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이제 땡!


Calendar: April (Courtly Figures in the Castle Grounds), 1416 - Limbourg brothers - WikiArt.org


윤성희의 단편 '어느 밤'은 문학동네 2018 겨울호 발표작이다.





여동생이 생각났어요. 교통사고가 나서 죽었거든요. 뺑소니였어요. 나는 오른손을 들어 청년의 손을 잡았다. 손이 차가웠다. 아팠겠네. 나는 말했다. 모르겠어요. 그냥 그 후로 뭔가가 사라졌어요. 성공하고 싶은 마음, 뭐 그런 것들이요. 사람들한테는 고시 공부중이라고 거짓말을 했지만 사실 아무것도 안 해요. 청년이 말했다. 나는 그래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가만히 있는 것도 힘든 거라고. 딸이 초등학생일 때였다. 일을 마치고 집에 가보니 딸이 방 모서리에 쪼그리고 앉아서 울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아무도 땡을 해주지 않았다는 거였다. 얼음땡 놀이를 하는데 아무도 땡을 해주지 않았다고. 그래서 혼자 얼음이 되었다고. - 어느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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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첫 주가 어느덧 지나간다. 곧 오후 네 시, 오늘 낮이 얼마 안 남았다. 열린책들 '안나 까레니나'(이명현 역) 하권으로부터 옮긴다. 다리야 알렉산드로브나(돌리)는 안나의 올케언니이다.

안나 카레니나 (1919년 콘스탄스 가넷 번역본) 삽화






「이 마을에서 7베르스따를 더 가야 한다고 합니다.」

마차는 마을 길을 따라 작은 다리 쪽으로 내려갔다. 짚을 꼬아 만든 새끼줄을 어깨에 걸친 한 무리의 쾌활한 아낙들이 낭랑한 목소리로 흥겹게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지나갔다. 그들은 다리에서 멈춰 서더니 호기심 어린 눈길로 마차를 살펴보았다. 일제히 다리야 알렉산드로브나를 향하고 있는 그 얼굴들은 모두 다 건강하고 명랑했으며, 넘치는 삶의 기쁨으로 그녀의 약을 올리고 있었다. 〈모두 살아가고 있구나. 삶을 즐기고 있어.〉 마차가 아낙네들을 지나쳐 언덕으로 들어선 다음 다시금 빠른 속도로 달리자 다리야 알렉산드로브나는 부드러운 용수철 위에서 기분 좋게 흔들리며 계속해서 생각을 이어 나갔다. - 제6부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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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여성 작가의 'Flower & Tree'(을유문화사)가 아래 글의 출처이다.


cf. 팔공산 국립공원에 핀 제비꽃 https://www.news1.kr/photos/7203569 3월 말 기사이다.

By FlyingBatt (This picture was taken by Linda Wong at the Beijing Zizhuyuan (紫竹院). Photo by Linda Wong, Shouyong Chen, April 2024.)




어두운 겨울이 지나고 재빨리 꽃을 피우는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제비꽃은 인류 역사 초기부터 젊음, 희망, 관심의 상징이다. 봄의 신이 대지를 넘어온 곳에서는 발 밑에 피어 있는 제비꽃을 발견할 수 있다.

이렇게 상징적인 꽃을 개개인이 선택한 것을 중국에서 말하는 ‘내면의 보충’과 연관 지을 수 있을까? 중국에서는 인간이 자신의 정신적 공허함을 숨기기 위해 애호품을 지녀 보충한다고 여긴다. 아니면 그들로 하여금 순수한 제비꽃에 대한 사랑을 소중히 간직하도록 했던 것은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에 대한 불안감 때문일까? 이것도 아니면 그들이 남ㆍ북반구 모두에 뿌리내린 이 식물의 엄청난 번식욕을 이미 알았던 것일까? 어떤 다른 식물 집단도 Violaceae만큼 질기고 목표 지향적이며 존재를 위한 투쟁에 성공적일 수는 없다.

3월 첫 개화 시기 후에 형성되는 덩굴에서 제비꽃의 흡입 뿌리가 자라나며, 이것은 다시 땅으로 내려가 거기에서 휘묻이할 때 모주가 되는 식물을 감고 빠르게 성장하여 어느 새 방석 모양으로 커 나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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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칼리(홍승희)가 신내림 후 신령님으로부터 받은 첫 메시지가 “지팡이를 들고 다니며 글을 써라”라고 한다. 출처는 '무당을 만나러 갑니다'이다.

Pixabay로부터 입수된 Alexander Lesnitsky님의 이미지


[글쓰기는 주술. 모든 폭력의 파멸을 빕니다. 무당, 집필 노동자 홍칼리] “계엄 뀐 놈이 성내는 꼴 언제까지” 집필노동자 243명도 한줄 선언 https://v.daum.net/v/20250402163515834 언니 홍승은 작가와 함께 4월2일 파면촉구선언에 참여했다.




신내림을 받은 후 신령님에게 들은 첫 번째 메시지가 떠올랐다."지팡이를 들고 다니며 글을 써라." 기억되지 못하고 기록되지 못한 이야기가 아직 많다. 그 이야기를 주우러 다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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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희 소설집 '날마다 만우절' 수록작 '남은 기억'(2019)의 한 장면이다. 작가의 입담이 대단하다. 말 그대로 웃프다......

April, 1969 - Allan D'Arcangelo - WikiArt.org


문학동네 2021년 겨울호에 윤성희 작가 특집이 실려 있다. 






"얼마 전에 일을 그만두었어. 그 아이 때문은 아니고, 암이 재발했으니 월급을 올려달라고 했거든. 원장이 안 된다 그러더라고." 영순은 학원을 그만두는 날 교실마다 달려 있는 액자를 훔쳤다. ‘자기 혼자 컸다고 생각하는 녀석은 크게 될 자격이 없다.’ 액자에는 그런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영순은 훔친 액자를 거실에도 달고, 아이가 넷이나 있는 옆집 부부에게도 선물하고, 경비 아저씨에게도 주었다. "그랬는데도 남아서 가져왔어. 언니 주려고." 액자는 하얀색 종이에 싸여 있었다. 나는 액자에 적힌 글을 읽어보았다. "자꾸 읽다보면 슬퍼져. 그러니 하루에 한 번만 봐." 영순이 말했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자기는 하루에 열 번씩 본다고 했다.

영순이 준 액자를 어항 옆에 두었다. 손자 녀석이 그 액자에 적힌 글을 읽더니 웃었다. "할머니, 이건 짱구 아빠가 한 말이야." 그러면서 손자는 자기 보라고 사온 거냐고 물었다. "할머니 친구가 줬어. 할머니 보라고." - 남은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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