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함께 글을 작성할 수 있는 카테고리입니다. 이 카테고리에 글쓰기

언제나 여행처럼 - 지금 이곳에서 오늘을 충만하게 사는 법
이지상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첫 챕터의 첫꼭지 '방랑과 방황은 무한에 대한 갈망'이란 글하나가 이책 전체라고 느꼈다.

이글이 좀더 추상적으로 쓰였다면 나머지 부분은 이 글 밑에 있음직한 조금은 구체적인 이야기들이다. 또 당연하게도 그 이야기들이 전달하려는 내용은 첫 글과 다 이어져있다.

 

저자의 생각들이 내겐 좀처럼 새롭지 않았고 환기되는 면이 없었다. 아쉽게도...

하지만 여행하는 삶을 선택해 살아가는 저자의 존재론적 고민은 한곳에 눌러앉아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을 꿈꾸는 내게 조금은 반갑기도 하고 참  살아간다는 것은 모습만 달리하고 그 본질은 비슷하구나 라는 생각에 또 헛헛 해지기도 했다.

 

젊은날의 가장 긴 여행 2주간의 여행중 빠리에서 느꼈던 감정과 생각들을 오랜만에 상기시켰고

;일주일간의 런던여행은 친한(익숙한) 친구와 그 친구집(친구와 같이 있어서 익숙한)에서 나오면 런던거리는 마냥 영화 세트장처럼 알록달록 했지만 별 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고 또다른 친구와빠리에서의 느낌은 여행이 곧 일상이구나 직감했고, 그 순간부터 오히려 더 낯설음을 느꼈고 알수 없는 두려움도 불쑥 찾아오곤 했다. 아마도 이 기분은 지금 생각해보니, 그 전까지 내가 스스로 쌓아올린 유럽여행에 대한 아니 특히 파리에 대한 낭만적인 환타지가 서서히 사라지고 일상이 그 자리에 차고 들면서 그 뒤에 이어질 권태를 무의식중에 직감한 불안에서 오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여행하는 삶역시  일상이며 권태가 되는 돌고도는 이 순환구조를 보면서 난 사실 좀 반갑기도 했고 삶이 끔찍하기도 했다. 삶이 원래 이런게 아니였나. 그래서 그것을 피해 어디를 가도 그것은 또 반복되는 거라고 오히려 그걸 쳇바퀴에서 탈출하려면 역설적이게도 그것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들 아닌가...

 

여전히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를 꿈꾸며 아무도 나를 모르고 그 어느곳에서 몇년 푹 나를 썩히고 싶다. 그 나라속에 들어앉아 삶아지고 끊여지고 삭혀지고 그렇게 썩히고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Little Women" Book and CD-ROM Pack (Package) Penguin Active Reading 7
루이자 메이 올콧 지음 / 피어슨에듀케이션코리아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내가 읽은 넥서스에서 나온 원서를 찾다가 귀찮아서 이것으로 대체한다.

어릴적에 만화와 좀 더 커서는 영화로 봤던 작은 아씨들. 특별히 기억나는 에피소드는 없었고 화면으로 당장이라도 뛰쳐 들어가고팠던 아늑한 분위기의 집안. 역시 내용의 기억보다는 감각의 기억이 오래가는가보다.

영어좀 향상시켜보려고 다른 (성인)원서들을 읽다가 짜증이 나서 때려치웟다.내가 이렇게 머리가 나뻤나.. ㅠㅠ(영어는 참 어렵다) 다시 마음을 진정시키고 도서관 영어책 코너에 가서 중학교 단어로 다시 쓰여진 원서들을 읽어보려고 한게 시작이였다. 아마 모르고 이 책을 처음 접했던라면 '요새 이런 책을 누가읽어' 라며 던졌을 것이다. 그때  느꼈던 기억과 감각이 아직 내 몸 구석에 남아있어서 그랬을까. 그것들과 함께 나름 재미있고 풍성하게  텍스트을 소화시켰다. 가끔 마치 부인의 프로테스탄트적인 충고에 속이 더부룩 해질때도 있었다. 이 책의 큰 줄기는 한 가정이 어려운 일들을 함께 겪어내면서 그 안에서 성숙해져가는 성장이야기라고 본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제일 후회되는 것이 있다면 어린시절 책을 도무지 읽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실 이건 지금 내가 책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하지 않을 후회였을 지도 모른다.

