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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 - 노인들의 일상을 유쾌하게 담다 ㅣ 실버 센류 모음집 1
사단법인 전국유료실버타운협회 포푸라샤 편집부 지음, 이지수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4년 1월
평점 :

책 표지와 서문을 읽으면서 이 책처럼 강렬하게 끌린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나이 드신 어르신들의 삶의 지혜가 담긴 어록 모음집이다. 일본에서는 5-7-5 형식의 정형시를 많이 쓴다고 한다. 센류는 그런 정형시들 중 하나로 총 17개음에 의미를 담아 풍자나 익살을 표현한다.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을 보고 의학서적쯤으로 착각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 가슴이 두근거리는 증상을 젊었을 때 연애하던 때가 생각이 나셨으리라. 새로운 만남에 대한 기대감으로 떨리는 거라면 좋겠지만 연로하신 어르신들께 자주 나타나는 부정맥의 증상이란다. 이제는 심장에 문제가 생긴 것을 너무나 멋지게 표현한 말이 아닌가?
개찰구 안 열려
확인하니
진찰권
이것은 꼭 나이가 들어서만 생기는 것은 아니다. 정신없이 살다보면 핸드폰 통화를 하면서도 핸드폰을 찾는다. 상대방과 이야기하다가 전화를 찾아야 한다며 난리를 친다. 이걸 듣고 있는 상대방은 얼마나 황당하겠는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전철을 이용할 일은 많아지고, 그와 함께 병원을 이용할 일도 많아지니 지하철 승차권과 진찰권이 헷갈릴만도 하다.
일어나긴 했는데
잘 때까지 딱히
할 일이 없다
나이가 들어가면 사회에서 내가 해야할 일들이 줄어든다. 나랑 놀아주는 사람도 줄어든다. 거기다 체력마저 힘들어진다. 그래서 하루하루 무사히 일어나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하루를 시작한다. 무사히 일어나서 딱히 무언가를 할 것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인지 실버 타운이 더 인기인지도 모르겠다. 그 안에는 친구도 있고, 각종 프로그램이 있으니까.
'미련은 없다'
말해 놓고 지진나자
제일 먼저 줄행랑
나이가 아무리 먹어도 빨리 죽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이가 들고,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삶의 의지가 강해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이가 들면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자녀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서 '미련은 없다', '빨리 죽어야지', '죽어도 여한이 없다' 등과 같은 말을 하지만 시의 주인처럼 말과 진심은 다른 법이다.
이봐, 할멈
입고 있는 팬티
내 것일세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센류이다. 결혼하기 전에 여자로 만나 엄마가 되고 나중에는 친구가 되는 듯 하다. 결혼하기 전에는 여자였던 아내는 점점 편해지면서 자꾸 남편의 의복을 탐낸다. 좋아서라기보다는 편해서이겠지? 남편들은 그러는 아내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많은 부부들이 그렇게 사는 것 같다.
남편이 아내에게 지그시 건네는 한 마디. 할멈이 있고 있는 팬티가 내 것이라는 한 마디. 어찌보면 민감한 상황일수도 있는데 인생의 위트가 묻어난다. 당장 벗으라 하지 않고 내 것이라는 풍자적인 언지를 준다. 그러면서 부부간의 신뢰와 동지애가 싹트는 거 아닐까?
다른 책처럼 많은 정보를 담고 있지는 않다. 그렇다고 두꺼운 분량도 아니다. 그저 우리가 살아온 인생, 지금의 인생을 짧은 싯구에 담아내는 내공이 장난이 아니다. 설명하지 않고 짧은 단어들 속에서 센류가 살아 숨쉰다.
센류는 마치 시조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전혀 전문적이지 않고 일상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문화같다. 어찌보면 17자 안에 맞추기 위해 고민하는 과정은 치매를 예방하는 데 효과가 있을 듯 하다. 치매 예방과 함께 풍자와 은유의 삶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매력적인가?
* 컬처블룸을 통해 책을 제공받아 감사하게 읽고 주관적인 의견을 적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