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구의 사랑 오늘의 젊은 작가 21
김세희 지음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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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이전에도, 그리고 그 이후에도 누군가를 그렇게 원했던 적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그녀를 원했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다. 그런데 내가 그것을 선택했을까? 오랫동안 나는 내가 그녀를 사랑한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젠 더 이상 그 감정을 내가 선택한 거라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내가 감정을 소유했던 게 아니라 감정이 나를 소유했던 것만 같다. 강물의 표면에 붙들려 이리저리 떠다니는 나무토막처럼 눈에 보이지 않고 파악할 수도 없는 심오한 물살에 고통스럽게 휩쓸려 다녔던 것만 같다. 그 물살의 방향이 바뀌기 전까지는 계속 그렇게 붙들려 실려 가는 수밖에 없었다.(p.103)

 

 민음사 젊은작가 시리즈에 관심이 많다. 몇 권 읽기도 했다. 이번 김세희의 장편소설 <항구의 사랑>은 제목은 좀 유치(?) 하지만 학창시절의 추억을 생각하게 했다. 요즘엔 동성애를 다룬 소설이 많이 나와서 그런 소설이구나 싶었는데 막상 읽어보니 꼭 그런 건 아니다. 여고시절에 친구들이랑 야자하고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먹던 모습이 소설이 있었다. 가까운 곳에 바다가 있다는 설정도 내가 학교를 다녔을 때랑 많이 비슷해서 진짜 우리의 이야기 같았다.

 

 일찍 결혼한 친구는 아이가 있고 만나기도 어려운데 소설에서 아이돌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을 쓰고 이반이라고 불리는 애들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때 우리라도 해도 믿을 수 있다. 학교에 여자밖에 없어서 더 친하게 지내게 되고 마음에 이상한 감정이 뭔지 잘 몰랐을 수도 있고. 주인공인 준희랑 인희 같은 친구도 분명 있었으니까.

 

 지방에서 서울로 대학을 가서 준희가 느낀 감정은 잘 모르겠지만 여고시절에 연극 동아리 민선 선배를 좋아했던 마음이 대학교에서 남자 친구를 사귀는 마음으로 어떻게 변했는지는 좀 알 것도 같기도 하다. 지나고 보니 그때 민선 선배를 대했던 감정이 진짜 참 예뻤지만 선배랑 헤어지는 일은 진짜 가슴이 아팠다고. 김세희 작가가 쓴 작가의 말을 보면 자전적 소설일까 상상할 수도 있다.

 

 ‘나는 누구에게도 그 시절의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없다. 그것을 부끄럽게 여겼기 때문일까. 아니면 하찮은 것이라 확신했기 때문일까. 그 시절의 일들이 내가 스무 살 이후 들어간 세상에서 하찮은 것으로 여겨진다는 건 똑똑히 알 수 있었다. 자랑스레 떠들 일은 아니었다. 더 이상 받아들여지지 않는 일. 말한다 해도 제대로 이해되지 않을 일. 어쩌다 언급한다 하더라도 내가 지금은 그 일들을 바보같이 여긴다는 뉘앙스를 담아야 한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 (p.51~52)

 

 결혼 준비를 하는 친구에게도 읽어보라고 해야겠다. 집을 알아보고 웨딩 촬영으로 정신없이 바쁜 친구가 소설을 읽고 뭐라 말할지 궁금하다. 우리가 잊고 있었던 그 시절의 우정을 잊지 말라고 하면 싫어할 수도 있겠지만.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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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 - 권여선 장편소설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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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삶은 이유없이 가혹한데, 그 속에서 우리는 가련한 벌레처럼 가혹한 줄도 모르고 살아간다. (p. 145)

 

