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부코스키(Charles Bukowski; 1920-1994)는 배수아 작가님의 책에 소개된 적이 있다. 한때 배수아 작가님의 광팬답게 작가님이 독일어로 다양한 현대 문학을 접하면서 언급한 작가들의 작품을 찾아 읽곤 했다.


부코스키는 중복된 선집을 빼더라도 시집이 스무 권은 된다. 우리말로는 소설만 번역되어 나오고 있었다. 나는 부코스키의 소설보다 시를 더 좋아하기에 조금 의아하게 생각했다. 물론 시는 번역도 어렵고 판매도 어려울 수 있다. 그러던 차에 최근 시집이 나온 걸 보니 정말 반가웠다.


부코스키의 시는 산문적이다. 행갈이를 자주 한다는 점을 빼면 엽편소설과도 느낌이 비슷하다. 비록 구어체지만 어느 정도 완결된 문장으로 이루어지고 서사가 들어 있어서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난해한 시들과 달리 이해하기 쉽다. 사실 산문적이라서 그의 시를 좋아한다면 그의 산문도 자연히 좋아할 것 같은데 이상하게 소설보다 시에 더 끌렸다. 부코스키의 또 다른 특징은 그가 실제로 경험한 비천한 밑바닥 생활을 가감없이 드러낸다는 것이다. 그런 생활을 해봤다고 감히 말할 수 없는 내가 가까운 사람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을 때 부코스키의 시를 읽고 크나큰 위로를 받은 것은 작가가 특정 개인의 삶에서 인간의 보편적 핵심을 건져내는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이리라. 육성을 찾아 들어본 적이 있다. 욕설이 마구 섞여 있었다. 미국보다 독일, 프랑스에서 더 인기가 많다고 들었다.

















내가 읽어본 시집은 {You Get So Alone That It Just Makes Sense}(1986), {The Last Night of the Earth Poems}(1992) 두 권이다. 시집이 꽤 많다 보니 제목이 마음에 드는 것으로 골랐던 것이다. {The Last Night of the Earth Poems}는 작고 전에 낸 마지막 시집인데 분위기가 조금 차분해지고 죽음에 대한 성찰이 짙어진다. 부코스키의 시집이 몇 권 더 번역되어 나오기를 기대한다.


아래 첫 번째 시처럼 묘한 작품도 있고(결론이 완전히 다르게 나지만 기형도의 [전문가]가 떠오른다), 두 번째 시처럼 통찰력이 돋보이는 작품도 있다.


then one day
as we came back from
school
we saw the
house.

it had burned
down,
there was nothing
left,
just a smoldering
twisted black
foundation
and we went to
the fish pond
and there was
no water
in it
and the fat
orange goldfish
were dead
there,
drying out.

we went back to
my parents` yard
and talked about
it
and decided that
our parents had
burned their
house down,
had killed
them
had killed the
goldfish
because it was
all too
beautiful,
even the bamboo
forest had
burned.
they had been
afraid of
the man with the
beautiful
eyes.

and
we were afraid
then
that
all throughout our lives
things like that
would happen,
that nobody
wanted
anybody
to be
strong and
beautiful
like that,
that
others would never
allow it,
and that
many people
would have to
die.


the man with the beautiful eyes 中
{The Last Night of the Earth Poems}
Charles Bukowski
Ecco
1992

some weeks went by.
nothing changed: Karl bowed and scraped and smiled
undaunted, perfect in his
role.
that we were perishable, perhaps didn`t occur to
him
or
that greater gods might be
watching.

I did my
work.

then, one day, Karl took me
aside again.

"listen, Dr. Morely spoke to me
about you."

"yes?"

"he asked me what was wrong with
you."

"I told him that you were
young."

"thanks."

upon receiving my next check, I
quit

but

still
had to
eventually settle for another similar
job
and
viewing the
new Karls
I finally forgave them all
but not myself:


begging 中
{The Last Night of the Earth Poems}
Charles Bukowski
Ecco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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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앞으로도 이런 책을 계속 내주셨으면 좋겠다.

열 편의 소논문으로 구성되었다. 일부 이론적 내용은 배경지식이 없어서 자세히 읽지 않고 넘어가기도 했지만, 일반 독자가 상식 선에서 읽고 즐길 수 있는 지적인 논의가 넉넉히 들어 있다.

