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본의 국조(일본 꿩)


꿩은 한국에도 있지만 일본 꿩(키지(キジ, 雉))은 일본의 고유종이다.

꿩이 국조인 이유는 일본의 설화 <모모타로>에 나오기 때문이다.

(...) 그런데 사실 일본 꿩이 일본의 국조라는 사실은 일본 사람도 대부분 모를 것이다.

나도 찾아볼 때까지 몰랐다. - 115쪽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가 (옮겨)쓴 <모모타로> 민담





2. 후지산


일본의 상징이라고 하면 후지산을 떠올릴 사람이 많을 것 같다. 높이 3,776미터인 후지산은 일본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 후지산을 그린 작품으로는 가쓰시카 호쿠사이(1760~1849)의 '후카쿠 36경'이 대표적이다.(...)

46점 중에 가장 유명한 작품이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아래'라는 제목의 작품이다.(...)

실제 후지산이 보이는 온천도 인기가 많다. 그 중 하나는 도쿄 근교의 '하코네 온천'이다.




* 출처 : 위키백과



* 후지산이 보이는 하코네 온천



3. 벚꽃


일본 사람에게 벚꽃이 특별한 이유는 3월 말부터 4월 초에 피기 때문이다. 한국은 3월에 신학기가 시작하지만 일본은 4월에 시작한다. 졸업, 입학, 입사 시즌이 3월 말부터 4월 초다. 그래서 벚꽃을 보면 헤어짐과 만남의 추억이 떠오른다.

슬픔, 불안, 설렘 같은 감정을 벚꽃을 통해 느끼게 된다.(...)

하나미(花見)는 벚꽃 구경을 의미하는 데 한국처럼 걸어다니면서 보는 것이 아니라 벚나무 밑에 앉아서 음식과 술을 먹고 노는 일이다.(...)

벚꽃은 영화에도 많이 나온다. 특히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애니메이션 <초속 5센티미터(2007)>는 벚꽃이 효과적으로 쓰인 영화다.영화에서는 '초속 5센티미터'를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라고 표현한다. -119~1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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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즈케(ぶぶ漬け, 교토)


오차즈케의 교토방언이 부부즈케다. 

* 부부 : 교토 공식 관광 안내에서는 뜨거운 차를 후후 불어 식힐 때 나는 소리에서 유래


녹차를 뜻하는 일본어 '오차(お茶)'와 절임, 담금이란 뜻을 가진 명사 '쓰케(漬け)'가 결합한 말로써 '쓰케'가 연탁을 겪어 '오차즈케'가 된 것이다.


심야식당 3화에는 오차즈케 시스터즈가 나온다

아마 시즌1에서 톤지루(돼지고기와 채소를 넣어 끓이고 미소(일본식 된장)로 맛을 낸 일본의 대표적인 가정식 요리) 다음으로 가장 많이 나온 요리라고 생각이 든다.



유명한 오차즈케 시스터즈다.

항상 매실, 연어, 명란젓을 토핑해서 오차즈케를 즐긴다.

이 분들의 사연이 궁금하면 시즌1에 3화를 보면 되겠다.



이 음식이 바로 밥에 따뜻한 녹차를 부어먹는 음식 오차즈케, 교토 방언으로 부부즈케다.



책에서 일본사람의 특징을 언급하며 혼네와 다테마에를 설명한다

혼네(本音)는 개인의 내밀한 감정, 욕구, 가치관 등 마음속에 품은 진실된 생각이나 본심을 뜻하고, 다테마에(建前)는 사회적 관계를 원활하게 하고 타인과의 마찰을 줄이기 위해 겉으로 드러내는 공식적인 입장이나 태도, 배려 섞인 멘트를 의미한다.


그러면서, 다테마에라고 하면 교토사람을 떠올릴 사람이 많다고 한다.


가장 유명한 이야기가 부부즈케다.

밥에 따뜻한 녹차를 부어먹는 음식인데 교토사람이 집에 놀러 온 사람한테 "부부즈케 먹을래요?"라고 하면 "슬슬 집에 가라"는 뜻이다. "라면 먹고 갈래?"라는 의미로 통하는 한국과 정말 극과 극이다. 그만큼 교토 사람은 품위 있고 완곡한 표현을 쓴다는 이미지가 있다.

나쁘게 말하면 속마음을 알기 어렵다는 이미지다. - 101쪽


책에서 나오는 일화는 다테마에를 설명하면서 이야기하는 일종의 부부즈케 전설에 가깝다.

