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르맹은 인간의 삶이 불행과 파멸에 이르게 되는 데는 특별한 악의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강조한다. 평범한 결함처럼 보이는, 인간성과 자기 존엄을 지키기 위한 실천에 대한 무력한 게으름이 ‘악’으로 연결되는 사실을 통찰한 것이다.

 

이러한 작가의 견해는 『마그누스』에서 인류사의 비극인 홀로코스트에 관한 묘사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사실 홀로코스트는 끔찍한 대학살이었지만, 평범한 다수의 협력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극단적인 악의가 없는데 극단적으로 야만적인 결과, 거대한 ‘악’이 실행된 이유를 묻는 과정에서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이란 사유가 등장한다.

 

아렌트는 아이히만 재판을 참관하고, 예상과 다르게 그가 정상적이라는 사실에 충격받고, 악의 평범성에 관한 보고서를 낸다. 여기에서 ‘평범’하다는 말은 행위 자체가 아니라 행위자의 ‘특정한 정신 상태’를 뜻하고, 아이히만이 “이아고도 맥베스도 아니고 그저 자신의 행위를 자각하지 못한 사람에 불과하다는 것”을 목격한 아렌트의 당혹감이 투영되어 있다는 해석을 참조할 가치가 있다.

 

마그누스가 한나 아렌트의 기사를 읽고 ‘악의 평범성’이라는 사유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보인 반응이 그 예다. 마그누스는 당시 사람들이 아렌트의 분석을 비난하는 이유는 ‘악의 평범성’이란 개념이 “너무 흉하고 수치스러운 상처에 거리낌 없이 손가락을 갖다 댄” 것이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아렌트는 사람들 모두가 알지만, 감히 말할 수 없거나 말하고 싶지 않았던 인간의 치부를 드러낸 것이다. 아우슈비츠의 학살이 예외적이고 특이한 인간들이 저지른 만행이 아니라는 것, 대단한 악의를 품지 않은 평범한 인간도 극단적인 악행을 저지를 수 있다는 통찰이 두렵고 싫은 까닭은 ‘책임’의 거리두기가 되지 않아서다.

 

아렌트가 아이히만의 ‘악’이 무사유 탓이라고 할 때, 이것이 단지 어리석음이나 지성적 흠결을 뜻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의해야 한다.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그로 인해 타인이 어떤 고통을 받는지 등에 대한 반성이 없는 것, 감수성의 결여를 비판한다고 보아야 한다.

 

유대인 학살 명령을 직업적 차원에서만 받아들여서 아무런 가책 없이 수행했다는 아이히만의 모습에 마그누스는, “재난과 죽음을 몰고 온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들”을 겹쳐 듣는다.

 

‘대량 학살’이라는 거대 ‘악’은 바로 그런 마비된 정신, 자기 양심에 되물어 자기 행동의 결과를 사유하지 않는 인간의 혼동과 어리석음이 축적된 결과다. 마그누스가 자신의 시대에 저질러진 야만적인 행위들에 관한 질문들로 괴로워하면서 답을 찾던 끝에 도달한 결론도 ‘악과 의무를 혼동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이 인류를 거대한 심연으로 몰아넣었다는 사실이다.] 

출처: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811778 실비 제르맹에게 있어서 악의 문제, 프랑스문화예술연구(ECFAF), 2022, vol.79, pp. 171-202 (32 pages), 유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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