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너가는 자 - 익숙함에서 탁월함으로 얽매임에서 벗어남으로
최진석 지음 / 쌤앤파커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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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명원 초대 원장을 역임한 최진석 교수가 들려주는 색다른 철학을 만나보았다. 늘 다양한 철학적 사유로 '자아'를 찾아가는 길을 쉽고 재미나게 알려주던 저자가 이번에는 《건너가는 자》를 통해서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을 촘촘히 톺아보고 편안하게 들려주고 있다. 불교 경전을 선택한 까닭은 무엇일까? 수많은 경전 중 단 하나만을 선택할 수 있다면 저자는 《반야심경》을 선택하겠다고 책에서 밝히고 있다. '경전이란 자기 소명이 무엇인지 발견하고, 그것을 실행하는 데 도움이 되는 역할(p.37)'이라고 말하고 있듯이 이 책은 자기 자신의 '고삐'를 찾아 놓치지 말라고 조언하고 있다. 또, 『논어』, 『도덕경』, 『반야심경』 등의 훌륭한 경전들이 '명품 족쇄'가 되는 경우를 우려하며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불교, 붓다에 대한 어려운 이야기를 어떻게 쉽고 편안하게 풀어내고 있을지 무척이나 기대하며 연 책은 시작부터 흥미롭다. 책 제목을 왜 '건너가는 자'로 지었는지 설명하며 양자역학을 차용한다. 불교라는 종교 경전을 철학적으로 분석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운데 양자역학이라는 난해한 과학을 끄집어내고 있다. '건너가는 자'와 양자역학은 어떤 관련이 있을까? 꼭 만나보기 바란다. 정말 재미나고 흥미로운 생각을, 철학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p. 306. 우선 내 고삐는 도대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고삐라는 화두를 놓치면 안 됩니다.


1장에서 불교, 붓다에 대한 일반적인 이야기를 들려주며 예열한 책은 2장부터 본격적으로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에 담긴 지혜를 전해준다. 솔직히 『도덕경』과『주역』은 매번 읽을 때마다 새롭고 난해하다. 그 까닭을 이번에 제대로 알 수 있었다. 불교 경전을 이야기하면서 이해를 돕기 위해 등장시킨 다양한 경전 이야기를 통해서 도덕경에 등장하는 도와 주역에 등장하는 도가 가진 의미를 알게 되었다. 《반야심경》에서, 불교에서 말하고 있는 '공'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어 눈이 밝아진 느낌이다.


p.118. …익숙함을 뒤로하고 낯설면서도 위험하고도 해석되지 않은 곳으로 건너가는 용기 있는 동작, 이것이 바라밀다입니다.


해탈과 윤회, 업, 실상 그리고 본무자성과 공으로 이어지는 설명이 너무나 매끄럽고 시원하다. 《반야심경》의 원제목은《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이다. 원제목에 대한 디테일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그 이야기에는 『서유기』의 삼장법사가 등장한다. 인도에서 불교를 배우고 들여온 승려는 한자의 벽에 부딪친다. 그래서 음역과 의역을 때로는 원음 그대로 불경을 번역했다고 한다. 소설 속 삼장법사의 모델이었던 승려는 누구일까? 어렵고 지루할 틈은 일도 주지 않고 5장에서 주문呪文을 만나게 해주는 흥미로운 책이다.

《건너가는 자》가 들려준 지혜를 《반야심경》속 주문과 함께 반복하고 싶다. 주문을 반복하며 내 삶의 고삐를 꼭 쥐고 건너가고 싶다. 나 자신의 고삐를 찾을 수 있기를 바라며 주문을 읽어본다. 종교를 떠나서 누구나 접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훌륭한 철학 책이다. 건넌다는 의미를 알고 싶다면, 건너가고 싶다면 주저하지 말고 만나보길 바란다. 정말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다.


