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이 깊을수록 미안한 게 많다 - 반야암 지안 스님의 산중 수상록
지안 지음 / 불광출판사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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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통도사 반야암에 기거하며 불교의 가르침을 설파하신 노스님 지안 스님께서 들려주시는 '산에 사는 즐거움'을 만나보았다. 산거인山居人의 낙樂을 매 순간 느낄 수 있는 《인연이 깊을수록 미안한 게 많다》를 통해서 노스님께서 걸어오신 평온한 삶 속으로 들어가 본다. 타인의 시선에 나를 잃어버리기 쉬운 번잡한 대로를 벗어나 숲속 오솔길로 들어오기를 권한다. 그렇게 노스님의 이야기는 심연의 사유와 함께 숲속으로 향한다.


p.35. 주변 환경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자신만의 고요를 지켜내는 것, 그것이 내가 반세기 넘는 산거(山居)생활을 통해 배운 가장 소중한 낙이자 인생 경영의 핵심이다.


처음 시작은 느낌 좋은 생각을 담은 아름다운 에세이였다. 그런데 노트에 좋은 구절을 옮겨 적는 것을 포기한 순간 아름다운 에세이는 심연의 울림이 있는 철학 에세이로 바뀌었다. 지안 스님은 가볍게 툭 던지듯 이야기하고 계시지만 그 깊이 있는 사색의 힘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노스님의 철학적인 생각이 깊이까지 더해진다면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낼까? 지루하고 난해한 불교 철학의 진수를 만나게 될까? 아니다. 정말 간결하게 깊이 있는 생각을 보여주고 있어 무척 편안하다. 아마도 노스님의 필력이 만들어낸 편안함일 것이다.


p.64. 지나간 인연에 집착하기보다는 오늘 내 곁을 지키는 숲의 식구들에게 따뜻한 눈길 한 번 더 건네는 것, 그것이 내가 산에서 배운 삶이다.


낱글자 하나하나에 담긴 깊은 사유가 책장을 붙잡고 생각에 빠져들게 한다. 노스님의 사색을 엿보는 시간이 불교와 친해지는, 불교를 공부하게 하는 시간으로 이어졌다. 불교가 바탕이지만 그곳에만 머물지는 않는다. 서양의 철학자들이 다수 등장하고 중국의 사상가들도 만나볼 수 있다. 노스님의 사유의 깊이와 폭을 짐작하게 하는 매력적인 만남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산속 오솔길에서 만나는 인연은 사람만이 아니다. 사람보다 더 소중한 인연因緣.


p.59. 목탁새처럼 정직하게 살고 정직하게 울림을 주는 삶. 숲길을 걸으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오늘, 맑게 깨어 있는가?


노스님께서 오늘도 숲속 오솔길을 걷는 까닭은 무엇일까? 지안 스님이 들려주는 삶의 지혜와 심연의 이야기를 만나보는 즐거움을 놓치지 말기를 바란다. 문장을 읽었는데 명상을 한 느낌을 주는 묘한 책이다. 산속 평온함을 고스란히 담아 도심 속에서도 피톤치드(phytoncide)를 충분히 할 수 있는 힐링 에세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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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피의 계산에 대하여 2
솔베이 발레 지음, 손화수 옮김 / 은행나무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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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회문학상을 수상한 솔베이 발레의 《부피의 계산에 대하여》의 두 번째 이야기를 만나보았다. 주인공 타라는 여전히 11월 18일이라는 시간에 갇혀있다. 반복되는 시간에서의 탈출을 바라며 출구를 찾아 나섰던 주인공이 갇힌 시간 속에서 출구가 아닌 다른 무언가를 찾기 시작하면서 이야기는 또 다른 흐름을 보여준다. 출구가 아닌 삶을 찾으면서 이야기는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흐른다. 하지만 반복은 이어지고 잊힘 또한 계속된다.


