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찌를 일등으로 - 野神 김성근
김성근 지음, 박태옥 말꾸밈 / 자음과모음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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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두산과의 한국시리즈는 우리나라 프로야구 역사상 잊지 못할 감동의 명승부로 기억한다. 모든 스포츠에서 짜릿한 역전의 드라마는 스포츠가 제공하는 극적 감동이다. 특히 야구에서 느끼는 감동은 다른 스포츠에서 느낄 수 없는 독특한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잔잔함 속에 들이닥칠 폭풍전야 기운이 감돌고 어느 한 순간에 상황과 흐름이 반전되고 전세가 역전되는 것이 야구가 갖는 독특한 매력이다. 일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가 바로 야구다. 2차 대전의 패전국으로 전락한 일본이 패배의식과 허무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정신적 배경과 위안으로 야구에 열광하지 않았을까. 군국주의의 종말로 피폐해진 국민을 하나로 묶는 것이 종교가 아닌 야구라는 게 의아하긴 해도 지금의 일본 야구열기를 살펴보면 이해가 갈 만도 하다.
이러한 일본 야구의 배경 속에서 야구를 접하고 기본기를 익힌 김성근 SK와이번스 감독의 삶은 야구 이외 것으로는 도저히 설명이 되질 않는다. 야구는 그에게 있어 삶이며 신앙이었다. 야구를 하기 위해서는 그 어떠한 고난도 충분히 감수를 했고 희생을 했다. 야구를 향한 열정은 그에게 닥친 모든 장애를 장애로 보이지 않게 했고 하나의 과정이나 절차쯤으로 여기게 만들었다. 그의 야구를 위한 끊임없는 노력과 연구는 열정을 지나 중독처럼 느껴졌고 냉정한 승부 세계에 잔인한 만큼 냉혹하게 대처하는 프로 정신에 오금이 저렸다. 이러한 승부 세계에서 결연하게 대처하는 모습은 다른 한편으로는 비정한 현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보다 철저해야 하는 우리의 모습으로 요구되기도 한다.
야구는 삶과 마찬가지로 판단과 선택이 경기의 승부를 결정짓는다. 9회 동안 노아웃 만루라는 최고의 상황이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경기 상황과 흐름을 정확히 읽고 그에 따른 판단을 내리고 가장 적절한 전술을 선택하여 득점을 하고 결국 승리하는 것이 최종 목표다. 이러한 과정에 정확한 판단과 결정을 해야 하는 감독의 위치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아니라 냉혹한 승부사일 수밖에 없다. 어쩜 이러한 감독의 위치를 가장 잘 이해하고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사람이 바로 김성근 감독이다. 고독하고 힘든 자리에서 전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몸서리쳐야 하고, 게임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하는 감독의 고뇌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접근하는 감독의 모습이 솔직하게 드러났다.
하지만 혹독한 훈련과 냉엄한 자기 관리를 주문하는, 냉혹한 지도자의 모습 바탕에 따스한 인간적인 면이 모든 선수들이 존경하고 신뢰하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선수 개개인의 기술적 문제에 구체적으로 접근하여 지도하며, 정서적인 부분까지 체크하며 품었던 여러 모습들은 지도자 이전에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항상 구단보다 선수 편에 섰고 자신이 그래왔던 것처럼 자신의 인생을 책임지고 끊임없이 노력하기를 주문하는 모습은 아버지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7월 중순에 열린 프로야구 올스타전에서 참가한 SK 와이번스 선수들은 몇 안 되었다. 그 팀에는 화려한 조명을 받는 스타플레이어가 많지 않다. 2007년과 2008년을 연거푸 우승을 일꾼 팀 내에 걸출한 스타가 없는 것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김성근 감독을 이해하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곧 개인보다 팀워크를 중시하고 조졸한 입단식을 거치지 않는 무명의 선수를 전력의 핵으로 성장시키고, 언론의 평가나 캐리어보다 개인의 노력과 열정에 무게 중심을 두고 특정 선수 중심의 팀이 아니라 전체의 팀이 되게 하는 독특한 김성근식 야구철학이 팀에 다분히 배여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팀 승리가 쌓이면서 팀이 인기가 있고 팬들이 환호하는 것이다.
