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족 시대 - 로맨스 판타지에는 없는 유럽의 실제 역사
임승휘 지음 / 타인의사유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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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대학교 사학과 교수이며 한국프랑스사학회 회장인 임승휘 교수의 재미있는 입담은 텔레비전 프로그램들을 통해서 접한 적이 있다. 그런 재미난 입담이 담겨있는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를 만나보았다. 역사는 바라보는 관점이나 시점에 따라서 같은 사건이 전혀 다르게 기록될 수도 있다. 같은 사건이 '혁명'이 될 수도 있고 '쿠데타'가 될 수도 있는 것처럼. 《귀족 시대》에서 역사를 바라본 렌즈는 '귀족'이다. 귀족으로 바라본 인류의 역사는 또 귀족의 역사는 정말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유럽으로 한정하더라도 20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귀족을 대표하는 이미지는 무엇일까? 우리 사회에는 찾기 힘든 '노블레스 오블리주'일까? 아니면 '기사도'일까? 저자는 챕터 1. 키워드로 읽는 귀족 문화에서 귀족을 대표하는 9가지 키워드로 설명하고 있다. 귀족의 피는 푸르다는 '블루 블러드'나 너무나 우아해 보이던 '애프터눈 티'의 기원이 너무나 흥미로웠다. 가문을 상징하는 '문장'을, 아니 나를 상징하는 문장을 하나 만들고 싶어졌다.


챕터 2. 귀족의 일상 엿보기에서는 가족 내에서 아동, 어린이의 위치가 어떠했는지 보여주고 있는데 너무나 안타까웠다. 그런데 귀족이라는 허울이 만들어낸 사치를 보면서 이들의 정체성이 모호해지기 시작했다. 연회 한 번을 위해 새끼 돼지 2000마리를 잡는 사람들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알까? 굶주린 백성은 안중에도 없는 것 같은데. 챕터 3. 역사에 이름을 남긴 귀족들에서도 여전히 흥미롭고 재미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특히 영국의 정치인, 친근한 인물도 만날 수 있다.


앞선 챕터들에서 특정 키워드 등을 통해서 귀족의 사회적 위치나 의미 등을 살펴보았다. 이제 저자는 마지막 챕터 4. 낯설고 신기한 귀족의 세계에서 귀족의 역사 이야기를 들려준다. '귀족'이라는 개념부터 새로운 귀족의 등장 등 흥미로운 이야기를 보여준다. 재미난 이야기에 많은 사진과 그림을 더해서 귀족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법복귀족이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결정되는 계급을 신분으로 세습하려는 우리 사회 권력층의 모습과 오버랩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우리 사회에 진정한 귀족이,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늘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진정한 의미의 기사도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알려주는 멋진 책《귀족 시대》를, 임승휘 교수의 깔끔한 스토리텔링을 만나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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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하마 코인 세탁소 서사원 일본 소설 3
이즈미 유타카 지음, 이은미 옮김 / 서사원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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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제8회 일본역사시대작가협회상 신인상과 제2회 호소야마사미츠상을 수상한 이즈미 유타카의 장편소설《요코하마 코인 세탁소》를 만나보았다. 제목에서 받은 첫 느낌은 판타지 소설이었다. 왜 그런 느낌을 받았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세탁소에서 벌어지는 판타지를 상상했다. 그리고 코인 세탁소의 한쪽 기계에 걸린 채 방치된 봉투 하나의 주인이 나타나기 전까지 판타지 소설을 상상했다. 하지만 이 소설은 판타지와는 거리가 먼 지극히 현실적인 소재를 담은 이야기이다.


큰 키에 우람한 체격의 아카네는 힘겹게 버티던 부동산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 틀어박힌 채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새로운 출발의 시작으로 삼은 것이 빨래였다. 그런데 세탁기가 고장 났고 코인 세탁소를 찾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코인 세탁소 주인 마나를 만났고 알 수 없는 감정이 편안함과 위로를 느끼게 했다. 결국 아카네는 그곳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조금씩 사람을 대하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서는 법을 배우게 된다.


