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 권력의 법칙 - 감정과 관계에 휘둘리지 않고 조직을 움직이는 법 ㅣ 서가명강 시리즈 46
이강재 지음 / 21세기북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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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명강(서울대 가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명강의)의 46번째 이야기를 만나보았다.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이강재 교수의《한비자, 권력의 법칙》은 한비자의 법가 사상을 쉽고 편안하게 알려주고 있다. 저자는 공자와 맹자 즉 유가 사상을 연구해온 고전학자로 공자의 유가 사상과 한비자의 법가 사상을 비교하며 함께 보여주고 있어서 더욱더 흥미롭고 재미나게 만날 수 있었다. 제자백가 중 하나로 스치듯 만났던 한비자에 대해 제대로 알아볼 수 있는 정말 좋은 기회를 준 책이다.


p.43. 무엇보다 한비자가 가장 강력하게 경계한 것은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여 민심에 휘둘리는 착한 리더의 비극이었다.


《한비자, 권력의 법칙》의 기본 구성은 서가명강 시리즈의 구성을 따르고 있다. 본문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고, 본문의 마무리는 'Q/A 묻고 답하기'가 맡고 있다. 서가명강 시리즈의 시그니처 'Q/A 묻고 답하기'는 이번에도 커다란 매력을 발산한다. 한비자, 법가 사상과의 만남을 깊게 또 넓게 만들어주고 있다. 전국시대의 법가 사상이 가슴에 팍 꽂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군주와 국가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했던 법가의 법치주의가 부러운 까닭은 무엇일까?


p.132. 그가 제시한 법의 대원칙은 '법불아귀法不阿貴'로 요약된다. 법은 귀한 사람에게 아첨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태자의 죄를 물어 태자의 스승들에게 벌을 줄 수 있었던 법가 사상. 개인을 위해, 권력자를 위해 법을 바꾸려 하는 소인배들이 한비자의 사상을 보고 배웠으면 좋겠다. 법률이 아닌 온정으로 법을 집행하려는 이들에게 한비자의 사상을, 이 책《한비자, 권력의 법칙》을 선물하고 싶다. 법은 최소한의 안전장치이고, 법의 적용은 모두에게 공정하고 평등해야 한다. 사법정의가 흔들리고 있는 오늘 우리에게 꼭 필요한 사상을 담은, 꼭 필요한 책이다.


p.217. 법의 공정한 시스템을 받아들이되, 그 위에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인의 정신을 얹는 지혜, 요컨대 두 사상의 상호 보완적인 공존이다.


한비자는 '온정주의'를 조직 내에 치명적인 부조리를 낳게 하는 것으로 치부하고, 대중의 마음에 영합하는 정치를 경계했다. 법의 본질을, 올바른 통치를 돌아보게 만드는 날카로운 질문들을 많이 포함하고 있는 『한비자韓非子』의 매력을 정말 잘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시대의, 일의 변화에 따라 대비책도 달라져야 한다는 한비자의 유연함을 배워야 할 것 같다. 자신의 주장을 많은 이야기와 사례들로 설명하고 있어서 정말 쉽고 재미나게 읽을 수 있었다. 서가명강의 매력을 고스란히 만날 수 있는 멋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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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겁관 초연속 살인 사건 - 마녀는 X와 죽기로 했다
미나미 아소부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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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신예 미스터리 작가 미나미 아소부의 제25회 본격 미스터리 대상 후보에 오른 《영겁관 초연속 살인 사건》을 만나보았다. 영겁永劫이라는 단어가 알려주듯이 반복되는 시간속에 갇힌 주인공들이 타임루프를 벗어나 보려는 힘겨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반복되는 시간 속에 밀실이라는 공간적인 제약까지 설정하고는 살인 사건을 일으킨다. 타임루프를 끊어내기도 벅찬데 동생을 살해한 범인을 찾기 위한 오빠의 사랑이 소설의 한 축이 된다.


p.29. 동생의 눈물을 멈출 수만 있다면 지금 나는 신조차 죽일 수 있을 것이다.


주인공 히스클리프는 브래드버리 가문의 차지 당주다.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3년 만에 조지안 양식의 저택으로 돌아온다. 어머니의 장례식을 준비하던 밤 낯선 손님이 찾아오고 그때부터 히스의 고난이 시작된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동생 코델리아를 지키려는 오빠 히스에게 '동반의 마녀' 릴리 주디스는 많은 이야기와 능력을 보여준다. 회귀와 동반 능력, 그로 인해 100년을 살고 있는 마녀 릴리가 몰락한 귀족 히스를 찾아온 까닭은 무엇일까?


p.145. 그리고 지금이 일곱 번째 '회귀', 즉 여덟 번째 세계라는 것이다.


