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대지의 꿈 - 장 지글러, 서양의 원죄와 인간의 권리를 말하다
장 지글러 지음, 양영란 옮김 / 갈라파고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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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빼앗긴 대지의 꿈
장 지글러, 서양의 원죄와 인간의 권리를 말하다
장 지글러 지음/갈라파고스

내가 아메리카 대륙을 다른 눈으로 보기 시작한 것은 체 게바라를 읽은 뒤부터다. 아르헨티나의 장래가 촉망되는 한 청년이 남아메리카 대륙과 아프리카의 민중들의 투사가 되어 싸우다 볼리비아에서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그 때가 1967년 그의 나이 39살이었다. 대학 시절 오토바이로 여행했던 안데스 산맥 고원지대, 중남미 민중들의 고통과 신음을 보고 그는 수술대보다는 그들의 삶을 해방시키는 투사의 길을 선택했다. 그는 쿠바 혁명을 이끌었고 아프리카 콩고에서 싸웠으며 볼리비아에서 싸웠었다. 체가 위대한 것은 그 사람 자체의 능력이나 성과가 아니다. 남아메리카 원주민의 피맺힌 역사와 아프리카 민중들의 수백 년의 절규를 세상에 알린 것이다.

장 지글러의 이 책에는 체가 죽었던 나라인 그 ‘볼리비아’가 등장한다. 볼리비아에서는 2006년 국민선거로 500년 만에 최초의 남아메리카 원주민 출신의 대통령이 선출되었다. 그는 ‘에보 모랄레스 아이마’이다. 그는 200개가 넘는 서양의 외국기업이 쥐고 있던 석유, 가스, 광산 사업의 주도권을 되찾아 해마다 엄청난 수입을 되찾았다. 그 수입을 극빈자와 노인, 산모, 아기를 위해 사용했고 교육 등 환경개선과 복지에 투입했다. 원주민을 노예로 고용해 부리던 농장들을 국가에 환수하고 원주민 공동체에 농장소유권을 되돌려 주었다. 지금 볼리비아는 수 백 년 동안 지속되던 극심한 궁핍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다. 에보 모랄레스는 그의 혁명을 증오하는 세력에 의해 암살위기에 처하기도 했으나 2009년 총선에서 다시 재선되었다.

또 한 나라, 나이지리아, 도대체 나이지리아의 석유는 누구에게 다 가고 있을까? 국제공항 근처의 대도시, 한 밤중에 100여대의 차가 길게 늘어서 있다. 거의 한 잠도 못 잘 정도로 밤새 길게 줄을 서 기름을 주유하는 운전기사들, 기름파동이라도 난 걸까? 이 사람들은 왜 이렇게 주유하기가 어려울까? 나이지리아는 세계 8위의 석유생산국이며 아프리카에서 석유가 가장 많이 나는 부자 나라다. 그런데 대부분의 시민들의 삶은 기아로 고통 받는 아프리카의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밑바닥이다. 그럼 이 나라의 자원과 부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 외국, 유럽의 석유회사들이 가져가고 그 석유회사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부패한 정부에게 거액의 뒷돈을 흘려주며 그 맛을 절대 놓지 못하는 부패한 권력자들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잘 산다.

저자는 1934년 스위스 태생으로 제네바 대학과 소르본대학에서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스위스 사회민주당 소속 위원으로 일했다. 유엔 인권위원회에서 식량특별조사관으로 일했으며 인권이사회 자문위원, 국제법 분야의 사회학자, 기아문제 연구자이며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탐욕의 시대>등을 썼다. 그는 이 책에서 ‘현재 유엔은 개점휴업 중’이라고 할 정도로 국제 문제가 심각한 상황임을 알리며 이 문제가 어디서부터 왔는지, 서양 강국들이 무기개발과 기술문명이 뒤진 아프리카, 아시아, 중동, 아메리카에 어떤 짓들을 해 왔는지를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그 결과 수백 년 쌓아온 그 대륙의 억압받아온 사람들이 어떻게 투쟁했고 그들의 증오가 어떤 방식으로 폭발하고 있는지 인류에게 경고하고 있다.

