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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아의 즐거운 인생
줄리아 차일드.알렉스 프루돔 지음, 허지은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줄리아의 즐거운 인생---줄리아 차일드 지음/이룸/2009년 7월
어떤 프랑스인은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해다오. 그러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주겠다.” 그 사람이 먹는 음식은 곧 그 사람이다. 그 사람이 좋아하는 음식, 자주 먹는 음식을 이해하면 그 사람을 좀 더 잘 이해하게 된다. 남편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뒤늦은 대학입시 공부 중 고향을 떠나 친척집에서 일이년간 살았었다. 그 때 거의 매끼 먹었다던 미역줄기 볶음을 그 이후로는 한 줄기도 먹지 않는다. 신혼 때 모르고 정성껏 볶아 밥상에 한번 올려놓았는데 진지한 얼굴로 이렇게 말하는 거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음식이 이거라고. 특별할 것 까진 없어도 보통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먹는 미역줄거리는 그의 암울한 청춘의 그림자가 배어있는 음식인 것이다. 그가 좋아하는 음식은 순대국, 내장탕, 삼겹살, 팥죽, 좋아하는 과일은 수박, 포도, 배, 감이다. 그 사람이 즐겨먹는 음식을 자세히 보면 그 사람이 살아온 시간들을 읽을 수 있다. 그의 성격과 취향, 그의 경험과 생각을 알 수 있다.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는 새롭게 접하게 되는 그 고장, 그 나라의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이다. 독특한 음식의 향과 맛과 모양은 익숙한 것을 벗어버리고, 익숙한 일상을 빠져나와 새로운 세상으로 나를 이끈다. 모르는 사람을 만났을 때 낯을 가리는 내성적인 나는 새로운 음식을 먹을 때도 서서히 적응하지만 그 낯설음을 알아가는 즐거움은 사람을 사귀는 것과 거의 비슷하다. 그 지역 특유의 맛을 통해 그 지역과 그 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과 그 나라에 대해 알아가는 것은 정말 즐겁다. 값비싼 재료들로 만든 고급 레스토랑의 음식도 좋지만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파는 우리의 어묵과 떡볶이 같은 외국 음식을 먹을 때면 너무 흥분된다. 마치 내가 현지인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책은 미국, 캘리포니아 출신의 새댁 줄리아 차일드가 프랑스 주재 미국대사관 홍보담당 일을 맡은 남편을 따라 약 7년간 프랑스에서 생활한 일과 프랑스 요리에 대한 경험들을 추억한 책이다. 프랑스 요리와 미국의 요리를 비교해 본다면 프랑스에서는 훌륭한 요리는 국가대표경기와 수준 높은 예술이 종합된 것으로 여기는 반면 미국 요리는 소박함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을 것 이다. 줄리아는 프랑스에 첫 발을 디딘 날 처음 찾은 식당에서 프랑스 요리라는 문화적 충격에 휩싸이는데.. 결혼 후 처음 시도한 요리가 가히 ‘재난 수준’이었다고 적었던 그녀는 그 후 세계 최고의 요리 학교인 르 꼬르동 블루에서 갖가지 요리를 배우고, 달팽이에서 야생 멧돼지까지 다루어보지 않은 재료가 없을 정도로 프랑스 요리의 달인이 된다. 요리를 통해 프랑스를 이해하고 사랑하게 된 줄리아는 미국으로 돌아온 후 프랑스 요리책 집필, TV 요리 프로그램 진행자로 왕성한 활동을 했다. 그리고 그녀가 아흔이 넘은 황혼기에 조카 손녀인 알렉스 프루돔과 함께 프랑스의 생활을 회고하는 이 책을 공동 집필 했다. 이 책은 다양한 프랑스 요리를 구경하는 즐거움 뿐 아니라 프랑스에 관한 멋진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기쁨을 전해준다. 1940~50년대의 프랑스의 분위기, 아름다운 전원 풍경, 프랑스인들의 패션과 그들의 성향과 문화 등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청춘의 한 복판을 프랑스에서 살아간 미국인의 눈으로 본 프랑스의 모습은 그동안 내가 생각해온 프랑스에 신선하고 아름다운 색을 입혀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