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 시인에게 부치지 못한 연애 편지

시인 동주 | 안소영 글, 창비

2015.06.01


올해는 시인 윤동주 서거 70주년이다. 이준익 감독이 영화 <젊은 시절의 동주의 이야기>로 메가폰을 잡는 등 충무로에서도 발 빠르게 움직인다는 소식이다. 출판계 역시 그런 빅 이슈를 놓칠 리 없다. 조선시대 이덕무와 실학자 벗들을 그린 《책만 보는 바보》로 독자들에게 널리 알려진 작가 안소영이 ‘시인 윤동주’의 삶을 소설로 그려냈다.

안소영이 이 작품을 쓴 이유가 흥미롭다. 작가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다 우연히 여학생 시절의 어머니의 노트와 마주쳤는데, 거기에 어머니가 옮겨 놓은 시인의 시를 읽고 가슴이 뭉클했었다고 한다. ‘나라도 빼앗기고 우리말도 빼앗긴 그 시절에, 맑고 고운 인상의 청년 윤동주는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떤 심정으로 살아갔을지, 더 자세히 알아보고 싶다’는 강한 열망이 이 작품으로까지 이어졌단다.

소설 속 이야기는 1938년 연희전문에 시험을 치기 위해 경성에 올라와 설레는 봄을 맞이한 청년 동주의 삶에서부터 시작한다. 청년 동주가 청춘 시절을 보낸 1930~1940년대는 일제 강점기 중에서도 가장 어두운 시기였다. 전쟁의 광기와 일제의 폭압이 절정으로 치달으면서, 우리말 신문과 잡지가 폐간되었고 창씨개명으로 이름조차 빼앗겼다. 동주가 평소 존경하던 교수와 선배문인들은 ‘황군 위문단’이 되거나 집필 의욕을 잃고 칩거하던 절망적인 시대였다. 하지만 청년 윤동주는 아무도 시를 쓰지 않으려 했던, 가장 어두웠던 그 시기, 맑고 깊은 잔잔한 바다와도 같은 그의 내면에서 서늘하면서도 뜨거운 시를 길어올린다.

이 책은 한마디로 축약하자면, ‘시인 윤동주’에 대한 저자의 애정이 듬뿍 담긴 긴 각주다. 저자는 윤동주와 친했던 벗들의 책들은 물론 윤동주에 관한 논문들과 또 그와 관련한 책들을 샅샅이 찾아보고 읽으면서 죽은 윤동주를 지금 다시 손을 뻗으면 만져질 정도로 아름답고 생생하게 살려내고 있다. 그래서 소설의 마지막 장에 실은 수두룩 빽빽한 참고자료의 긴 목록을 보고 있으면 사랑하는 연인(시인 윤동주)에게 부치지 못한 저자의 연애편지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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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 보는 것이 곧 그리는 것

그린다는 것 | 노석미 글 | 너머학교

2015.05.01



누구나 화가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린다는 것’, 그 자체로 누구나 행복을 누릴 수는 있다. 그렇다면 화가와 화가가 아닌 자 사이의 교집합은 딱 하나, 바로 ‘그리다’라는 물리적 행위다. 풍성한 색감과 유쾌한 상상력, 재치를 겸비한 그림으로 사랑받는 화가 노석미는, 이 책 《그린다는 것》에서 자신과 다른 이의 미술 작품에 대한 감상과 비평이 아닌 오로지 ‘그린다는 것’의 본질을 파고든다.

수업시간에 몰래 만화를 그리며 창작의 기쁨을 맛보았던 학창 시절의 이야기부터 왜, 무엇을,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에 대해 지금까지 화가로 살아오면서 거쳐야 했던 치열한 고민들과 함께했던 지난한 경험, 또 그로인한 깨달음의 흔적들을 진솔하게 들려주는 에세이 같은 책이다. 정사각형 모양의 책은 마치 미술관에 걸려있는 액자 속 작품을 떠올리게 하며 넘기는 순간 화가의 스케치부터 완성작, 수첩 속 낙서는 저자의 꾸밈없고 솔직한 글과 어우러져 한 편의 일기장 같은 특별한 도록을 선물 받은 느낌이다.

저자는 말한다. ‘보는 것이 곧 그리는 것이다.’ 신선한 시선으로 주변을 관찰하고, 떠오르는 이미지를 채집하며 순간을 포착하여 생생하게 남기는 것이다. 어떤 대상을 그리면서 더 깊이 알고, 무심코 그리다 나의 무의식을 만나고, 그리면서 그림과 끊임없이 대화를 하고, 감상자와 그림으로 소통하는 이 모든 과정이 그린다는 것이다. 더불어 대중매체가 지금까지 만들어내고 확대 재생산해내는 예술가들, 특히 화가에 대한 판타지를 여지없이 와장창 깨주며 ‘그린다는 것’ 또한 하나의 값진 노동으로 반복과 모방의 수순을 거치며 그렇게 보고 배운 것들이 자기 안에 켜켜이 쌓여 자신만의 방식을 만나게 된다고 이야기 한다.