피해자였던 사람들은 외친다. 우리에게 사과하고 우리를 억압하고 착취한 것에 대한 보상을 하라고... 그런데 피해를 준 사람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금방 잊어버린다. 자신들의 식민지 지배를 뻔뻔스럽고 현학적인 문장과 논리 속에 감추고 합리화 한다. 그리고 사과나 보상에 대한 요구에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들의 인권과 세계평화, 배려와 나눔은 국경을 넘어서는 순간 사라진다. 지금 세계는 연일 전쟁 중이다. 지구 에너지는 정점에 이르고 갈수록 에너지를 확보를 위한 전쟁은 잦을 것이다. 탐욕과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면 이 세상은 점점 지옥이 되어 갈 것이다.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희망은 남반구 주민들이 다인종적이며 민주적으로, 땅속의 자원과 토지가 주는 부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 데에, 그리고 법에 의해서 유지되는 주권국가, 서양 강국들과 정정당당하게 동등한 입장에서 협상할 수 있는 진정한 주권국가를 건설하는 데에 있다. ' - 1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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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투더 베이직 잉글리시 시리즈 세트 - 전4권 - 케로조의 영문법입문 3권 + 완결편
이시자키 히데호 지음, 송상엽 옮김, Enjc 스터디 감수 / 랭컴(Lancom)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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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19일
백투더베이직 잉글리시 1-3권
이시자키 히데오/LanCom/각권 약 200쪽/2010년

원어민 선생님이 새로 오셨다. 전에 근무하던 선생님은 캐나다 출신의 한국 교육 경력이 많은 분이셨다. 캐나다 북부 지방 출신인데 한국인과 결혼하셔서 한국말도 잘 하시고,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도 깊었다. 푸른 눈, 높은 코, 좁은 얼굴형의 전형적인 백인이지만 정서는 한국인인 이 분은 영어로 대충 말해도 다 알아 들으시고 영어가 막히면 한국어로 말하면 되니 별 어려움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 선생님은 다르다. 진짜로 한국말을 못하시는 건지 아님 근무지에서 전혀 한국말을 못하게 연수를 받았는지 간단한 인사 외에는 다 영어다. 수줍고 젠틀한 20대의 영국 청년인데 작고 낮은 목소리, 빠른 속도, 몇 마디 대화를 이어가기가 쉽지 않다. 매일 마주치고 밥 먹고 할 때 그래도 대화를 해야 하는데, 한동안 영어를 사용할 일이 없어 신경을 쓰지 않다보니 간단한 말인데 머리가 탁 막혀온다. 맛있게 드세요. 더 드세요. 커피 드시겠어요? 업무적인 이런 저런 말들... 그래서 다시 중학교 영어책을 펼쳐들고 읽어봐야겠구나, 하던 차에 이 책을 만났다.

한 손에 싹 들어오는 깜찍한 크기에 진한 커피색의 표지, 영어책인지, 우리말 책 인지 헷갈릴 정도로 부담이 없다. 먹는 것, 노래하는 것, 춤추는 것을 좋아하는 케로조와 공부면 공부, 운동이면 운동, 못하는 없는 똑똑이 폰타로 등 귀여운 캐릭터가 처음 영어를 공부하는 사람이면 당연히 어려운 영어의 구조를 알기 쉽게 설명한다. 주어, 동사, 형용사, 부사, 전치사, 동명사, 관사 등 문장을 구성하는 요소들부터, 1형식부터 5형식까지 문장의 형식, 현재, 과거, 현재완료, 미래형, 현재진행형, 의문문, 명령문, 부정문, 수동태 등 영어 문법 대부분을 다룬다.

