 존재가 그 모습을 드러내면서 우리 위로 강림한다. 어쩌면 이런 이미지는 인간의 유전자 속에 근원적으로 각인되어 있어서, 인류 대대로 내려오는 태곳적 기억 혹은 자손에게 전하는 아득한 예감으로서 건축물이나 영상물을 통해 되풀이해 확인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p.65 터키의 부적 중에 안구를 모방한 나자르 본주nazar boncugu 라는 것이 있다. 이는 질투나 시샘으로 가득찬 사악한 눈'evil eye'으로부터 몸을 보호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예로부터 타인의 시선이야말로 강렬한 저주인 동시에 에너지였다. 보다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고 이를 극복하기만 한다면 반대로 저주에서 벗어나 성장해 강한 신성神性을 얻게 된다.
p.96 화려한 색채의 민속공예품, 그리고 발랄한 해골 모양의 설탕과자가 가득한 멕시코의 백중날 '사자死者의 날Dia de Muertos'. ... 요즘에는 영화의 영향으로 화가 프리다 칼로Frida Kahlo가 유명하다. 하지만 멕시코 국민은 벽화운동을 이끌었던 그녀의 남편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를 위대한 국민 화가로 꼽는다.
p.107 이번에 챙긴 책 가운데 요시다 겐이치의 여행기를 집어들었다. 이런 환경에서 농후하고 개성이 강하면서도 확고한 일본어가 머릿속에 쏙쏙 들어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존재의식이 불안하게 흔들리는 이국땅에서 마주하는 견고한 모국어는 나를 모국이라는 항구와 이어지는 듯한 안정감을 준다. 맥시코에 있는 이 시간, 내가 살고 있는 현대 일본의 시간, 요시다 겐이치가 살았던 과거의 시간이 정글 속 호텔방 안쪽에서 끈적하게 얽힌다. 이런 감각이야말로 잠시나마 다른 인생을 사는 여행의 가장 큰 묘미일 것이다.
p.132 세계 공통적으로 기둥이란 신 그 자체, 혹은 신과의 교감을 의미한다. 전사의 신전을 둘러싸듯 정연하게 늘어서 있는 돌기둥은 그 자체로 존재감이 엄청나서 공연히 섬뜩하기까지 하다. 돌기둥에는 전사의 모습이 아름답게 조각되어 있는데, 회랑을 걷노라면 마치 기둥 속에 그들의 혼이 갇혀 있는 듯한 착각이 들면서 머릿속이 점점 무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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