검정색 바탕에 노란 레몬이 눈에 쏙 들어온다. 레몬처럼 똑 쏘는 소설일까 기대했다가 완전 놀랐다. 어떤 내용인지 모르고 출판사 소개글만 읽고는 단순한 추리소설일까 생각한 게 완전 오산이었다. 2002년 월드컵 열기로 뜨겁던 때 고등학교 3학년 언니 해언이 죽었다. 단순 사고도 아니고 누군가가 잔인하게 죽였다. 예쁜 언니로 엄마의 사랑을 한몸에 받은 언니가 죽고 엄마랑 나는 완전 달라졌다. 다언은 언니처럼 얼굴을 고쳤다. 집도 이사했다. 처음엔 해언을 죽인 범인을 찾는 과정을 보여주는 줄 알았다. 용의자였던 배달 알바를 하는 한만우와 언니를 차에 태운 신정준를 수사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책을 읽다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이 나온다. 다언이 한만우의 집에 찾아가 여동생과 계란후라이를 먹는일도 이상하다. 사고 당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고 한만우와 키 작은 여동생의 말만 듣는다. 해언을 질투했던 태림은 나중에 신정준과 결혼한 걸로 나온다. 과거의 사건에 대해 죄의식을 갖지만 진실을 밝히거나 하지는 않고 상담전화를 하고 이상한 말만 한다. 전체적으로 다 좀 이상한 느낌. 다언이 복수를 하는 것 맞는데. 소설이 끝나도 명쾌하지 않다. 죽는다는 일과 사는 일. 남겨진 가족의 뭔가 더 숨겨진 비밀이 있을 것 같기도 하고.고통 같은 걸 생각하게 한다. 책이 200쪽 정도라 앉은 자리에서 금방 읽은 소설이다. 그런데 뭔가 더 숨겨진 비밀이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자꾸 그런 생각을 남기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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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 흘리는 소설 땀 시리즈
김혜진 외 지음, 김동현 외 엮음 / 창비교육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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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땀 흘리는 소설>이라는 제목만 보고서는 무슨 소설인지 잘 몰랐다. 참여 작가의 고통점도 잘 모르겠고. 그런데 단편을 읽으면서 아, 이래서 땀흘리는 소설이구나 싶었다. 장강명의 단편 <알바생 자르기>와 김세희의 <가만한 나날>은 다른 책에서 읽은 건데 그때는 직장과 알바에 대한 개념은 없이 그냥 재미있게 읽었다. 요즘엔 고용계약서를 안 쓰거나 알바비를 제때 안주면 바로 노동청에 신고를 한다. 최저시급이 오르면서 알바를 자르는 일도 많아지고 자영업자(특히 편의점)은 업주가 하루종일 일을 한다고 들었다. 배달업도 마찬가지라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힘들 일이 있었던 날이 떠올랐고 괜히 마음이 복잡해졌다. 우리 시대 청춘의 현주소가 이 소설집에 있다고 해도 맞을 듯하다. 블로그를 팔라는 광고를 안부글이나 음식점 후기를 보면서 종종 이거 진짜일까 생각하는데 <가만한 나날>처럼 진짜인 것 같은 경험담으로 광고를 하는구나 놀랐다. 김애란의 <기도>에서 공무원 공부를 하는 모습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어 현실적이었다. 김재영의 <코끼리>도 이주노동자의 현실을 잘 짚은 것 같다. 가장 기억에 남은 건 김혜진의 <어비>였다. 어비를 바라보는 시선, 유명 가장 유망한 직업인 유투버 크리에이터도 이렇게 시작하지 않았을까. 잘 모르지만 그런 생각도 했다. 의미있는 소설집이다. 계속 시리즈로 나와도 좋은 것 같다.


신기했고 재미있었는데 뭐랄까, 불쾌해졌다. 별 풍선 하나는 100원. 열 개는 1000원. 열 명이 열 개씩이면 만 원. 100명이 100개씩이면 100만 원이 되는 거였다. 그걸로 집도 사고 차도 사고 가게도 내고 사업도 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그러려고 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일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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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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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의 <쇼코의 미소>는 분홍색 표지에 여자의 뒷모습이다. 연애소설처럼 보였는데 아니었다. 가슴 뭉클하기도 했고 친구가 생각나기도 했다 두 번째 소설집 <내게 무해한 사람>은 노란 표지다. 이번에도 여자의 뒷모습이 보인다. 이 표지, 연작인가? ㅎ 이번 소설집도 좋았다. 쓸쓸한 단편도 있었고 아픈 단편도 있었다.
다른 책에서 읽었던 [그 여름]은 다시 읽어도 좋다. 여고 시절에 친하게 지냈던 친구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601, 602]란 암호 비슷한 묘한 제목의 단편은 가부장제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다. ​[모래로 지은 집]도 좋았는데 단편 [쇼코의 미소]속 우정의 다른 버전인가 싶었다.