실제로는 "별 것은 없지만 부부즈케라도 먹으면서 조금 더 쉬었다 가세요"라는 교토식의 겸손하고 조심스러운 친절표현으로 설명한다. 한국으로 치면 "차린 건 별로 없는데 조금 드셔보시겠어요?"라는 겸손의 표현인 것처럼



부부즈케 자체가 교토의 생활과 밀접한 음식이었다.

에도시대 때는 지금처럼 매 끼니마다 새 밥을 지어먹는 환경이 아니었기 때문에 식어버린 밥을 맛있게 먹는 방법이 필요했다고 한다. 그때 뜨거운 차 등을 부어 토핑하면 간단하고 맛있는 한 끼 완성이다.

부부즈케는 이런 생활의 지혜에서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음식이기도 하다.


밥 위에 올리는 토핑 또한 매우 다양한데

김, 아라레(あられ), 우매보시(梅干し), 오오바(大葉), 미역(わかめ), 후리카케(ふりかけ) 등이 올라간다.




교토에 가면 부부즈케 한 그릇 먹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한국의 누룽지탕 정도로 생각하면 비슷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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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늘 바쁘게 살까? 할 일이 많아서 바쁜 것도 맞지만, 가만히 있으면 왠지 불안하고 다른 사람보다 뒤처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은 아닐까? 무기력하게 보내면 죄책감도 든다.쉬는 날에도 해야 할 일을 생각하고, 잠깐의 여유가 생기면 그 시간에 무엇이라도 해야 할 것 같다.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으면 음악이라도 들어야 되니,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허전하다.

어느 순간부터 쉬는 것조차 제대로 쉬는 방법을 고민하게 됐다. 참 이상한 일이다.


한병철의 『피로사회』를 읽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현대인은 누군가의 강요에 의해서만 일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다. 남이 시키지 않아도 자신을 몰아붙이고, 일을 끝내고 나면 또 다른 목표를 세운다. 열심히 사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언제까지 얼마나 더 열심히 살아야 하는 걸까. 목표를 달성하면 행복해질 줄 알았는데, 막상 그곳에 도착하면 또 다른 목표가 기다리고 있다. 결국 우리는 끝없이 달리면서도 정작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잊어버린 채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예전 독서모임에서 읽고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책이다

버트런드 러셀의 『게으름에 대한 찬양』은 이런 삶에 조금 다른 시선을 던진다. 우리는 흔히 부지런함은 좋은 것이고 게으름은 고쳐야 할 습관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별다른 의심 없이 그렇게 생각해 왔다. 그런데 꼭 그럴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내는 시간은 정말 낭비일까. 일을 하지 않는 시간에도 충분히 생각하고, 주변을 둘러보고, 좋아하는 것을 즐길 수 있다. 오히려 무언가를 계속 해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 알게 되는 것은 아닐까.






제 생애 최고의 책을 꼽을 때면 늘 상위권에 자리하는 책이다. 동영상을 통해 한 편 한 편 듣고 읽어 나갈 때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일렁였다. 특히 아내와 함께 영상을 보고 생각을 나누었던 시간은 더욱 특별했다. 같은 이야기를 듣고도 서로 다른 감정과 생각을 나누며 함께 삶을 돌아볼 수 있었다.

강신주의 『장자수업』 중 '쓸모없음의 쓸모'에 관한 이야기는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장자는 세상이 정해 놓은 쓸모의 기준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쓸모없는 나무는 베이지 않고 오래 살아남는다. 쓸모가 없어서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쓸모없음 때문에 자기 삶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강신주의 말은 때로 신랄하고 거침없다. 세상이 당연하게 여기는 가치와 통념을 날카롭게 파고든다. 그런데 그 신랄함이 오히려 후련하게 다가온다. 애써 외면했던 현실을 직시하게 하고, 마음속에 쌓아 두었던 상처와 응어리를 씻어 내리는 듯하다.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생각을 대신 말해 주는 것 같아 아프면서도 묘한 해방감과 위로를 느낀다.




세 권의 책은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결국 한 가지 질문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왜 끊임없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고 하는가. 『피로사회』는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현대인의 모습을 보여 주고, 『게으름에 대한 찬양』은 일하지 않는 시간의 가치를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장자수업』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가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는 쓸모라는 기준 자체를 의심하게 만든다.


