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온 그린란드, 자연에 매료돼 아예 눌러앉았죠” https://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2100&key=20190930.22025013020 저자 인터뷰

그린란드 대학교 By EhC 89 - 자작, CC BY-SA 3.0







그린란드는 아이슬란드와 캐나다 사이에 있다. 지리적으로 북미에 속해 있지만, 역사적, 정치적, 문화적으로는 북유럽, 특히 덴마크와 밀접하다.

런던에서 문화유산학 석사 과정을 밟을 때의 일이다. 내 석사 논문의 주제가 ‘기후변화에 영향을 받은 그린란드의 문화 및 자연 유산’이었는데, 하루는 박사과정에 있던 영국인 조교가 그린란드에 사람이 사냐고 물었다. 영국은 그린란드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편이고, 심지어 스코틀랜드에서도 오로라를 볼 수 있다. 영국이 북극과 그리 멀지 않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고 살았나 보다.

2015년 9월 나는 그린란드 대학교에서 북서유럽학West Nordic Studies으로 또 하나의 석사과정을 시작했다. 1987년 그린란드 대학교 개교 이래 첫 외국인 정규 학생이었다. 그리고 현재(2019년 7월)까지 그린란드에 거주권을 가진 유일한 한국 국적 소지자이다. 넓게 보자면 유일한 한국인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한국에서 입양된 덴마크 국적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들을 만나면 서로 애틋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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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돌아왔다. ["독립 원하지만 대화는 가능"... 그린란드, 트럼프 2기 대응책 고심]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11216040005917?did=DA 


아래 글의 출처는 '그린란드에 살고 있습니다'(김인숙) - 그린란드에 사는 한국인인 저자는 그린란드 연구자이다.

누크(그린란드) - 사진: UnsplashBogomil Shopov - Бого


[네이버 지식백과] 누크 [Nuuk]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234954&cid=40942&categoryId=40770





미국 입장에서 그린란드는 소비에트 북극 지역과 대서양 사이를 통제하기 좋은 군사 전략 요충지였다. 연합군의 승리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국은 덴마크에 그린란드를 1억 달러에 사겠다고 제안하지만 덴마크가 이를 거절했다.

1953년 덴마크는 그린란드를 식민지가 아닌 덴마크 왕국 안으로 병합한다. 그 후 1979년이 되어서야 그린란드 내정 자치Home Rule가 인정되고, 다시 30년이 지난 2009년에 자치 정부Self Rule를 인정받았다.

2019년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또 한 번 그린란드 구매 의사를 밝혔다. 덴마크와 그린란드로부터 말도 안 되는 농담이자 구시대적 발상이라며 비난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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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셀 서양철학사' 중 '로크의 정치철학'으로부터 옮긴다. 로크가 지금의 한국을 본다면......


[Tin glazed earthenware charger depicting Charles I, made in London about 1660. Part of the Henry Willett's Collection of Popular Pottery exhibition at the Victoria and Albert Museum, London, 2024] By 14GTR - Own work, CC0


찰스 1세 - Daum 백과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20c1681b





로크의 주장에 따르면 입법부는 공동체community의 요구로 해산될 경우를 제외하면 최고 권위를 가져야 한다.

1628부터 1640년 사이에 찰스 1세는 의회를 소집하지 않은 채 나라를 다스리려고 했다. 로크의 생각으로 이러한 일은 필요하다면 내전을 일으켜서라도 막아야 한다.

찰스 1세가 의회의 승인을 받지 않고 선박세를 징수하려고 했을 때 반대자들은 ‘정의롭지 못한 불법적’ 힘을 행사했다고 선언한 반면, 찰스 1세 자신은 정의롭고 합법적인 처사라고 선언했다. 찰스 1세와 의회가 맞선 내란(1642~1649)으로 빚어진 군사적 충돌이 찰스 1세의 헌법 해석이 그릇된 것임을 입증했을 뿐이다. - 견제와 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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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체호프 사할린 섬'을 계속 읽는다.

감자꽃 (사진: UnsplashJael Coon)






1889년 7월 24일에 서리가 내려 데르빈스코에 마을의 감자 꽃이 해를 입었고 8월 18일에도 전 지구가 영하의 추위로 감자의 잎과 줄기가 냉해를 입었다. - X. 르이코프스코에 마을, 이곳 교도소, M. N. 갈킨-브라스키 관측소, 팔레보 마을, 미크류코프 마을, 발즈이 마을과 론가리 마을, 말로-트이모보 마을, 안드레예-이바노프스코에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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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판 '더블린 사람들'(조이스 / 진선주 역) 연보로부터 옮긴다. 영화로 만들면 좋을 일화.

Volta Cinema, 45 Mary Street, Dublin By Archidub1 - CC0








1909년 더블린에 최초의 영화관을 개관하기 위해 트리에스테에서 물주를 확보하여 10월21일, 더블린을 다시 방문하다. 준비를 끝내고 12월 20일 ‘볼타’라는 영화관을 개관하다.

1910년 관객의 기호를 무시한 레퍼토리의 선정으로 영화관이 곧 실패하자 1월 2일에 트리에스테로 되돌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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