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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공주
한소진 지음 / 해냄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고교독서평설 5월호>를 우연히 집어들었다가 한소진 소설가의 인터뷰를 읽게 되었고, 늘 제목만 익숙하던 정의공주를 읽게 되었다. 책 제목이자 주인공 정의공주貞懿公主는 세종대왕의 차녀로, 문종의 누이이고 세조의 누님이다. 책은 이 정의공주가 한글 창제를 위해 얼마나 노력하여 공부했고 세종이 어떤 반대에 부딪쳤는가... 등을 내용으로 하며, 주제를 말하자면 한글 창제라고 하겠다.
정의공주와 함께 주연급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은 정의공주의 남편 안맹담이다. 연창위延昌尉(소설상에서는 죽성군→연창군) 안맹담은 사실과 다른 설정을 지닌 허구의 인물이라는데, 한글 창제에 참여할 만큼 총명하며 학문이 깊고 똑똑한 정의공주와 달리 학문에 대한 견식이 얕고 술에 취하는 것을 인생의 낙으로 삼으며 첫 등장부터 활쏘기에 비범한 재주를 드러내 보인 무인기질의 캐릭터다.
장녀 정소공주의 사망 이래 정의공주를 아낀 세종은 처음 부마감으로 어린 신동 성삼문을 눈여겨본다. 그러나 문신 집안의 딸을 세자빈으로 삼았으니(문종의 첫 번째 아내인 휘빈 김씨) 무신 집안의 아들을 택하는 것이 옳다는 황희의 진언에 안맹담을 부마로 삼게 된다. 태어나 어머니를 여의고 행랑어멈의 품에서 자라다 새어머니의 손에서 큰 안맹담은 공주와 결혼한다는 압박감과 자신 때문에 험한 꼴을 당한 첫사랑에 대한 충격 등등으로 길례를 올린 첫날밤부터 술에 취했다가 다음날 진노한 세종에 의해 공주를 궁에 두고 홀로 본가로 내쫓기는 등 처음부터 위태로운 인물상을 보였고, 자연히 정의공주와 사이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러나 안맹담은 결국 여러 사건을 겪으면서 변화하고, 정의공주 역시도 부부로서 남편을 끝까지 존중한다. 사실 정의공주 개인의 삶을 집중적으로 조명했다기보다 어디까지나 '세종의 차녀 정의공주가 참여한 한글 창제'가 주제로, 정의공주의 개인사는 함께 다뤄진 정도. 정의공주에게서 드러나는 갈등은 대부분 주변인들에 의한 것이고 일을 처리하는 것이나 마음의 자세는 현대인이라기보다 딱 옛 조선시대의 공주마마였다. 성삼문이 공주를 사모한다...라고는 나오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존경의 색이 더 짙은 경애로 보이고, 처음 인터뷰를 읽을 때 생각했던 새콤달콤한 삼각관계? 같은 건 흔적도 없었다. 그냥 안맹담이 홀로 '열폭'했을 뿐;
언뜻언뜻 비친 수양대군의 그림자가 인상깊었다. 병약한 첫째를 위해 뛰어난 둘째를 경계하지 않을 수 없는 아비 세종의 마음이 자못 안타까웠고, 원손시절의 단종을 애틋해하며 동생 수양대군을 늘 감쌌던 정의공주가 후에 세조의 찬탈에 어떻게 반응할까도 궁금했지만 어디까지나 이 소설은 한글 창제에 관한 것이라 거기까지 내용이 진행되지는 않았다. 거기까지 가면 역사'소설'에 너무 가까워지니 무리려나. 재미있게 읽었지만 기대가 커서 아쉬움이 남았다.
/12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