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04. 23. 토
제목 : 풍경의 쓸모

*불콰하다 : 얼굴빛이 술기운을 띠거나 혈기가 좋아 불그레하다.
*호오 : 좋음과 싫음
*더블폴트(테니스 용어) : 서비스를 2회 할 수 있는데 2회 모두 실패한 경우를 가리킨다.

줄거리 : 주인공 ‘이정우‘는 어릴 때 아버지가 바람을 펴서 이혼하고, 현재는 가정을 꾸린채 대학 강사로 일하고 있다.
아버지는 교사였지만, 바람을 핀 일이 소문으로 퍼져 교단에서 내려와 테니스 심판 일을 하다가 건강 식품 판매 일도 하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활을 지속하기에는 부족했다. 결국 새 아내가 암에 걸리자 아들인 주인공에게 돈을 빌리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주인공은 어릴 적 어머니와 이혼한 아버지가 돈 때문에 자신을 찾는 것에 불편함과 짜증을 느끼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한 대학의 교수 임용시험에도 떨어지게 된다. 차사고를 대신 뒤집어 씌우게 한 곽교수의 강한 반대로 말이다. 엄마와 아내와 여행을 하던 도중 교수 임용에서 떨어진 소식과 아버지의 새 아내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한꺼번에 알게 된다.

사실 이번편 노트를 쓰기가 너무너무너무너무 어려웠다. 다른 편 중에서도 이런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지만, 이 정도로 갈피를 못 잡은 적은 처음인 것 같다. 아무리 이해가 가지 않더라도 큰 주제는 보였었는데 이번에는 뭐라고 정의를 해야할지 몰랐었다. 그래서 결국 인터넷에서 올라온 다른 감상문들을 보고 나름 갈피를 잡은 것 같아 노트를 쓴다. 그리고 설령 깔끔하게, 명확하게 이해가 가지 않았더라도 내가 모호하게 이해한 그대로 글을 쓰는 것도 솔직한 것 같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주인공의 감정을 따라가려고 노력했다. 어릴 적 아버지의 이혼, 아버지의 바람으로 인해 불평이 많은 어머니, 시간강사라는 불안한 직업까지. 주인공은 어딘가에 확실히 속하지 못하고 맴돌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또한, 곽교수와의 대화에서 그냥 적당히 맞장구치는 모습도 자기자신의 주장은 없어보였다. 그래서 처음에는 어딘가 불안정한 주인공이 휩쓸려만 살다가 결국에는 어느 것에도 성공하지 못한다는 스토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른 블로그 글들을 읽고 다시 생각해 본 결과, 이 소설에서는 겉으로는 행복한 상황이어야 하지만 안으로는 슬프고, 짜증이 나는 그런 상황을 보여주려고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우선 이 소설이 어머니와 아내와 같이 태국에 놀러온 여행과 교차해서 교수직 임용 건과 아버지 건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어머니와 아내는 이 여행에서 굉장히 즐거워하지만 주인공은 두 사건 때문에 침울하고 화가 난다. 하지만 여행을 온 것이니 딱히 티를 낼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마지막에 밑줄을 그은 구절 때문이다. 스노볼 안은 눈보라가 흩날리는데 바깥은 여름인. 여기서 스노볼 안은 주인공의 심리를, 바깥은 여행을 온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내 상황 때문에 너무 화가 나지만 화를 낼 수 없는. 이런 경우는 너무 많이 있지 않나 싶다. 내 개인적인 일로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어서는 안되니 말 할 수는 없지만 이렇게 답답하고 화나는 경우는 꽤 있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 나오는 ‘곽교수‘는 개인적으로 너무 재수가 없다. 곽교수와 주인공의 첫 만남에서 주인공은 곽교수의 차를 얻어 타고 가는데 여기서 곽교수는 다른 교수들의 험담을 한다.
여기서부터 난 주인공을 무시했다고 느껴졌다. 왜냐하면 같은 교수였다면 얘기가 건너건너 갈까봐 하지 않았을 얘기를 ‘시간 강사‘인 주인공에게 터놓고 했다는 것부터 ˝넌 이런 얘기 함부로 못하지?˝라는 느낌이 들었다. 더군다나 자신이 낸 차사고를 승진 시험 때문에 주인공에게 떠넘겼으면서 자신의 약점을 알고 있는 주인공이 동료가 되는 것을 원치 않는 것까지. 곽교수는 한 학자에 대해 졸렬하고 권력 지향적인 사람이라면서 얘기했지만, 결국 곽교수도 다를 바 없는 사람이었다. 소설에서 많이 심하게 표현되지는 않았지만 그도 결국에 자신의 약점을 알고 있는 주인공이 교수직에 올라가는 걸 거부하는 걸 보고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결국 그도 자기가 말한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게 느껴져 재일 재수 없었다.

그리고 사진을 찍으면서 ˝좋은 일은 금방 지나가고, 그런 순간은 자주 오지 않으며, 온다 해도 지나치기 십상...˝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이 구절이 뭔가 ‘사진‘이라는 것을 잘 표현한 것 같아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행복한 순간은 자주 오지 않기에 사진으로 남기지만 그 행복한 순간은 마치 그 사진에 갇히는 것 같은 느낌. 개인적으로 되게 좋았던 구절이다. 나도 예전에는 사진 찍는 것을 싫어했었는데 왜 어른들이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고 하는지 요즘은 알 것만 같다. 지금도 뭐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지만 추억을 남기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는 게 더 와닿는 요즘인 것 같다.

잠을 청하려 천천히 숨을 고르는데 속에서 기체인지 액체인지 모를 무언가가 뜨겁게 치밀어올랐다. 마른침을 삼키며 침착하게 그것을 내려보냈다. 그러곤 마음속으로 ‘나는 공짜를 바란 적이 없다‘고 중얼거렸다. 왕왕거리는 비행기 소음 사이로 누군가 내게 "더블폴트"라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 P183

좋은 일은 금방 지나가고, 그런 순간은 자주 오지 않으며, 온다 해도 지나치기 십상...

그리고 그렇게 낯선 나라에서 모국어로 된 정보를 들여다보고 있자니 손에 스마트폰이 아닌 스노볼을 쥔 기분이었다. 유리볼 안에선 하얀 눈보라가 흩날리는데, 구 바깥은 온동 여름인. 시끄럽고 왕성한 계절인, 그런. - P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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