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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유일의 여행대안학교

여행학교 로드스꼴라 이야기

김현아 글, 뜨인돌

2017.03.01


방송 채널을 돌리다 보면 각양각색의 여행 프로그램들과 만나기 일쑤다. 여행이라는 하나의 주제는 당시 유행하는 또 다른 소재와 묶여 다양하게 변주되어 여전히 우리의 눈과 귀를 홀린다. 그럼 길 밖으로 나온 우리의 '진짜'여행은 어떨까? 얼마 전 '패키지 여행상품'자체를 포맷으로 삼아 화제를 모았던 프로그램을 생각하면, 우린 아직도 남들이 보고 온 풍광과 먹을거리를 반복하는 여행에 자위한다. 이쯤 되면 '여행도 배울 수 없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그렇다면 지난 8년간 길 위에서 배우고 놀고 연대한 이야기를 담은 <여행학교 로드스꼴라 이야기>를 펼쳐보자.

'길'이라는 뜻을 가진 영어 ROAD와 '학교'라는 뜻의 라틴어 SCHOLA를 합친 로드스꼴라는 '여행과 인문학의 행복한 조우'라는 모토답게 이 학교의 교육과정(외국어, 역사, 철학, 문학, 경제학,글쓰기,음악 등)은 여행을 매개로 이루어진다. 학기는 크게 '길머리'와 '길가온'으로 나뉜다. 길머리 과정은 여행자의 몸 만들기 과정이다. 국내의 한 마을을 천천히 들여다보고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마을 지도를 만들거나 도보여행 코스를 만드는 훈련을 통해 지역에 접근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경험한다.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길가온'과정은 '길 위에서 역사를 만나다'라는 테마 아래 일본, 하와이, 연해주와 중앙아시아 등지로 떠나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흔적을 살피고, '동시대를 만나다'테마 아래 네팔, 남미, 영국으로 가서 이주노동과 공정무역과 자본주의의 경제사를 더듬는다. 그리고 마지막 학기에는 학생들이 여행을 통해 생각하고 느낀 것들을 다양한 결과물들로 내놓고 선보이는 '수료 프로젝트'가 진행된다.

로드스 꼴라 안에서는 서로 별칭으로 불린다. '언니, 오빠'는 불리는 순간 배려와 양보의 미덕을 강요받고 부르는 사람 역시 책임 회피나 응석이라는 함정에 빠질 수 있음을 경계하고 서로를 존중하고 동등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학교의 입학 요건은 16~22세 사이의 청소년들이다. 열 여섯은 스스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나이이며, 스물 둘이라는 나이는 막연히 대학에 갔다가 회의가 생긴 친구들에게 또 다른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올해도 어김없이 로드스꼴라 학생들은 곧 핀란드로 떠난다고 한다. 핀란드의 도시농업에 대한 강의를 들으며 여행을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여행 기간보다 여행지에  대한 사전 학습 기간이 훨씬 더 긴 로드스꼴라. 여행이야말로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가장 큰 학교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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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 사는 장소가 사는 법우리가 살아가는 방법

우리가 살아가는 방법
벨라 드파울루 글 | RHK

2017.02.01


급속한 고령화, 비혼과 만혼, 이혼과 사별로 인해 현재 우리나라 1인 가구의 비율은 27.2%, 세 집 건너 한 집인 셈이다. 이런 변화와 더불어 생활방식 또한 새로운 모습으로 진화하고 있다. 특히 경제적 부담은 덜고 사회적 고립에서 벗어날 수 있는 쉐어하우스, 코하우징, 공동주택 등과 같은 다양한 생활공간과 생활방식이 눈에 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고, 누구와 같이 살지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무엇일까? 미국의 사례를 다루고 있지만 이미 우리의 상황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방법》은 참고할 만한 텍스트다.

잡지 〈애틀랜틱〉이 선정한 ‘싱글 라이프에 대해 제일 앞서가는 생각을 지닌 학자’인 이 책의 저자 벨라 드파울루는 미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19세부터 91세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남녀 400여 명을 대상으로 인터넷 설문조사를 실시했고, 이 중 수십 명을 만나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 책은 인터뷰와 논문, 기사 등을 바탕으로 새롭게 탄생한 생활공간과 생활방식을 탐구하면서, 그 안에서 각 개인이 어떻게 행복한 일상을 영위할 수 있는지 사회학·심리학적으로 분석한다.