반복되는 시간을 계절이라는 공간으로, 삶으로 이어가면서 타라는 또 다른 형태의 내일을 그린다. 시간은 '오늘'로 반복되지만 타라의 공간은 다른 형태의 '내일'을 이야기한다. 자꾸만 지워지는 기억을 기록으로 채우며 내일을 향해, 다른 계절을 향해 나아가던 수많은 11월 18일의 이야기가 《부피의 계산에 대하여 2》에 펼쳐진다. 반복되는 시간 속에 빠져 허우적 되던 주인공은 이제 그 속에서 의미 있는 삶을 찾으려고 한다.


스토리만큼이나 의식, 철학적인 흐름이 흥미롭고 재미나다. 반복되는 시간 속에 갇힌 주인공이 '고대 로마'를 찾은 까닭은 무엇일까? 결말에 이르러 다시 앞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놀라운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복선을 복선으로 느끼지 않고 편안하게 지나온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확인하는 번거로움을 피하고 싶다면 모든 장면을 의심해 보길 바란다. '왜?'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하는 엄청난 반전이 숨어있다. 지루하지 않은 반복이 만들어내는 미스터리한 상황이 멋진 이야기로 이어지는 매력적인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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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는 어떻게 미래가 되는가 - AI부터 양자역학, 청색기술까지, 오래된 상상력의 비밀
이인식 지음 / 드림셀러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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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칼럼니스트이자 지식융합연구소 소장 이인식이 들려주는 흥미롭고 재미난 이야기《신화는 어떻게 미래가 되는가》를 만나보았다. 밀랍 날개를 단 이카로스와 AI 로봇이 함께 등장하고 있는 책 표지부터 시선을 사로잡는다. 전체적인 구성은 신화라는 감성과 과학이라는 이성을 흥미롭게 버무려 재미나게 인문학을 접하게 하고 있다. 까마득히 먼 과거의 신화와 지금 오늘과 다가온 미래의 과학이 가진 공통점은 아마도 상상력일 것이다. 그리고 그 상상력이 이 책의 원동력이 된다.


신화가 그리고 있는 상상력은 과학 속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을까? 이집트 미라의 모습은 과학의 힘을 통해 21세기에는 '냉동 인간'으로 나타난다. 그리스, 중국, 이집트 그리고 북유럽 신화에서 만날 수 있는 상상력을 과학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카오스와 나비효과, 인어 공주, 임사 체험臨死體驗 등 흥미롭고 재미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불로장생의 꿈은 '야마나카 인자'로 이루어질지도 모르겠다. 신화라는 허구와 과학적인 사실을 씨줄과 날줄로 촘촘하게 짜낸 멋진 이야기를 상상력의 세계로 이어지게 하고 있다.


신화라는 재미난 이야기가 과학과 만나 시너지를 낼 수 있을까? 허구와 사실, 감성과 이성을 어떻게 짜 맞추어야 재미나고 흥미로운 이야기가 될 수 있을까? 《신화는 어떻게 미래가 되는가》를 만나본다면 재미와 의미를 함께 찾을 수 있는 책이 어떤 모습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정말 매력적인 인문학 교양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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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수술하는 정신과 의사입니다 - 매일 인간의 가장 깊은 어둠과 마주하며 상처를 절개하고 삶을 다시 잇는 시간들
김수룡 지음 / 미류책방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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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 년간 정신과 의사로 살아온 저자 김수룡이 후배 의사들에게 전하고 싶은 경험담《나는 수술하는 정신과 의사입니다》는 잔잔하게 저자의 경험 속을 흐르다가 어느새 좌절을 이겨내고 자신을 이해하고 스스로 단단해져가는 우리들의 이야기로 스며든다. 저자가 들려주는 정신과 의사의 수술은 죽음과 맞서는 마지막 인사이다. 악수하고 해어진 사람이 며칠 뒤 아픔으로 다가선다. 그래서 정신과 의사라는 직업군의 자살률이 상당하다. 제주도 여행을 떠난다고 인사 온 상담자의 손을 놓아야 할까? 잡아야 할까?


p.83. 죽음에 대한 완벽한 준비는 현실을 잘 사는 것이라고. …(중략)…진짜 두려운 것은 죽음 자체가 아니라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하는 것이다.


