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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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단편집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읽었다. 김연수 소설집은 아주 오랜만에 읽었다. 예전에 읽었을 때 많이 어려웠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좋았던 게 더 많았다. 내가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것 같다. ㅎ 제일 좋았고 인상적인 단편은 <이토록 평범한 미래>였는데 두 개의 이야기가 겹쳐져서 나온다. 밑줄 긋은 문장이 무지 많았던 단편이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미래를 꿈꿨던 적이 있다. 어른이 되고 직장에 다니고 차를 사고 운전을 하고. 소설 이야기랑은 살짝 다르지만 진짜 평범한 미래를 사는 건 참 어렵다. 집을 사거나 결혼을 미래가 얼마나 대단한지.ㅠ.ㅠ


이제는 안다. 우리가 계속 지는 한이 있더라도 선택해야만 하는 건 이토록 평범한 미래라는 것을.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한 그 미래가 다가올 확률은 100퍼센트에 수렴한다는 것을.(「이토록 평범한 미래」 중에서)


<진주의 결말>도 좋았다. 어떤 사건을 파헤치는 과정도 흥미로웠고 용의자 진주가 범인이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철학적이면서도 심리적인 안정을 주는 글이었던 것 같다. 어쩌다 달을 보게 된다면 이 소설이 생각날 것 같다. 특히 보름달을 볼 수 있을 때 그렇겠지.


진주가 살아온 시간을 우리는 다 알 수 없지만 달까지 갈 수 없지만 갈 수 있다는 듯이 걸어갈 수 있다는 소설 속 문장처럼 진주의 시간을 다 안다고 생각하고 다가가면 어느 부분은 알 것 같지 않을까.(「진주의 결말」 중에서)


우리가 달까지 갈 수는 없지만 갈 수 있다는 듯이 걸어갈 수는 있다. 달이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만 있다면. 마찬가지로 우리는 달까지 걸어가는 것처럼 살아갈 수 있다. 희망의 방향만 찾을 수 있다면.(「진주의 결말」중에서)

인간 안에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존재하잖아요. 모든 게 잘될 거라는 희망에 부풀어 잠들었다가도 침대에서 일어나기도 싫을 정도로 끔찍한 아침을 맞이하기도 해요. 인간의 실존은 앞뒤가 맞지 않는 비논리적인 이야기예요. 그럼에도 저는 그중에서 가장 좋은 생각들만 선택해왔습니다.(「진주의 결말」)


<난주의 바다 앞에서>와 <사랑의 단상 2014>는 너무 슬펐다. 먼 과거의 인물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그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아름답고 아팠다. 김연수의 이 소설집을 읽고 김연수가 좋아졌다. 예전에도 싫어한 것 아닌데 이 소설집 덕분에 더 많이 좋아진 건 맞다. 다음에도 김연수 소설이 나오면 놓치지 말고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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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 3부작
막상스 페르민 지음, 임선기 옮김 / 난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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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한 편의 시다. 구름에서 떨어져 내리는 가벼운 백색. (p.8)


막상스 페르민의 색채 3부작 첫 번째 <눈>을 읽었다. 눈이라는 제목처럼 눈이 많이 내린 겨울에 읽게 되었다. 표지도 예쁘고 눈이란 제목도 좋고 번역한 사람도 시인이라 시 같은 소설을 기대했다. 주인공인 유코는 열일곱 소년으로 시인이 되려고 한다. 생일날 아침 아버지께 시인이 되겠다고 포부를 밝힌다. 음, 시인이 되겠다는 아들에게 그래 너는 시인이 되거라 하는 부모가 있을까.


"시는 직업이 아니야. 시간을 흘려보내는 거지. 한 편의 시는 한 편의 흘러가는 물이다. 이 강물처럼 말이야."

