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권위 있는 '오레곤 셰익스피어 극단'이 셰익스피어의 희곡 36편을 36명의 극작가에게 맡겨 ‘현대 영어’로 ‘번역’하는 작업에 착수했다고 발표하여 한동안 시끄러웠다고 한다. 모국어로 번역된 책을 상대적으로 빠르게 여러 권 읽는 것이 나은가, 서툴고 느리게라도 원서를 읽는 것이 나은가, 번역은 과연 가능한가/가치가 있는가, 하고 고민하던 차에 누가 기사를 보내줘서 보게 되었다.


The Opinion Pages | OP-ED CONTRIBUTOR

Shakespeare in Modern English?

By JAMES SHAPIRO

OCT. 7, 2015

http://www.nytimes.com/2015/10/07/opinion/shakespeare-in-modern-english.html


덧글이 600개가 넘는데 읽다 보니 어느 순간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고 있어서 중간에 멈췄다.

신기하게도 이 덧글들에 상식적으로 '번역'에 대해 할 수 있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번역에 관한 일반론이 흔히 그렇듯이 모순투성이였다.

7살 아이도 연극을 보여주면 즐긴다 vs 셰익스피어 영어가 어려운 건 사실이다

어찌 감히 위대한 셰익스피어의 문장을 ‘고칠’ 수 있는가 vs 아예 안 읽는 것보다는 현대 영어로 읽는 편이 낫다


가장 흥미로웠던 논의는 모국어가 영어가 아니면서 영어도 잘 하는 사람들의 의견이었다. 

원어로 읽지 못했어도 작품의 위대함을 충분히 맛보았다는 사람이 많았다. 오히려 셰익스피어는 예전부터 영어권보다 프랑스, 독일에서 더 인기가 많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영어를 다른 외국어로 번역하는 것과 셰익스피어의 16-17세기 영어를 현대 영어로 옮기는 작업이 어떻게 같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연장선상에 놓고 생각해볼 만한 점이 분명히 있다.


http://www.newyorker.com/books/page-turner/why-we-mostly-stopped-messing-with-shakespeares-language

이 기사는 셰익스피어 희곡은 사실상 '원본'이 없고 300년 동안 상연할 때마다 수정되었으며 19세기 후반 대학에서 셰익스피어를 고전으로 다루기 시작하면서 정본에 집착하는 문화가 생겼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물론 셰익스피어의 언어는 워낙 특별하기에 번역도 어렵고 번역되면서 잃는 것이 많을 수밖에 없다.

사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든 텍스트가 그러하다.

결국 번역에는 극복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지만 번역의 효용도 크다는 것.

아주 단순하고 평범한 진리로 결론이 났다.



+ (재미로 보는) 재치 있는 덧글:

- 누구 피카소의 그림을 더 이해하기 쉬운 도형으로 다시 그려주실 분, 쇤베르크의 음악에 가락을 넣어 다시 작곡해주실 분 있나요?

- 이런 데다 돈 쓰지 말고 차라리 새롭고 독창적이어서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희곡을 쓰는 극작가를 지원해주자.

- 엘리자베스 시대의 영어를 엘리자베스 시대의 영어로 번역한다니 좀 바보 같은 짓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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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긴 자서전이라 번역 이외에 다른 내용도 많이 들어 있다.

동서양의 언어와 문화 차이를 극복한 방식을 여렴풋이 엿볼 수 있다.






초역을 다시 어느 정도 자연스러운 영어로 다듬는 작업은 번역이라는 과정에서 늘 가장 어려운 단계였다. (…) 사실은 단 두 가지 단계를 거치게 된다. 처음에는 되도록 직역을 하는데, 이는 어쩔 수 없이 부자연스럽게 마련이다. 그래서 둘째 단계에서 부드럽고 세련된 영어에 가깝게 고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은 다이이치 호텔에서 나의 선생과 함께 시작한 최초의 번역 이래로 줄곧 변함이 없다.

(139)


지금은 번역이 ‘해결 가능한 문제’들과 ‘해결 불가능한 문제’들의 연속이라고 생각한다. ‘해결 가능한 문제’는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반면 ‘해결 불가능한 문제’는 어차피 해결이 불가능하므로 무시해도 된다. 즉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투리는 이 후자의 범주에 속한다.