이 책이 생각보다 더 재미있었던 이유는 에피소드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 그 시절, 그것을 보고 느꼈을 그 비슷한 감정이 다시 내게 전해지면서 아련히 그 시간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나를 발견했지 때문일꺼다. 하물며 만화와 영화가 그러하질인데..  수많은 텍스트들이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읽으며 또 이만큼의 세월이 지나서는 또 다른 기억과 감각으로 그 책은 내게 다시 태어나겠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간 실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3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장바구니담기


세상. 저도 그럭저럭 그것을 희미하게 알게 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세상이란 개인과 개인 간의 투쟁이고, 일시적인 투쟁이며 그때만 이기면 된다. 노예조차도 노예다운 비굴한 보복을 하는 법이다. 그러니까 인간은 오로지 그 자리에서의 한판 승부에 모든 것을 걸지 않는다면 살아남을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럴싸한 대의명분 비슷한 것을 늘어놓지만, 노력의 목표는 언제나 개인. 개인을 넘어 또다시 개인.세상의 난해함은 개인의 난해함. 대양은 세상이 아니라 개인이다,라며 세상이라는 넓은 바다의 환영에 겁먹는 데서 다소 해방되어 예전만큼 이것저것 한도끝도 없이 신경 쓰는 일은 그만두고, 말하자면 필요에 따라 얼마간은 뻔뻔하게 행동할 줄 알게 된 것입니다.-97쪽

저는 어째서인지 그 상인에 대한 증오보다도 처음 발견했을때 큰 기침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대로 저한테 알리러 다시 옥상으로 돌아온 호리키에 대한 증오와 노여움이 잠못드는 밤이면 부글부글 끊어올라 괴로워했습니다.-117쪽

불행. 이 세상에는 갖가지 불행한 사람이, 아니 불행한 사람만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겠죠. 그러나 그 사람들의 불행은 소위 세상이라는 것에 당당하게 항의할 수 있는 것이고 또 세상도 그 사람들의 항의를 쉽게 이해하고 동정해 줍니다. 그러나 제 불행은 모두 제 죄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아무에게도 항의할 수 없었고, 또 우물쭈물 한마디라도 항의 비슷한 얘기를 하려 하면 넙치가 아니더라도 세상 사람들 전부가,잘도 뻔뻔스럽게 그런 말을 하는군 하고 어이없어할 것이 뻔했습니다. 저는 도대체 세상에서 말하는 방자한 놈인 건지 아니면 반대로 마음이 너무 약한 놈인건지 저 자신도 알수없었지만 어쨌든 죄악 덩어리였던 듯, 끝도 없이 점점 더 불행해지기만 할 뿐 막을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은 없었던 것입니다.-123-124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간 실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3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나는 영화 한편과 소설이 있었다. -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호밀밭의 파수꾼. === 이 세 작품 속 주인공들은 비슷해 보이면서도 또 서로 다르다.'태어나서 죄송합니다.'라는 문장을 벽위에 쓰고 쓰고 또 쓰는 마츠코,  주위인간들에게 느끼는 가식과 위선에 대해서 속으로는 욕하면서도 막상 그 상황에 부딪히면 자신이 욕했던 사람들처럼 자알~처신하는 콜필드. 하지만 외부와 내적갈등사이에 파여진 깊은 골을 콜필드도 요조를 따라갈 수는 없을 것이다.

또 하나 드는 생각이란 것이 회사생활을 하거나 인간관계를 함에 있어서 그때 그때 얼굴에 호불호를 나타내며 지냈왔던 내 자신이 용감하기는 커녕 똑똑하지 못했구나, 이건 그냥 바보였구나.하는 답답한 한숨이 나오기도 했다.   

