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p.144~p.156)
교회에서 오르간을 연주하던 사람을 몰래 미행해 술집에서 말을 건다. 아브락사스에 대해 얘기하자 그는 나에게 흥미를 보이고 다음에는 직접 교회에 들어와도 된다는 허락을 받고 연주를 듣고 두 사람은 그의 집으로 가게 된다. 그는 존경 받는 목사의 아들이지만 신학 공부를 하다가 국가시험 전에 신학부를 때려친 소위 탈선한 자식이었다. 싱클레어는 가끔씩 그의 집에 가서 나름의 자신 내면의 공부를 하고 온다. 이때 그는 벽난로의 불이 타오르는 것을 보며 자신의 존재가 외부의 세계와 조화되는 존재임을 깨닫는다.
데미안 진짜 기독교적인 성향도 강하고 많이 철학적이라 봐도 내용을 잘 이해 못하는 것 같음...
자연 형상에 몰두하면, 나의 내면이 이 형상을 만들어 낸 어떤 의지와 조화되는 존재라는 깨우침을 준다. 그러다 보면 그것이 곧 내 기분이고 나의 창조물이라 여겨지면서, 나와 자연의 경계가 흔들리고 녹아서, 망막에 맺힌 형상이 바깥의 인상에서 왔는지 내면의 인상에서 비롯되었는지 파악할 수 없게 된다. 우리가 창조적인지, 우리의 영혼이 얼마나 쉴 새 없이 세계의 창조에 관여하는지를 이보다 더 쉽고 간단하게 발견해내는 방법은 없다. 나와 자연에 작용하는 신은 나뉠 수 없는 동일한 신이니까, 만일 세계가 붕괴되어도 우리 중의 누군가가 재건할 수 있다. 산과 강, 나무나 잎, 뿌리와 꽃…… 그렇게 모든 자연물의 원형이 우리 속에 존재하며 영혼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 영혼의 본질은 영원하고, 정확히는 몰라도 대개 사랑의 힘과 창조의 힘으로 느껴진다.
-알라딘 eBook <데미안 (한글판)> (헤르만 헤세 지음, 이순학 옮김) 중에서 - P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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