(224)


그래도 일본어를 영어로 옮기는 번역자들은, 영어를 일본어로 옮기는 번역자들에 비하면 전반적으로 원작을 훨씬 잘 대해준 편이라고 생각한다.

(242)


그 외에도 미묘하고 모호한, 그리고 어쩌면 번역이 불가능한 의미를 전달하는 최선의 방법으로 직역을 선택한 예들이 있었다. 나는 머리 좋은 독자라면 잠깐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또한 여기에 대해 불만을 말하지 않은 스트로스야말로 참을성이 매우 많다고 생각했다. 편집자들은 유감스럽게도 원작에 없는 명확성을 번역에서 요구하는 일이 빈번한데, 그렇게 하려면 당연히 원작에서 뭔가를 잘라내야 한다.

(245)


(다니자키 준이치로 {세설} 번역에 대해:)

앤서니 웨스트가 쓴 {뉴요커}의 서평이 가장 심했다. 이 작품이 ‘의학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고 한 것이다. 약과 주사가 많이 등장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들이 이 작품의 전부라고 한다면 완전히 핵심을 놓친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 나는 스트로스에게 항의를 하라고 권했으나, 그는 {뉴요커}에 실린 서평은 내용이야 어쨌든 좋은 서평이라고 대답했을 뿐이다. 실로 프로다운 자세였다.

(252)

“He replied that any review in the New Yorker is a good review.”


앞에서 가와바타에게 어떤 문장을 설명해달라고 부탁해도 쓸데없는 일이라는 사실을 금세 깨닫고선 더 이상 부탁하지 않게 되었다고 했지만, 적어도 한번은 더 부탁했던 모양이다. (…) 내가 번역한 <센바즈루> 마지막 장이 제목인 [이중성(重性)]이 무슨 의미인지 내가 물어본 모양이다. 본문에는 그에 대한 설명이 없었다. 여기에 그는 너무 깊이 읽으려 하면 안 된다고 대답했다. “당연히 천문 용어처럼 보이겠지만, 나는 그저 그 말의 어감이 마음에 들어서 사용했을 뿐입니다.”

(265)


게다가 이미 웨일리(Waley)의 번역도 있었다. 내가 새로운 번역본의 서문에서 분명하게 밝히고 있듯이, 나는 그의 번역이 매우 뛰어나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또 지금까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러니 그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그것을 좇으려 해봤자 무의미한 일이 아닌가. 여러 가지로 {겐지 이야기}의 번역은 실로 무모하기 짝이 없는 일인 것 같았다. “나 같으면 두 번째로 번역을 하느니 열여섯 번째로 하겠다.” 도널드 킨의 이 말은 그 일에 매달려 있던 몇 해 동안 내가 들은 것 중에서도 가장 예리하면서, 또한 가장 의욕을 저하시켰던 말이다.

(432)


서평은 대체로 호의적이었는데, 그 중에서 내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영국의 서평들이었다. 더 호의적이라서가 아니라, 더 똑똑했기 때문이었다. 미국의 서평들은 가끔씩 엉뚱한 소리를 했다.

(435)


나의 번역에서 틀린 부분을 찾아 목록으로 만들어 보내는 사람들이 있긴 했지만, 틀림없이 다른 번역자들 또한 같은 처지일 것이다. 그러나 그 이상의 수준이 되어야 할 비평가들이 꼬치꼬치 흠이나 잡는 서평을 쓰고 강연을 하는 것은 문제다. 예를 들면 책에 나오는 지명만 골라 처음부터 끝까지 죽 훑어보고, 원작에 나오는 지명이 전부 나와 있지 않으면 ‘형편없는 번역’이라고 의기양양하게 선언하는 것이다.

(436)


나는 왜 번역가가 되었는가? Tokyo Central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 Edward Seidensticker /권영주 역

씨앗을 뿌리는 사람

2004(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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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작가 Hannah Kent가 로터리 장학생으로 아이슬란드에 머무를 때 알게 된 이야기를 소재로 쓴 장편소설이다. 살인 혐의로 1830년 참수된 Agnes Magnúsdóttir의 사연이다. 같은 소재로 1995년 아이슬란드 영화가 만들어졌고, 이 책의 영화 버전도 할리우드에서 제작 중이라고 한다.


공간적 배경은 아이슬란드 북서부의 바다가 가깝고 산이 험한 지역이다.