완벽한 인간은 없겠지만 완벽은 추구할 수 있다. 선수 개개인의 습관과 문제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활용하는 모습은 완벽을 추구하는 단면으로 보인다. 선수를 지도하는 지도자가 개인의 문제를 한계로 치부하고 방치한다면 직무유기로 보는 것이 마땅하다. 완벽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고쳐가야 하는 것이 그가 야구를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몸에 밴 습관이었다. 그러기에 혹독한 훈련이 고역이 아니라 완성을 위한 과정이라는 생각이 오늘의 그를 있게 한 바탕이라는 생각이 든다. 완벽한 개인도 없고 완벽한 팀도 없다. 하지만 완벽을 추구하는 개인 속에 완벽한 팀이 만들어진다는 진리를 김성근 팀을 통해 느꼈다.
차별받아 온 재일동포로 태어나 가난이라는 현실적 장애와 멸시라는 정서적 장애를 겪으면서 야구라는 이상을 위해 쉬지 않고 달려온 김성근 감독, 그의 야구는 성실하고 치열한 삶이 빚어낸 그의 인생 그 자체다.
감독이 된지 어느덧 25년이 지나 그의 나이 60대 중반을 넘었지만 노감독의 예리한 판단과 적절한 선택은 녹슬지 않고, 아직도 덕아웃 벤치에서 끊임없는 왼손 메모가 가능한 만큼 야구에 대한 열정은 결코 식지 않았으리라. 오늘도 게임이 끝난 늦은 밤, 내일의 게임을 위해 상대 전력을 가늠해 보고 돋보기안경 너머로 촘촘하게 라인업을 짜는 감독의 모습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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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여행 2 : 희망 - KBS 1TV 영상포엠
KBS 1TV 영상포엠 제작팀 지음 / 티앤디플러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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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여행
KBS 1TV 영상포엠 제작팀 지음/ 티앤디플러스

봄 바다에 붉은 동백은 그대 향한 그리움

그대, 거기 계신가요.
내 말 듣고 계시는지요.
하늘입니까.
땅입니까.
아니면 저 푸른 바다 어디쯤인가요.
들어주세요.
당신에게 하지 못했던 말
그대와 마주칠까 내달리던 바닷가
때늦은 마음 하나 띄우러 찾았습니다.
온 산을 뒤덮은 동백보다 더 붉고 선명했던 내 마음
당신도 가끔은 내가 그리운지.... <3장, 전남 여수 편 >

20대 초반 친구들과 함께 어느 날 갑자기 우르르 놀러 갔던 곳, 여자 친구들 틈에서 순하고 마음 여린 남자 아이였던 그 애의 집이 바로 여수였다. 밤기차를 타고 새벽에 도착한 여수, 터미널에 첫 발을 딛는 순간 지금까지 맡아보지 못했던 투박하고 비릿한 갯냄새가 온 몸을 감쌌다. 밤새 달려오느라 충혈 된 눈과 어질어질한 머리에도 불구하고 덜컹거리는 시내버스에 올라 그 애 집으로 향하던 바닷가 시골 길의 풍경은 가슴 벅찬 아름다움이었다. 늘 꽁꽁 얼어있던 회색빛 서울과는 확연히 다른 붉은 동백이 지천인 그 곳, 나무도, 바다도, 하늘도 푸른 여수에 반하고 말았다. 감수성 예민하고 착한 그 아이에게 반했다면 그 애의 집이 나의 집이 되었겠지만 그 때 그 애는 마음 넓은 좋은 친구였다.
한반도 남쪽 끝 수려한 물이 넘실거리는 바다도 땅도 풍요로운 그 곳, 돌산대교, 백야도 등대, 오동도, 숭어회, 낯익고 정겨운 그들을 <내 마음의 여행>에서 만나니 옛 친구를 보듯 더 반갑다.