우리는 모두 매일 그린다. 전화통화를 하면서도, 심지어 멍을 때릴 때조차 손은 가만있지 않는다. 항상 그려지는 무언가에, 툭 의외의 선을 그어보는 것, 아주 작은 시도에서 느껴지는 상쾌한 기분전환으로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을 깨보는 것, 손끝에서 시작하는 작은 혁명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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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 ‘소’의 눈을 통해 바라본 우리네 삶

흰별소 | 이순원 글 | 단비

2015.04.01



두려움과 공포에 떨며 인류가 뗀석기를 휘두를 때, 그 맞은편에는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큰 몸집과 큰 뿔을 자랑하는 그야말로 ‘소’들의 원조 조상격인 야생 들소가 그곳에 있었다.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일만 년 전, 그들은 인간의 손에 사육되기 시작했고 농사가 시작되면서 인류와 함께 땅을 일구며 생업의 우정을 함께 나누기도 했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우유와 고기만 내놓는 가축으로 남았다.

여기까지가 인간의 눈으로 바라본 간략한 ‘소’의 역사다. 그렇다면 그들의 눈으로 본 인간들의 세상은 과연 어떠했을까? 이 책 《흰별소》는 구한말 갑신정변을 시작으로 일제식민지와 산업화를 거치며 120년간의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살아가는 인간들의 세상을 ‘소’의 눈으로 바라본 이야기다.

병술년(1886년), 노비제가 폐지되는 그 역사적 순간 속에서도 강원도 깊은 시골, 우추리에 사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사건은 노름빚에 팔려 어미와 생이별을 한 송아지 그릿소가 차무집 외양간으로 들어 온 일이다. 가난한 집이 남의 집에서 빌려다 키우는 소인 그릿소는 2년 뒤 흰별소를 낳고 주인에게 돌아가고, 차무집 외양간의 주인이 된 흰별소는 미륵소를 낳고 미륵소는 버들소를 낳는다. 뒤를 이어 화둥불소, 흥걸소, 외뿔소, 콩죽소, 무명소, 검은눈소, 우라리소, 반제기소가 차례로 차무집 외양간을 지킨다. 이 과정에서 차무집과 마을 사람들도 일제 시대와 6·25전쟁 등 근현대사의 풍파를 맞으며 인간과 소의 관계에도 변화가 생긴다.

일본인 관리에게 모욕을 당한 새댁의 앙갚음이라도 해주듯 면사무소와 관리를 들이 받아 버린 화둥불소, 유난히 몸이 약했던 안주인의 목숨을 이어 받고 태어났다고 여겨지던 외뿔소, 삼팔선으로 인한 동족상잔의 비극은 무릇 인간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다. 남쪽으로 흘러 간 소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이산(離散)소가 되었으며 장성한 아들을 인민군으로 내놓지 못한 차무네는 가족 같던 외뿔소를 그 대가로 넘겨야 했다. 동네잔치가 열릴 때면, 자식들의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서라면 외양간의 소들은 고기가 되기도 했고 급전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몸과 마음이 온전치 않게 태어났지만 누구보다 소를 잘 돌보았던 차무집 양아들 ‘세일’에게 소는 둘도 없는 우정을 함께한 친구였다.

소설 속,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소와 인간이 버무려내는 이야기를 듣다보면 그들의 삶과 우리네 삶이 그리 다르지 않다고 느껴진다. 굴곡진 삶 속에서 서로의 희로애락을 함께 느끼며 지나온 세월은 그래서 더 특별하다. 더불어 자신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내주면서도 인간을 원망하거나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게 자신의 역할이고 끝까지 그 역할을 다하고 죽고 싶다던 그들의 이야기는 저절로 고개 숙이게 만든다. 그래서 이 소설은 ‘소’에게 올리는 헌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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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 힙합, 어디까지 알고 있니

나를 찾아가는 힙합 수업 김봉현 글, 탐

2015.03.01


얼마 전, 한 래퍼가 TV에 출연하여 노골적으로 ‘돈자랑’을 했다가 네티즌들의 공분을 산 적이 있다. 일명 한국의 ‘랩스타’인 그는 단지 힙합에서 자신을 스스로 드러내는 방식 중 하나인 머니 ‘스웨거’를 연출한 것뿐인데 말이다.