그곳에는 다양한 손님들이 찾아오고 또 다양한 감정들이 드러난다. 남편의 외도로 어린 딸을 혼자 키우게 된 젊은 싱글맘도 등장하고, 가족에 대한 사랑을 표현할 줄 몰랐던 중년 가장도 등장한다. 또 아내의 죽음으로 삶의 의지를 상실한 노인도, 오래도록 방치한 비닐봉지의 주인인 대학생도 등장한다.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는 아키네에게 썸남이 나타나고 이제 달달한 이야기가 이어지려나 하는 순간 코인 세탁소의 점장 마나의 과거가 드러난다. 한 소년의 등장으로 너무나 아프고 슬픈 마나의 과거가 현재로 이어진다. 점장 마나의 괴로운 과거는 무엇일까?


일상 속에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가 펼쳐지고 그 속에서 공감과 위로를 찾을 수 있는 힐링 소설이다. 편안하게 접할 수 있는 이런 장소가 어딘가에 한 곳 정도는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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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킷사텐 여행 - 존 레넌에서 하루키까지 예술가들의 문화 살롱
최민지 지음 / 남해의봄날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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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85. 긴 세월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취향과 취향이 모이고, 시간에 시간이 쌓여 문화가 된 공간에는 진정성이 있다.


나고야에 거주하고 있는 작가 최민지가 들려주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나보았다. 《도쿄 킷사텐 여행》은 도쿄에 있는 일본의 오래된 킷사텐을 소개하고 있다. 킷사텐喫茶店의 한자를 보고 한국 소설이 한편 떠올랐다. 『카카두 : 경성 제일 끽다점』에서도 그곳은 새로운 문화의 시작이었고 독립운동의 중심이었다. 저자가 들려주는 도쿄의 킷사텐 역시 문학, 미술, 음악 등 당시 문화가 모이는 곳이었고 또 뻗어나가는 곳이었다. 처음에는 일본의 잘나가는 무언가를 소개하는 책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 책은 일본 도쿄를 문화를 중심으로 산책한 인문학 여행기이었다.


p.103. 이처럼 킷사텐을 만나는 것은 그 킷사텐이 자리 잡은 곳의 고유한 정체성을 만나는 일이자 여러 지역의 다양성을 만나는 일이다.


정말 어마어마한 인물들이 드나들던 그리고 흔적을 남긴 추억을 간직하고 100년을 이어온 킷사텐들을 짧은 호흡으로 하지만 급하지 않게, 편안하게 소개하고 있다. 출판사 방 한 칸을 개방해서 만든 란보 킷사텐에서는 『인격 실격』의 작가 다자이 오사무가 초상화를 그렸고, 도쿄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카페 파울리스타에서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흔적과 존 레넌의 추억을 만날 수 있다. 나쓰메 소세키가 걸었던 길을 따라 걸으며 만나게 되는 작품 속 아름다운 장소들을 만나는 것도, 일본 만화의 거장들이 젊었을 때 모여 살았다는 마을의 '만화 보살'을 만나보는 것도 이 책이 주는 특별한 선물이다.


긴자 후지야 킷사텐을 자주 찾았다는 젊은 작가는 훗날 노벨 문학상을 받는다. 그는 누구일까? 작가가 되기 전 '피터 캣'이라는 재즈 킷사를 운영했던 인물은 누구일까? 영화음악의 거장 사카모토 류이치가 학교보다 더 오래 머물렀다는 재즈 킷사는 또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가부키도 아닌 신파극도 아닌 새로운 연극을 시도했던 쓰키지 소극장에서 만난 조선 유학생들은 누구일까? 스시 1인분이 열 개가 된 사연은 또 무엇일까? 무엇보다 인도,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이 머물렀던, 그들을 도와주었던 나카무라야에는 꼭 한번 찾아가 보고 싶다.


도쿄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이 책과 함께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관광명소보다는 오래된 문화명소를 만나보고 싶다면, 일본 최초의 비엔나커피를 맛보고 싶다면 《도쿄 킷사텐 여행》에 담긴 지도를 따라가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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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두리 도서관의 사건수첩
모리야 아키코 지음, 양지윤 옮김 / 북플라자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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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제 13회 아유카와 데쓰야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모리야 아키코의 미스터리 소설을 만나보았다. 《변두리 도서관의 사건수첩》이라는 제목이 알려주고있듯이 이야기의 주요 흐름은 도서관을 둘러싼 의문의 사건들이다. 그리고 그 흐름의 중앙에는 신입 사서司書후미코가 있다. 그녀의 역할은 수수께끼를 찾고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탐정은 따로있다.