당시 아이슬란드에는 감옥이 없었다. 덴마크령이어서 보통 중죄인을 덴마크의 감옥으로 보내고 거기서 형을 집행하는데, Agnes의 경우 '본보기로 삼기 위해' 현지에서 집행하기로 했다. 사용할 도끼를 고르고 망나니를 고르는 등 모든 일은 덴마크 왕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편지가 오고가느라 시간이 걸렸다.(그 와중에 덴마크에선 도끼 가격에 바가지를 씌우고 게다가 쓰고 나서 돌려달라고 한다.) 집행 전까지 죄수가 머물 곳이 필요해 하급관리의 가족이 사는 농가에 돈을 조금 주고 죄수를 떠맡겼다. 거기서 죄수를 일꾼으로 썼다. 살인 사건은 1828년 3월에 일어났고 사형은 1830년 1월 집행되었다.

주인 가족과 일꾼 모두 집안의 badstofa라는 공간에서 같이 잤다(난방 연료를 아끼기 위해). 남자 일꾼이나 주인이 여자 일꾼을 자주 강간했다. 무척 추운 곳이므로 밤에는 요강을 사용했다. 여성의 지위가 상당히 낮았나 보다. 아버지가 귀가하자 둘째딸이 납작 엎드려 아버지의 신발을 벗기는 장면을 보고 조금 놀랐다. 그렇더라도 의견 표명은 자유로운 편인 것 같다. 인구가 적어 조금만 특이한 일이 있으면 소문이 퍼지고 와전되었다.

이 정도의 흥미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대표적 사실은 아니다.)


아마존에서 북유럽 나라들을 키워드로 검색을 하면 여행 가이드북이 주로 나오지만 간혹 민담, 체류기 등 문화적 측면을 담은 재미있는 책들을 발견할 때가 있다. 이 소설은 아이슬란드로 검색하다가 줄거리가 흥미로워 보여서 샀다. 우연히 신기한 책을 찾았다고 생각했는데(호주 소설은 별로 주목 받지 못하는 경향도 있고), 유명세가 대단한 소설이었다. 찾아보니 블로거들이 아이슬란드로 날아가 주인공의 묘석 등 소설의 배경이 되는 장소들을 찍어 올린 페이지가 여럿 보인다.


영어권에서 다들 극찬하는데 그렇다고 거짓말을 할 수는 없으니... 문장이나 표현은 억지에 클리셰투성이라 내 취향이 아니고, 단지 줄거리와 1820년대 아이슬란드라는 시공간의 디테일 때문에, 그리고 돈 주고 산 책이라서 끝까지 읽었다. 줄거리도 추리 형식처럼 막판에 진실이 드러날 뿐, 그냥 그렇다. Agnes라는 인물의 내력에 사회 문제가 많이 반영되어 있어서 살해 동기에도 사회적 측면이 있을 줄 알았지만 개인적인 원한과 감정만 강조되었다. 책에 실린 작가의 말과 인터뷰를 보면 자료 조사를 철저히 한 듯하고 작가의 상상도 덧붙였지만 사실인 내용이 많다고 한다.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잘 쓰인 논픽션으로 읽으면 훨씬 즐거울 것 같다.


서평: http://www.nytimes.com/2013/09/29/books/review/burial-rites-by-hannah-kent.html


Burial Rites

Hannah Kent

Back Bay Books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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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MBER 7, 2005 

Onward and Upward with the Arts

The Translation Wars

How the race to translate Tolstoy and Dostoyevsky continues to spark feuds, end friendships, and create small fortunes.

BY DAVID REMNICK

http://www.newyorker.com/magazine/2005/11/07/the-translation-wars


1. 러시아 문학의 전성기였던 19세기 작품은 거의 다 Constance Garnett(1861-1946)의 손을 거쳐 영어로 옮겨졌다. Garnett은 정말 열심히 빨리 번역을 해치웠다. 그래서 비판도 많이 받았지만 러시아 문학을 영어권에 신속하게 소개한 공은 매우 크다. Garnett의 번역문은 헤밍웨이 등 영어권 작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여기서 다시 의문을 품게 된다. 품질이 떨어져도 소개하는 데서 의의를 찾아야 할까? 아니면 '완벽한 번역'을 기다려야 할까?