'지난번의 오늘','반복되는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미스터리한 사건이 발생하고 매일 그 사건 전으로 돌아오지만 사건은 다른 모습으로 같은 결과를 만든다. 매일이 반복되는 데 미스터리의 답은 전혀 찾을 수 있는 실마리를 주지 않는다. 패턴은 매번 같다. 여동생 코디가 살해당하고, 마녀 릴리도 살해당한다. 그리고 릴리는 회귀하고 그 동반자로 히스를 선택한다. 정말 릴리의 회귀는 반복되지만 시간과 공간만이 반복될 뿐 사건과 사고는 매번 모습을 달리한다. 정말 흥미롭고 재미나다. 능력이 뛰어난 마녀라면 한 번에 범인을 잡을 것 같은데 17세의 귀여운 마녀의 한계인지 매번 히스와 썸만 쌓는듯하다.


마녀 릴리와 당주 히스의 로맨스가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동안 회귀와 동반을 반복한다. 매일 같은 시간에 돌아오는 타임루프가 지루하지 않은 까닭은 주변 인물들의 재미나고 독특한 개성 때문인듯하다. 등장인물 각자가 들려주는 개성 있는 이야기도 폭풍으로 고립된 저택의 밀실 살인만큼이나 흥미진진하다. 처음 만나는 작가 미나미 아소부의 다음 작품이 너무나 기대된다. 레벨 업된 마녀 릴리를 꼭 다시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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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6 - 사과
박솔뫼 외 지음 / 북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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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산 이효석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2000년 제정된 이효석문학상 제27회 수상 작품들을 만나보았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6》표제작은 대상 박솔뫼 작가의 「사과」이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6》의 특별함이 읽는 동안 행복한 시간을 선물해 주었다. '작품집'의 가장 큰 행복은 수록된 이야기를 통해서 다양한 맛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느낀 맛이 혼자만의 감정인지 아닌지 깊은 설명을 만나볼 수 있다는 특별함을 가지고 있다. 그 특별함을 만나보는 시간은 행복 그 자체이다.


대상작 박솔뫼 작가의 「사과」는 쉽게 읽히다가 순간순간 급정지를 하게 만든다. 애리의 삶을 이야기하다가 그 속에 애리와 선호의 사랑 이야기를 집어넣는다. 흔하게 만날 수 있는 로맨스가 보일 듯하다가 날선 감정을 마주하게 한다. 그런데 나만 날서고 나만 흥분했다. 둘의 재회 장면은 무언가 빠진 듯 미지근하다. 이들이 연인 관계가 맞았나? 단지 공간을 같이 쓰던 이들인가? 흙 묻은 감자와 사과의 차이를 통해 던지고 있는 작가의 질문을 만나보길 바란다.


p.22. 잠과 꿈은 서로 다른 존재로, 잠은 자신에게 주어진 장소이고 자신이 가질 수 있는 공간이었다. 꿈은 애리가 가끔 볼 수 있는 것이었는데, 그래서 애리는 잠을 자지 않을 때도 가끔 꿈을 꿀 수 있었다.


황시운 작가의 「일일업무 보고서」는 늘 가까이에서 접하던 것의 익숙함에 즐겁게 들여다보았다. '노트북의 전원을 눌렀다.(p.215)'는 모든 직장인들의 업무 시작 신호일 것이다. 그런 당연한 시작이 이 소설의 시작이다. 하지만 당연한, 평범한 회사원의 이야기는 아니다. 사고로 너무나 불편한 몸을 가지고 살게 된 세진의 힘겨운 버팀이 주된 흐름이다. 너무나 안타까운 이야기가 만남 자체를 힘들게 한다. 보상금을 투자하라는 언니의 제안을 거절하는 정신적 버팀은 육체적 버팀만큼이나 힘겨워 보인다. 인간의 존엄에 대한 생각을, 장애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한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6》에는 대상 수상작 1편과 우수작품상 수상작 5편이 수록되어 있다. 대상 수상 작가 박솔뫼 작가의 자선작 「비둘기 옮기기」까지 총 7편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7가지 맛을 맛볼 수 있는 것이다. 어떤 맛은 쉽게 또 편안하게 다가서지만, 어떤 맛은 낯설고 힘들게 머릿속을 맴돈다. 쉽지 않은 낯선 맛이 소설집을 찾는 즐거움이기도 하다. 늘 편안하게 맛보던 장편소설들의 친절함은 없지만 단편소설의 함축적인 의미가 가진 맛을 느껴보는 즐거움이 있다. 수상작의 해설을 만날 수 있는 작품집과의 멋진 만남을 가져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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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핑크스의 왼쪽 눈동자
김유진 지음 / 북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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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진 작가의 제13회 교보문고 스토리대상 최우수상 수상 작품을 만나보았다. 《스핑크스의 왼쪽 눈동자》 는 '기억'을 이야기하고 있다. 김수오와 주경재 두 화자를 통해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적당한 속도감을 유지하는 까닭은 두 인물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해서인듯하다. 그 팽팽한 긴장감은 어느 한쪽의 비밀이 벗겨지면서 무너지기 시작한다. 미스터리한 긴장감은 김수오 어머니의 기억으로부터 시작하고 또 끝을 맺는다. 과거의 기억을 지우려는 자와 찾으려는 자 사이의 긴장감이 미스터리한 기억들과 마주하면서 '비밀'에 다가설 때쯤 장르가 다른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아프고 슬픈 기억을 지우고 새로운 기억을 집어넣을 수 있다면 좋을까? 좋고 나쁨을 떠나서 도덕적인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까? 미래의 뇌과학은 이처럼 발전할 수 있을까? 과학적인 즐거움을 주는 SF 미스터리로 다가선 이야기는 어느새 가족, 혈연을 생각나게 하는 휴먼 드라마로 바뀐다. 과학이라는 현미경으로 인간의 본성을 촘촘하게 들여다보고 있는듯하다. 김수오의 기억회복술과 주경재의 기억제거술을 통해서 인간의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기억삽입술로 전혀 다른 삶을 기억하고 있다면 개인의 삶은 자신의 삶이 될 수 있을까?