중학교 2학년 때 영어가 진짜 복잡하고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1학년 때는 인사말, 단어 암기, 짧은 단문 위주의 영어를 배우다가 복잡하고 다양한 영어의 거의 모든 문법이 막 쏟아지니 정신을 차기기 어려웠다. 영어란 아득한 담을 넘느냐 못 넘느냐가 이 순간에 달렸구나 할 정도로 힘들었었다. 다행히 열정적인 영어 선생님이 그 때 문법의 기초들을 잡아주셔서 힘든 시기를 넘겼다. 이 책은 중학교 기초 영어에서 다루는 거의 모든 문법들을 아주 간단한 문장으로 정리하고 있다. 사실 이 정도 말만 사용할 수 있어도 사는 데 아무 지장이 없다. 영어의 문법을 어려워하는 학생들, 영어를 처음 접해보는 사람들, 오래 영어와 작별했던 사람들이 다시 반갑게 영어에 입문하는데 꽤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Shall We start basic English,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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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 - 알기 쉽게 풀어쓴 (한글판 + 영문판)
E. H. 카 지음, 이화승 옮김 / 베이직북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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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역사란 무엇인가?>란 주제로 역사의 개념과 정의를 논한 철학적이고 다소 딱딱한 이 책을 읽으며 새삼 '역사' 그 자체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보통 우리는 사랑은 무엇이고, 그 사랑이 우리의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한참 생각하고 정의를 내린 후 연애를 하거나 결혼을 하지는 않는다. 그러다 어는 순간 '사랑' 그 자체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볼 때도 있는데 곰곰히 생각해 본 그 사유의 시간 후의 '사랑'은 그 전의 '사랑'과는 분명 다른 의미로 각자에게 다가올 것이다.
'사랑'자체에 대해 그 의미와 깊이와 넓이를 곰곰히 생각해 본 후의 '사랑'은 무심코 그냥 사랑하며 살아가던 때보다는 삶에서 더 풍성하고 깊고 의미있게 여겨질 것이다.

'역사'도 마찬가지다. 커리큐럼에 짜여 있으니까, 교양으로 알아야 하니까 역사책을 읽고 역사 드라마를 본다.
역사에 대한 지식이 삶에서 중요한 것 같아서 찾아서 공부하기도 하지만 '역사' 란 무엇인지 그 개념과 정의를 생각해 보려고는 하지 않는다. 그러나 단순히 역사적 사실만 아는 것과 '역사' 그 자체의 의미를 아는 것과는 분명 다르다.

이 책은 1961년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있었던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주제의 에드워드 하렛 카의 강연을 보완해 펴낸 책이다.
이 강연은 영국의 BBC 라디오에서 방송된 후 단행본으로 출판되어 전 세계적으로 약 25만부 이상이 판매되었다고 한다.
이 책의 저자, 카는 영국 출신의 외무부 공무원이었으며 더 타임스 논설위원을 지냈다. 그는 역사학 교수나 역사학자가 아닌 국제관계, 문화, 철학, 정치, 외교 등에 관한 여러 책을 편찬한 사상가였다. 현재는 그의 역사에 관한 새로운 정의를 다룬 이 책 뿐아니라 국제관계를 다룬 책들이 학계에 크나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한다.
역사학자가 아닌 카가 한 대학에서 했던 역사학 강연은 이 전과는 새로운 역사에 대한 정의를 내렸고, 역사를 해석하는 새로운 시각과 방향을 제시하였다.

역사란 단순한 과거의 사건을 나열해 놓은 연대기와는 다르게, 과거의 사실을 이해하고 해석하려는 시도이며, 과거의 사건의 원인과 배경을 설명하는 작업이다. 그래서 역사학자는 고고학자나 연대기 기록자와는 다르게 역사적 사실을 이해하고 해석하고 그 원인과 배경을 설명하는 주관적인 일을 담당하는 사람이다.
카의 이 이론은 역사를 과거에 일어난 있었던 일 그 자체로 보는 사관, 역사의 중심이 과거에 있다는 이론에 반대하여 역사의 중심은 현재에 있다고 주장하는 파격적인 이론이다.
역사는 현재를 살아가는 역사가와 과거인 사실 사이의 부단한 상호작용이다. 그래서 현재와 과거의 사실은 둘 다 없어서는 안되는 요소이다. 사실을 소유하지 못한 역사가는 뿌리가 없어 열매를 맺지 못하고 역사가가 없는 사실은 생명도 없고 의미도 없다. 그래서 역사가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저자의 결론은 명쾌하다.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부단한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그는 역사를 연구할 때 역사를 기록한 역사가를 함께 연구하되 그 역사가는 그가 속한 사회, 그 환경의 영향을 받는 사람임을 염두에 두고 역사를 보아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역사를 공부할 때는 현재의 '사회'와 과거의 '사회'가 고려되어야 한다.
또한 역사의 연구는 원인의 연구이다. 역사가는 어떤 사건을 해석하고 원인들을 분석하고 선택하고 정리한다.
여러 원인들 사이의 상하관계, 원인들의 원인, 가장 본질적인 원인을 찾는다. 역사가가 아닌 그냥 독자도 역사를 보는 감각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어떤 과거의 기록과 사건을 보며 이런 해석과 원인을 찾으려는 시도를 할 것이다.
역사에서 원인을 찾으려는 목적은 무엇일까? 그것은 미래를 위해서이다. 카는 역사의 목표이자 방향은 미래라고 말한다.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며 '과거의 여러사건과 점차 나타나는 미래의 여러 목적간의 대화'라고 정의한다.

