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 십대, 철학하기 딱 좋은 나이
책상을 떠난 철학 | 이현영 외 글, 들녘
2015.09.01
‘철학’이라는 학문이 이렇게 천대받는 나라가 우리나라 말고 또 있을까. 철학과는 전혀 상관없는 ‘도사님’들의 ‘철학관’은 난립하면서도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름 아래, 대학에서는 학과 자체를 폐지 당하기 일쑤다. 철학이 팽 당하는 사회, 즉 질문과 생각이 부재하는 사회 속에서 삶에서 직면하기 마련인 문제들을 스스로 해결하며 살 수 있는 아이들로 길러낸다는 것은 처음부터 어불성설이다.
그런데 몇 년 사이 이런 문제의식을 가진 교육감들이 늘어났고 아울러 다양한 대안학교의 설립으로 점점 철학의 설자리가 생겨난다는 사실은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다. 2012년 경기도 교육청에서는 정부 최초로 중학교 철학 교과서를 만들었다. 스스로 시민이 되고 성장해가는 과정에서 자기 고민을 스스로 풀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하는데 의미를 두었다.
〈푸른들녘 인문교양〉의 세 번째 주제인 ‘일상에서 만난 철학’을 다룬 《책상을 떠난 철학》도 눈길을 끈다.
이 책은 공교육보다는 철학 수업이 더 활발하게 진행되는 대안학교 현장에서 직접 아이들에게 철학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들려주는 ‘철학하기’이다. 기존의 청소년을 위한 철학책들이 대체로 역사적으로 큰 발자취를 남긴 철학 사상을 알기 쉽게 해설하는데 머물렀다면 이 책은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청소년들의 의문과 고민에서 출발하여 스스로 자기만의 답을 찾아갈 수 있도록 생각의 물꼬를 터준다.
이 책은 모두 일곱 개의 주제를 다룬다. ‘사랑과 실존’, ‘일과 놀이’, ‘선과 악’, ‘삶과 죽음’, ‘가상과 현실’, ‘남과 여’, ‘행복과 불행’이 그것이다.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형식 또한 흥미롭다. 아이들의 삶 속에서 건져 올린 날것의 질문들, 이를테면 “누군가를 ‘따’시키는데 동참하지 않으면 내가 ‘따’를 당하는데 어떡하죠?”, “저런 애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쪽팔릴 거 같아서……”, “죽는다고 생각만 해도 무서워요!”, “왜 나한테만 이런 안 좋은 일이 생기는 거죠?” 등의 의문과 고민들을 솔직하게 토로한다. 상담자는 고민 해결에 도움이 될 만한 영화나 책을 추천해주고 보고 와서 같이 이야기해 보자고 한다. 그 후 아이들과 상담자는 주거니 받거니 서로의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그러는 사이 아이들은 자신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들여다 볼 여유와 시각이 생기고 곧 자기 나름의 해석과 결론에 스스로 도달하게 된다.
상담자 즉 철학 선생님의 날카롭게 파고드는 예리한 질문들은 자연스레 아이들의 생각을 끌어내는 산파역할을 해내면서 아이들에게 문제를 해결할 의지와 용기를 동시에 준다. 또한 차츰 그들의 일상에 깊이를 더한다. 아울러 부모와 선생들에게는 요즘 아이들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그들이 어디서 용기를 얻고 어디서 좌절하는지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도서관에 가면 수북이 쌓인 책들을 마치 벌목하듯 읽어대는 아이들을 종종 만난다. 이 광경은 지금까지 공교육과 사교육에서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시행하고 쌓아 온 독서 교육 덕분이다. 하지만 그 광경이 그리 반갑지 않은 건 왜일까. 자신과 세상을 비로소 낯설게 바라볼 수 있을 때 품는 호기심과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여정 자체가 바로 철학이다. 하지만 그것이 빠진 독서 교육이라면 우리는 지금까지 걸어 온 길을 천천히 되짚어봐야 할 시점이다. 단지 옆 친구보다 더 많이 읽어야 하는 책 읽기, 더 많이 기록해야 하는 독서기록장, 또 그로 인해 발생하는 ‘삶’이 빠진 기계적인 글쓰기, 평소 생활 속에서 길러져야 하는 논리적 말하기는 입시와 취업 면접과 만나, ‘토론’이라는 매끈한 이름으로 탄생하면서 하나의 방법론이 제대로 자리 잡히기도 전에 수요자(학부모)들의 거친 요구에 공급(토론 수업과 토론 선생) 늘리기에만 급급한 모습이다.
우린 이미 아장아장 걷기 시작할 때부터 모두 세상에 대한 온갖 호기심을 가진 꼬마 철학자들이었다. ‘왜?’라는 질문에 일단 만사 제치고 귀 기울이는 일, 이게 바로 철학하는 지름길이다. 철학이 뭐 별 거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