우선 이 책에는 혼인으로 맺어진 부부와 그들의 미혼 자녀로 구성된 일명 핵가족이라는 일반적인 가정의 울타리를 가진 생활공간은 없다. ‘남성 없이 여성 4대로 이루어진 대가족, 한 필지에 두 채를 나란히 붙여 짓는 듀플렉스 생활, 온라인에서 만나 같이 살며 상부상조하는 싱글맘들, 따로 살아서 더 만족스러운 부부, 한 지붕 아래 살지만 연애로 얽히지 않는 남녀, 그리고 물론 1인 가구’까지. 이들에게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면 자신의 필요와 철학으로 생활공간과 생활방식을 전적으로 선택하고 창조한다는 것이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싱글맘들을 위한 코어보드와 LAT(living apart together) 커플의 생활방식이다. 코어보드는 마음이 맞는 싱글맘들이 다른 싱글맘 및 그들의 아이들과 한 공간에서 함께 살고 자라며, 서로 상부상조하며 지낼 수 있도록 돕는 과거에도 없었던 가장 혁신적인 생활공간을 제공하는 네트워크이다. ‘다른 커플들이 이혼 서류에 서명하고 있을 때, 그들은 각자의 임차계약서에 서명하는 것으로 결혼 생활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는 LAT 커플의 생활공간은 타인과의 친밀감과 각자의 독립성을 모두 누리기 위해 자기만의 공간에서 따로 지내는 생활방식이다.
그 외에도 일반적인 사회 통념을 뛰어넘는 신선한 생활방식을 보는 재미도 놓칠 수 없다. 그 중 ‘육아동맹’은 과거의 부부 관계에 대한 열망을 버리고 장기적으로 아이를 양육하자는 약속으로 맺어진 경우로 둘은 양육 파트너이지만 언제든 각자 자유롭게 연애할 수 있다. 기존에 가족이 갖고 있는 고정관념을 탈피, 해체하고 이젠 가족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세계가 도래했음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각 장마다 ‘과거에는 어떻게 살았을까’라는 소주제를 통해 몇몇 공간과 방식은 과거에도 존재했지만 명명되지 않았을 뿐이고 외부적인 요인으로 인해 거주자들이 선택한 방식이라는 측면을 다룬다. 각 장의 말미에는 저자의 주장을 반박하는 전문가들의 의견과 예상되는 반론도 같이 싣고 있어 균형적인 시각을 제공한다.

적어도 이들은 때로는 자발적 고독을 즐기고 필요할 때는 타인과 연대하는 즐거움을 누리며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만끽하는 사람들이다. 책 속의 한 인터뷰이는 생활방식을 선택하기 전 ‘내가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가? 내 인생을 어떻게 살고 싶은가?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스스로 질문해보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내가 살아가는 장소란 내가 살아가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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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 할배들의 ‘진짜’ 얼굴

할배의 탄생
최현숙 글, 이매진

2017.01.01



역대 최대 규모였던 6차 촛불집회가 끝나고 탄핵안이 가결되자, 광장 한 켠에는 ‘어버이연합’과 ‘박사모’로 대표되는 보수단체들의 맞불집회가 열렸다. 세간에 ‘꼰대’와 ‘보수 꼴통’으로 비하되는 그들이지만, 지난 대선에선 가장 높은 투표율로 대선의 향방을 결정지었던 공포의 세대이기도 하다. 맨 몸으로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통과해 온 그들에게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들 개개인의 육성을 통해 생애를 기록한 《할배의 탄생》은 그 실마리를 푸는 첫 번째 열쇠다.
전라북도 부안에서 태어난 김용술은 1945년생이고, 강원도 횡성에서 태어난 이영식은 1946년생이다. 전자는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일제의 극심한 공출로 가세가 기울었고 후자는 사변으로 고향을 떠나야했다. 둘 다 학력은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다. 군대는 ‘못 배운 놈 무시하지 않는’곳이자 ‘요령’만 있음 지낼 만한 공간이다. 대량 생산과 규격화로 요약되는 산업화는 맞춤복 기능사를 야채장사로, 목수를 잡일꾼으로 전락시켰다.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스스로 벌어먹고 사는 것에 자족하는 그들은 여전히 가난하다.