물론 모든 일을 내려놓고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누구에게나 책임이 있고, 해야 할 일도 있다. 다만 책임을 다하는 것과 자신을 끊임없이 소모하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바쁘다고 해서 반드시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런 성과가 없다고 해서 그 시간이 무의미한 것도 아니다. 가끔은 멈춰 서서 내가 왜 이렇게까지 애쓰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오래 남은 생각은 이것이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쓸모 있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 온 것은 아닐까. 직장에서든, 가정에서든, 사회에서든 늘 무언가를 해내야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하지만 사람의 가치를 성과나 능력만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아무런 결과를 만들어 내지 못한 날에도, 그저 평범하게 하루를 보낸 날에도 삶의 의미는 있을 것이다.

이제는 조금 다르게 살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일을 잘하려고 애쓰기보다 어떤 일은 적당히 내려놓고, 남들보다 앞서가려고 조급해하기보다 내 속도대로 걸어가는 것... 어쩌면 그런 삶이 게으른 삶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제대로 돌보는 삶일지도 모르겠다.


세 권의 책을 읽고 나서도 여전히 해야 할 일은 많고, 바쁜 일상은 쉽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한 가지는 기억하고 싶다.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애쓰는 것도 좋지만,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 역시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평생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달려왔다면, 이제는 가끔 멈춰 서도 괜찮지 않을까. 그 멈춤이 게으름이 아니라 나 자신을 되찾는 시간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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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보면 특별한 이유 없이 마음이 편안해지는 작가가 있다. 내게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

런 작가다. 그의 소설은 삶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익숙한 일상에 작은 틈

을 만들고, 그 틈으로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풍경을 들여다보게 한다. 『가호』를 읽으면서도 그

런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나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되고, 평소에

는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았던 감정들이 조용히 떠오른다.


하루키의 작품에는 세상에 완전히 섞이지 못한 채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인물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들은 때로 외로움을 느끼고,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에 사로잡히며, 자신이 무엇을 원

하는지조차 명확하게 알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러나 그런 모습이 낯설게 느껴지지

는 않는다. 우리 역시 겉으로는 별다른 문제 없이 살아가는 듯 보여도 마음속에는 말로 설명하

기 어려운 공허함이나 막연한 그리움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키의 이야기가 마음에 남는 이

유는 어쩌면 그런 감정들을 특별한 것으로 취급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삶의 한 부

분으로 바라보기 때문일 것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의 일상은 수많은 감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별다른 일 없이 지나간 하루가 문

득 그리워지기도 하고, 기쁜 순간에도 설명하기 어려운 쓸쓸함이 찾아온다. 누군가에게는 사소

한 일처럼 보이는 일이 오래 마음에 남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감정들을 충분히 들여다보

기보다 빨리 정리하고 다음 일로 넘어가려 한다. 슬픔에는 이유를 찾고, 불안에는 해결책을 마련

하며, 설명되지 않는 마음은 애써 외면하기도 한다. 하루키의 소설을 읽을 때면 반드시 모든 감

정에 이름을 붙이거나 하나의 의미로 정리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때로는 이해하는 것보

다 그 감정이 머물도록 내버려 두는 편이 더 자연스러울 수 있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지나간 시간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이미 지나간 일을 아쉬워하

고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걱정하며 살아간다.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을 붙잡으려 하고, 일어나지

도 않은 일을 미리 염려하느라 정작 지금 눈앞에 놓인 것들을 놓치곤 한다. 나 역시 해야 할 일

을 해내느라 바쁘게 하루를 보내다 보면 무엇을 했는지는 기억해도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보냈

는지는 잊기 쉽다. 일과 책임에 집중하는 동안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하거

나, 내 생각만으로 상황을 판단했던 순간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지나간 일을 하나하나 되짚으며 자신을 탓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누구나 모든 순간

에 완벽할 수는 없고, 아무리 애써도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은 있기 마련이다. 모든 일에 분명한 이

유가 있는 것도 아니며, 끝내 이해하지 못한 채 남겨 두어야 하는 일도 있다. 삶은 생각보다 많

은 것을 미완성인 채로 남겨 둔다. 어쩌면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을 이해하고 해결하는 일

이 아니라, 해결되지 않은 것들을 안고서도 자신의 삶을 계속 살아가는 일인지 모른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문득 내가 살아가는 속도를 돌아보게 된다. 우리는 어디론가 향하는 데 

익숙하다. 해야 할 일을 마치고, 다음 목표를 세우고, 다른 사람보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부지런

히 움직인다. 바쁘게 살아가는 것이 성실한 삶의 모습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물론 맡은 일을 

다하고 책임을 지는 일은 중요하다.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데만 마음을 쏟다 보면 정작 내 마