'미래를 향한 진보 가능성에 대한 신념을 상실해 버린 사회는 곧 과거에 스스로 이룩한 진보에 대해서도 무관심해질 것이다.
우리의 역사관은 우리의 사회관을 반영하는 것이다. '

'현대인은 자기가 지나온 어둠을 뒤돌아보고 열심히 응시한다. 그것은 거기서 흘러나오는 희미한 빛이 그가 나아가려고 하는 미래의 암흑을 밝혀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가 속한 유럽과 서양 사회의 현실적 상황이 과거에 비해 많이 달라지고 있고 세계는 전쟁, 기아, 핵, 식량문제, 기후문제 등 많은 문제들에 시달리고 있으나 그는 역사는 언제나 진보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고 본다. 그는 격동하는 세계, 갈등하는 세계를 바라보며 어느 위대한 과학자의 오래된 말을 빌려서 답한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

이 책은 여러 정치가, 사상가, 석학들의 견해가 많이 인용된 읽어내기 쉽지 않은 책이었지만 어떻게든 읽어낸 후에는 내게 역사를 보는 새로운 눈을 열어주었다. 현재와 동떨어진 먼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인 역사가 현재의 나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란 의문에 일말의 답을 들려준다. 역사는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대화는 말을 걸고 대답을 듣는 사람들의 것이다.
과거의 사실을 이해하고 해석하고 적용하며 끊임없는 말 걸기를 시도해보자. 대화와 사귐도 훈련이 필요한 법, 어느 순간, 역사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그 때 그 사건이 지금 현재의 삶에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고,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어떻게 미래를 설계해야 할지 현명한 답을 얻을 때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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쉿, 조용히! - 풋내기 사서의 좌충우돌 도서관 일기
스콧 더글러스 지음, 박수연 옮김 / 부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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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콧 더글러스 지음/부키

“설마, 농담이죠?”
“아니, 도서관에서 일하려면 학교를 나와야해? 사람들한테 제대로 ‘쉿!’하는 법을 가르쳐 주나봐?”
저자가 도서관 학교를 나왔다고 하면 사람들이 보통 보이는 반응이다.
근대 도서관학의 아버지, 멜빌 듀이를 배출한 나라, 미국에서도 사람들에게 ‘사서’란 직업은 역시 생소한가 보다. 멜빌 듀이는 세계 최초 십진분류법인 DDC의 창시자이며 최초의 도서관 학교의 창립자, 라이브러리 저널 창간, 미국 도서관 협의의 창립멤버이다.
저자 스콧 더글라스는 미국 켈리포니아주 디즈니랜드와 가까운 애너하임 공공도서관의 중견 사서이며 프리랜서 작가이다. 대학 재학시절 일자리가 필요해, 신문의 스트립퍼 구인 광고지에 혹해서 신문을 뒤지다가 사서보조 모집 광고지를 발견하고 우연히 도서관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원래 영문학을 전공하고 있던 그는 도서관 사무보조로 도서관에서 근무하기 시작하면서 무언가의 이끌림에 의해 문헌정보학 대학원에 입학, 석사학위를 마치고 정식 사서가 되었다.
영문학 전공의 책을 좋아하고 감수성 풍부하고 소심한 이십대 초반의 남자,
내가 보기에 그에게 도서관은 운명의 장소임이 분명한데 그가 이야기 하는 도서관 이야기는 킬킬거리게 웃기면서도 감동이 뭉실 대고 또 한편 ‘니들이 참 고생이 많다.’며 등 두드려 주고 싶게도 한다.
아무리 운명적인 사랑 끝에 한 결혼일지라도 결혼 생활이 이어지면 그 운명이 지긋지긋 해질 때도 많은 게 인생인데 사서란 직업도 역시 만만치 않다. 사서가 보는 사서는 외부에서 보는 사서의 이미지처럼 그렇게 고고하지도 지적이지도 우아하지도 않고 여느 직장처럼 별난 사람 한 둘 쯤 꼭 있고 게다가 그들은 저자와 마찬가지로 유치하기까지 하다.