"쌤엔파커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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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블 소설Y
조은오 지음 / 창비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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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Y 클럽 11기 스폐셜 서평단으로 《버블》을 만나보았다. 창비의 흥미롭고 재미난 형식의 서평단 활동인 소설 Y 클럽은 가제본으로 이루어지는데 책의 모습이 대본집 형태를 가질 때도 있고 작품을 쓴 작가를 알려주니 않을 때도 있다. 이번에 만난 《버블》은 작가를 공개하지 않았다. 물론 지금은 조은오 작가의 첫 장편 소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시작은 마치 누군지도 모르는 이로부터 편지를 받은 설렘이었다. 실제로 정성스러운 저자의 편지도 함께 읽을 수 있어서 특별함을 더했다.


첫 문장 '거리에서는 서로 2미터씩 떨어져서 걷는다.'에서 '격리'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 만나는 격리는 개인의 건강이나 정서를 위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것이다. 오로지 공동체의 이익만을 위한 격리가 버블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개인의 존재보다는 공동체에 제공하는 기능이 중요했다.(p.77)' 특히 성인이 되면 자신의 일을 찾고 가족들과 헤어져 자신의 버블 속에 매몰되어야 한다. 또한 눈을 감고 타인을 만나야 한다. '관계'를 철저하게 끊어버려 통제하고 있는 것이다.


열여덟 살 07에게 그런 버블 속 생활이 만족스러울 리 없다. 작업자 번호 07은 '외곽'을 통제하는 '중앙'의 편안한 삶을 버리고 타인의 눈을 보며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외각의 삶을 선택한다. 그런 선택의 중심에는 평가자 126이 있다. 07에게 힘들지만 자유가 있는 외곽의 삶을 소개한 126과 07의 로맨스가 커갈 때쯤 07이 제한구역의 정체를 알게 된다. 정말 상상할 수 없는 커다란 비밀이 버블 속에 감춰져있었다. 통제와 관계를 넘은 섬뜩한 비밀.


버블 속 삶에 적응하지 못하고 외곽을 선택한 21명의 예비 주민들은 관계를 이어가는 데 가장 중요한 대화하는 법부터 배우게 된다. 눈을 감고 타인을 접했던 이들은 상대방의 표정을, 감정을 읽는 법을 책으로 배운다. 07과 친한 95,60 그리고 평가자 126의 이름은 무엇일까? 우리는 첫 만남에 서로의 이름을 알려준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이름을 알려주는 것은 '신뢰'가 바탕이 된 중요한 일이다. 이들의 이름은 '우정'이라는 관계가 성립되고 나서 알 수 있다. 작가의 이름만큼이나 이들의 이름도 궁금했다. 그리고 서로의 이름을 알았을 때 이야기는 대반전을 향해 간다.


인간은 누구나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그런데 눈 감고 버블 속에서 생활하며 서로의 눈도 보지 못하고 단절된 세상에 살아간다면 07의 선택을 응원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07의 두 번째 선택은 또 다른 생각에 빠져들게 한다. 나라면 쉽게 결정하기 어려울 듯하다. 어느 쪽 삶이 진정한 '나'로 살수 있는 삶일까?



"창비로부터 가제본을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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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여자, 작희 - 교유서가 소설
고은규 지음 / 교유서가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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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고은규《쓰는 여자, 작희》를 가제본으로 만나보았다. 가제본이지만 표지가 아름다웠다. 정식 출간본은 어떤 모습을 하고 찾아올지 무척이나 기대하게 만드는 장편소설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제목과 표지와는 다른 느낌이다. '작가 전문 퇴마사' 미스터가 첫 페이지부터 등장한다. 판타지 소설인 듯 시작한 소설은 일제강점기 여성들의 삶을 보여주며 역사소설처럼 변화한다. 또, 이 소설의 모습은 글을 쓰는 작가들의 애환을 보여주는 이야기로도 보인다. 하지만 이 소설의 진짜 모습은 글 쓰는 여성들의 삶을 바탕으로 과거와 현재 별다른 변화가 없는 여성들의 인권을 이야기하고 있는 페미니즘 소설에 가까운 것 같다.


p.190. '왼손으로 나를 증명하는 일은 쉽지가 않다.'