음이 어디쯤 와 있는지는 살피지 못할 때가 있다. 몸은 하루의 일정을 따라가고 있지만 마음은 

이미 지쳐 있거나, 오래전부터 외면해 온 감정이 뒤늦게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어쩌면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렇게 뒤처진 마음을 기다려 주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잠시 다

른 세계에 머물다가 돌아오면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 해결되지 않은 고민은 그대로 남아 있고 

내일 해야 할 일도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당장 무언가를 해내야 한다

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다. 서두르지 않고 문장을 따라가며, 평소에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

던 감과 마주할 수 있다. 그렇게 잠시 멈추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조금 가벼워질 때

가 있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읽는 즐거움도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새로운 이야기를 만나는 설렘도 좋지

만, 익숙한 작가의 문장 속에서 내가 미처 표현하지 못했던 마음을 발견하는 순간은 더욱 특별하

다. 작가가 내 삶을 대신 살아 줄 수는 없고, 내가 겪는 문제에 직접적인 해답을 줄 수도 없

다. 하지만 어떤 문장은 내가 느끼고도 설명하지 못했던 감정을 대신 말해 주고, 어떤 이야

기는 혼자만 그런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조용히 일깨워 준다. 책을 

덮은 뒤에도 그 문장과 감정이 한동안 마음에 남는 이유일 것이다.


『가호』를 읽으며 다시 생각한 것은 삶을 살아가는 데 반드시 분명한 방향과 결론이 필요한 것

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는 때로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하고, 어떤 선택이 옳은지 확

신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그럴 때마다 서둘러 답을 찾으려 하지만, 모든 질문에 즉시 답할 수 있

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이해하지 못하는 일도 시간이 흐른 뒤에는 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 있고, 

끝내 답을 찾지 못하더라도 그 자체로 삶이 잘못된 것은 아닐 것이다. 중요한 것은 불확실함을 

완전히 없애는 일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면서도 자신의 속도로 걸어가는 일인지 모른다.

좋은 책은 어쩌면 길을 알려 주기보다 잠시 쉬어 갈 자리를 내어 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

시 걸어가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지만, 잠깐 쉬었다고 해서 길에서 멀어진 것은 아니

다. 


『가호』를 덮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내일도 해야 할 일은 여전히 많고, 살아가면서 마주

할 고민과 걱정도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모든 것을 서둘러 이해하려 하지 않고, 때

로는 멈추어 자신의 마음을 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다. 지나가는 것들을 모두 붙잡을 수는 없겠

지만, 적어도 그 곁을 지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조금 더 천천히 느끼면서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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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님도 어느덧 1949년생이니 78세네요.
제 나이 먹는 것도 저항과 체념 사이에서 몸과 마음이 변화를 겪고, 안타깝고 혹독한데(앞으로는 얼마나 가혹할지 아무도 모를 것입니다 누구나 공평하게) 노르웨이의 숲(1987년 作) 출간 당시 38세였던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시간은 쏜살같이 흐르는구나. 앞으로 쓸 작품들이 많이 남지 않았다는 것에 또 한번 이번 작품이 소중하게 다가옵니다.

얼마 전 간송미술관에 <겸재 정선>작품 전시회에 갔는데, 학생 때 교과서에서 배운 것이 얼마나 단편이었나. 정선은 모든 화풍을 섭렵한 다양한 작품들을 후대에 남겼구나. 하는 생각의 괴리가 절 또 한번 겸재 정선에 대해 눈뜨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정선은 84세까지 살면서 인생 후반기에도 왕성한 작품활동을 한 덕분에 우리에게 풍부한 인생 전반의 화풍을 남기게 되고, 우리의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해주었습니다.
- 유홍준의 화인열전 <겸재정선>도 읽어보고 싶네요. 최근 구설에 올랐지만.


하루키 님에게 바라는 작은 소망은 오래 살면서 1년에 한번 에세이, 2년에 한번 장편소설을 출간해주셨으면. 그래서 돌아가시기 전에 꼭 노벨문학상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제, 오랜만에
담백하고 기묘한 하루키월드에 제 그림자를 떼놓고 들어가보려 합니다.
이 책의 출간을 기다렸던 여러분들의 마음도 저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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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10-24 23: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본에서도 하루키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간절히 희망하고 있다고 하는데 스웨덴 한림원의 성별 지역 안배 정책에 의해서 받을 가능성이 자꾸 낮아진다고 해서 좀 안타깝더군요.

북프리쿠키 2026-10-28 13:45   좋아요 0 | URL
아 그렇게 하는가봐요. 안타깝네요!
언젠가는! 전세계에 하루키월드를 만들어가는 하루키님이 꼭 받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