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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시작하는 여행 스케치 - 당당하게 도전하는 희망 그리기 프로젝트 ㅣ 지금 시작하는 드로잉
오은정 지음 / 안그라픽스 / 2013년 5월
평점 :
같은 여행을 다녀와도 멋진 사진을 남겨오는 사람도 있고, 때로는 자신만의 멋진 스케치를 남겨오는 사람도 있다. 나는 그 중에서 어느 쪽에도 속하기에는 부족하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던 젊은 시절 열정은 어느 새 사그라지고 사진으로 대체하기로 마음먹고 장만한 디지털 카메라도 지금은 애물단지로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아버렸다. 언제부터인가 나름 일 때문에 바쁘다고 합리화해버린 덕분에 삶은 더 무료해져간다. 이제는 그 좋아하던 여행도 남의 일이 되어버렸고, 여행을 가려면 뭔가 계획을 해야 하고 챙겨 가야할 것들이 많은 또 하나의 일로 치부하는 버릇도 생겼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여행을 사랑하고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 아이러니하지만, 사실이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아이러니한 일상에 빠져 살 것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 내가 잊고 있었던 두 가지를 다시 얻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삶과 추억을 그림으로 담고 싶었던 스케치에 대한 욕구를 채우고, 여유가 되면 멋진 여행을 가야겠다는 막연함이 아닌 시간과 돈에 의존하지 않는 여행 자체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현실적인 여행의 길을 배우고 싶었다. 늘 원하기만 했을 뿐, 그동안 실천하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한 것은 물질적인 부족함이 아닌 마음의 부족함이 아니었을까? 이 책이 그 마음의 부족함을 조금씩 채워주기 시작했다.
이 책은 여행과 삶에 대한 깨달음과 함께 다양한 여행 스케치와 방법들이 ‘발견, 자연, 나.너’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통해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7년 가까이 국내외를 여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여행을 통한 깨달음을 따뜻하고 통찰력 있는 사유들을 통해서 풍부하게 그려냈다. 그리고 여행 스케치가 전문가의 영역이 아니라 누구나 도전하여 자신만의 추억과 느낌을 담은 스케치를 그려낼 수 있음을 설명한다. 전문가들의 복잡한 기법이나 갖춰진 도구들이 아닌 일상에서 구하기 쉬운 펜이나 연필, 샤프나 마커를 활용하여 편지지나 봉투, 작은 메모지나 노트 등에 쉬운 기법을 통해서 누구나 멋진 스케치에 도전할 수 있도록 안내하기 때문에 잘 그려야 한다는 부담감을 벗고 자신 안의 자유로움을 끄집어낼 수 있도록 이끈다. 쉬운 스케치 기법 이외에도 어떻게 바라보고 관찰하며 담아내야하는지도 여행 상황과 경험을 바탕으로 설명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다.
한편으로 이 책은 스케치에 대한 전문 드로잉 기법을 위주로 한 책은 아니다. 여행과 스케치라는 소재를 통해서 저자의 여행에 대한 철학적 통찰과 스케치에 대한 활용이 조화롭게 녹아든 책이다. 덕분에 여행에 대한 저자의 경험과 사유들, 그 여행에서 담은 스케치들을 읽고 보는 재미가 더 인상적이었고, 때로는 공감과 함께 향수를 불러오기도 했다. 더불어 준비되지 않은 여행, 혼자 떠나는 여행, 시간과 이동의 가치, 여행에서 얻은 작은 행복과 인연에 대한 다양한 여행 이야기들과 팁들을 통해서 현실적인 여행을 도전할 수 있는 자신감과 기회를 제공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드로잉뿐만 아니라 여행에 대한 현실적인 도전과 출발점을 제시해줄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그동안 현실의 벽 앞에서 여행에 대한 막연한 로망만 가지고 있던 사람이라면 이 책을 통해서 자신을 찾기 위한 진정한 여행에 대한 길잡이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 담긴 저자의 여행 경험에서 나오는 이야기와 삶의 통찰이 담긴 사유들, 그리고 일상의 작은 도구와 준비만으로도 담을 수 있는 스케치들과 활용법들은 한 때 나에게 존재했었던 여행과 그 여정을 스케치하고 싶었던 열정에 작을 희망의 불씨를 지폈다. 돈과 시간, 특별한 기술이 있어야만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여행과 스케치라는 공간에 다시금 나 자신을 던져 넣을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이제 핑계로 가득한 답답한 일상에서 벗어나 기지개를 펴고 나 자신을 자유와 설렘으로 채우고 싶다. 그 안에서 그동안 잃어버렸던 삶의 소중한 가치와 바닥을 보이던 열정과 창의력을 충전 받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저자가 그러했듯이 나 역시 진정한 여행을 통해서 깨닫고 느끼며 한 단계 더 성숙한 내가 되어갈 수 있는 기회를 온전히 누려갈 것이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여행스케치에 도전하여 그 느낌을 풍부하게 간직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