창작이라는 산고를 겪고 있는 경희와 윤희는 글을 방해하는 혼령을 퇴치하기 위해 미스터를 작업실로 부른다. 작업실을 공유하고 있는 은섬은 퇴마 의식을 믿지 않는다. 그런데 퇴마사 미스터의 뜻밖의 말에 놀란다. 그렇게 은섬은 자신이 읽고 있던 오래된 일기를 통해서 만난 작희의 혼령을 의식하게 된다. 이제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전개된다. 일제강점기에 글을 쓰던 작가들과 현재 이야기를 창작하고 있는 작가들의 이야기를 시간을 오가며 들려주고 있다.


p.115. 산 여자들이 죽은 여자를 사이에 두고 울었다.


현재의 여성 작가들은 그래도 창작을 통해 독립할 수 있지만 당시의 여성들은 독립이라는 자체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작희의 독립심을 키워준 자랑스러운 어머니 중숙은 서포 운영을 통해서 조금이나마 독립적인 삶을 이룬다. 그리고 자신의 딸 작희와 어린 식모 점예에게 홀로 설 수 있는 힘을 길러주었다. 점예에게 학교에 다닐 수 있게 해주고 친동생처럼 살뜰히 살펴주었다. 이야기는 당시 힘겨운 삶을 살던 여성들의 다양한 삶을 보여주며 이어지는데 그중 미설이라는 여성의 삶이 흥미로웠다. 작희의 어머니 중숙이 죽고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는 어린 여성 미설.


작희作囍. 1930년대 서포를 운영하며 글을 쓴 여성을 중심으로 당시 몹쓸 남자들의 다양한 모습이 그려진다. 혼령들의 등장으로 판타지 소설이 아니라 남자들의 한심한 행태가 너무나 판타스틱해서 판타지 소설인듯하다. 외도는 기본이고 구타는 옵션으로 달고 사는 쓸모없는 인간들이 다수 등장한다. 거기에 힘없는 여성의 창작물을 도둑질하는 최상의 쓰레기가 혈압 게이지를 제대로 올린다. 읽는 내내 가슴이 답답하고 화가 치밀어서 당시 여성들은 어떻게 참았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교유서가로부터 가제본을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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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9
류광호 지음 / 몽상가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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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소설가들의 모임 문학서울의 멤버인 류광호 작가가 들려주는 미래 이야기를 만나본다. 는 정말 오지 말아야 할, 정말 만나고 싶지 않은 '디스토피아'를 보여주고 있다. 책 소개에서 언급하고 있는 조지 오웰의 『1984』의 빅브라더가 공상에 의한 상상의 산물이라면 류광호 작가가 주인공 유혁의 머리 위에 띄운 드론은 현실이다. 2029년이라면 미래라기보다는 현재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현재의 기술이 어떻게 응용되는가에 따라서 5년 뒤에 세상은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것 같다. 물론 그 반대일지도 모르지만.


그 변화의 추를 어둠 쪽으로 기울인 작품이 《2029》이다. 백신 패스가 실행되어 백신 미접종자들은 카페에도 들어가지 못한다. 또 사회 신용 제도는 새로운 계급을 만들어 내고 있다. 디지털 아이디나 전자화폐 사용은 개인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정부에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세상을 걱정하며 정부를 의심하는 '성유혁'이 조금씩 위험에 다가가는 안타까움이 긴장감을 더해주던 이야기는 옆집에 사는 '강다은'과의 만남으로 로맨틱한 달달함으로 이어진다. 음모론자 유혁과 평범한 다은과의 만남은 어떤 모습으로 발전할 수 있을까?


유혁이 겪게 되는 사건들은 하나같이 지금도 충분히 가능할 이야기이다. 그러니 5년 뒤 세상이 유토피아가 될지, 디스토피아가 될지는 인간들의 욕심이 어떤 세상으로 흐르는가에 따라 정해질 듯하다. 하지만 작가 류광호는 디스토피아 쪽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런데 작가가 그린 디스토피아는 정말 비관적이다. 그런 비극적인 디스토피아의 중심에 선 인간이 유토피아로 향할 수 있는 방법을 제안받는다면 어떤 결정을 할까?


