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 할배들의 ‘진짜’ 얼굴

할배의 탄생
최현숙 글, 이매진

2017.01.01



역대 최대 규모였던 6차 촛불집회가 끝나고 탄핵안이 가결되자, 광장 한 켠에는 ‘어버이연합’과 ‘박사모’로 대표되는 보수단체들의 맞불집회가 열렸다. 세간에 ‘꼰대’와 ‘보수 꼴통’으로 비하되는 그들이지만, 지난 대선에선 가장 높은 투표율로 대선의 향방을 결정지었던 공포의 세대이기도 하다. 맨 몸으로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통과해 온 그들에게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들 개개인의 육성을 통해 생애를 기록한 《할배의 탄생》은 그 실마리를 푸는 첫 번째 열쇠다.
전라북도 부안에서 태어난 김용술은 1945년생이고, 강원도 횡성에서 태어난 이영식은 1946년생이다. 전자는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일제의 극심한 공출로 가세가 기울었고 후자는 사변으로 고향을 떠나야했다. 둘 다 학력은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다. 군대는 ‘못 배운 놈 무시하지 않는’곳이자 ‘요령’만 있음 지낼 만한 공간이다. 대량 생산과 규격화로 요약되는 산업화는 맞춤복 기능사를 야채장사로, 목수를 잡일꾼으로 전락시켰다.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스스로 벌어먹고 사는 것에 자족하는 그들은 여전히 가난하다.

이들에 대한 저자의 기본 입장은 옹호다. 개인의 주관과 기억, 육성으로 점철된 각자의 이야기가 끝나면 저자는 그들의 이야기를 해석하고 해제한다. 삶 자체가 생존 투쟁의 연속이였던 그들에게 역사적 맥락 안에서 자신의 삶을 평가하거나 돌아볼 여유는 애초에 없었다. 사회운동가로 진보 정당에 몸담았던 저자는 여전히 진보의 언어로 그들을 평가한다. 자신의 계급이 아닌, 자신이 욕망하는 계급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기 때문에 그들은 항상 주류 이데올로기에 세뇌당하고 포섭되고 이용된다는 이야기 말이다.

이제 더 이상 ‘계급’ ‘꼰대’ ‘보수 꼴통’이란 프레임으로는 그들을 이해할 수도 그들과 소통할 수도 없다. 저자의 생애구술사 작업은 그래서 더 눈여겨볼 만하다. 그렇게 진행된 작업은 대한민국에서 그들이 어떻게 남자로서의 정체성을 얻고, 군대를 가고, 성을 사고, 결혼을 하고, 직업을 갖고 살아왔는지 생생하고 적나라한 민낯을 보여준다. 그들도 우리처럼 일상의 매 순간, 역사에 공조하고 가담하고 연루될 수밖에 없는 가난하고 평범한 사람들이였다. 이제 진보는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들을 제외하고는 우리 사회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그래서 저자의 마지막 주문은 단호하다.

“가난한 사람들의 자기 비하를 깊이 살피고, 그 사람들을 옹호하되 함께 분석한 뒤, 자기 긍정의 에너지를 이성적이고 사회적인 힘으로 모아내야 한다.”
이젠 새롭게 꾸며질 진보가 이 주문에 대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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