마음의 수술은 고통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을 통과하는 것이다. 그리고 통과의 시작은 '간절함'이라 말한다. 환자 자신의 간절함과 가족들의 간절함이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남을 도와주는, 안내해 주는 존재가 정신과 의사가 아닐까? 어리바리한 전공의가 간절한 의사가 되기까지의 시간을 담백하게 담은 책이다.


한 분야에 30년 정도의 경력을 가지고 있다면 그 일에 대한 익숙함은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정신과 의사에게 익숙함은 전혀 당연하지 않다. 저자의 이야기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같은 상황에서 전혀 다른 결과를 접할 수 있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 경험이 중요하지만 경험에만 의지할 수 없는 정신과 진료의 다양한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저자가 말하고 있는 정신과 의사 수술의 메스는 입일까? 귀일까?


p.224. …(전략)…환자나 보호자가 병이 있음을 받아들이도록 하고, 병을 치료하는 길로 가도록 다시 일으켜 세우는 작업을 해야 한다. 나는 이 과정을 '정신과 의사의 수술'이라고 부른다.


인공지능 로봇이 수술도 하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마음 수술을 AI에게 맡길 수 있을까? 안될듯하다. 공감이라는 최상의 치료법이 불가능한 로봇이 마음 수술의 매스를 잡는다는 건 너무나 위험부담임이 큰 선택이다. 자살이라는 죽음을 들려주고 있지만 《나는 수술하는 정신과 의사입니다》는 따뜻한 여유가 포근함을 주는 힐링 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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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사 - 거미는 움직이지 않는다
최윤석 지음 / 팩토리나인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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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PD로 10편이 넘는 드라마를 연출했고, 휴스턴 국제영화제 대상과 금상을 수상했던 최윤석 작가의 《파우사PAUSA》를 만나보았다. 작가의 이력만큼이나 제목도 독특하다. 제목부터 시선을 끌더니 이야기는 시작부터 단번에 눈길을 사로잡는다. 활자를 보고 있는데 영상이 떠오르는 묘한 매력을 가진 책이다. 이야기를 손에 닿을 듯 눈앞에 그리고 있다. 등장인물들의 심리도 그림 속에 녹이고 있어서 이야기를 더욱더 실감 나게 한다. 영화처럼, 드라마처럼 다음 장면이 그려지는 소설을 신나게 만나보길 바란다.


소설의 흐름은 차분함을 잃지 않는다. 차분한 흐름을 지키면서 조금씩 아주 조금씩 속도감을 올리다가 결말(역전골)에 다가갈 때쯤 엄청난 스피드로 휘몰아친다. 극강의 스피드를 위한 '쉼'이 파우사라면 이 소설 속에서도 파우사를 만날 수 있다.


p.13. "응, 파우사 PAUSA. 스페인어로 멈춘다는 뜻인데, 바로 패스하지 않고 기다리면서 상대가 더 끌려오게 만드는 전술이야. 그럼 수비라인이 조금씩 벌어지거든. 그 틈으로 훨씬 위험한 패스를 넣는 거지."


《파우사》속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각자가 이루려는 욕망은 커다란 차이를 보이며 공감과 반감을 불러일으킨다. 강민의 욕망에 공감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어두운 이혼남 명관의 욕망을 더 공감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공감은 마지막 페이지에서 정말 커다란 반전을 만들어낸다. 파우사의 다음 시즌을 예약하는 것일까? 강민과 명관의 삶이 교차되는 순간 우린 깊은 생각에 빠지게 된다. 어둠을 만들고 있던 암막 커튼을 걷는 순간 엄청나게 빛나는 빛의 양을 우린 감당할 수 있을까? 진실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까?


흥미로운 스토리 속에 심연의 사유를 담고 있는 재미난 장편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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