절대로 상처 입히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두려움. 그것이 나의 독선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이 나를 조심스러운 사람이 되게 했다. 어느 시점 부터는 도무지 사람에게 다가갈 수가 없어 멀리서 맴돌기만 했다. 나의 인력으로 행여 누군가를 끌어들이게 될까봐 두려워 뒤로 걸었다. ([모래로 지은 집] p.181)
[지나가는 밤]​은 많이 아픈 소설이었다. 부모 다음으로 가장 힘이 되는 존재는 형제인데. 서로가 힘들 때 자매는 멀리 떨어져있었고. 나는 여자 형제가 없어서 자매에 대해 잘 모르는데 이 단편을 읽고 언니랑 동생이 같이 밤을 보내는 이미지가 오래 생각났다. [아치디에서]를 읽으면서는 이력서를 쓰고 면접을 보러 다녔던 때가 떠올랐다. 취업비자로 외국에 20대의 이야기도 생각나고.
​계속해서 최은영이 소설을 읽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마구 몰려온다. 한국작가에서 좋아하는 작가 순위에 최은영이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좀 다른 이야기지만 다음 소설집은 어떤 색, 어떤 표지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아, 그럴려면 계속 문학동네에서 나와야 하는 건가.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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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헤어지는 하루
서유미 지음 / 창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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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미 작가의 소설은 많이 읽지 않았다. 떠오르는 게 없다. 읽었을지도 모르는데. <모두가 헤어지는 하루>는 표지의 분위기에 반했다. 나는 표지가 중요하다. 한적한 휴가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표지다. 쓸쓸하것 같지만 편안하다. 이 소설집에서 모두가 헤어지는 건 아니다. 그런데 묘하게 제목이랑 잘 맞는 소설집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자매의 서울 상경기처럼 보이는 <에트르>는 내 친구나 친척 동생의 이야기 같아서 좋았다. 서울에서 방 한 칸 얻기가 얼마나 힘든지. 나는 집에서 직장생활을 해서 그 고생을 잘 모르지만 방세에 생활비를 빼면 월급은 바로 마이너스라는 건 안다. 고향을 떠나서 뭔가 해보고 싶은 마음, 나이를 더 먹기 전에 취직을 하거나 원하는 진짜 일을 하고 싶은 마음. 이력서를 쓰며 기다리는 시간은 정말 고역이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언니와 공부를 하는 동생. 이사를 하기 위해 방을 보러 먼 길을 가는 모습이 무척 짠하다.

 

현실적으로는 대출이 불가능하고 더 벌 수도 없으니까 쓰는 걸 줄여야 했다. 그동안 잠도 줄이고 게으름 피우는 시간도 줄이고 말도 줄이고 꿈과 기대와 감정까지 줄이며 살았는데 여전히 뭔가를 더 줄여야만 했다. (p. 12  「에트르」)

한 번도 와본 적 없는 낯선 동네의 골목이, 한참 떨어져 있는 곳과 이토록 닮아 있다는 것이 이상했다. 익숙해서 정겨운 것이 아니라 이곳도 그곳 같을지 모른다는 점 때문에 스산했다. (P. 28~29 「에트르」)

 

갑자기 사라진 남편의 행적을 찾아 직장 동료를 만나는 <뒤모습의 발견>속 아내는 직장 동료에게 들은 남편은 아내가 아는 남편이 아니어서 놀란다. 이혼후 임시방편으로 구한 찜질방에서 출퇴근하는 <이후의 삶>의 남자불편할 것만 같은 찜질방은 정말 천국처럼 보인다. 잘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지만 그럴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치매에 걸린 엄마를 요양원에 모시고 가는 날 딸이 출산을 하는 기막힌 타이밍의 <변해가네>도 기억에 남았다. 만약에 우리 엄마가 소설의 주인공이라면 어땠을까. 엄마에게 한 번 물어보고 싶다. 결혼 생각도 없고 할머니도 오래전에 돌아가셨지만 그래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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