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미 마인 워프 시리즈 8
배리 B. 롱이어 지음, 박상준 옮김 / 허블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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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최초로 휴고상, 네뷸러상, 로커스상을 동시에 수상한 1979년에 발표된 SF 소설을 만나보았다. 배리 B.롱이어 《에너미 마인Enemy Mine은 다수의 SF 문학상을 수상함과 동시에 영화로 제작되어 소련에서 극장 개봉한 첫 서방 SF 영화의 원작이라는 특별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우주라는 배경과 인간과 우주인이라는 배경을 지우고 보면 SF 소설보다는 한편의 정말 감동적인 휴먼 드라마 같은 작품이다.


p.7. 드랙의 세 개뿐인 손가락 관절이 구부러졌다.


첫 문장에서 소개된 드랙 종족 '제리바 쉬간'과 무인 행성 파이런 4호에 추락한 인간' 데이비지'의 우정과 사랑이 이 소설의 주요 흐름이다. 인간은 지구도 모자라서 우주 공간에서도 자원을 두고 전쟁을 벌인다. 그리고 드랙 종족과의 전투 중에 추락한 두 조종사가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배워가는 과정을 디테일하게 그리고 있다. 말도 통하지 않고 생김새도 완전히 다른 두 생명체가 서로에게 동화되어가는 순간순간이 특별함을 보여준다.


암수한몸인 양성체 종족 쉬간이 아이를 낳다가 죽으면서 이야기는 새로운 방향으로 흐른다. 우주 공간에서 엄청난 파도와 추위와 싸웠던 단 하나뿐인 친구가 죽은 것이다. 그리움과 고독에 빠질 시간도 없이 데이비지는 외계 생명체 드랙의 아이 '자미스'를 돌보게 된다. 그리고 그 아이 자미스에게 종은 다르지만 '삼촌'으로서 최선을 다한다. 코도 없고 두꺼비처럼 생긴 노란 눈을 가진 드랙의 아이에게 손가락 수가 왜 다른지부터 이해시킨다.


자미스와 데이비지가 각기 구조되어 자신들의 별로 돌아가면서 이야기의 흐름은 다시 한번 바뀌게 된다. 지구가 되었든 드래코가 되었든 '함께' 였다면 자미스의 상황이 더 나아질 수 있었을까? 전쟁은 끝났지만 서로의 원수가 된 두 종족 간의 이해나 공감은 요원할 듯 보인다. 그 속에서 인간 삼촌과 드랙 조카는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서로 적대하는 집단이 서로를 대하는 모습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이 소설은 우주라는 배경으로 '공감'을, 화합을 이야기하고 있다. 서로에게 '존경'을 표하는 방법을 알아가기를 바라고 있다. 데이비지가 쉬간의 족보 '제리바의 가계'를 암송해 주었던 것처럼.


"허블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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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첫 문장 - 나의 고전 필사 노트
김대웅 엮음 / 북플라자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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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한 김대웅이 들려주는 글쓰기의 시작을 만나보았다. 저자는 이 책《소설가의 첫 문장》이 좋은 글을 쓰려는 사람에게 글쓰기 기술을, 또 자신의 글을 대하는 자세를 알려주고 계속해서 글을 써나가는 힘과 의지를 지니게 하는데 커다란 도움을 줄 것이라 말하고 있다. 부제'나의 고전 필사 노트'가 알려주듯이 이 책은 멋진 작품들의 첫 문장을 필사할 수 있는 지면도 함께 실려있다. 좋은 글을 쓰는 도우미 역할뿐만 아니라 좋은 글을 손으로 느낄 수 있는 즐거움도 함께 할 수 있는 특별한 책이다.


레프 톨스토이, 나쓰메 소세키, 헤르만 헤세, 이상, 윌리엄 셰익스피어 등의 95인의 소설가들이 151편의 작품에서 보여준 '시작'을 만나게 해주는 《소설가의 첫 문장》은 총 다섯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은 작가가 소설을 시작하는 다섯 가지 유형으로 구분한 것이다. 작품의 시작을 담은 페이지에는 작가와 작품을 짧지만 임팩트 있게 소개하고 있고, 다음 페이지에는 손과 눈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필사 노트'를 제공하고 있다.


