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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고 있는 소녀를 보거든
캐서린 라이언 하이드, 김지현 / 레드스톤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불안장애와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광장공포증 환자 빌리, 이 때문에 12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우편함을 확인하기 위해서 복도에 나가본 적이 없었고 자신의 집 발코니조차 나가본 적이 없었다. 그런 그가 발코니로 한 발을 내딛었다. 계단에 앉아 있는 우울한 표정의 어린 여자 아이 그레이스 때문이다. 그렇게 인생 최고의 인연이 시작되는 첫 대화를 하게 된다.
어린 그레이스는 학교에 가지 않고 계단에 앉아 있는 날이 많다. 엄마가 학교에 데려다줘야 하지만,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레이스의 엄마는 늘 약 때문에 이른 낮에도 잠에 취해있었다. 주변에서도 이런 상황을 우려하며 그레이스와 엄마를 떨어트려놔야 할지 고려중인터다. 그렇다고 이웃들이 관심을 가져주는 것은 아니다.
어린 그레이스 역시 잘못될 수 있는 상황에 대해서 짐작하고 있었다. 자기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리고 도움을 얻고 싶었다. 그래서 잠들어 있는 엄마 곁이 아닌 아파트 현관 계단에 앉아서 무언의 도움을 구하고 있었다. 변두리 뒷골목 위험한 동네에 어린 여자 아이가 아파트 계단에 앉아 있다는 이유로 이웃들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서로에게 무관심했던 그들이 그레이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고 오히려 자신들의 두려움과 마주하며 상처를 치유하는 계기가 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어른들은 저마다의 두려움을 갖고 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경험한 두려움들이 트라우마가 되어서 삶을 살아가는데 장애가 되어버렸다. 그레이스의 순수한 눈으로 바라본 어른들의 모습들, 그 어른들을 향해 던지는 당돌한 질문들이 읽는 내내 피식 웃게 했지만, 한편으로 그 어른들의 모습에서 현실의 어른들의 모습을 엿보기도 했다. 내 모습까지도 말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해있는 무관심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었다.
한편으로 이 책을 읽다보니 우연히도 ‘오즈의 마법사’가 떠올랐다. 그레이스와 이웃들의 모습이 마치 도로시와 세 명의 캐릭터들과 교차되었으니 말이다. 빌리와 그레이스의 관계는 최근에 감상했던 영화 ‘세인트 빈센트’를 떠올리게도 했다. 그 영화에서도 이사 온 꼬마 아이와 이웃 노인인 빈센트의 우정을 그리며 관계의 가치를 그려낸다.
이 책에 담긴 이야기는 어둡고 슬픈 이야기일 수 있지만, 빌리와 그레이스를 통해서 이야기는 유쾌하게 전개되고, 그들과 이웃들과의 관계를 그리며 감동을 주기도 한다. 이처럼 어린 소녀 그레이스를 통해서 두려움에 거리를 두고 외면해왔던 딱딱한 관계의 껍질을 깨고 서로에게 용기와 깨달음을 주고 문제를 해결해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비록 어둡고 안타까운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힐링과 감동의 과정 속에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되어서 흐뭇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관계에 대한 우리의 내면의 두려움이기도 하다. 그들이 용기를 낼 수 있었듯이 우리도 그레이스를 통해서 용기를 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