유코는 고요하게 흘러 사라지는 강을 깊이 바라보았다. 그러다 아버지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것이 제가 하고 싶은 겁니다. 시간의 흐름을 바라보는 법을 배우고 싶어요." (p.11)


이런 범상치 않은 말을 하는 아들. 시인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진짜 그 뒤로 유코는 시인이 되었다. 아주 짧은 이 소설은 유코가 묘사한 눈처럼 아름답고 맑다. 10대 소년의 눈에 비친 세상은 눈처럼 맑고 아름답게 보인 것일까. 시인이 된 유코는 유명해졌다.


유코를 구원한 것은 이미지였다. 결코 잊을 수 없는 이미지. 그것 역시 현실 저편에서 온 눈부신 것이었다. 그의 평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숭고한 이미지가 밤에 나타나 그를 살렸다. (p.42)


눈이 가득한 겨울에 읽어서 그런지 눈에 대한 시를 찾아 읽고 싶어졌다. 백석의 시와는 너무도 차원이 다른 유코의 시. 더 좋은 시를 쓰기 위해 스승을 찾는다. 유코가 만난 스승 다름 아닌 소세키. 잘 모르겠지만 일본의 유명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를 빌려온 것 같다. 그런데 스승은 눈이 먼 사람이었다. 눈이 먼 사람이 세상을 어떻게 색으로 표현할까. 마음에 보이는 게 진짜라고 말하는 스승의 사랑에 대해 유코는 듣게 된다.


스승을 찾아오는 길에 만난 눈 속의 시체. 그녀가 바로 스승의 사랑이었던 것. 그 부분에서 뭔가 심상치 않더니 소세키가 그토록 그리워하는 사람이었다. 곡예사였던 아내 네에주. 유코의 안내를 받아 그녀가 죽은 곳에 도착한다. 그리고 운명처럼 스승의 딸과 결혼을 하는 유코. 아름다운 로맨스다. 눈이라 쓰인 시였다. 원문으로 읽으면 어땠을까. 잠깐 궁금하지만 프랑스어를 모르고 번역으로도 아름다우니까.


"시인은, 진정한 시인은 줄타기 곡예사의 예술을 지니고 있네. 시를 쓴다는 건 아름다움의 줄을 한 단어 한 단어 걸어가는 것일세. 시의 줄ㅇ느 한 작품의 줄은, 한 이야기의 줄은 비단 종이 위에 누워 있지. 시를 쓴다는 건 한 걸음씩, 한 페이지씩, 책의 길을 걸어가는 일일세. 가장 어려운 건 지상 위에 떠서, 언어의 줄 위에서, 필봉의 도움을 받으며 균형을 잡는 일이 아닐세. 가장 어려운 건 쉼표에서의 추락이나 마침표에서의 장애와 같이 순간적인 현기증을 주는 것으로 중단되곤 하는 외길을 걷는 일이 아닐세. 시인에게 가장 어려운 일은 시쓰기라는 줄 위에 계속 머물러 있는 일일세. 삶의 매순간 꿈의 높이에서 사는 일, 상상의 줄에서 한순간도 내려오지 않는 일일세. 그런 언어의 곡예사가 되는 일이 가장 어려운 일일세."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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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모르는 이야기 교유서가 산문 시리즈
황시운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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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시운이란 작가의 이름을 처음 알았다. 검색해 보니 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 <컴백홈>이란 같은 제목으로 책도 있다. 다음에 읽어봐야지 하면서 작가의 이름이 예뻐서 산문집 <당신이 모르는 이야기>란 책의 표지도 예뻐서 선뜻 집었다. 첫사랑 같은 말랑말랑한 이야기를 들려줄까, 살짝 기대했다. 그런데 너무 힘든 이야기였다. 힘들어서 읽으면서 드라마나 다큐의 한 장면이 함께 생각났다. 장애를 지닌 사람에 대해 역경을 이겨냈다고 떠들어대던 뻔한 한 장면까지.


지금껏 살면서 나는 수술이라고는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주변에는 아픈 사람이 있었다. 엄마도 20여 년 전에 암 수술을 했고 아빠도 크게 다쳤었다. 지금은 두 분 다 건강하다. 할머니도 돌아가시기 전까지 오랜 시간 집에서 엄마가 돌봐드렸다. 엄마가 고생을 많이 하셨다. 황시운의 책을 읽으면서 그때 기억이 생각났다. 그래도 작가가 당한 사고처럼 끔찍한 건 아니었는데.


