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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찌를 일등으로 - 野神 김성근
김성근 지음, 박태옥 말꾸밈 / 자음과모음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2007년 두산과의 한국시리즈는 우리나라 프로야구 역사상 잊지 못할 감동의 명승부로 기억한다. 모든 스포츠에서 짜릿한 역전의 드라마는 스포츠가 제공하는 극적 감동이다. 특히 야구에서 느끼는 감동은 다른 스포츠에서 느낄 수 없는 독특한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잔잔함 속에 들이닥칠 폭풍전야 기운이 감돌고 어느 한 순간에 상황과 흐름이 반전되고 전세가 역전되는 것이 야구가 갖는 독특한 매력이다. 일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가 바로 야구다. 2차 대전의 패전국으로 전락한 일본이 패배의식과 허무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정신적 배경과 위안으로 야구에 열광하지 않았을까. 군국주의의 종말로 피폐해진 국민을 하나로 묶는 것이 종교가 아닌 야구라는 게 의아하긴 해도 지금의 일본 야구열기를 살펴보면 이해가 갈 만도 하다.
이러한 일본 야구의 배경 속에서 야구를 접하고 기본기를 익힌 김성근 SK와이번스 감독의 삶은 야구 이외 것으로는 도저히 설명이 되질 않는다. 야구는 그에게 있어 삶이며 신앙이었다. 야구를 하기 위해서는 그 어떠한 고난도 충분히 감수를 했고 희생을 했다. 야구를 향한 열정은 그에게 닥친 모든 장애를 장애로 보이지 않게 했고 하나의 과정이나 절차쯤으로 여기게 만들었다. 그의 야구를 위한 끊임없는 노력과 연구는 열정을 지나 중독처럼 느껴졌고 냉정한 승부 세계에 잔인한 만큼 냉혹하게 대처하는 프로 정신에 오금이 저렸다. 이러한 승부 세계에서 결연하게 대처하는 모습은 다른 한편으로는 비정한 현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보다 철저해야 하는 우리의 모습으로 요구되기도 한다.
야구는 삶과 마찬가지로 판단과 선택이 경기의 승부를 결정짓는다. 9회 동안 노아웃 만루라는 최고의 상황이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경기 상황과 흐름을 정확히 읽고 그에 따른 판단을 내리고 가장 적절한 전술을 선택하여 득점을 하고 결국 승리하는 것이 최종 목표다. 이러한 과정에 정확한 판단과 결정을 해야 하는 감독의 위치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아니라 냉혹한 승부사일 수밖에 없다. 어쩜 이러한 감독의 위치를 가장 잘 이해하고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사람이 바로 김성근 감독이다. 고독하고 힘든 자리에서 전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몸서리쳐야 하고, 게임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하는 감독의 고뇌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접근하는 감독의 모습이 솔직하게 드러났다.
하지만 혹독한 훈련과 냉엄한 자기 관리를 주문하는, 냉혹한 지도자의 모습 바탕에 따스한 인간적인 면이 모든 선수들이 존경하고 신뢰하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선수 개개인의 기술적 문제에 구체적으로 접근하여 지도하며, 정서적인 부분까지 체크하며 품었던 여러 모습들은 지도자 이전에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항상 구단보다 선수 편에 섰고 자신이 그래왔던 것처럼 자신의 인생을 책임지고 끊임없이 노력하기를 주문하는 모습은 아버지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7월 중순에 열린 프로야구 올스타전에서 참가한 SK 와이번스 선수들은 몇 안 되었다. 그 팀에는 화려한 조명을 받는 스타플레이어가 많지 않다. 2007년과 2008년을 연거푸 우승을 일꾼 팀 내에 걸출한 스타가 없는 것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김성근 감독을 이해하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곧 개인보다 팀워크를 중시하고 조졸한 입단식을 거치지 않는 무명의 선수를 전력의 핵으로 성장시키고, 언론의 평가나 캐리어보다 개인의 노력과 열정에 무게 중심을 두고 특정 선수 중심의 팀이 아니라 전체의 팀이 되게 하는 독특한 김성근식 야구철학이 팀에 다분히 배여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팀 승리가 쌓이면서 팀이 인기가 있고 팬들이 환호하는 것이다.
완벽한 인간은 없겠지만 완벽은 추구할 수 있다. 선수 개개인의 습관과 문제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활용하는 모습은 완벽을 추구하는 단면으로 보인다. 선수를 지도하는 지도자가 개인의 문제를 한계로 치부하고 방치한다면 직무유기로 보는 것이 마땅하다. 완벽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고쳐가야 하는 것이 그가 야구를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몸에 밴 습관이었다. 그러기에 혹독한 훈련이 고역이 아니라 완성을 위한 과정이라는 생각이 오늘의 그를 있게 한 바탕이라는 생각이 든다. 완벽한 개인도 없고 완벽한 팀도 없다. 하지만 완벽을 추구하는 개인 속에 완벽한 팀이 만들어진다는 진리를 김성근 팀을 통해 느꼈다.
차별받아 온 재일동포로 태어나 가난이라는 현실적 장애와 멸시라는 정서적 장애를 겪으면서 야구라는 이상을 위해 쉬지 않고 달려온 김성근 감독, 그의 야구는 성실하고 치열한 삶이 빚어낸 그의 인생 그 자체다.
감독이 된지 어느덧 25년이 지나 그의 나이 60대 중반을 넘었지만 노감독의 예리한 판단과 적절한 선택은 녹슬지 않고, 아직도 덕아웃 벤치에서 끊임없는 왼손 메모가 가능한 만큼 야구에 대한 열정은 결코 식지 않았으리라. 오늘도 게임이 끝난 늦은 밤, 내일의 게임을 위해 상대 전력을 가늠해 보고 돋보기안경 너머로 촘촘하게 라인업을 짜는 감독의 모습을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