이용자도 지역 내에 존재하는 지역의 공공기관이니 별별 사람들이 다 온다.
사서를 연예인처럼 신기하게 바라보는 초등학생들, 늘 욕을 입에 달고 있는 분노로 가득 찬 시한폭탄 같은 중고등학생들, 도서관이 노인정인 할머니, 할아버지들, 그리고 노숙자들까지 별의별 사람들이 시시때때로 등장한다.
그들이 일으키는 온갖 소동을 다 보니,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교사와 사서란 직업을 가지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퍼뜩 든다.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이 일인가? 고민하며 스콧은 책이 우선이냐, 이용자가 우선이냐, 정보와 지식, 그리고 세상에 대한 사서의 의무, 지역사회에서의 도서관의 의무와 역할 같은 진지한 고민을 쉬지 않는다.
그것은 사서 개인이 가지는 자신의 직업에 대한 숙제이면서 세상과 이용자에 대한 모든 도서관의 숙제이기도 하다.

사서의 직업윤리나 도서관의 사회적 사명 같은 근본적인 물음 외에도 현재 미국에서 운영되고 있는 공공도서관의 독서 장려 프로그램들을 볼 수 있어 흥미로 왔다. 도서관 이용률을 높이고자 토요일마다 공짜 팝콘을 나누어 주는 파격적인(?) 도서관 행사, 우리나라 공공도서관들도 변하고 있지만 그래도 사서가 직접 팝콘을 튀겨 도서관내에서 나누어 주는 건 파격적이라 할 수 있다. 그 행사가 얼마나 지속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도서관은 지식과 정보, 책만 공급해 주는 곳이 아니라는 그 행사 기획자들의 생각에 이용자도, 사서도 진보냐, 보수냐 하며 의견이 분분했다. ‘인앤아웃’이란 햄버거 회사와 연계한 독서 장려 프로그램도 성격은 비슷한데 햄버거 회사에서 공짜 햄버거 쿠폰을 찬조하고, 공공도서관은 아이들을 독서일지프로그램에 가입하게 해서 아이가 하루 30분 이상 씩 독서를 했다는 일지를 가져와 보여주면 공짜 햄버거 쿠폰을 나누어준다.
책을 읽는 대가로 햄버거 쿠폰을 준다는데 싫어할 아이가 어디 있겠는가? 요즘 내가 사는 지역의 교육청에서도 이런 비슷한 취지의 130독서가족운동을 운영하고 있다. 1일 30분 동안 온 가족이 책을 읽고 기록을 한 후 우수가족을 선발해 상장을 주는 프로그램인데 상장도 좋지만 이렇게 직접적인 즐거움을 주는 시상이라면 참여율이 엄청 늘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어디 이런 햄버거 회사 없나? 아니면 교육청에서 햄버거 회사나 놀이 공원 측과 협찬을 맺어 이런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면 아이들이 더 좋아할 텐데 말이다.

