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 따위 이겨주마 - 시각장애인인 내가 변호사가 된 이유
오고다 마코토 지음, 오시연 옮김 / 꼼지락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정상인들에게 눈으로 보며 생활하는 것은 숨을 쉬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럽고 쉬운 일이다. 그러나 두 눈을 감은 상태에서는 작은 행동조차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시각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단순히 어려움을 넘어서 자신의 장애를 받아들이고 극복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정상인인 나에게는 감히 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어릴 때는 장애를 가진 분들에게 연민을 많이 느꼈지만, 지금은 그보다는 존경심이 가득한 것도 그런 이유다. 
그런데, 시각장애인으로 변호사가 된 사람이 있다. 바로 이 책의 저자다. 정상인들도 남다른 노력을 하지 않으면 변호사의 길을 가기란 어려운 일이다. 이 때문에 존경심을 넘어서 그의 삶의 과정이 궁금했다. 저자는 열두 살에 선천성 녹내장으로 시력을 잃었다. 다행히 그의 낙천적이고 호기심 많으며 지기 싫어하는 성향 때문에 ‘보이지 않으니 포기하자’가 아니라 ‘보이지 않으니 어떻게 하면 될까’라는 식의 긍정적인 사고가 습관이 되어 있었다. 덕분에 일본에서 사법시험에 합격한 세 번째 시각장애인 변호사가 될 수 있었다. 그는 1년간의 사법연수 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변호사가 되어 지금까지 200여 건 이상의 민형사 사건을 맡았다. 그는 삶에서 한계를 느끼는 사람들, 어려움과 고독과 싸우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계기가 되어주기 위해서 자신이 걸어온 길과 장애가 있는 변호사로 일하며 깨달은 점을 이 책에 진솔하게 풀어냈다.

 

시각장애인으로 변호사가 되려면 최소한 정상인의 두 배, 세 배 아니 그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 보이지 않아서 오는 행동의 제약들과 수많은 핸디캡들을 이겨내야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변호사가 되는데 성공했다고 해도 이후 변호사로서 정상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것 역시 또 다른 힘겨운 도전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포기하지 않고 모든 도전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내며 자신의 길을 가고 있다. 시력으로 절망에 빠져 있었던 그가 지금은 절망으로부터 사람들을 구해주는 일을 하며 자부심과 행복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는 변호사가 된 이후에도 수많은 의뢰인을 만나 시각장애라는 불리함을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배워왔다. 그는 자신의 불리함조차 업무적인 장점이자 개성으로 만들어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다. 눈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목소리를 통해서 상대방의 본심을 잘 파악했다. 표정은 속일 수 있어도 호흡이나 억양, 말과 말 사이의 간격까지 꾸미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목소리뿐만 아니라 옷이 스치는 소리나 발소리에서 상대의 감정을 읽어내기도 한다. 몸에 밴 향수로 상대의 기호와 기분을 추측할 수 있고, 술 냄새와 채취로 사는 형편을 가늠할 수도 있다. 보이지 않는 만큼 다양한 각도에서 사람들을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때로는 시각장애인 변호사가 땀을 뻘뻘 흘려가며 악전고투하는 모습이 의뢰인의 마음을 긍정적으로 바꾸기도 했다.
그는 공설사무소에서 변호사로 일하면서 빚, 빈곤, 질병이나 장애 같은 사회의 어두운 부분과 매일 마주했다. 한 사람이 두 가지 이상의 문제를 끌어안고 괴로워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는 그들에게 법률을 운운하기 전에 먼저 의뢰인의 짊어진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 노력했다. 이것은 꽤나 고된 작업이지만, 법률가로서 일을 하기 전에 먼저 상담사의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어야 했다. 시각장애인 변호사로 일하는 법, 의뢰인과의 신뢰를 쌓는 과정, 자신을 통해서 의뢰인이 희망을 얻고 좋은 길을 가게 된 일 등 다양한 일화와 함께 이를 통해서 얻은 삶의 깨달음을 가득 풀어냈다.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더 심할지도 모르지만, 살다보면 정상인들조차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 한계를 만들게 된다. 무의식적으로 ‘나는 여기까지만 할 수 있다’는 식으로 한계선을 긋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대개 진짜 한계는 그 선 앞에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이제 더 이상 못 하겠다’라고 생각한 그 지점에서 아주 조금만 더 가면 목표지점이 있다는 것을 배웠고 이를 자신의 삶을 통해서 풀어냈다.
저자는 시각장애인으로서 변호사가 되기까지의 과정뿐만 아니라 삶의 수많은 도전들, 부모님과 친구, 지인들, 그리고 아내와 딸에 대한 이야기 등을 통해 일에 대한 통찰에서부터 꿈, 가족의 힘, 삶의 장애를 이겨내기 위한 수많은 가치 등을 전달한다. 저자는 자신의 부부가 인생을 가로막는 어려움으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그 어려움과 잘 지내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했다. 그가 자신의 딸에게 인생을 좌우하는 시련에 직면했을 때 포기하지 않고 용기를 내어 나아가면 전혀 다른 지평선이 눈앞에 펼쳐진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듯이 말이다. 그는 ‘그래서 할 수 없어’라고 도망치기보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를 생각하는 것이 인생을 훨씬 흥미롭게 만든다고 말한다. 이를 자신과 아내의 지금까지의 모습, 그리고 앞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앞으로도 계속 보여주고자 했다.

 

나이가 들고 사회 경험은 쌓였지만, 오히려 타성에 젖어 익숙함에 매몰되고 한계를 짓고 뒤로 물러나는 일이 점점 더 많아지는 것을 느낀다. 과거의 열정과 도전, 가능성은 이제 먼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다행히 아직은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저자의 이야기에 경청하고 싶었다. 힘든 장애를 이겨내고 지금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해준 그만의 소중한 가치들이 어떤 것인지 궁금했다. 덕분에 평범한 사람들은 겪을 수 없는 수많은 도전들 속에서 얻은 남다른 삶의 통찰, 가족에 대한 사랑, 인간애 등까지 배우고 깨달을 수 있었다. 책을 읽는 동안 삶에 대한 반성과 통찰을 반복했고, 희망과 열정이라는 기분 좋은 감정이 번갈아가며 내 안을 가득 채워주는 듯했다.
어려운 경제현실, 이에 따른 악순환들 요즘 세대들 모두 힘겨운 삶의 무게를 체감하고 있다. 그렇다보니 스스로 한계를 긋는 경험을 너무나 쉽게 너무나 많이 하게 된다. 3포 세대, 5포 세대를 이어 이제 모든 소중한 가치들을 포기한 N포 세대라는 말도 들린다. 이런 분위기를 볼 때면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씁쓸하고 가슴이 아프다. 하지만, 저자는 더 힘들고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서도 꺾이지 않고 도전해서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며 열정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요즘처럼 스스로 한계를 긋고 꿈과 희망을 포기하기 쉬운 시기에 많은 사람들이 저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으면 한다. 이를 통해 그동안 보지 못했던 희망을 발견하고 자신만의 삶의 길을 찾기 위한 힌트를 얻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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