누구나 행복을 꿈꾸고 원한다. 하지만 누구도 행복할 수 없는 세상을 《2029》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유혁이 결정한 세상은 유토피아일까? 디스토피아일까? 우리가 유혁이라면 어떤 결정을 할 수 있을까? 마스크만 벗어도 드론과 로봇 개가 쫓아오는 감시가 일상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우리는 어떤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미래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오늘 우리가 찾는 행복이 무엇인지 또 우리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야 할지 생각하게 만드는 멋진 신세계가 담긴 소설이다.



"몽상가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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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소방차 마르틴 베크 시리즈 5
마이 셰발.페르 발뢰 지음, 김명남 옮김 / 엘릭시르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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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의 작가 커플인 마이 셰발페르 발뢰'마르틴 베크'시리즈의 다섯 번째 작품 《사라진 소방차》를 만나본다. 스웨덴 경찰소설, 범죄소설의 선구자라 불리는 이들의 작품답게 지금까지의 작품 모두 스토리 구성도 탄탄하고 이야기 전개도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그러니 가독성은 당연히 뛰어나다. 물론 일본 미스터리 소설에서 접할 수 있는 천재적인 탐정이나 형사는 등장하지 않는다. 경찰서에 가면 실제로 스칠 것 같은 형사들이 등장한다. 실감 나는, 생동감 넘치는 형사들이 보여주는 일상이 천재 형사들의 추리보다 재미나고 흥미롭다. 왜일까?


스웨덴의 범죄학자이자 추리소설가인 레이프 페르손《사라진 소방차》'서문'을 통해서 마르틴 베크 시리즈에 대한 자신의 팬심을 솔직하게 들려준다. 서른 권이 넘는 책을 소장하고 있으며 특히 《사라진 소방차》를 좋아해서 가장 많은 판본을 소장하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보다 나은 책은 어지간해선 만나기 힘들다.'(p.9)라는 표현보다 더 수위 높은 애정 고백이 있으니 조금의 닭살은 예상하길 바란다. 물론 마르틴 베크 시리즈의 매력을 충분히 알고 있다면 '서문'은 천천히 읽는 것도 좋을 듯하다.


이야기는 총소리로 시작해서 총소리로 끝을 맺는다. 물론 두 총소리의 성격은 완전히 다르고 그 상황도 완벽하게 다르다. 마르틴 베크 시리즈에는 개성 넘치는 형사들이 고정 출연 중이다. 그리고 그들 각자의 개인적인 삶과 형사로서의 일상을 재미나게 잘 버무려서 이 시리즈를 최고의 경찰소설로 만든 것 같다. 이번 작품의 주요 흐름은 192㎝, 100㎏의 거구에 괴팍한 다혈질 형사 군발드 라르손이 맡는다. 이유도 묻지 않고 누군가를 감시하던 라르손은 화재 사고의 중심에 서게 된다. 그리고 시민들을 구한 영웅이 된다. 그런데 그 화재사건은 엄청난 나비효과를 만들어내고 결국 국제적인 사건으로 돌아온다.


이 시리즈의 숨은 재미는 형사들의 일상을 들려다 볼 수 있다는 것이고 대놓고 들어낸 재미중 하나는 마르틴 베크 경감과 수사를 함께하는 형사들이 펼치는 탐문 활동이다. 참고인 조사에 심혈을 기울여 작은 단서에서도 커다란 틈을 발견하고 그 틈을 바탕으로 범인을 특정해 나간다. 그런데 이 작품은 지금까지의 작품들과는 결이 다른 결말을 보인다. 팀에 새로 합류한 신출내기 형사 스카케의 멋진(?) 활약이 기다리고 있는 결말을 꼭 만나보길 바란다. 첫 등장부터 강열한 인상을 심어준 스카케의 엄청난 활약을 기대해 본다.


"엘릭시르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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