저자 스콧이 신세대 사서들과 교류하며 친분을 유지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주고받는 질문에 답을 해 보겠다. 도서관을 배경으로 하는 가장 기억나는 영화가 있다면? 내게 가장 인상적인 ‘도서관’과 관련 된 영화는 ‘쇼생크 탈출’의 감옥도서관이다. 앤디 듀프레인이 오욕의 강물을 건너 새롭게 태어난 데에는 그의 육체적 정신적 버팀목이 되어 준 감옥 도서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러브레터의 여자 주인공이 도서부원으로 활동하던 낡은 학교도서관은 비슷한 학창 시절의 아련한 추억으로 내 마음에 남아있다. 영화 투마로우의 뉴욕 공공도서관은 단순한 책의 보관창고가 아닌 엄청난 재난 속에서 대피할 수 있는 마지막 구원의 보루와 같다.

사람들은 사서를 도서관이란 책으로 가득 찬 공간에서 우아하게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떠는 사람들 쯤으로 인식하거나 잘난 척하며 불친절한 재수 없는 사람들 로 인식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느 직업이든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은 있기 마련이고 한편에선 위와 같은 재수 없는 사람도 있지만 이렇게 스콧처럼 끊임없이 진지한 자세로 일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기독교인이나 교사나, 사서가 욕을 먹는 이유는 어느 면에서는 성격이 비슷하다. 도서관과 이용자를 이어주는 봉사자, 책이란 고귀한 물건을 다루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요구하는 사회의 기준에 미치지 못할 때 이용자가 분노를 내뿜는 것은 당연하다. 사서는 돈에 상관없이 그 자리에서 있을 때는 봉사다운 봉사를 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책을 좋아해서 사서가 되었다. 하지만 이 일을 계속할수록 나는 책 때문이 아니라 사람 때문에 이 일을 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나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게 좋아서 이 일을 계속한다. 나는 배우고자 하는 열의가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이 일을 계속한다.’
스콧이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처럼 저런 이유를 가지고 오늘도 묵묵히 도서관에서 일하는 모든 사서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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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의 왕실사 - 베개 밑에서 발견한 뜻밖의 역사
이은식 지음 / 타오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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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성경 <사무엘하> 11장에 보면 이스라엘의 초대 왕 다윗의 불륜이야기가 나온다. 다윗왕이 저녁때에 왕궁 지붕 위에서 거닐다가 한 여인의 목욕하는 모습을 보고 그 여인의 아름다움에 반하고 만다. 그 여인이 전쟁에 나가 있는 자기 부하 우리아의 아내인 밧세바라는 사실을 알고도 다윗왕은 그 여인을 데려오게 한 후 동침한다. 그런데 얼마 후 밧세바가 임신하였다고 알려오자 전쟁에 나가 있는 우리아를 불러들여 아내와 잠자리를 하게 함으로 자신과의 일을 가리려 한다. 그러나 우리아는 전쟁 중에 아내와 함께 잘 수 없다고 성문에서 군사들과 함께 잔 후 다시 전쟁터로 향한다. 할 수 없이 다윗은 우리아를 전투가 벌어질 때 맨 선두에 세우게 해 죽게 한다. 이스라엘 왕 중 가장 뛰어난 성군이요, 믿음의 왕으로 성경에 기록되고 있는 다윗왕, 성경은 그의 업적과 함께 불륜과 살인의 행위마저 이렇게 적나라하게 기록하고 있다.
양심을 가려 보려 했지만 성경에 기록되어 후대에 깊은 교훈을 주는 다윗의 불륜보다 더 적나라한 우리 역사의 불륜이 한 권의 책으로 나왔다.