베테랑 사서 노세는 명탐정 코난이나 소년탐정 김전일보다 더 뛰어난 관찰력으로 누구도 예상하지못한 답을 찾아낸다. 그런데 이 중년 아저씨는 후미코를 포함한 아키바 도서관 동료들과 정보 공유를 전혀 하지 않는다. 물론 정보라기보다는 노세의 추리 이긴하다. 노세의 추리는 인간적이다. 어린 명탐정들에게 걸리면 정상참작이란 없는데 중년의 노세는 범인의 사정을 알아내고는 범죄행위를 덮어주기도 한다.


이 책이 가진 많은 매력중의 하나는 소설의 목차目次가 24절기중 하나라는 것이다. 시작은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이다. 동지, 입춘, 청명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짧은 에피소드들이 각각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그리고 그 이야기속 인물들이 다시 서로 연결되며 큰 흐름을 만든다. 사소한 단서만으로도 사건을 푸는 노세의 대활약을 보는 것도 즐겁지만 웬지모르게 신입 사서 후미코의 성장을 응원하게 된다. 조금씩 커지고 깊어지는 후미코의 생각을 들여다보는 것도 이 책이 주는 즐거움중 하나다.


어느날 초등학생들 사이에 이상한 도시괴담이 퍼진다. 노세와 후미코가 도시괴담을 잠재울때쯤 이번에는 도서관 서가에 책을 쌓아 만든 암호가 등장한다. 멋지게 암호를 풀어낸 노세 앞에 이번에는 명의도용을 통해 고가의 미술책을 대출한 뒤 반납하지 않는 사건이 발생한다. 법적으로든 도덕적으로든 커다란 사건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긴장감과 몰입감을 높일 수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설녀 이야기와 오래된 동화책의 진실을 만나보는 즐거움은 이 책에 실린 다섯 이야기들중에서도 특별하다. 특히 오래된 동화책의 진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가슴이 아프지만 그 이야기를 풀어낸 노세의 대응은 너무나 따뜻하다. 변두리 도서관을 지키는 이들의 흥미로운 사연이 담긴 멋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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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 것들 달달북다 6
김지연 지음 / 북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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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달북다'는 사랑의 다양한 모습을 12명의 작가가 각기 다른 사랑 이야기를 들려주는 흥미로운 단편소설이다. 김지연 작가의《지나가는 것들》로맨스romance × 퀴어queer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이다. 단편소설은 짧은 글 속에 작가의 깊은 생각을 담아내고 있어서 장편소설보다 난해한 작품들이 많다. 어떨 때는 읽고 있던 도중에 길을 잃기도 한다. 하지만 '달달북다'의 사랑 이야기들은 편안하게 읽을 수 있다. 아마도 책 뒤편에 자리한 '작업 일기'때문인듯하다. 작가가 들려주는 창작 과정을 만나본다는 건 소설을 만나는 것과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p.73. 어차피 이 모든 시간은 지나가버릴 것이고 다가올 일들을 미리 당겨 걱정할 필요는 없다. 지나가기 전에는, 지금은 함께 있고 싶었다.


《지나가는 것들》은 작은 지방 소도시에서 '이상형'을 찾던 미수가 자신의 이상형과는 거리가 있는 '사마귀'처럼 생긴 영경을 좋아하게 된 짧은 이야기이다. 사랑의 마음, 사랑의 모습은 다른 듯 비슷하다. 종교에 따라, 지역에 따라 그 표현하는 방식이나 겉모습이 다를 뿐 속마음은 같은 듯하다. 처음에는 상대의 마음을 저울질하고 사랑이 깊어지면 질투에 눈이 멀기도 한다. 사랑의 모습은 이성애건 동성애건 차이가 없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데 차이가 난다는 게 더 이상한 것일까?


p.43. 이럴 거면 이렇게 살 거면 내가 아닌 채로 살 거면 왜 살지?


동성애자인 미수를 통해서 그들의 사랑을 엿본다.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이성애는 자주 접할 수 있지만 동성애는 접할 기회가 드물어서 미수가 느끼는 배신감이나 질투, 설렘이 흥미롭다. 미수가 느끼는 감정들은 이성애자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역시 사랑은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누군가를 위하는 마음은 하나인 것 같다. '다름'은 이해의 대상이 아니다. 이제 다름은 자연스러운 것이 되어가고 있다. 그런 다름이 만들어낸 세상에 갇힌 미수에게 '이상형'보다는 진정한 사랑을 찾아보라 권하고 싶다. 보다 풀이 넓은 이성 간의 사랑에서도 이상형을 만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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