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인문학 서재
크리스토퍼 베하 지음, 이현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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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인문학 서재
크리스토퍼 베하 지음/21세기북스

이 책은 한 출판인이자, 저널리스트인 저자의 독서노트다. 저자는 프린스턴 대학을 졸업하고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며 시사지에 에세이와 평론을 기고하고 있다. 그는 어느 날 돌아가신 외할머니 집에서 책꽂이에 꽂혀있던 하버드 클래식 전집을 1년 내에 1권부터 50권까지 전부 읽기로 결심한다. 그가 이 전집의 1권인 벤자민 프랭클린 자서전의 첫 장을 펼친 그 날은 새해가 되기 직전의 떠들썩한 기대로 세상이 온통 들떠있던 시간이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그 책들은 보아왔지만 그 책을 모두 읽어내기로 결심한 데는 그만의 특별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여기서 그 자신의 개인적인 동기는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고 있으나 그 중 한 가지 이유는 투병중인 이모를 통해 기억한 할머니의 모습이다. 젊었을 때의 할머니는 정규 교육을 받지는 않았으나 이 유명한 책들을 읽어낼 만큼의 열정적인 독서가였다. 미미이모와 엄마의 대화를 통해 할머니와 할머니의 독서를 떠올린 그는 어떤 것에 이끌린 듯 책에서 자신의 길을 묻는다.

하버드 클래식의 편집자는 찰스 윌리엄 엘리엇이다. 엘리엇은 1861년, 남북전쟁 직후부터 1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약 40년간 하버드 대학의 총장으로 재직했다. 그는 재직 시절 “5피트 책꽂이면 몇 년 과정의 일반교양 교육을 대체할 만한 충분히 담을 수 있다.”라고 늘 말했다고 한다. 그는 은퇴를 앞두고 이 ‘5피트 책꽂이’라 불리는 50권, 2만 2000페이지, 150여 편의 작품이 담긴 하버드 클래식 시리즈를 완성했다. 이 책의 편찬 취지는 정식 교육을 받지 못해도 이 책들을 읽음으로 누구라도 대학 교육의 수준의 교양과 지식을 얻게 하는 데 있다. 주제는 역사, 철학, 교육, 종교, 문학(소설, 시, 동화), 과학 등 거의 전 분야에 걸쳐있다. 여기에 그 시대 굉장히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던 작가들의 문학작품은 빠져 있어 이 시리즈 이후 픽션 시리즈는 새롭게 출판되었다.

책이 대중적으로 보급되지 못하고, 값비싼 책을 소유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때에 이 전집을 가진다는 것은 굉장한 의미였을 것이다. 책의 요약 정보인 출판목록도 귀하던 시절 세계 최고의 석학들이 한꺼번에 독자들을 찾아오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문득 우리 이모의 처녀 적 자취방에 있던 세계문학전집이 생각난다. 저자의 할머니처럼 이모도 거의 배우지 못했지만 이모의 그 좁은 방에는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전 세계의 유명한 작가들이 다 모였었다. 독서에 취미가 있어 보이지 않았던 이모가 그 책들을 다 읽었으리라고 생각지는 않지만 순탄치 않았던 이모의 삶에서 그 책들의 의미를 지금은 조금 이해할 것 같다. 저자를 통해 하버드 클래식을 훑어보며 나도 한번쯤은 어떤 목표를 정한 독서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굳이 다 이해하고 읽어내지 못한다고 해도, 저자의 말처럼 독서의 폭을 넓히는 것도 독서에 있어서 중요한 것 같다. 이런 독서는 나의 세상을 떠나, 다른 세상으로, 익숙한 나의 사람들을 떠나 타인에게로 눈을 돌리는 것이 아닐까. 요즘은 다 읽은 책을 한 꾸러미씩 묶어 누군가에게 선물하곤 했다. 이 특별한 선물은 받는 사람을 향한 나의 마음이 담긴 꽤 괜찮은 이벤트였다. 이제 나의 5피트 책꽂이를 만들어보고 싶다. 독서를 좋아하는 내 뒤의 누군가를 위해 그가 행복하게 읽어 줄 정말 가치 있는 책들을 모아 남기고 싶다. 아, 그리고 이 책은 오래 보아도 너무나 매력적인 삽화 때문에라도 나의 그 책꽂이에 꽂히게 될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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