이들에 대한 저자의 기본 입장은 옹호다. 개인의 주관과 기억, 육성으로 점철된 각자의 이야기가 끝나면 저자는 그들의 이야기를 해석하고 해제한다. 삶 자체가 생존 투쟁의 연속이였던 그들에게 역사적 맥락 안에서 자신의 삶을 평가하거나 돌아볼 여유는 애초에 없었다. 사회운동가로 진보 정당에 몸담았던 저자는 여전히 진보의 언어로 그들을 평가한다. 자신의 계급이 아닌, 자신이 욕망하는 계급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기 때문에 그들은 항상 주류 이데올로기에 세뇌당하고 포섭되고 이용된다는 이야기 말이다.

이제 더 이상 ‘계급’ ‘꼰대’ ‘보수 꼴통’이란 프레임으로는 그들을 이해할 수도 그들과 소통할 수도 없다. 저자의 생애구술사 작업은 그래서 더 눈여겨볼 만하다. 그렇게 진행된 작업은 대한민국에서 그들이 어떻게 남자로서의 정체성을 얻고, 군대를 가고, 성을 사고, 결혼을 하고, 직업을 갖고 살아왔는지 생생하고 적나라한 민낯을 보여준다. 그들도 우리처럼 일상의 매 순간, 역사에 공조하고 가담하고 연루될 수밖에 없는 가난하고 평범한 사람들이였다. 이제 진보는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들을 제외하고는 우리 사회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그래서 저자의 마지막 주문은 단호하다.

“가난한 사람들의 자기 비하를 깊이 살피고, 그 사람들을 옹호하되 함께 분석한 뒤, 자기 긍정의 에너지를 이성적이고 사회적인 힘으로 모아내야 한다.”
이젠 새롭게 꾸며질 진보가 이 주문에 대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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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 십대, 철학하기 딱 좋은 나이

책상을 떠난 철학 | 이현영 외 글, 들녘

2015.09.01



‘철학’이라는 학문이 이렇게 천대받는 나라가 우리나라 말고 또 있을까. 철학과는 전혀 상관없는 ‘도사님’들의 ‘철학관’은 난립하면서도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름 아래, 대학에서는 학과 자체를 폐지 당하기 일쑤다. 철학이 팽 당하는 사회, 즉 질문과 생각이 부재하는 사회 속에서 삶에서 직면하기 마련인 문제들을 스스로 해결하며 살 수 있는 아이들로 길러낸다는 것은 처음부터 어불성설이다.
그런데 몇 년 사이 이런 문제의식을 가진 교육감들이 늘어났고 아울러 다양한 대안학교의 설립으로 점점 철학의 설자리가 생겨난다는 사실은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다. 2012년 경기도 교육청에서는 정부 최초로 중학교 철학 교과서를 만들었다. 스스로 시민이 되고 성장해가는 과정에서 자기 고민을 스스로 풀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하는데 의미를 두었다.  
〈푸른들녘 인문교양〉의 세 번째 주제인 ‘일상에서 만난 철학’을 다룬 《책상을 떠난 철학》도 눈길을 끈다.
이 책은 공교육보다는 철학 수업이 더 활발하게 진행되는 대안학교 현장에서 직접 아이들에게 철학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들려주는 ‘철학하기’이다. 기존의 청소년을 위한 철학책들이 대체로 역사적으로 큰 발자취를 남긴 철학 사상을 알기 쉽게 해설하는데 머물렀다면 이 책은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청소년들의 의문과 고민에서 출발하여 스스로 자기만의 답을 찾아갈 수 있도록 생각의 물꼬를 터준다.