<내 마음의 여행-희망>은 우리 땅 곳곳의 아름다운 경치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아름다운 음악과 영상, 서정적인 글로 담아내고 있다. 책의 모체인 TV 프로그램을 보듯, 반짝이며 흐르는 시냇물의 소리와 고요한 배경음악을 함께 감상할 수는 없지만 책장을 넘기며 마음으로 듣고 보는 소리와 영상은 외부에서 들려오는 그것들보다 온전히 자신의 소리와 풍경으로 남을 것이다.
아련한 산자락처럼 멀고, 투박한 냄새처럼 가까이 담긴 사진들은 언젠가 하루, 이틀, 혹은 조금 더 오래 머물렀던 곳의 갖가지 추억을 불러온다. 이곳은 작년 여름의 소박한 휴가를 보냈던 곳이고 저곳은 처음으로 여행사 관광버스를 타고 매화와 산수유를 보았던 곳이다. 어디나 사람 사는 곳은 비슷비슷해서 아직 가보지 못한 곳도 언젠가에 가본듯한 낯익은 풍경이다. 산천의 모습도, 그 안에서 주름진 얼굴로 웃고 있는 아저씨, 아주머니도 어린 시절 떠나왔던 고향이나, 잠시 살았던 작은 동네 이웃들 같다.
‘희망을 찾아서, 그리움을 찾아서, 추억을 찾아서 떠나는 우리들 마음속의 그 곳... ’ 삶의 무게로 지치고 답답할 때, 마음의 평화가 간절히 그리워질 때, 잃어버린 동심과 지나간 사랑에 애가 탈 때, 표면에 드러나지 않지만 가슴 저 깊은 곳에 묻어둔 동기로 사람들은 저마다 배낭을 꾸린다. 이 책의 차분하고 따뜻한 에세이처럼 그들의 여행이 행복하기를, 그들의 여행이 따듯하기를, 그리고 그들이 떠난 그 자리로 너무 늦지 않게 돌아오기를 .....내 마음의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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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번째 인격
기시 유스케 지음, 김미영 옮김 / 창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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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 유스케의 장편소설, <13번째 인격>은 인간 심리묘사에 탁월한 흥미진진한 소설이다. 이 책으로 그는 제3회 일본 호러소설 부문에서 상을 받았고, 다음 해 <검은 집>으로 제4회 호러소설 대상을 수상하였다. 어린이 판타지 동화를 제외하고는 호러문학을 별로 읽어본 경험도 없고, 내 영혼의 안식을 방해하는 책들은 되도록 멀리 했었다. 잠자고 있는 내면의 공포심을 일부러 긁어 일으켜 세울 필요가 뭐가 있겠는가. 하여튼 뜻밖에 만난 이 책은 표지부터 심상치 않은 사연을 한 가득 안고 있는 여러 인물들이 어린 한 소녀의 생각을 지배하고 있는 섬뜩한 그림으로 인해 나도 모르게 긴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페이지를 넘길수록 사건을 풀어내는 작가의 솜씨와 인간 내면을 조명하는 서술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한신 대지진이란 현실을 배경으로 등장인물들의 깊은 내면의 무의식과 그들의 심리를 통해 심리학과 종교의 핵심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진지한 몇 가지 의문들을 독자에게 던져준다.
사람의 영혼이란 무엇인가? 한 사람의 인격도 물질처럼 분열되고 통합될 수 있는가?
임사체험은 실제 일어나는 현상인가? 인간의 영혼과 육체는 분리되어 따로 활동할 수 있는가?
유체이탈로 과연 살인이 가능한가?
한 사람의 성격도 상황이나 어떤 계기에 의해 다양한 모습을 보이는데 어느 정도를 다중인격이라 말할 수 있는가?
미국 범죄영화를 보던 중 한 흉악한 살인범이 정신분열, 다중인격이란 병명을 인정받아 무죄처리가 된 장면이 기억난다. 명문사립 여고생 치히로는 어린 시절 교통사고로 부모님의 죽음을 목격하고 친척집에서 살아왔다. 친척의 학대와 학교 아이들의 따돌림, 부모님을 앗아간 공포스런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소녀는 상황에 따라 다양한 인격을 만들어낸다. 그러던 중 6000명의 목숨을 앗아간 한신 대지진으로 인해 또 한번 충격을 받게 되는데...