p.43. 나는 뇌를 디자인하는 화가다. 기억을 도려내고 새로운 기억을 채워 주는 일, 그게 내 업이다.


기억을 붙이고 지울 수 있는 세상이 온다면 인간의 삶은 무너지고 말 것 같다. 슬프고 아픈 기억을 지우고, 치매로 잃어버린 기억을 다시 붙일 수 있다면 좋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누군가의 손으로 누군가의 기억을 조작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재앙을 불러올 것 같다. 그리고 그 재앙을 《스핑크스의 왼쪽 눈동자》을 통해서 만날 수 있었다. 가족과 혈연관계를 구속으로만 느끼며 살고 있다면 이 책이 바라보는 따뜻한 관계를 만나보길 바란다. 책날개에서 김유진 작가는 '하나의 질문'이 한 편의 이야기가 되는 과정을 사랑한다고 밝혔다. 《스핑크스의 왼쪽 눈동자》 가 담고 있는 '하나의 질문'은 무엇일지 생각해 보는 즐거움을 놓치지 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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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을 잇는 바다
이요하라 신 지음, 김다미 옮김 / 비채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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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2회 나오키상 수상작《파랑을 잇는 바다》를 만나보았다. 지구행성물리학 박사과정을 수료한 특별한 이력을 가진 작가 이요하라 신의 작품으로 단편소설 다섯 편을 담고 있는 소설집이다. 남은 사람들이 사라진 것들에 대한 '기억'을 찾는 일본의 숲속, 바닷가, 외딴섬 등 외진 마을이 배경이다. '인구 절벽'이라는 용어를 우리보다 먼저 접했던 일본의 작가는 소도시 속에서 '사람'이 줄어들고 있는 외진 지역과 그곳에 남은 삶을 그리고 있다.


《파랑을 잇는 바다》속 외진 곳, 그곳을 그린 이야기의 중심은 남은 사람들이 아니다. 작가가 심어 놓은 '기억'들이 이야기의 주요 흐름이다. 동물(붉은바다거북, 일본늑대), 광물(운석, 흙) 그리고 원자폭탄에 대한 기억들이 이야기의 중심에 서고 그 중심으로 사람들의 사연들이 접근한다. 외진 곳이지만 사람들은 살고 있고, 찾아오고 또 기억을 남긴다. 감성적인 접근으로 멸종 신고된 일본 늑대를 기다리는 이들도 있고, 이성적인 접근으로 멸종 위기의 붉은바다거북의 여행을 도우려는 사람들도 있다. 운석 파편을 감추는 여인의 마음은 또 어떤 접근일까?


다섯 편의 이야기 모두 인간의 감성을 자극하고 있다. 눈물샘이 자연스럽게 열리고 만다. 하지만 감성적인 만남의 바탕을 이성에 두고 있는 까닭으로 눈물 속에 허우적대는 일은 막아준다. 물리학자의 작품들이어서 그런 것일까? 이성과 감성이 부딪힐 때 발생하는 아름다운 빛을 만나보고 싶다면 주저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p.339. "우리 인간도 똑같아. 좋아하는 곳, 마음에 드는 곳, 거기서 살면 돼. 자기가 태어난 곳을 책임져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다섯 편의 이야기 중 어떤 이야기를 먼저 만나도 좋을 것이다. 순서대로 만나지 않아도, 다섯 편 전부를 만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단 한편의 이야기를 만나더라도 아름다운 감성이 안내하는 이성적인 기억 여행이 주는 즐거움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사쓰키의 언니가 이번만은 제발 답장을 해주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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