만약 내게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작가처럼 다시 살아갈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재활이 얼마나 힘든지 알지 못하고 부끄럽지만 크게 관심을 갖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장애인의 생활이나 휠체어를 타고 살아가는 것도.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미안하면서도 <사랑의 가족>이란 프로그램보다 더 구체적으로 장애의 아픔이나 고통에 대해 알려주는 책이라고 느꼈다. 그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그분들이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가장 위험하고 도움을 요청하는지. 이 책이 장애인, 특히 휠체어를 타고 생활하는 분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것 같다.


저자를 돌보는 엄마가 없었더라면 어땠을까. 엄마란 참을 대단한 존재구나 느낀다. 그리고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우리 사회는 높은 장벽을 쌓고 있다고 생각했다. 장애인 지하철 시위에 대해 뉴스를 통해 접할 때도 내가 이용하는 지하철 구간이 아니라서 그냥 지나쳤다. 기사를 다시 검색해 읽어봐야겠다. 내가 모르는 이유가 있을 텐데. 알려고 하지도 않았구나.


손끝에 가시 하나만 박혀도 발가락을 부딪혀 멍만 들어도 아파서 끙끙대는데 하반신 마비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1~10까지의 통증 크기에 항상 9~10의 통증을 달고 사는 게 어떤 걸까. 나는 진짜 상상할 수 없다. 수술과 재활, 그리고 재택근무도. 대단하고 대단하게 보인다. 그러나 저자에게는 생존의 문제이자 간절한 일이다.


내게 소설은 생존의 다름이었다. 살아남은 내가 할 수 있는 게 글쓰기뿐이어서, 그것마저 하지 않는다면 내 존재를 나 자신에게조차 설명할 길이 없어서 소설을 썼다. 아니, 쓸 수 밖에 없었다. (p.165)


책을 다 읽고 나니 진짜 나는 모르는 이야기였다. 저자가 장애를 가지고 살아오면서 느꼈을 외로움과 고통과 분노와 속상함을 조금 알게 되었다. 앞으로 주변에서 마주하는 장애인과 휠체어를 타는 사람을 조금 더 세심하게 살펴봐야겠다. 내게 도움을 요청하는 순간 내가 줄 수 있는 도움이 무엇인지 생각해 봐야겠다. 저자의 엄마의 꿈처럼 걷고 뛰는 일은 불가능하겠지만 지금처럼 친구를 만나고 식당에 가서 밥을 먹고 맥주를 마시기를 바란다. 휠체어를 힘들게 했던 턱이 점점 낮아져서 아예 없어질 수 있다면.


책을 읽으면서 밑줄을 그은 문장이 무척 많았다. 흉터, 상처, 턱, 고통, 통증 같은 단어가 한동안 생각날 것 같다. 무엇이든 잊지 않는 일이 중요하다는 저자의 말도 오래 기억하고 싶다.


흉터로 남은 상처는 더이상 아프지 않다. 다만 상처를 기억하는 매개가 되어줄 뿐이다. 나는 내가 그날의 나를 잊지 않은 덕에 조금이나마 나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그것이 무엇이든 잊지 않는 일은, 그래서 내게 무척 중요하다.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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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하지 않는다 (눈꽃 에디션)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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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처럼 가볍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눈에도 무게가 있다. 이 물방울만큼. 새처럼 가볍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그것들에게도 무게가 있다. (p.109)


한강의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는 내게 너무 어려운 소설이었다. 제주 4·3 사건에 대해 잘 몰랐고 솔직하게 말하면 관심도 많지않았다. 그냥 날짜만 기억하고 동백꽃 배지정도만 기억한다. 방송에서 다큐로 다룬 프로그램도 본 적도 없다. 그렇게 따지만 오히려 한강의 소설로 알게 되고 배우게 된 게 다행이다. 그럼 이 소설을 역사 소설이라고 봐야 할까.소설에서 소설가 경하는 한강 작가의 자신인 것 같았다. 소설에서 경하가 힘들게 쓴 소설은 <소년이 온다>라고 짐작한다. 