문학 번역에 종사하지 않더라도 생각해보고 반성할 거리가 많다.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8342 (이 기사도 책에 수록되었다.)


=


[문학 번역 비평을 위하여]


이 가운데, 편집인에 의한 교열 작업은 번역이 출간되기 이전 단계에서 비공개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앞서 언급한 번역 비평들과 확연히 구분된다. 하지만 현재 한국의 출판 번역 시스템에서 편집인의 번역 평가 작업은 출판 번역물의 최종 모습을 좌우할 정도로 가장 실재적인 힘을 발휘할 뿐 아니라 편집인이라는 전문 독자의 번역 평가 작업이기도 하기에 번역 비평의 한 유형으로 자리매김하겠다.

(93-94)


문학 작품을 번역하다 보면 번역 평가 현장에서 대단한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충실성 개념이 사실은 번역 현실로부터 유리된 하나의 강력한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는 인식에 이르게 된다.

(103)


시장의 논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출판사와 편집자는 상품의 실패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대체로 모험보다는 안전을 선호하게 되는데, 이 논리의 집행자라는 악역을 맡은 편집자는 독자를 등에 업고 가독성 규범을 내세운다. 익숙한 표준적인 문장으로 다듬어 내고, 쉬운 단어보다는 현학적이거나 시적이라 생각되는 단어를 선호하고, 같은 단어가 반복된다 싶으면 단어의 동일성 유지가 텍스트 작동에 필수적인지는 생각해 보지도 않은 채 다른 단어로 바꿔 놓고, 긴 호흡의 문장은 톡톡 끊어 놓고 짧게 치고 나오는 문장을 보면 불안해하면서 이어 붙인다.

(108-109)


=


[초역과 두 개의 재번역 - 네르발의 [옥타비] 번역 읽기]


원론적으로라면, 번역가는 기본적으로 탄탄한 문장력을 갖춘 작가여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모든 번역가가 그러한 능력을 보여 주는 것은 아니다. 아니, 가감 없이 우리의 번역 현실을 직시하면, 오히려 그와는 거리가 멀다고 하겠다. (…) 번역가의 안정적인 모국어 구사는 좋은 번역을 낳기 위한 충분조건은 아닐지언정 필수 조건임에는 틀림없는 만큼, (…)

(223-224)


출중한 문장력도 작품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만날 때에만 좋은 번역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231)


베르만(A. Berman)은 [번역 비평을 위하여]라는 글에서, 번역 비평의 절대적 순환 고리를 이야기한다. 비평 주체는 번역가의 번역 기획안에서부터 출발하여 번역을 읽어 볼 필요가 있지만, 그 번역 기획안의 진실에 접근하려면 결국 번역물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비평 주체는 번역자가 스스로 밝히는 번역관이나 문학과, 번역 대상이 된 작가와 작품에 대한 개인적 해석 등에 귀 기울여야 하지만, 그 행위의 바탕에는 절대적 신뢰가 아닌 제한적 신뢰가 깔려 있어야 한다는 충고일 것이다. 번역가가 자신의 번역에 대해 말하고 썼던 모든 것은 번역 안에서만 그 실체를 갖고 또한 그 안에서만 진실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는 번역가 개인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번역 주체의 존재 양식에 대한 통찰력에서 비롯된 비평 주체의 태도라고 할 수 있다. 번역 주체는 그 어떤 글쓰기 주체보다도 더욱 분열된 모습으로 존재한다. 이쪽의 문학 이데올로기와 번역 이데올로기에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순응하는 동시에 그것들과 끊임없이 갈등을 겪으면서, 동시에 저쪽에서 또 다른 방식으로 동일한 고민을 살아 냈을 원작자의 고뇌까지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존재이다.

(238)


=


[레몽 크노의 {지하철 소녀 쟈지}]


사실 읽어서 즐거운 작품과 번역에 적합한 작품이 늘 일치하지는 않는다. 이 너무나 당연한 이치를 몇 번의 쓰라린 경험을 통해 깨닫고 나면, 독자로서 즐겼던 작품이라는 이유로 무턱대고 번역하겠다고 나대는 일은 삼가기 마련이다.

