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름
파코 로카 지음, 김현주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2년 12월
구판절판


만화책 한 권은 때때로 책 여러 권을 한 권으로 축약시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힘이 있고, 보는 시각적인 즐거움과 읽는 즐거움 두 가지 모두를 충족시켜 준다. 그림책과는 달리 마치 영화 한 편을 보는듯한 상상력의 유희를 제공하는 것도 만화책이다.
지금은 학창시절 때만큼 만화책을 자주 접하지는 못하지만, 만화책에 대한 선호도만큼은 성인이 되어서도 크게 변하지는 않았다. 이 책은 개인적으로 생소한 스페인 만화면서 에피소드 ‘주름’은 바르셀로나 만화페스티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고 하니 내용면에서도 호기심이 생겼다.

이 책에는 ‘주름’과 ‘등대’라는 두 가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주름’은 알츠하이머와 치매로 인해 요양원에서 생을 보내는 노인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주인공인 에밀리오는 은행원으로 평생 성실하게 일해 왔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알츠하이머 초기 증상을 보이고, 결국 아들 부부에게 이끌려 요양원에 입원하게 된다. 에밀리오는 룸메이트인 미겔의 도움으로 낯설고 불편한 요양원 생활에 조금씩 적응해간다.
어느 날 에밀리오는 간호사의 약배급 실수로 자신이 알츠하이머 초기단계라는 것을 알게 되고, 이후 증세가 심해져 2층으로 가게 될까봐 걱정을 하게 된다. 요양원 2층은 알츠하이머에 걸렸거나 스스로 거동이 불가능한 금치산자들만 가는 곳이다. 에밀리오는 미겔의 도움으로 의사와 간호사들의 검진을 피하며 증세를 숨기지만, 자신을 돌봐주는 미겔의 얼굴마저 점점 기억에서 사라져간다.
두 번째 에피소드인 ‘등대’는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적군을 피해 도망자 신세가 된 어린 병사와 등대지기 노인의 이야기다. 주인공인 프란시스코는 전쟁 중 적군에게 쫓기다가 머리에 부상을 입고 바다에 빠진다. 다행히 등대지기인 텔모에게 구조되고 건강이 회복될 때까지 도움을 받으며 함께 지내게 된다. 하지만, 허수아비에 걸어놓은 군복으로 인해 적군에게 발각되어 위기에 빠지고 만다.

‘주름’ 에피소드는 인간의 본질적인 측면에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게 만드는 이야기다. 스스로는 인정하기 싫지만, 어느새 현실로 다가온 노화현상에 대한 내면의 갈등, 외로움과 그리움, 두려움과 절망감 등을 노인들 각자의 사연과 요양원 이야기, 끔찍한 사고 등을 통해서 현실적이면서도 섬세하게 그려냈다. 등장인물들은 만화적 생동감에 실제 지인들의 가족과 주변인들을 모델로 표현했기 때문에 감정적 느낌이 더 진하게 전해져온다. 덕분에 인간으로서 늙어간다는 의미에서 마음이 먹먹해지기도 했지만, 부모님의 삶과 나의 삶을 머릿속에서 오가며 가슴 한 구석이 짠해지기도 했다.
또 다른 에피소드인 ‘등대’는 희망과 꿈에 대한 이야기다. 전쟁 속에서는 승자든 패자든 희망과 꿈을 잃어간다. 주인공 역시 사랑하는 여인과의 삶, 세계를 탐험하겠다는 꿈과 희망을 간직한 적이 있었지만, 전쟁으로 인해서 모든 것을 포기해버렸다. 하지만, 등대지기 노인 텔모는 삶에서 꿈과 희망을 내려놓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을 희생하며 등대를 밝혀 프란시스코를 구하고 그에게 꿈과 희망의 가치를 일깨운다. 등대에서 전쟁은 어쩌면 우리들의 치열한 삶을 의미하는지 모른다. 그리고 어린 병사의 도망자의 삶, 목적을 잃어버린 채 표류하는 삶 역시 본질적으로는 우리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 두 가지 에피소드를 통해서 노인 세대와 젊은 세대의 삶과 생각에 대해서 양쪽을 이해하고 공감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더불어 만화적 상상을 통해서 다양한 사유를 해볼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덕분에 바쁜 삶에 녹아버린 채 지내다가 잠시 멈춰 서서 앞으로의 삶에 대해 숙고해볼 수 있었다. 나와 같이 현실의 삶에 치여 자신과 가족을 되돌아보지 못했다면 이 책을 통해서 기회를 가져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이 기회에 만화라는 장점을 활용하여 짧은 시간의 투자로 깊이 있는 생각과 잔잔한 감동을 경험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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