쉿, 조용히! - 풋내기 사서의 좌충우돌 도서관 일기
스콧 더글러스 지음, 박수연 옮김 / 부키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스콧 더글러스 지음/부키

“설마, 농담이죠?”
“아니, 도서관에서 일하려면 학교를 나와야해? 사람들한테 제대로 ‘쉿!’하는 법을 가르쳐 주나봐?”
저자가 도서관 학교를 나왔다고 하면 사람들이 보통 보이는 반응이다.
근대 도서관학의 아버지, 멜빌 듀이를 배출한 나라, 미국에서도 사람들에게 ‘사서’란 직업은 역시 생소한가 보다. 멜빌 듀이는 세계 최초 십진분류법인 DDC의 창시자이며 최초의 도서관 학교의 창립자, 라이브러리 저널 창간, 미국 도서관 협의의 창립멤버이다.
저자 스콧 더글라스는 미국 켈리포니아주 디즈니랜드와 가까운 애너하임 공공도서관의 중견 사서이며 프리랜서 작가이다. 대학 재학시절 일자리가 필요해, 신문의 스트립퍼 구인 광고지에 혹해서 신문을 뒤지다가 사서보조 모집 광고지를 발견하고 우연히 도서관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원래 영문학을 전공하고 있던 그는 도서관 사무보조로 도서관에서 근무하기 시작하면서 무언가의 이끌림에 의해 문헌정보학 대학원에 입학, 석사학위를 마치고 정식 사서가 되었다.
영문학 전공의 책을 좋아하고 감수성 풍부하고 소심한 이십대 초반의 남자,
내가 보기에 그에게 도서관은 운명의 장소임이 분명한데 그가 이야기 하는 도서관 이야기는 킬킬거리게 웃기면서도 감동이 뭉실 대고 또 한편 ‘니들이 참 고생이 많다.’며 등 두드려 주고 싶게도 한다.
아무리 운명적인 사랑 끝에 한 결혼일지라도 결혼 생활이 이어지면 그 운명이 지긋지긋 해질 때도 많은 게 인생인데 사서란 직업도 역시 만만치 않다. 사서가 보는 사서는 외부에서 보는 사서의 이미지처럼 그렇게 고고하지도 지적이지도 우아하지도 않고 여느 직장처럼 별난 사람 한 둘 쯤 꼭 있고 게다가 그들은 저자와 마찬가지로 유치하기까지 하다.

이용자도 지역 내에 존재하는 지역의 공공기관이니 별별 사람들이 다 온다.
사서를 연예인처럼 신기하게 바라보는 초등학생들, 늘 욕을 입에 달고 있는 분노로 가득 찬 시한폭탄 같은 중고등학생들, 도서관이 노인정인 할머니, 할아버지들, 그리고 노숙자들까지 별의별 사람들이 시시때때로 등장한다.
그들이 일으키는 온갖 소동을 다 보니,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교사와 사서란 직업을 가지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퍼뜩 든다.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이 일인가? 고민하며 스콧은 책이 우선이냐, 이용자가 우선이냐, 정보와 지식, 그리고 세상에 대한 사서의 의무, 지역사회에서의 도서관의 의무와 역할 같은 진지한 고민을 쉬지 않는다.
그것은 사서 개인이 가지는 자신의 직업에 대한 숙제이면서 세상과 이용자에 대한 모든 도서관의 숙제이기도 하다.

사서의 직업윤리나 도서관의 사회적 사명 같은 근본적인 물음 외에도 현재 미국에서 운영되고 있는 공공도서관의 독서 장려 프로그램들을 볼 수 있어 흥미로 왔다. 도서관 이용률을 높이고자 토요일마다 공짜 팝콘을 나누어 주는 파격적인(?) 도서관 행사, 우리나라 공공도서관들도 변하고 있지만 그래도 사서가 직접 팝콘을 튀겨 도서관내에서 나누어 주는 건 파격적이라 할 수 있다. 그 행사가 얼마나 지속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도서관은 지식과 정보, 책만 공급해 주는 곳이 아니라는 그 행사 기획자들의 생각에 이용자도, 사서도 진보냐, 보수냐 하며 의견이 분분했다. ‘인앤아웃’이란 햄버거 회사와 연계한 독서 장려 프로그램도 성격은 비슷한데 햄버거 회사에서 공짜 햄버거 쿠폰을 찬조하고, 공공도서관은 아이들을 독서일지프로그램에 가입하게 해서 아이가 하루 30분 이상 씩 독서를 했다는 일지를 가져와 보여주면 공짜 햄버거 쿠폰을 나누어준다.
책을 읽는 대가로 햄버거 쿠폰을 준다는데 싫어할 아이가 어디 있겠는가? 요즘 내가 사는 지역의 교육청에서도 이런 비슷한 취지의 130독서가족운동을 운영하고 있다. 1일 30분 동안 온 가족이 책을 읽고 기록을 한 후 우수가족을 선발해 상장을 주는 프로그램인데 상장도 좋지만 이렇게 직접적인 즐거움을 주는 시상이라면 참여율이 엄청 늘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어디 이런 햄버거 회사 없나? 아니면 교육청에서 햄버거 회사나 놀이 공원 측과 협찬을 맺어 이런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면 아이들이 더 좋아할 텐데 말이다.

저자 스콧이 신세대 사서들과 교류하며 친분을 유지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주고받는 질문에 답을 해 보겠다. 도서관을 배경으로 하는 가장 기억나는 영화가 있다면? 내게 가장 인상적인 ‘도서관’과 관련 된 영화는 ‘쇼생크 탈출’의 감옥도서관이다. 앤디 듀프레인이 오욕의 강물을 건너 새롭게 태어난 데에는 그의 육체적 정신적 버팀목이 되어 준 감옥 도서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러브레터의 여자 주인공이 도서부원으로 활동하던 낡은 학교도서관은 비슷한 학창 시절의 아련한 추억으로 내 마음에 남아있다. 영화 투마로우의 뉴욕 공공도서관은 단순한 책의 보관창고가 아닌 엄청난 재난 속에서 대피할 수 있는 마지막 구원의 보루와 같다.

사람들은 사서를 도서관이란 책으로 가득 찬 공간에서 우아하게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떠는 사람들 쯤으로 인식하거나 잘난 척하며 불친절한 재수 없는 사람들 로 인식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느 직업이든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은 있기 마련이고 한편에선 위와 같은 재수 없는 사람도 있지만 이렇게 스콧처럼 끊임없이 진지한 자세로 일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기독교인이나 교사나, 사서가 욕을 먹는 이유는 어느 면에서는 성격이 비슷하다. 도서관과 이용자를 이어주는 봉사자, 책이란 고귀한 물건을 다루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요구하는 사회의 기준에 미치지 못할 때 이용자가 분노를 내뿜는 것은 당연하다. 사서는 돈에 상관없이 그 자리에서 있을 때는 봉사다운 봉사를 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책을 좋아해서 사서가 되었다. 하지만 이 일을 계속할수록 나는 책 때문이 아니라 사람 때문에 이 일을 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나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게 좋아서 이 일을 계속한다. 나는 배우고자 하는 열의가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이 일을 계속한다.’
스콧이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처럼 저런 이유를 가지고 오늘도 묵묵히 도서관에서 일하는 모든 사서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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