이은식의 <불륜의 왕실사>는 1부, ‘욕망에 휩쓸린 고려’, 2부, ‘본분을 망각한 조선’이란 제목으로 고려왕조와 조선왕조의 유명한 불륜 사건 세 가지씩을 다루고 있다. 외척과 불륜의 관계를 맺고 고려왕실을 자신의 손아귀에 쥐려 했던 여인 천추태후, 그녀는 자신의 아들인 목종을 폐하고 김치양과 낳은 어린 아들을 왕위에 앉히려는 음모를 꾸미다 쫓겨나 결국 목종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여인이다. 몽고의 지배하에 있던 고려 중기, 충선왕은 부왕의 후궁과의 불륜으로 신하에게 지탄을 받자 몽고로 도망치듯 떠나버린다. 왕이 자신의 나라가 아닌 몽고에 살고 있으니 결재를 맡을 신하들은 그 옛날 몽고까지 힘겨운 걸음을 해야 했고 왕이 먹고, 쓸 모든 물품을 고려에서 몽고까지 실어 날랐다고 한다. 나라의 주권을 잃고 이런 어처구니없는 충선왕을 패하지도 못하는 고려 조정과 힘없는 백성들의 고통은 고려의 멸망을 앞 당겼을 것이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더니, 그 아들 충혜왕도 마찬가지다. 아버지의 여인을 범하는 똑 같은 짓을 하다가 쫓겨나 살해된다. 밖으로는 몽고의 지배로 국가의 주권을 잃어버리고 안으로는 탐욕스런 권력 쟁취에 급급한 무신정권의 혼란기에 왕실과 국가의 체면과 윤리는 아예 사라져 버린 듯하다.

한편 개인의 불륜사건이 형제 간 가족 간 왕위 다툼에 이용된 조선왕조의 불륜사건도 만만치 않다. 세자 방석의 아내인 세자빈 유씨의 내시와의 불륜사건은 본인과 세자인 남편을 죽음에 이르게 하고 태종 이방원의 왕위 등극에 큰 발판을 마련해 주는 사건이 되었다. 또 형제의 여자와 불륜을 저지른 화의군은 단종을 폐하고 세조 자신이 왕위에 오르는 과정에서 세조의 정적을 제거하는 구실을 마련해주었다. 조선왕조 500년사에서 극악무도한 패륜아로 알려진 연산군의 기록은 위의 사건들을 모두 합친 것 보다 더 충격적이다. 생모인 폐비 윤씨가 사약을 받고 죽었다는 사실을 안 후 부왕의 첩들을 손수 죽이고, 할머니, 인수대비를 머리로 들이받아 죽음에 이르게 한다. 백성들이야 어찌 되었든 매일 잔치를 벌여 천여 명의 여자들에 둘러싸여 흥청거리며 지내는 것도 모자라 백모를 강간해 자결하게 하고, 이복누이동생을 강간하고 대신들의 아내를 범하는 등 온갖 만행을 저지르다가 폐위되고 만다.
왕조실록 같은 정사의 한 귀퉁이에 조용히 숨죽이고 있었을 이런 부끄러운 역사를 저자가 본격적으로 거론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별로 들추고 싶지 않은 ‘불륜’이란 파격적인 주제로 과거를 샅샅이 파헤쳐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사건을 들추어 정리하고 기술하는데 그치지 않고 해당 인물들의 역사적 흔적이 희미하게나마 남아있는 이 땅 곳곳의 문화유적지를 몸소 발로 찾아 일일이 사진에 담고 민망한 질문도 서슴지 않는다.
‘노블리스 오블리제’, 특권층, 가진 자, 귀족이 지켜야 하는 도덕적 의무이다. 왕실이 아닌 백성들이 저지른 사소한 불륜은 단순히 개인과 가족의 비극으로 끝나지만 지배자가 저지른 불륜은 그 비극적인 결과를 나라 전체가 감당해 내야 했다.
현재도 이 책의 역사와 크게 다르진 않을 것 같다. 가진 것이 별로 없는 서민들은 벌벌 떨고 두려워하며 지켜나가는 법과 양심과 도덕과 의무를 가진 자들은 잘 지키고 있을까? 자신이 가진 것의 휘황찬란함에 눈이 멀어 법이니 하는 것들은 보이지도 않을지 모르겠다. 무슨 사건, 무슨 사건하고 연일 뉴스에 나오는 사건들은 명확히 밝히지도 않고 시간만 끌 뿐이고, 개인이 파헤쳐 알자고 들면 스트레스만 치솟아 명만 단축시킬 것 같다. 지금 이 시대의 불륜의 역사도 누가 이렇게 낱낱이 파헤쳐 드러내 주었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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