이 책은 모두 일곱 개의 주제를 다룬다. ‘사랑과 실존’, ‘일과 놀이’, ‘선과 악’, ‘삶과 죽음’, ‘가상과 현실’, ‘남과 여’, ‘행복과 불행’이 그것이다.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형식 또한 흥미롭다. 아이들의 삶 속에서 건져 올린 날것의 질문들, 이를테면 “누군가를 ‘따’시키는데 동참하지 않으면 내가 ‘따’를 당하는데 어떡하죠?”, “저런 애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쪽팔릴 거 같아서……”, “죽는다고 생각만 해도 무서워요!”, “왜 나한테만 이런 안 좋은 일이 생기는 거죠?” 등의 의문과 고민들을 솔직하게 토로한다. 상담자는 고민 해결에 도움이 될 만한 영화나 책을 추천해주고 보고 와서 같이 이야기해 보자고 한다. 그 후 아이들과 상담자는 주거니 받거니 서로의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그러는 사이 아이들은 자신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들여다 볼 여유와 시각이 생기고 곧 자기 나름의 해석과 결론에 스스로 도달하게 된다. 
상담자 즉 철학 선생님의 날카롭게 파고드는 예리한 질문들은 자연스레 아이들의 생각을 끌어내는 산파역할을 해내면서 아이들에게 문제를 해결할 의지와 용기를 동시에 준다. 또한 차츰 그들의 일상에 깊이를 더한다. 아울러 부모와 선생들에게는 요즘 아이들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그들이 어디서 용기를 얻고 어디서 좌절하는지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도서관에 가면 수북이 쌓인 책들을 마치 벌목하듯 읽어대는 아이들을 종종 만난다. 이 광경은 지금까지 공교육과 사교육에서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시행하고 쌓아 온 독서 교육 덕분이다. 하지만 그 광경이 그리 반갑지 않은 건 왜일까. 자신과 세상을 비로소 낯설게 바라볼 수 있을 때 품는 호기심과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여정 자체가 바로 철학이다. 하지만 그것이 빠진 독서 교육이라면 우리는 지금까지 걸어 온 길을 천천히 되짚어봐야 할 시점이다. 단지 옆 친구보다 더 많이 읽어야 하는 책 읽기, 더 많이 기록해야 하는 독서기록장, 또 그로 인해 발생하는 ‘삶’이 빠진 기계적인 글쓰기, 평소 생활 속에서 길러져야 하는 논리적 말하기는 입시와 취업 면접과 만나, ‘토론’이라는 매끈한 이름으로 탄생하면서 하나의 방법론이 제대로 자리 잡히기도 전에 수요자(학부모)들의 거친 요구에 공급(토론 수업과 토론 선생) 늘리기에만 급급한 모습이다.
우린 이미 아장아장 걷기 시작할 때부터 모두 세상에 대한 온갖 호기심을 가진 꼬마 철학자들이었다. ‘왜?’라는 질문에 일단 만사 제치고 귀 기울이는 일, 이게 바로 철학하는 지름길이다. 철학이 뭐 별 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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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 찌질한 수컷의 리얼성장담

마르크스와 나의 여친 | 블레이크 넬슨 글, 서해문집

2015.08.01



20대에 마르크스주의에 빠지지 않았다면 바보이고, 40대에 마르크스주의에서 빠져나오지 못해도 바보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이젠 이 유명한 문장에도 먼지가 내려앉고 이끼가 끼어가는 시대에 17살 소년이 제일 좋아하는 책이 《공산당 선언》이고 또 ‘마르크스’를 숭상한다면 우리는 이 소년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특이한 뉴스 소재로 소비되거나 사람들에게 ‘관심종자’로 비웃음 사지 않으면 다행이다.
소설 《마르크스와 나의 여친》의 주인공 제임스가 바로 그다. ‘자동차를 모두 없애라!’라는 제목의 그의 작문부터 보자.