1995년 1월 17일, 일본 효고 현 남부지역에서 발생한 한신 대지진으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고 그 지역은 처참하게 파괴되었다. 지진에서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심한 부상을 당한 사람들, 집과 가족을 순식간에 잃어버리고 병원이나 대피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유카리는 자원봉사활동을 지원한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소유한 유카리는 엠파스다. 엠파스는(empathy), 감정이입, 공감, 다른 사람의 감정, 경험을 이해하는 능력을 지닌 사람을 말하는데 유카리는 다른 사람이 갖지 않은 이 능력으로 인해 가족과 사회에서 떨어져 나와 홀로 살아간다.
한신대지진으로 인해 공황상태에 빠진 피해자들의 심리치료를 돕는 자원봉사 활동을 하던 유카리는 치히로를 만나게 되고 치히로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경악과 안타까움과 공포에 사로잡히고 만다.
한신대지진이란 사건으로 치히로 내면으로 들어와 소녀를 사로잡고 있는 13번째 인격, 이소라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녀는 치히로가 창조해낸 인격인가? 제3자의 영혼이 치히로를 사로잡은 것인가?
성경에는 인간의 영혼과 악령을 분명 구분하고 있다. 가다라 지방에서 귀신에 사로잡혀 광포해진 두 광인이 예수께서 그들에게 다가가자 그들를 사로잡고 있던 악한 영들이 벌벌떨며 자신들을 돼지 떼에게 들어가게 해 달라고 간청한다. 예수께서는 허락하니 그 군대귀신은 돼지떼에게 들어가 강으로 달려 돼지들이 몰살당했다고 적고 있다. 성경 곳곳에는 이와 같이 인간의 영혼을 사로잡고 있는 악한 영의 존재를 자주 언급한다. 그러나 이 책 속 이소라가 유체이탈 도중 사망하고 자신의 육체로 돌아오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치히로의 몸으로 숨어들어 그 소녀를 장악하는 부분과는 좀 다르다.
성경의 악령은 인간의 영혼과는 별개로 태초의 천사장인 루시퍼가 타락하여 그를 추종하는 영의 무리들을 이끌고 악령이 된 것이라고 한다. 어느 것이 더 진실에 가까울지는 해석하는 독자의 가치관과 판단에 따라 다를 것이다. 아무튼 유체이탈, 임사체험, 인격의 분리와 통합, 인격 장악 등 인간의 정신을 개성있는 인물들과 사건을 통해 만나는 재미는 굉장했다.
'융은 인간의 정신적 기능을 윤리, 감정, 감각, 직관의 네 가지로 분류했는데 이 가운데서도 다른 기능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엄청난 파워를 지니고 있는 것이 바로 감정이었다. 그것은 어두운 바다와 다를 바 없는 무의식의 세계에 깊이 잠들어 있는 마음의 에너지를 해방시킬 수 있는 유일한 힘으로, 강한 감정적 스트레스에 시달린 사람이 그 힘을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고 내적으로만 확산시킬 경우 불과 몇 초 만에도 위벽에 구멍을 뚫을 수 있다고 한다.'
요즘 어떤 사건에 부딪혀 심한 분노와 반감으로 며칠을 싸우던 중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이다.
때론 적절하고 타당한 분노가 큰 에너지가 되어 불의에 싸울 힘을 공급해줌을 깨달았다.