(269)


번역 학계의 커다란 화두 가운데 하나가 ‘번역 불가능성’이다. 여기에는, 두 언어 사이의 차이를 극복하고 저쪽의 텍스트를 이쪽으로 옮겨 오겠다는 번역 자체가 불가능을 가능으로 돌리려는 시도로서, 번역이란 태어날 때부터 예정된 좌절을 향해 나아갈 수밖에 없는 글쓰기라는 생각이 숨어 있다. ‘번역 불가능성’을 뒷받침하는 논리는 흔히,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의 도구를 넘어서서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 틀 자체라, 서로 다른 두 언어 사이에는 근본적인 불일치가 존재하고, 이는 상이한 언어의 차이를 넘어 동일한 텍스트 생산을 꿈꾸는 번역의 내재적 한계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번역 불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이 동일한 논리가 번역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는 논리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서로 다른 언어 사이에 존재하는 바로 이 근본적인 불일치의 공간이 번역 주체가 글쓰기를 수행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두 언어가 정확히 포개어진다면 번역 주체가 틈입할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번역이라는 독특한 유형의 글쓰기는 동일성의, 반복의 원칙 위에 서 있지 않다. 번역은 이쪽 언어와 저쪽 언어의, 이쪽 문화와 저쪽 문화의 차이로부터, 원저자와 번역자라는 서로 다른 두 글쓰기 주체의 차이로부터 생겨나는 차이의 글쓰기이다.

(270-271)


우리의 언어 체험이 알려주듯, 언어유희의 불변의 원칙은 유사한 소리의 어우러짐에서 생겨나는 독특한 효과이다. 그리고 유사성에 기초한 이 소리의 화음은 언어가 달라지는 순간 무너진다. 그러니 번역자는 새로운 언어의 토양 위에서 새로운 화음을 창조하여 동일한 효과를 내야만 한다는 쉽지 않은 과제에 부딪히게 된다. 모국어를 이리 비틀고 저리 비틀어 봐도 원작의 말장난이 보여 주던 똑떨어진 맛은 나오지 않고 억지웃음밖에 자아내지 못하는 설익은 맛만 난다 싶으면, 결국 번역가는 어설픈 말장난을 만들어 내느니 충실한 주를 달아 원작의 언어유희를 설명하는 쪽을 택하고 만다. 우리가 번역 작품을 읽다가 심심치 않게 목격하는 김 빼는 번역 전략이다.

언어유희가 작품에서 맡고 있는 역할이 미미하다면 차선책으로 고려해 볼 만한 전략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지하철 소녀 쟈지}에서처럼 언어유희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언어유희에 작가의 문학관이 상징적으로 집약되어 있는 경우라면, 절대로 구사해서는 안 되는 번역 전략이다.

(273-274)


=


[번역, 차이의 글쓰기 - 말놀이 번역을 중심으로]


일회적인 말놀이라고 해서 번역을 생략해도 된다는 앙리의 판단을 베르만이 말한 소위 ‘작품oeuvre’으로 불릴 만한 문학 텍스트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선뜻 내키지 않는다. 이런 종류의 문학 텍스트가 보여 주는 고도의 유기성을 생각해 본다면, 일회적인 말놀이라고 해서 텍스트의 의미 생산과 무관하게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은 섣부르다. 말놀이가 일회적이어서 번역을 생략할 수 있다기보다는, 말놀이가 일회적이면 이 요소가 원문에서 담당하고 있는 기능은 말놀이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살릴 수 있는 가능성이 보다 높아진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역으로, 말놀이의 비중이 높고 반복적으로 등장한다면 번역가가 말놀이라는 방식을 피해 갈 수 있는 가능성은 당연히 점점 줄어든다.

(301-302)


원칙적으로는, 번역가의 글은 번역가가 별다른 제약을 받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실제로는, 그 공간은 늘 독자 걱정에 여념이 없는 편집자의 부탁을 받아들여 번역 작품을 소개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마는 타협의 공간이다. 번역가는 그곳에서 자신의 번역에 대해 말하고 있기는 하나 그 번역에 대해 제대로 들려주지는 못하니, 번역자의 글이라는 공간은 어떤 의미로는 수동적이고 간접적으로 자신의 번역에 대해 암시하고 마는 공간이라고 하겠다.