“나는 쉴 새 없이 자동차를 몰고 상점에 가서 쓸데없는 쓰레기를 무한히 사는 것이 소비사회의 본질이라는 것을 안다. … 자동차 때문에 지금의 정치체제가 유지되고 바뀌지 않는 것이다. 차 때문에 하층민들은 계속 전쟁에 나가야 한다. 덕분에 부유층은 대저택에 살고 개인용 비행기를 띄운다.”
어찌 보면 단순한 논리지만 조금은 과격한 그의 작문은 사안의 핵심을 제대로 집어낸다. 작문 과제와 일기를 교차하며 보여주는 이 소설은 작문 과제를 통해서는 그를 둘러싼 세상과 주변을 바라보는 제임스의 관점을, 일기를 통해서는 여타 다른 청소년들이 겪는 이성에 대한 관심, 가족과의 문제, 친구와의 관계 등을 보여준다.

소설은 청소년의 탈을 쓴 어른이 등장하여 훈계와 교훈을 나열하지 않는다. 솔직하면서도 저자의 촌철살인 위트와 풍자로 인해 읽는 내내 통쾌하면서도 깨달음을 준다.
문명 붕괴를 은근히 꿈꾸며 ‘자동차를 모두 없애라!’라고 부르짖는 일명 ‘급진파’제임스가 사랑하는 또 다른 인물은 17살 소녀 세이디 키넬이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친구들과 자주 찾았던 연못을 보호하기 위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서 서명을 받아내고,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통조림을 모으고, 학교 동아리에서 환경 포스터를 만드는, 제임스의 말을 그대로 빌리자면 ‘체제 안에서 분투하는’ 온건파이다. 평소라면 그런 온건파들을 마구 비웃어 주던 제임스는 막상 그녀 앞에만 서면 당장이라도 세상을 갈아 엎을 것 같던 한껏 발기된 뇌는 급격히 쪼그라들어 어설프고 찌질한 수컷의 모습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첫사랑이었던 그녀와 한 번의 이별 뒤에 다시 시작할 기회를 얻지만 그야말로 하루하루 다르게 변화하고 성장하는 그들에게 자유에 대한 갈망은 눈앞의 사랑보다 더 크다. 앞으로 펼쳐질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과 세상 밖 경험들을 위해 세이디는 결국 제임스에게 또 다시 이별을 선언한다. 또 남겨진 사람이 그 시간을 묵묵히 통과해 나가는 것이 늘 성장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제임스와 세이디는 스스로의 선택과 결정 사이를 여유롭게 넘나들고 탐험하면서 각자의 길을 스스로 열어간다.

그렇다면 다시 지구 반대편으로 넘어와 대한민국의 17살 제임스와 세이디는 어디에 있을까. 과연 존재하기는 한 걸까. 연애와 글쓰기 따위 집어치우고라도 그들 스스로 무언가를 선택해 본 경험은 있을까. 오로지 성적으로 줄 세우는 대한민국의 현 교실에서 제임스처럼 허황(?)된 생각을 키워가고 또 그것을 작문으로 끄적거려도 읽어줄 선생님은 계실까. 현재의 교육환경을 무시하고 ‘오직 앞으로의 너 자신만의 성대한 꿈을 키우라’라고 말한다면 우린 모두 비겁하고 유약한 어른들일 뿐이다. 비바람이 들고 나갈 수 있는 넉넉한 시간의 세례 속에서 선택과 결과를 스스로 겪어내고 넘어설 때, 그들은 진짜 어른이 된다. 소설 속 제임스와세이디처럼 말이다.

이 책은 저자를 빼놓고 이야기 할 수 없다. 저자 블레이크 넬슨은 미국 오리건 주 포틀랜드 태생으로 두 줄 기타로 고스음악을 만드는 괴짜이면서도 글쓰기에 열중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문장 구사와 독자들을 작중 인물에 강렬히 몰입시키게 만드는 저자 특유의 능력으로 인해 마치 영화 한 편을 보는 듯하게 만드는 힘은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다. 그의 소설을 바탕으로 각색되어 2007년 개봉되어 화제가 된 구스 반 산트의 영화 〈파라노이드파크〉는 이 사실을 고스란히 증명한다. 믿고 보는 청소년 소설 저자가 나타났다는 것만으로도 설레고 그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이 땅의 모든 제임스와 세이디들에게 올 여름 이 소설의 일독을 권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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