2. 기사에 소개된 번역가들의 작업 방식은 문학 번역의 이상적인 형태를 보여준다.

Pevear가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영역판을 읽고 있었는데 작품을 원어로 여러 번 읽어본 Volokhonsky가 잠깐 훑어보더니 이건 정말 아니라고 했다.

Pevear는 미국인. 러시아어를 모른다. 불/스/이-영 번역 경험이 있다. 시인이다.

Volokhonsky는 러시아인. 영어를 안다. 러-영 번역 경험이 있다.

먼저 Volokhonsky가 러시아어 원문을 직역하면서 필요한 곳마다 주석을 달아 도스토옙스키의 어휘 선택, 구문, 지칭 대상에 관한 설명을 빼곡히 적는다. 그러면 Pevear는 이 텍스트를 영어다운 영어로 윤문한다. 이런 식으로 텍스트를 주고받으며 각자 담당한 작업을 되풀이한다. 마지막에는 Pevear가 영어 번역문을 낭독하는 동안 Volokhonsky는 해당 부분의 러시아어 원서를 읽으며 따라간다. (두 사람은 부부다. P/V라고 부른단다.)

P/V는 현재 70대 후반이고, 1990년부터 1년에 1권 꼴로 출간하며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지금까지 30권에 가까운 주요 명작을 번역했다.


3. P/V는 처음에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중 챕터 세 개를 작업하여 여러 출판사에 샘플로 보냈다. 출판사들은 Garnett 판(1912년 번역!)이 있는데 새 번역이 왜 필요하냐는 식으로 답했다. 러시아어문학 교수들은 번역이 좋다는 피드백을 보냈다. 결국 유일하게 긍정적으로 답한 작은 출판사와 첫 계약을 했다. 곧이어 메이저 출판사에서 책을 내게 되었다. 2004년 [오프라 윈프리 쇼]에 P/V의 {안나 카레리나} 번역본이 소개된 이후, 경제적 여유가 (꽤 많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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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나우스고르의 기나긴 소설 중 첫 번째 책이 몇 달 전 한국에서도 나왔다. 영어로는 총 여섯 권 중 5권까지 나왔고 한 권씩 나올 때마다 각종 매체의 북섹션에서 언급되곤 했다.


비슷하게 시리즈가 한 권씩 영어로 번역될 때마다 독자들이 열광하는 작가로 이탈리아의 엘레나 페란테(Elena Ferrante)가 있다. 나폴리를 배경으로 한 두 여자의 이야기를 네 권으로 쓴 시리즈가 있다. 작년에 제4권이 영어로 번역되어 나오자 시리즈가 끝나서 허탈하다는 기사가 나는 등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이다. 한국에서 이 시리즈가 나와도 인기가 있을지 궁금하다. 

(추가: 16년 7월에 한길사에서 제1권이 출간된다고 한다. http://blog.naver.com/hangilsabook/220718085095)
















페란테는 나폴리 시리즈 말고도 여러 장편을 발표했지만, 여태껏 정체가 밝혀지지 않았고 익명을 사용하고 있다. 만나본 사람은 딱 이탈리아 출판사 관계자뿐이고, 모든 인터뷰는 서면으로 한다.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불분명하다고 한다. 페란테의 영어 번역은 {뉴요커} 스텝 앤 골드스타인(Ann Goldstein)이 맡고 있는데 이 분도 작가를 전혀 모른다고 한다. 가끔씩 이번엔 누군지 찾아냈다, 어디에 있는 어떤 교수/소설가가 어느 작품에 나온 이런 줄거리와 이력이 일치한다는 기사가 나고, 출판사는 틀렸다는 보도자료를 돌리고. 그런 해프닝이 벌어진다.


나폴리 시리즈

1. L'amica geniale 2011

My Brilliant Friend 2012

2. Storia del nuovo cognome, L'amica geniale 2012

The Story of a New Name 2013

3. Storia di chi fugge e di chi resta, L'amica geniale 2013

Those Who Leave and Those Who Stay 2014

4. Storia della bambina perduta, L'amica geniale 2014

The Story of the Lost Child 2015






























개인적으로 분량이 긴 글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장편은 흠이 있어도 장점이 많으면 용인되는 경우가 많아서. 짧고 완벽한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두 작품은 언젠가 읽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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