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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설헌 - 제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최문희 지음 / 다산책방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단지 그미가 남편과 더불어 나누어 가질 만한 화두가 있기나 했을지, 생의 근원이 무엇인지, 어디에 있는지, 생의 목표를 어디에 두고 있는지 말과 말을 통하거나 시를 읊으며 소통이 가능했을지 그 답답했을 삶이 슬프다. - p.267
스물일곱 해, 비극의 여류시인 허난설헌. 조선시대 여류시인을 생각할 때 황진이, 신사임당과 더불어 떠오르게 되는 허난설헌. 황진이가 기생이지만 그 몸에 자유가 있었고 신사임당이 후대까지 귀감으로 칭해지는 그야말로 현모양처라면, 난설헌은 마치 조선조 여인이 지닌 불행의 상징 같았다.
여덟 살 때 <광한전 백옥루 상량문>을 지음으로써 지금까지 전해지는 반짝이는 영명함. 딸이지만 여인의 굴레에 묶이지 않고 글을 공부했으며 시어를 다듬어낸 그 재능은 아버지의 그늘에서만 피어날 수 있었다. 소설「난설헌」은 초희 아씨, 자는 경번이고 당호는 난설헌인 '그미'가 혼례를 치르던 시기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버지에게, 남편에게, 아들에게 의지해야 하는 여인으로서 남편의 그늘에 들어간 난설헌의 인생은 더 말할 것 없이 설움으로 가득했다.
시모 송씨는 재주 많은 며느리를 처음부터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고, 남편 김성립도 제 학문 얕음에 지레 겁먹고 아내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엄격한 시가와 정붙이지 않는 남편, 그미에게는 의지할 곳이 없었다. 딸에게 소헌이라 이름을 붙이니 멋대로 항렬자를 써 계집에게 이름을 붙였다 못마땅해했고, 아들 제헌을 낳고 돌아온 시집에서는 한 스승 아래 동문지간이라 할 만한 최순치와의 사이로 모함받아 아들을 빼앗기고 대문조차 넘지 못했다.
아들 버선도 제대로 못 말라 주었던 무관심한 어머니이며, 아들 급제에만 목매는 송씨는 난설헌에게 추문을 씌워 손녀손자를 앗아가고는 제대로 돌보지도 않아 둘 다 병들어 죽을지경에 되어서야 그미의 품에 안겨 주었다. 두 아이들이 차례로 싸늘하게 식어가고, 급기야는 본래 초희네가 부리던 종인 술집 여자 금실이 집안에 끌어들여지고 김성립의 아들을 낳아 기세등등한 것을 보았을 때는 이미 어이가 없었다. 끝무렵에 이르러 죽음을 준비하는 난설헌의 모습은 그저 눈물마저 말라 서러웠다. 시대가 얼마나 여인을 짓눌러, 아름다움과 재주가 흠이 되어버리는지...
소설 중간중간 등장하는 시들은 난설헌의 눈물이, 채 삼키고 흘리지도 못했던 서러움이 고여 반짝이는 양 아름다웠다. 그 괴롭고 서러운 인고의 시간을 지났기에, 그 시는 저렇게 눈부시려나.
해맑은 가을 호수 옥처럼 새파란데 秋淨長湖碧玉流
연꽃 우거진 곳에 목란배를 매었네 荷花深處繫蘭丹
물 건너 님을 만나 연꽃 따 던지고 熢郞隔水投蓮子
행여나 누가 봤을까 한나절 부끄러웠네 遙被人知半日差
(采蓮曲) - p.160
푸른 산과 붉은 집이 드높은 하늘에 잠겼는데 靑苑紅堂.沈.
학은 단시 구을 부엌에서 졸고 밤은 아득만 하다 鶴眠丹.夜..
늙은 신선이 새벽에 일어나 밝은 달을 부르고 仙翁曉起喚明月
바다 노을 자욱한 건너에서 퉁소소리 들린다 微隔海霞聞洞簫 - p.331
맑은 이슬 촉촉한데 계수나무 달이 밝다 露濕瑤空桂月明
꽃 지는 하늘에는 흥겨운 퉁소소리 九天花落紫簫聲
옥황님께 조회하는 금 호랑이 탄 동자 朝元使者騎金虎
붉은 깃의 깃대는 옥청궁으로 올라가네 赤羽麾幢上玉淸 - p.333
푸른 바닷물이 구슬 바다에 스며들고 碧海浸瑤海
푸른 난새는 채색 난새에게 기대었구나 靑彎倚彩彎
부용꽃 스물일곱 송이 붉게 떨어지니 芙蓉三九楹
달빛 서리 위에서 차갑기만 해라 紅隋月霜寒
夢遊廣桑山詩 - p.353
허난설헌연구 / 허미자 / 성신여자대학교출판부(1984)
태평광기太平廣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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