1장 어느 소설가를 만나다에서는 이야기를 끌고 가는 '화자話者'가 첫 문장에 등장하고, 2장에는 소설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나타내는 문장이 시작을 맡는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3장에서는 소설 속 인물들이 탄생하는 시작을, 4장에서는 독자들의 감성을 건드리고, 이성을 자극해서 이야기 속에 몰입할 수 있게 만드는 첫 만남을 보여준다. 끝으로 5장 소설가의 호밀밭에서는 작가가 소설 속 '공간'으로 독자를 초대한다.


'필사 노트'에 명작들의 시작을 적으며 거장들이 자신의 작품을 대하는 자세와 그들의 끈기 있는 노력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너무나 유명한 시작들도 만날 수 있고, 새로운 시작도 만날 수 있어 좋았다. 철학자가 선택한 아름다운 작품들의 멋진 시작을 만나볼 수 있는 행복한 책이다.


"북플라자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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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브 창비교육 성장소설 13
보린 지음 / 창비교육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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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이야기 기반의 개성 강한 판타지를 주로 써 온 보린 작가의 《큐브》를 만나보았다. 친구들은 모두 운동장에 나간 체육시간 독감에 걸려 텅 빈 교실에 혼자 있던 연우에게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당신은 채집되었습니다.”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게 될 때쯤 책 제목 ‘큐브’가 뜻하는 것도 알게 된다. 큐브 속에 갇힌 채로 자고 깨고를 반복하던 연우는 드디어 세상 속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벌써 1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였다. 친구들은 자신들의 미래를 향해 대학으로, 일자리로 나간 뒤였다. 이제 연우도 선택할 시간이 되었다. 연우는 대학 진학을 선택할까? 아니면 다른 길을 선택할까?


그런데 연우에게는 미래에 대한 선택보다는 바로 지금의 자아를 찾는 게 더 커다란 문제 같다. 큐브를 경험한 날 이후 연우는 해고니가 선물한 젤리 곰과 대화를 나눈다. 젤리 곰은 자기가 연우의 ‘복제된 자아’라고 말한다. 젤리 곰을 선물한 해고니와 가까워질수록 무언가 모를 이질감이 연우를 의아하게 만든다. 1년 전 해고니는 서퍼를 꿈꾸는 바다를 사랑하는 아이였다. 하지만 지금 연우 앞에 있는 해고니는 물을 두려워하고 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연우가 큐브 안에 있었던 1년 동안 해고니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사회 ‘제도’라는 틀에 갇혀 미래의 행복을 담보로 현재의 행복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많은 아이들의 모습이 연우에게서 보인다. 하지만 서퍼라는 자신의 ‘꿈’을 찾아 대학 진학을 하지 않았던 해고니의 오늘도 행복하지만은 않다. 아마도 저자가 만들어 놓은 큐브라는 장치는 누군가가 ‘나’를 가두는 장치가 아니라 나 스스로 나를 가두는 장치인지도 모르겠다. 큐브라는 보이지 않는 틀에 갇혀서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나’를 찾아가는 용기 있는 상상을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아무도 모르게 스스로 큐브 안에 갇힌 나를 찾아보게 하는 판타지 소설이다. 복제된 자아와 함께 ‘나’를 찾아가는 흥미로운 과정을 그린 SF 소설이다. 무엇인가의 도움 없이 해고니에게 당당하게 고백하는 연우의 내일을 응원하게 만드는 에너지 넘치는 이야기이다. 오늘도 학원이라는 큐브 속에 갇힌 아이들을 응원하게 만드는 멋진 책이다.


창비로부터 도서(가제본)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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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의 증명
단요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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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작가 단요의 신작을 만나보았다. 2023년 문윤성SF문학상과 박지리문학상을 수상하고, 2024년 문학동네신인상 평론 부문에 당선된 화려한 수상 경력을 가진 작가의 작품답게 청소년 소설답지 않은 깊이를 보여준다. 복제인간이나 신경 조직을 컨트롤하는 칩을 심는 행위는 오래전부터 등장하던 소재이다. 하지만 단요 작가가 보여준 복제인간, 뇌-신체 인터페이스 기기 등의 소재는 다른 모습으로 그려진다.


《목소리의 증명》에는 세 개의 목소리가 등장한다. 한 사람 '태서'의 머릿속에서 세명이 토론을 벌이기도 하고 삐쳐서 대화에 빠지기도 하면서 상황에 따라 태서의 주인자리를 차지한다. 그런데 대부분 1호와 3호가 태서 두뇌의 주인이 된다. 번뜩이는 지혜를 가진 2호는 1호와 3호가 달래고 늘 감시하는 '존재'다. 멋진 아이디어를 가진 반면 너무나 강력한 폭력성을 보이기 때문이다. 여자 친구를 옥상에서 밀어 벌이자고 나서는 녀석을 어떻게 해야 할까?


p.32. 덕분에 나는 행위의 본질을 결정하는 것은 행위 자체가 아니라 전후 맥락이라는 사실을 조금 일찍 배웠다.