한국에 힙합이 자리 잡은 지도 꽤 오래되었지만 힙합이 ‘왜 그러한가’에 대해 적극적으로 알려주는 사람은커녕 책도 없었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참으로 웃지 못할 해프닝이다. 최근에 발간된 《나를 찾아가는 힙합수업》이란 책은 그래서 더 반갑다. 이 책은 ‘힙합으로 나를 돌아보기’와 ‘힙합으로 세상과 어울리기’라는 주제를 바탕으로 낯설게 느껴지는 힙합 용어 ‘스웨거’를 비롯하여 ‘허슬’ ‘스트리트 크레드’ ‘리스펙트’ ‘랩스타’ 등을 세계 유명 래퍼들의 에피소드와 연결 짓거나 QR코드 속 힙합 음악을 통해 알기 쉽게 설명한다.

또한 이 책은 힙합이 가진 오래된 오해와 편견 중 하나인 ‘과도한 남성성’과 ‘동성애 폄하’에 대해서도 다룬다. ‘진짜 남자로 당당히 서지 못했던’ 역사적 배경(노예 시대의 미국 흑인 남성)까지 거슬러 올라갔다가 1960년대 흑인 민권 운동, 1980년대 일어난 마약 파동까지 훑어 내려오며 전문가들의 다양한 원인분석과 해석들을 균형감 있게 배치한다.

‘개천에서 래퍼난다’는 힙합계의 오래된 이야기가 있다. 벗어날 수 없는 현실(게토)에서 자유와 성공을 꿈꾸는 단 하나의 출구였던 1970년대 미국 흑인 사회에서, 힙합의 탄생은 그래서 너무도 당연하다. 2015년에는 쫄지 말고 자신의 감정과 분노를 당당하고 자유롭게 표출할 수 있는 힙합의 진정한 멋과 매력에 빠져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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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 ‘나는 왜 이런 세상에 살고 있을까?’

세계사, 내일을 탐하다 | 김대근 글 | 봄풀

2015.02.01


지인에게 안부를 물었더니, 띠링~하며 핸드폰 액정 속으로 들어온 대답은, “더치커피 마시며 마녀사냥 보고 있어!”였다. 커피 좀 마셔본 사람들이라면 꼭 찾는다는 ‘더치커피’, 초등학생도 챙겨본다는 종편 연애상담 프로그램 ‘마녀사냥’. 익숙하면서도 생경한 이 두 단어는 과연 어디에서 기인한 걸까.

때는 바야흐로 16세기 유럽의 대항해 시대, 필요는 창조의 어머니라고 했던가, 네덜란드의 한 상인은 긴 항해의 고통을 덜어내는 방법을 직접 고안해내기에 이른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한번 상상해보시라. 물이 절대적으로 부족할 수밖에 없는 패쇄적인 공간, 배 안에서 아주 작은 관을 통해 뜨거운 물이 아닌 차가운 물을 한 방울씩 떨어뜨려 커피를 내리는 장면을. 그 한 잔이 만들어지기까지는 수일이 걸릴 정도로 오랜 시간이 필요했지만 목마름을 달래고 새로운 커피 맛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그들은 지루함마저 이겨낼 수 있었다. 종편에서 방영 중인 연애상담 프로그램, ‘마녀사냥’. 프로그램 이름은 알아도 무시무시한 이 단어의 역사와 유래에 대해서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유럽의 ‘암흑기’ 중세시대, 종교라는 이름의 허울을 뒤집어쓰고 ‘마녀’라는 이름으로 처참하게 죽어간 여성들이 연애상담 프로그램 이름으로 사용된다는 사실을 알면 땅을 치며 통곡할 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세계사, 내일을 탐하다》는 문명으로서의 세계사를 살펴보면서 현재를 만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 독자들이 생각해 보는 시간과 함께 질문을 던진다.
대학에서 철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도가철학을 전공했다는 저자는, 중학교 때 문득 자신이 누구인지 궁금해졌고 왜 살아야 하는지 알고 싶어서 철학을 전공하게 되었고, 질문은 또 다른 질문을 낳고 그 질문 자체가 자기가 원하는 답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최근 개봉된 영화들뿐만 아니라 현재 우리의 뜨거운 이슈들은 저자의 능수능란한 말빨과 동서양을 두루 꿰뚫는 해박한 지식과 어우러져 마치 한 권의 재밌는 소설을 읽는 느낌을 준다. 읽는 내내 지적 포만감으로 충만해지는 지적유희는 덤이다. 더불어 그 긴긴 이야기 속에서 창조되고 파괴되기를 반복하는 역사의 패턴과 인간사를 듣고 있다보면 ‘세계사’를 보고 읽어내는 ‘역사적 통찰력’까지. 그리하여 지금 여기, 두 발을 딛고 선 현재의 삶에서 한 발짝 내딛을 수 있는 용기를 얻을 것이다. 자신이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몰라 몸서리치는 청소년들에게 이 책의 필독(必讀)을,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싶어 밀려드는 서러움을 참아내는 모든 이에게는 일독(一讀)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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