(319-320)


번역 논쟁

정혜용

열린책들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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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란드 북동부 해안에 파견되어 원시적 환경에서 외롭게 살아가는 사냥꾼들의 이야기.

http://weekly.khan.co.kr/khnm.html?www&mode=view&art_id=201308261627501


이 시리즈는 팬이 제법 있는 것으로 안다. 일반적으로 번역하기 어렵다고들 하는 유머를 그런대로 잘 번역했고, 표지와 삽화도 좋고, 전체 시리즈가 나오면 10권 전집으로 살 의향이 있는데, 잘 안 팔려서 절판되었다니 안타깝다. (덴마크 문화원에서 출판지원금도 받았던데...) 그나마 이북으로 나와 있다.

허풍담을 더 읽으려면 프랑스어나 덴마크어로 읽어야 한다.


덴마크 작가 요른 (Jørn Riel) 북극 허풍담 외에도 수십 권의 책을 썼다. 영어로는 아동소설 세 권이 소개되어 있다. 그린란드 이누이트에 관한 소설 {Før Mordendaggen} 캐나다로 배경을 옮겨 영화 [Before Tomorrow] 만들어졌다웹에서 무료로 혹은 후원금을 내고 있다. 속도가 느리고 어찌 보면 단순하지만 잔잔하고 아름답다.

http://www.isuma.tv/fastrunnertrilogy


릴은 프랑스에서 인기가 대단한가 보다. (한국어판도 프랑스어 중역이다.) 위키피디아 프랑스어 페이지에 특별히 허풍담 시리즈 10권의 서지사항을 정리해 놓은 부분이 있다(영어, 덴마크어, 독일어 페이지에는 없다). 순서대로 읽는 것이 좋다는 조언과 함께. 일부는 프랑스에서 그래픽노블(http://www.amazon.fr/vierge-froide-autres-racontars/dp/2848653256/)로 나오기도 했다.


1 Den kolde jomfru og andre skrøner - 1974

2 En arktisk safari og andre skrøner - 1975

3 En underlig duel og andre skrøner - 1976

4 Helvedespræsten og andre skrøner - 1977

5 Rejsen til Nanga : en usoedvanlig lang skrøner - 1981

6 En lodret løgn og andre skrøner - 1986

7 Signalkanonen og andre skrøner - 1988

8 Haldurs ballader og andre skrøner - 1993

9 Cirkuloeret og andre skrøner - 1994

10 Forliset og andre skrøner -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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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t Thanh Nguyen의 {Nothing Ever Dies}는 베트남 전쟁에 관한 논픽션이다. 서양인도, 베트남 토박이도 아닌 저자. 10년의 취재. 한국의 입장도 다룬다. 읽어보고 나서 글을 쓰려 했는데 판권이 아직 살아 있다길래 간단히 적는다. (책이 도착하려면 일주일은 더 기다려야 한다. {뉴요커}에 실린 짧은 소개글을 읽자마자 주문했다.)


저자는 베트남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전쟁 때문에 미국으로 이민했다. 베트남을 알리기 위한 비영리 블로그 http://diacritics.org/를 운영하고 있다. 작년에 낸 첫 장편소설 {The Sympathizer}로 2016년 퓰리처상을 탔다. 주인공은 혼혈에 스파이. 정체성의 문제, 내면의 분열을 다루었을 것 같다. 논픽션과 소설 모두 번역되면 좋을 것이다.


   

저자 소개

http://vietnguyen.info/author-viet-thanh-nguyen


퓰리처 상 수상에 대한 소회가 인상적이다.

http://vietnguyen.info/2016/on-winning-the-pulitzer-prize


"But within minutes of getting it, I knew that I owed tremendous thanks to everyone who has gone before me in the great, ongoing struggle for social justice, for peace, for genuine equality, for representation for all at every level of every society. I think of the enormous debts I owe to everyone who fought for civil rights, for radical power, for economic equity, and how all these issues are inseparable from justice in the literary world. No minority writer, no writer of color, can claim that he or she accomplished anything purely on their own merit. We all owe so much to the collective struggles and activists that preceded us, that laid the foundations for our individual achievement, to everyone lucky enough to be remembered and so many who have been forgot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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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가기 전에 관련 책들을 찾아보는 버릇이 있다. 여행 정보를 주는 책도 한 권쯤 있으면 좋지만, '여행'이란 요소를 빼더라도 의미가 있는 산문도 찾고 그 나라의 소설도 찾아본다. 그런 과정에서 Xenophobe's Guide 시리즈를 알게 되었다.