분노, 원망, 증오, 살의, 희열, 열정, 포용, 도전, 용서, 사랑... 어떤 감정의 에너지가 증가하느냐에 따라 나와 타인을 죽이고 살리는 결과도 달리 나타날 것이다. 융이 엄청난 파워를 지닌 에너지라고 표현한 감정과 인간 내면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볼 수 있는 흥미로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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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불 들어갑니다 - 열일곱 분 선사들의 다비식 풍경
임윤수 지음 / 불광출판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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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불 들어갑니다 - 글 ․사진 임윤수/ 불광출판사
---열일곱 분 선사들의 다비식 풍경

‘스님, 불 들어갑니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군불을 땐다는 의미일까? 찬찬히 살피니 그게 아니다. 담담히 나지막하게 말하는 이 말은 화장을 앞두고 하는 마지막 인사말이다. 표지는 어느 스님의 장례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영정사진과 깃발, 위패를 든 스님들의 행렬이 요란하지 않고 초라하지도 않다. 이 책은 2003년부터 2008년까지 불교에 큰 영향을 끼친 열일곱 분 선사들의 다비식 풍경에 담은 에세이집이다. 대한불교조계종 봉암사 서암 큰스님부터 덕숭산 수덕사 원담 큰스님의 타계까지 많은 불교신자들에게 존경받던 분들의 장례식 모습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다비식, 다비장이란 말도 낯설어 사전을 찾아보니 화장과 같은 말이다.
‘다비장, 다비: 사비(闍毘)·사유(闍維)·사비다(闍鼻多)로도 음역된다. 분소(焚燒)·연소(燃燒)라 의역(意譯)되기도 하며 화장(火葬)과 같은 말이다. 이 의식은 죽음이 인간의 영원한 소멸이 아니라 살아서 지은 업(業)에 따라 영혼의 길이 정해진다는 불교의 생사관(生死觀)에 의거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불교가 전래된 이래로 지금까지 이 의식이 행해지고 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다비식은 화장을 통해 죽은 이의 영혼을 저 세상으로 보내고 영혼이 새로운 몸을 받아 새 옷을 입으라는 불교의 윤회의식이 담긴 의례이다. 요즘은 불교 신자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화장을 택한다. 영혼의 윤회를 믿는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영혼이 떠난 육신의 소멸에 대한 생각은 비슷한 것 같다. 잠시 빌려 입은 옷, 이 세상에서는 애지중지여기며, 부귀영화에 따라 잘난 사람, 비천한 사람이 구분되지만 영혼이 떠나는 날은 그 옷을 벗어버린다. 그 날이 바로 다비식이 치러지는 날이다.

‘예(禮)가 엷어지니 곡(哭)은 사라지고, ‘의미’가 왜소해지니, ‘가치’가 망가져간다. ‘죽은 자에 대한 예’와 ‘죽음이 가지는 의미’는 야금야금 퇴색돼 가고, 의식이라고 하는 절차와 살아있는 자들의 체면치레만 점점 성성해 지는 게 요즘의 상장례 풍경이다. 세속인들의 장례의식만 그런 게 아니라 송구하게도 출가수행자인 스님들의 영결식과 다비에서도 그런 일면이 언뜻 보인다.‘ - 저자 후기 중

한 사람의 죽음과 그 죽음에 대한 의식인 장례식에서는 그 사람의 일생에 대한 말없는 평가가 이루어진다. 재임 시절 여러 가지를 애쓰다가 퇴임 후 갖은 고난 끝에 스스로 죽음을 택한 전직 대통령의 죽음 후에 그 분은 국민들에게 다시 평가되었다. 초라하고, 화려한 겉모습의 의례와 의식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의 죽음 앞에 얼마나 진심으로 애도 하느냐, 그 사람의 삶과 행적과 성품과 일생에 얼마나 존경과 사랑을 표시하느냐, 이것이 진정한 예일 것이다. 저자는 세속인들의 장례의식뿐 아니라 출가수행자인 스님들의 영결식과 다비에서도 퇴색되어져 가는 ‘예’를 애석해 한다.

