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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아저씨 1
남궁문 지음 / 시디안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자전거아저씨 1, 2
남궁문 지음/시디안
책을 펼치니 잘 아는 사람의 사진을 보듯 친근한 얼굴이 보인다. 작년에 읽었던 ‘산티아고 가는 길’을 통해 알게 된 방랑 화가, 흐드러지게 핀 아마폴라를 배경으로 큰 배낭을 메고 하염없이 걷던 그의 뒷모습이 생각난다. 스페인의 아름다운 시골 길, 어느 언덕에 앉아 하모니카를 불던 그가 자전거 아저씨로 돌아왔다. 이 그의 약 6년간의 국내의 자전거 여행을 담은 이 책을 펼쳐 읽으니, 갑자기 그를 ‘방랑 화가’라고 부르고 싶다. 이 책의 제목은 <자전거 여행>이지만 ‘여행’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런저런 세상의 삶을 고스란히 담은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다. 자전거란 두 개의 바퀴로 그는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제주도 이 땅 안 가본 곳이 없다. 땀을 뻘뻘 흘리며 서울을 출발해서 양평, 원주, 횡성, 용문을 다녀오더니, 죽은 듯 잠으로 하룻밤 여독을 풀고 나면 이튿날 또 다시 짐을 싼다. 자전거를 맡겨둔 어느 지방 어딘가에 또 다시 자전거를 찾으러 가며 새로운 여행이 시작된다. 그렇게 그는 강원도 정선의 굽이굽이 고갯길을 돌았고, 남도를 여행했다. 책을 읽다보면 자유롭고 어린아이 같은 영혼을 가진 저자의 생각에 많이 웃게 된다. 그리고 이 분은 죽을 만큼 힘들고 고생스러워서 안쓰러울 정도지만 진짜 여행을 한 저자에게 내심 부러운 마음도 든다.
몇 년 전 초여름의 어느 휴일, 딱히 할 일도 없던 남편과 나는 우리 동네에서(마석) 금남리까지 자전거 여행을 한번 해보자란 무모한? 도전에 합의를 했다. 모자를 쓰고, 바람막이를 입고, 작은 배낭에 물 한 병씩을 넣고 새로 산 각자의 자전거를 타고 아침 10시쯤 기분 좋게 출발했다. 마을을 벗어나 인근의 초등학교를 지나, 무시울이란 화도환경사업소가 있는 마을을 지날 때까지는 바람도 시원하고 공기도 좋고, 차도 별로 없는 동네라 그럭저럭 괜찮았다. 근데 마을 중반쯤 들어서니 점점 힘이 든다. 자전거를 탈 줄만 알지, 평소에 자전거를 많이 타보지 않은 초보가 덜컥 자전거 하이킹이라니, 그러나 목표를 정했으니 도중에 돌아간다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지 않아 겨우 겨우 끌고 타고 해서 금남리에 도착했다. 어찌나 배가 고프던지 금남리의 고기맛이 죽여주는 어느 삼겹살 집에서 푸짐한 점심을 먹었다. 갈 때는 온 길로 가지 않고 46번 국도를 타기로 했다. 밥을 먹으니 좀 살 것 같았지만 다시 온 만큼의 길을 자전거를 끌고 가려니 정말 아득했다. 차들은 쌩쌩 달리지, 정오의 해는 쨍쨍하지, 온 몸의 긴장으로 근육은 쑤시지, 두통마저 생겨 정말 저자처럼 지나가는 버스를 세우고 좀 태워달라고 사정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왕복 32km의 길을 갔다 오고도 아직도 그 고생이 눈에 선한데 이 분은 정말 겁이 없어서 너무 없는 것 같다.
여행을 좋아하는 나도 여러 종류의 여행을 해봤다. 여행사의 패키지 상품부터 자동차 여행, 버스나 대중교통을 이용한 여행, 업무상의 여행 등, 그런데 편하고 빠른 여행일수록 그다지 감동적이지 않았다. 틀에 맞춘 여행상품보다는 직접 내가 선택하고 운전하는 자동차 여행이 더 재미있었고, 자동차 여행만큼 편리하지는 않았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해 떠난 검소한 여행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자전거나 도보여행 등은 단거리 외에는 거의 못해봤지만 이런 여행을 한다면 아마 평생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두 발로 걸어서 이 세상의 땅들을 디뎌보고 그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눈을 맞추고 이야기하며 잠깐이라도 살아보는 여행, 이건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삶의 특별한 경험이다. 그래서 난 이 분이 갔던 곳들보다 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더 많이 끌린다. 시골 장의 인심 좋은 아주머니들, 길 가는 나그네에게 무거울 만큼 까만 비닐봉지 잔뜩 싱싱한 토마토를 싸주던 어떤 아주머니, 버스에 자전거를 태워주신 버스기사님, 오랜만에 찾아간 벗의 남는 시간을 몽땅 책임져 주었던 친구, 그들이 주었던 따뜻함에 마음이 녹았다. 또 시골 장에서 올챙이국수를 사드렸던 할아버지, 그늘 진 곳에 쭈그리고 앉아 호랑이 동보 콩을 팔던 아주머니 등 저자의 애틋한 마음에 덩달아 마음이 쓸쓸해지곤 했다. 우리가 많은 여행을 하지만 사실 여행에서 돌아와 가장 오래도록 남는 아름다운 사진은 이런 분들과 함께 했던 추억일 것이다. 갑자기 자전거를 끌고 가는 저자의 모습을 보니 너무 무리하시는 것 아니냐는 안부를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