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란 무엇인가? - 알기 쉽게 풀어쓴 (한글판 + 영문판)
E. H. 카 지음, 이화승 옮김 / 베이직북스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역사란 무엇인가?>란 주제로 역사의 개념과 정의를 논한 철학적이고 다소 딱딱한 이 책을 읽으며 새삼 '역사' 그 자체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보통 우리는 사랑은 무엇이고, 그 사랑이 우리의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한참 생각하고 정의를 내린 후 연애를 하거나 결혼을 하지는 않는다. 그러다 어는 순간 '사랑' 그 자체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볼 때도 있는데 곰곰히 생각해 본 그 사유의 시간 후의 '사랑'은 그 전의 '사랑'과는 분명 다른 의미로 각자에게 다가올 것이다.
'사랑'자체에 대해 그 의미와 깊이와 넓이를 곰곰히 생각해 본 후의 '사랑'은 무심코 그냥 사랑하며 살아가던 때보다는 삶에서 더 풍성하고 깊고 의미있게 여겨질 것이다.

'역사'도 마찬가지다. 커리큐럼에 짜여 있으니까, 교양으로 알아야 하니까 역사책을 읽고 역사 드라마를 본다.
역사에 대한 지식이 삶에서 중요한 것 같아서 찾아서 공부하기도 하지만 '역사' 란 무엇인지 그 개념과 정의를 생각해 보려고는 하지 않는다. 그러나 단순히 역사적 사실만 아는 것과 '역사' 그 자체의 의미를 아는 것과는 분명 다르다.

이 책은 1961년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있었던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주제의 에드워드 하렛 카의 강연을 보완해 펴낸 책이다.
이 강연은 영국의 BBC 라디오에서 방송된 후 단행본으로 출판되어 전 세계적으로 약 25만부 이상이 판매되었다고 한다.
이 책의 저자, 카는 영국 출신의 외무부 공무원이었으며 더 타임스 논설위원을 지냈다. 그는 역사학 교수나 역사학자가 아닌 국제관계, 문화, 철학, 정치, 외교 등에 관한 여러 책을 편찬한 사상가였다. 현재는 그의 역사에 관한 새로운 정의를 다룬 이 책 뿐아니라 국제관계를 다룬 책들이 학계에 크나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한다.
역사학자가 아닌 카가 한 대학에서 했던 역사학 강연은 이 전과는 새로운 역사에 대한 정의를 내렸고, 역사를 해석하는 새로운 시각과 방향을 제시하였다.

역사란 단순한 과거의 사건을 나열해 놓은 연대기와는 다르게, 과거의 사실을 이해하고 해석하려는 시도이며, 과거의 사건의 원인과 배경을 설명하는 작업이다. 그래서 역사학자는 고고학자나 연대기 기록자와는 다르게 역사적 사실을 이해하고 해석하고 그 원인과 배경을 설명하는 주관적인 일을 담당하는 사람이다.
카의 이 이론은 역사를 과거에 일어난 있었던 일 그 자체로 보는 사관, 역사의 중심이 과거에 있다는 이론에 반대하여 역사의 중심은 현재에 있다고 주장하는 파격적인 이론이다.
역사는 현재를 살아가는 역사가와 과거인 사실 사이의 부단한 상호작용이다. 그래서 현재와 과거의 사실은 둘 다 없어서는 안되는 요소이다. 사실을 소유하지 못한 역사가는 뿌리가 없어 열매를 맺지 못하고 역사가가 없는 사실은 생명도 없고 의미도 없다. 그래서 역사가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저자의 결론은 명쾌하다.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부단한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그는 역사를 연구할 때 역사를 기록한 역사가를 함께 연구하되 그 역사가는 그가 속한 사회, 그 환경의 영향을 받는 사람임을 염두에 두고 역사를 보아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역사를 공부할 때는 현재의 '사회'와 과거의 '사회'가 고려되어야 한다.
또한 역사의 연구는 원인의 연구이다. 역사가는 어떤 사건을 해석하고 원인들을 분석하고 선택하고 정리한다.
여러 원인들 사이의 상하관계, 원인들의 원인, 가장 본질적인 원인을 찾는다. 역사가가 아닌 그냥 독자도 역사를 보는 감각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어떤 과거의 기록과 사건을 보며 이런 해석과 원인을 찾으려는 시도를 할 것이다.
역사에서 원인을 찾으려는 목적은 무엇일까? 그것은 미래를 위해서이다. 카는 역사의 목표이자 방향은 미래라고 말한다.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며 '과거의 여러사건과 점차 나타나는 미래의 여러 목적간의 대화'라고 정의한다.

'미래를 향한 진보 가능성에 대한 신념을 상실해 버린 사회는 곧 과거에 스스로 이룩한 진보에 대해서도 무관심해질 것이다.
우리의 역사관은 우리의 사회관을 반영하는 것이다. '

'현대인은 자기가 지나온 어둠을 뒤돌아보고 열심히 응시한다. 그것은 거기서 흘러나오는 희미한 빛이 그가 나아가려고 하는 미래의 암흑을 밝혀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가 속한 유럽과 서양 사회의 현실적 상황이 과거에 비해 많이 달라지고 있고 세계는 전쟁, 기아, 핵, 식량문제, 기후문제 등 많은 문제들에 시달리고 있으나 그는 역사는 언제나 진보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고 본다. 그는 격동하는 세계, 갈등하는 세계를 바라보며 어느 위대한 과학자의 오래된 말을 빌려서 답한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

이 책은 여러 정치가, 사상가, 석학들의 견해가 많이 인용된 읽어내기 쉽지 않은 책이었지만 어떻게든 읽어낸 후에는 내게 역사를 보는 새로운 눈을 열어주었다. 현재와 동떨어진 먼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인 역사가 현재의 나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란 의문에 일말의 답을 들려준다. 역사는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대화는 말을 걸고 대답을 듣는 사람들의 것이다.
과거의 사실을 이해하고 해석하고 적용하며 끊임없는 말 걸기를 시도해보자. 대화와 사귐도 훈련이 필요한 법, 어느 순간, 역사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그 때 그 사건이 지금 현재의 삶에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고,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어떻게 미래를 설계해야 할지 현명한 답을 얻을 때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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