‘당신도 죽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모두 다 죽을 것이다. 그러니 너무 아등바등 하지도 말고 게으름을 피우지도 마라. 없는 사람보다 조금 더 가졌다고, 못한 사람보다 조금 더 출세했다고 거들먹거리지도 말고, 다른 사람보다 가진 게 없고, 출세한 사람보다 명예가 없다고 해도 서러워 마라. 영원한 배터리가 없듯 너도나도 언젠가는 죽을 것이니 겸손하게 살지어다......... 사람 사는 것 다 그렇고 그렇다. ’
뭇 신도들의 존경을 받았던 큰 스님의 마지막 말씀처럼 ‘사람 사는 것 다 그렇고 그렇다’. 이 책은 너무 나태하지도 않게, 너무 독기도 품지 말고 그렇게 유하고 겸손하게 살 것을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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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의 마지막 여자
장진성 지음 / 강남 지성사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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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의 마지막 여자 - 장진성 지음/강남지성사

우리 공장 동무들 웃으며 말을 해요
아니 글쎄 날보고 준마 탄 처녀래요
하루 일 넘쳐 해도 성차 안하는
내 일솜씨 참말로 번개 같다나
라라라 라라 라라 라라 라라라 라라 라라라
날보고 준마처녀래요"( 준마처녀 1절)

2003년 북한 미녀 가수 윤혜영의 자살사건을 소재로 한 서사시 <김정일의 마직막 여자>는 김정일의 사생활과 그 정권의 실상을 세상에 드러낸 책이다. 북한의 최고 음악 공연 조직인 보천보전자악단의 가수 윤혜영은 갓 대학을 졸업한 22살의 처녀다. 윤혜영은 같은 대학을 졸업한 김성진과 사랑하는 사이였는데 김성진도 그 악단의 피아노 연주자였다. 총애하는 윤혜영에게 끊임없는 구애의 손길을 뻗치는 김정일, 그러나 이미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던 윤혜영은 연인과 함께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만다. 일정기간을 동거했던 공식적인 여인들만 6명, 최고 권력자로써 고대 제왕처럼 모든 여인을 취할 수 있었던 김정일을 끝내 거부한 윤혜영은 어떤 사람인가? 윤혜영은 우리나라에서도 잘 알려진 ‘준마 처녀’라는 곡을 부른 가수이다. 인터넷에 검색하니 보천보전자악단의 앨범 표지, 준마처녀의 동영상과 함께 노래도 들을 수 있다. 옥구슬이 구르듯, 맑고 고운 목소리와 힘 있고 생기발랄한 목소리가 어우러진 타고난 가수이다. 북한의 권력을 독점한 일부계층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민중이 가난과 굶주림으로 고통의 생을 연명하다 수많은 목숨을 잃고 있듯이 그녀 또한 아름다운 미모와 재능 탓에 더 빨리, 꽃다운 나이에 지고 말았다.
그녀가 노래한 ‘준마 처녀’는 준수한 말에 올라탄 위풍당당한 여성들을 말한다. 산업 전선에서 혁혁한 성과를 올리는 처녀들, 하루 작업량을 다 마치고도 아직도 힘이 넘치는 그녀들, 이른 아침에 보부도 당당하게 출근길에 오르는 환한 미소의 여성들을 노래하는 것이다. 김정일 정권은 그런 준마처녀가 산업 현장에서 활기차게 일하는 북한의 이미지를 심고 싶었을까?
밝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힘차게 준마처녀를 부르는 가수 윤혜영의 아름다운 얼굴과 목소리로 최근 병마로 수척해진 김정일 위원장의 얼굴, 기아와 추위로 고통속에 죽어가는 북한 주민들의 처참한 일상이 겹쳐진다.

저자는 북한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맹원이자 조선노동당 작가로 활동해왔다. 김정일과 그 정권을 찬미했던 순수 문학 청년은 서서히 김정일 정권의 실상과 북한 주민들의 피눈물 나는 삶을 보면서 그 삶을 버리기로 작정하고 탈북에 성공했다. 2008년에 펴낸 시집 <내 딸을 백 원에 팝니다> 는 눈 뜨고는 볼 수 없는 북한 주민들의 삶이 담겨있다고 한다.
저자는 빼어난 수사법과 화려한 낱말들로 시를 쓰지 않았다. 이 땅 너머 곧 닿을 수 있는 북한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실을 절규하듯 토해내듯 적고 있다. 짧은 이 책을 통해 지금 우리와 북한의 상황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의 미래에 대해서 심각한 반성이 일어나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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