한강의 문장을 아름다웠다. 시를 읽는 것 같기도 했다. 장마철에 만나서 그런지 눈이 오는 장면을 묘사하는 부분을 읽으니 시원했다. 눈 오는 풍경, 제주도의 폭설을 상상하면서 읽기도 했다. 경하는 제주도에서 사고로 손가락 수술을 한 친구 인선의 부탁으로 제주도로 온다. 집에 남겨둔 새를 돌보려고. 근데 읽으면서도 새가 죽었을 것 같았다. 


제주도 시내가 아닌 깊은 산 속 인선의 집까지 눈을 헤치며 가는 경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친구도 없고 무섭지 않았을까. 그리고 소설을 통해 인선의 어머니가 겪은 상처를 읽으면서 당시 제주도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 생각했다. 관광지로, 한 달 살기로, 이번 여름에도 휴가에 가고 싶은 섬이 달라 보였다. 


엄마가 쪼그려앉길래 나도 옆에 따라 앉았어. 내 기척에 엄마가 돌아보고는 기만히 웃으며 내 빰을 손바닥으로 쓸었어. 뒷머리도, 어꺠도, 등도, 이어서 쓰다듬었어. 뻐근한 사랑이 살갖을 타고 스며들었던 걸 기억해. 골수에 사무치고 심장이 오그라드는…… 그때 알았어. 사랑이 얼마나 무서운 고통인지. (p.311)


소설은 어려웠지만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눈 오는 풍경 때문인지 겨울마다 생각날 것 같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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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봄 2021 소설 보다
김멜라.나일선.위수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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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봄 2021>은 표지가 진짜 예쁘다. 노란 개나리 같다. 올봄은 추워서 개나리를 보지는 못했지만. 문학과지성사에서 분기별로 나오는 소설보다 시리지는 가격이 착해서 구매하는 편이다. 그런데 소설은 많이 어렵고 난해하다. 이번 <소설 보다 : 봄 2021>은 김멜라, 나일선,위수정 작가의 단편이 있다. 읽어도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그나마 김멜라의 단편 <나뭇잎이 마르고>가 제일 쉬웠다. 쉬웠다고 말해도 괜찮은가. ㅎ 


한국소설을 읽는 재미가 조금씩 줄어든다. 나만 그런가. 아니면 단편이라 이해하는 속도가 느린가. 잘 모르겠지만 이 소설집은 진짜 그랬다.김멜라의 <나뭇잎이 마르고>는 여성 연대 같기도 하고 소수자에 대한 이야기 같디고 하고. 등장인물의 이름이 특이했다. 아니, 별명인가. 앙헬, 체, 대니. 기억하기도 어렵지만 현실에서도 이름 대신 별명을 많이 부르니까. 근데 정말 친한 친구 사이에만 별명으로 부르는 거 아닌다. 그런데 소설에서 보면 셋은 또 그렇게 친한 것 같지도 않고. 


위수정의 <은의 세계>는 지금 우리가 겪는 팬데믹의 상황을 만난다. 이제 코로나 바이러스를 소재로 한 소설들이 많이 나올 것 같다. 누구나 겪는 일이지만 또 다 똑같이 경험하는 일도 아니다. 정부가 예측한 확진자 수가 맞을 때마다 놀란다. 백신을 맞았어도 걸리고 지금은 격리 7일이면 끝나는데. 다음에 만나는 팬데민 소설은 해피엔딩이면 좋겠다. 


둘은 나란히 앉아 습관처럼 뉴스를 보았지만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세계 최대의 리조트 회사가 결국 파산을 선언했다는 보도가 나왔을 때 하나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둘이 신혼여행지에서 묵으려고 예약했던 리조트 중 하나였다. 세상은 원래 이렇게 갑자기 변하는 건가 봐. 하나가 담담하게 말했다.(<은의 세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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