1호는 어렸을 때 들었던 자신의 부모들의 이야기를 기억하며 가출을 감행해서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부모를 찾아 나선다. 구역별로 이동하는 자유가 통제되는 사회에서 가출은, 구획별 이동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말썽쟁이 2호의 눈부신 활약?으로 가출에 성공하고 뜻하디 않게 지금 사회를 움직이는 최고 권력 기구 '문명재건청'에 들어가게 된다. 물론 병원이었지만. 그곳에서 태서는 1호, 2호 그리고 3호의 존재 이유를 찾을 수 있을까? 자신을 둘러싼 비밀의 시작은 어디서부터 일까?


자신이 태서 뇌의 진짜 주인이라는 1호와 어른들이 바라는 착한 소년인 3호의 계속되는 자리싸움이 지적인 즐거움을 준다. 자신이 태서 몸의 주인이라고 논리적으로 다투는 열일곱 살 소년들의 지적인 대결이 흥미롭다. 그런데 가끔씩 등장하는 폭력적인 2호를 만나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다. 개인의 '자유'를 사회라는 이름으로 통제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수위는 어느 정도까지일까? 사회 발전을 위한다는 명분이 개인의 존재, 자존감보다 우위에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나저나 머릿속에 세 명의 존재가 있다면 진짜 자아는 어떻게 찾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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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고 쉬운 글의 힘
손소영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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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자대학교예서 물리학을 학사, 동대학원에서 언론학 석사를 취득한 특별한 이력을 가진 방송작가 손소영이 들려주는 '좋은 글쓰기' 노하우를 만나보았다. 첫 문장부터 저자가 알려준 '짧고 쉬운 글' 과는 멀어진듯해서 안타깝다. 버릇이란 참 무서운 것이다. 물론 '특이한'보다는 긍정적인 '특별한'을 사용하라는 가르침도 '~같다'는 표현 대신 '~것이다'라고 표현했지만 무언지 모르게 어색하다. 저자가 알려준 방법대로 서평을 적어보고 싶었는데 시작부터 힘들다.


《짧고 쉬운 글의 힘》에서 배울 수 있는 글쓰기는 계속해서 연습해야 내 것이 될 것들이다. 꾸준히 연마해야 어느 수준에 닿을 수 있는 무술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책상 위에 두고 자주 만나야 할 글쓰기 지침서가 될 것 같다. 하나의 문장에는 하나의 내용만 담아야 한다는, 주어와 술어가 애매모호한 장문의 글쓰기를 지양하라는 저자의 뜻에는 늘 공감하고 있었다. 하지만 늘 '어떻게'라는 질문이 따라왔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바로 이 책《짧고 쉬운 글의 힘》에 있다. '짧고 쉬운 글쓰기'를 가능하게 하는 과정은 무엇일까?


3. 짧은 글이란? , 11. 소재는 단어, 주제는 문장, 23. 습관의 힘, 반복의 힘, 24. 백지와 싸우는 법 등 총 27개 챕터로 구성된 《짧고 쉬운 글의 힘》에는 친절한 저자가 '좋은 글쓰기'요령을 차곡차곡 쌓아 놓았다. '예시글'을 보여주며 자세하게 해설해 주고 있어서 실전 글쓰기 지침서로서의 역할도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저자가 친절하게 쌓아놓은 노하우를 하나씩 꺼내어 연습하고 반복해서 습관화하면 좋은 글쓰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짧기만 한 글이 아니라 '짧고 쉽게 이해되는 글'을 쓸 수 있는 방법을 촘촘하게 들려준다. 누구나 읽으면 이해할 수 있고 누구나 좋은 글쓰기에 도전해 보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 글쓰기에 대해 누군가의 조언이 필요하다면 방송작가 손소영이 조용히 보여주며 친절히 설명해 주는 《짧고 쉬운 글의 힘》을 만나보길 바란다. 언젠가는 저자의 뜻에 부합한 짧고 임팩트 있는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 보며 다시 《짧고 쉬운 글의 힘》의 책장을 열어본다.


"인물과사상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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