xenophobe는 외국과 외국인을 싫어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직접적인 여행 정보는 아니더라도 나라를 소개하는 책 제목에 xenophobe이란 단어를 넣은 것은 반어법과 자기비하적 블랙 유머가 기조를 이룬다는 선언이다. 몇 권 읽어보니 그런 어조가 공통적으로 들어 있어서, 기획 의도가 그렇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저자들은 보통 영어를 모국어로 하면서 해당 나라에 오래 살았거나 일한 사람들이다. 기본적으로 정보 제공에 충실하다. 지도와 통계 수치도 나온다. (예: 핀란드에는 호수가 187,888개 있다고 한다.) 정보를 전달하면서 비꼬거나 우스꽝스럽게 표현한 부분이 많고 그것이 가장 대표적인 특징이다. 독자를 웃기려고 작정했다는 말이다. 목차는 국가 정체성, 성격, 정부와 사회, 태도와 가치관, 관습과 도덕, 행동, 유머 감각, 여가, 음식, 건강과 위생, 전통, 문화, 정치, 경제, 언어 등으로 진지하다.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고 많이 웃을 수 있다.


이 시리즈는 영국의 작은 출판사 Oval Books에서 지금까지 총 30권을 냈다. 주로 유럽과 서양의 나라와 민족을 세세하게 다루어서 두루 읽기 좋긴 한데, 동양 지역은 매우 부실하고 한국 편은 아직 없다. 누가 재미있게 써 주면 좋겠다. 이 시리즈는 번역되면 좋겠다는 생각보다는 한국 편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원어민과 함께 작업하는 방법도 있다.


http://www.xenophobes.com/

http://www.ovalbooks.com/misc/oval.html




프랑스인, 독일인, 핀란드인이 아프리카에서 코끼리와 마주쳤다. 프랑스인은 코끼리를 보자마자 그것을 요리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을 궁리하기 시작했다. 독일인은 코끼리를 대초원에서 교통수단으로 이용하면 어떨까 생각하며 자기 지프차와 효율을 비교했다. 핀란드인은 이런 생각부터 했다. `코끼리는 날 어떻게 생각할까?`
(Loc 146)

다른 나라 사람들과 비교하면 핀란드인은 모두 내향적인 성격으로 보인다. 하지만 다 그런 것은 아니다. 그나마 외향적인 핀란드인을 찾아내는 간단한 방법이 있다. 외향적인 핀란드인은 누군가와 말을 할 때 자기 발을 쳐다보는 대신에 상대방의 발을 쳐다본다.
(Loc 275)

Xenophobe`s Guide to the Finns
Tarja Moles
Oval Books
2011

독일 사람들은 규칙을 어기는 일을 무척 싫어한다. 그래서 사는 게 고달프다. 명시적으로 허락되지 않은 모든 일은 금지되어 있다는 원칙 때문이다. 담배를 피워도 되거나 잔디를 밟아도 된다고 표시된 곳에만 그래도 된다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Loc 135)

독일 사람들은 절대로 외국인을 놀리지 않는다. 동독 사람들에 대한 농담도 통일 이후에 생겨났다.
(Loc 497)

독일 문화는 대체로 진지하고 분량이 방대하다. 독일인들은 프랑스인이 좋아하는 우아한 단편소설집 따위는 쳐다보지 않는다. 영국의 근대 장편소설에 나오는 농촌생활 풍자나 빈약한 형이상학적 사색도 좋아하지 않는다. 독일인은 가치 있는 문화와 예술을 원하고, 가치는 곧 규모를 뜻한다. 독일 문화에 이름을 남기려면 절대로 과작해서는 안 된다. 괴테 전집은 143권이고, 일반적인 선집도 15~50권에 이른다. 니체 전집은 적어도 30권이 넘는다. 먹지도 자지도 않고 바그너의 오페라를 다 들으려면 2주가 걸린다. 예술은 인생만큼이나 길고 복잡하다.
독일 사람들이 회화에 열중하지 않은 것은 그림을 너무 길게 그릴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건물은 매우 높이 지을 수 있었다. 오래전부터 현대까지 훌륭한 건축물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Loc 524)

Xenophobe`s Guide to the Germans
Stefan Zeidenitz, Ben Barlow
Oval Books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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