죽지못해 살아가는 요조가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익살가면쓰기였다. 그런 요조는 남들보다 영리했고 눈치가 빨랐으며 또한 자신에게 세상이 갖은 악, 인간들에게 실망했던 부분들을 자신에게 하나도 묻히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강박적 혹은 신경질적으로 인간들의 행동을 분석하고 나름의 해석을 붙이고 결국은 또 자기잘못이라고 체념해버리는..외곬수여서 그토록 자신을 못살게? 굴수 있었던거같다. 

세상과 인간에 대해 반복되는 실망과 자기 자신을 책망하는 이런 요조의 행동은 자신의 결백을  세상과 인간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끊임없이 자신에게 증명하고자 했기 때문에 그 자신이 받은 댓가로써 당연한 귀결일수도 ... 있지 않을가 생각이 든다. 요조는 삼박자를 다 갖추었다. 누구보다도 영리했고. 선과 악을 구별하고 또 익살을 통해 세상을 살아가지만 그 연극 뒤의 요조는 세상에서 제일 불쌍하고 외롭게도 이 세계에 혼자 스스로 맞선것이다. 그러니 결국 그 하얗고  결백한 요조은 결국에는 쓰고 또 쓴 종이처럼 너덜거릴수 밖에 없는것이다.

그 세계는 인간이라는 나약한 존재가 대치할 수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우리를 품도록 받아들이던지 아니면 그 속으로 뛰어들어가던지 우리 앞에 대면시켜놓을 수 있는 세계가 아닌것이였다. 이 무력한 싸움을 요조는 불행히도 어린 소년일때부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그의 삶의 일부분이였기 때문에 쉽게 변하지 않았던 것이고 나이가 들면서 세상과 인간들이 갖는 추악함은 점점 더 심해져 요조는 자신이 만든 덫에 빠져 헤어나오려고 발버둥칠수록 더욱 깊에 빠져들었던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도를 기다리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3
사무엘 베케트 지음, 오증자 옮김 / 민음사 / 200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즘 티비에서 방영중인 개그콘서트 한편을 본 느낌이였다. 하지만 그것과 다르다면 극  중간중간에 튀어나오는 철학적인 대사들.(이것들 마저도 희화화되는 느낌이다.)

무엇을 기다리는 것인가는 애초부터 없었다. 의미또한 없고 의미부여또한 있을수 없다. 이 두 남자사이에 의미있는 일이란 바로 기다림. 그 자체이다. 두 남자는 고도를 기다린다고 간간히 말하면서 관중들에게 알려준다. 그들에게 기달리는 시간은 지루하다. 주고받는 대화는 의미없는 형식만 갖는 소리가 되어들리고, 그들의 행위는 의미없는 허우적거리는 몸짓에 다름없다. 이런 짓거리들은 반복되고 한편의 무색영화를 보듯.

몸짓과 소리에서 의미를 찾는다는 것자체가 의미없는 행동일뿐. 관중들은 앉아서 그들이 하는 대화나 행위에 눈을 이리저리 굴린다.

모자와 구두.

서양식 관용적인 표현들 중에 모자와 구두라는 단어를 이용하여 그것들을 사고, 생각의 틀.로 쓰여지는 경우를 본다. 등장인물 5명중 4명의 각기 자신의 모자를 쓰고있으며, 극 중간에 다른 사람의 모자를 이리저리 바꿔쓰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극의 첫장면에서 보듯이 블라디미르의 신발이 그 자신의 발에 맞지 않는다. 그래서 벗을때 힘겹게 벗고 항상 맞지 않는 신발때문에 발이 아프다.

우리가 기다리는 것자체가 목적이라고 할때, 과연 그 기다림의 과정은 이렇게 허무하고 헛되고 또 나무에 목을 멜 정도로 지루할 수 밖에는 없는 걸까.

만약 인간이 어쩔수 없는 기다림이라는 숙명적인 행위를 안고 가야한다면.. 그 기다림의 과정속에서 그 시간들을 우리는 어떻게 그들처럼 혹은 그들과는 다르게 소비해야 하는가?

유독 내 귓구멍에 크게 들린 대사.

"습관은 귀를 틀어막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