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 설정에서 살아남은 클라리사에게 초점을 두는 대부분의 작품 해석과 반대로, 마린 고리스(Marleen Gorris)는 이 작품을 영화화 하면서 1923년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에는 그려지지 않은, 셉티머스가 참전한 1918년 이탈리아 전쟁 장면을 추가한다.

 

작가 울프가 셉티머스의 전쟁 장면을 그리지 않은 것처럼, 작품 내에도 그리고 비평가에게도 전쟁을 경험한 셉티머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출처: 최상이, 서발턴 개념으로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 다시 읽기(2016)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170587


영화 '댈러웨이 부인'(1997) [버지니아 울프의 동명 원작에 대한 눈높이 해설서. 원작과 함께 감상하기를 추천함.] http://cine21.com/news/view/?mag_id=41720


제1차 세계 대전 연표(전쟁으로 읽는 세계사)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113XX33400045





최후의 총탄이 그에게서 빗나갔다. 그는 터지는 탄환을 느낌도 없이 바라보았다. 평화가 찾아왔을 때, 그는 밀라노에서 군의 명령으로 어느 여관집에 유숙하고 있었다. 뜰이 있고, 화분에 심은 꽃이 놓이고, 마당에는 조그마한 테이블이 있는 집이었다. 그 집 딸들은 모자를 만들었다. 어느 날 저녁,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는 공포에 갑자기 사로잡힌 셉티머스는 막내딸 루크레치아와 약혼해버리고 말았다.

전쟁은 끝이 나고, 휴전 조약도 조인이 되고, 전사자도 매장됐을 무렵, 그는 특히 저녁이면 갑자기 닥쳐오는 공포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는 공포였다. 이탈리아 처녀들이 모자를 만들고 있는 방문을 열면 처녀들이 보였다. 말소리도 들렸다. 처녀들은 접시에 담은 색색의 구슬을 앞에 놓고, 철사를 문지르고, 갓 풀을 칠한 모자 판을 이리저리 돌렸다. 책상 위에는 새털, 금은 장식, 비단 헝겊, 리본이 어지러웠고, 가위가 책상에서 짤각짤각 소리를 냈다.

그러나 뭔가 심상치 않은 것이 그는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시끄러운 가위 소리, 웃어대는 처녀들, 제품이 되어 나오는 모자가 그를 위로해주었다.

"제일 중요한 건 모자예요."

둘이 거닐면서 루크레치아는 이런 말을 늘 했다. 그리고 지나가는 모자 하나하나를 자세히 보았다. 외투도 옷도 여자들의 몸가짐도 일일이 뜯어봤다. 멋없는 옷차림, 지나친 옷차림을 루크레치아는 비난했다. 그것도 수다스럽게 비난하는 게 아니고,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손짓을 했다. 속이려는 것은 아니다. 누가 봐도 싸구려 협잡인 그림을 내보일 때, 화가가 안 받겠다고 할 적의 그런 손짓이었다. 관대하지만 또한 언제나 비판적인 루크레치아는 아무것도 아닌 감을 살려서, 그럴듯하게 입고 다니는 여점원을 보면 반가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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