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늘 바쁘게 살까? 할 일이 많아서 바쁜 것도 맞지만, 가만히 있으면 왠지 불안하고 다른 사람보다 뒤처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은 아닐까? 무기력하게 보내면 죄책감도 든다.쉬는 날에도 해야 할 일을 생각하고, 잠깐의 여유가 생기면 그 시간에 무엇이라도 해야 할 것 같다.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으면 음악이라도 들어야 되니,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허전하다.
어느 순간부터 쉬는 것조차 제대로 쉬는 방법을 고민하게 됐다. 참 이상한 일이다.
한병철의 『피로사회』를 읽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현대인은 누군가의 강요에 의해서만 일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다. 남이 시키지 않아도 자신을 몰아붙이고, 일을 끝내고 나면 또 다른 목표를 세운다. 열심히 사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언제까지 얼마나 더 열심히 살아야 하는 걸까. 목표를 달성하면 행복해질 줄 알았는데, 막상 그곳에 도착하면 또 다른 목표가 기다리고 있다. 결국 우리는 끝없이 달리면서도 정작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잊어버린 채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예전 독서모임에서 읽고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책이다
버트런드 러셀의 『게으름에 대한 찬양』은 이런 삶에 조금 다른 시선을 던진다. 우리는 흔히 부지런함은 좋은 것이고 게으름은 고쳐야 할 습관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별다른 의심 없이 그렇게 생각해 왔다. 그런데 꼭 그럴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내는 시간은 정말 낭비일까. 일을 하지 않는 시간에도 충분히 생각하고, 주변을 둘러보고, 좋아하는 것을 즐길 수 있다. 오히려 무언가를 계속 해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 알게 되는 것은 아닐까.


제 생애 최고의 책을 꼽을 때면 늘 상위권에 자리하는 책이다. 동영상을 통해 한 편 한 편 듣고 읽어 나갈 때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일렁였다. 특히 아내와 함께 영상을 보고 생각을 나누었던 시간은 더욱 특별했다. 같은 이야기를 듣고도 서로 다른 감정과 생각을 나누며 함께 삶을 돌아볼 수 있었다.
강신주의 『장자수업』 중 '쓸모없음의 쓸모'에 관한 이야기는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장자는 세상이 정해 놓은 쓸모의 기준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쓸모없는 나무는 베이지 않고 오래 살아남는다. 쓸모가 없어서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쓸모없음 때문에 자기 삶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강신주의 말은 때로 신랄하고 거침없다. 세상이 당연하게 여기는 가치와 통념을 날카롭게 파고든다. 그런데 그 신랄함이 오히려 후련하게 다가온다. 애써 외면했던 현실을 직시하게 하고, 마음속에 쌓아 두었던 상처와 응어리를 씻어 내리는 듯하다.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생각을 대신 말해 주는 것 같아 아프면서도 묘한 해방감과 위로를 느낀다.
세 권의 책은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결국 한 가지 질문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왜 끊임없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고 하는가. 『피로사회』는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현대인의 모습을 보여 주고, 『게으름에 대한 찬양』은 일하지 않는 시간의 가치를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장자수업』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가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는 쓸모라는 기준 자체를 의심하게 만든다.
물론 모든 일을 내려놓고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누구에게나 책임이 있고, 해야 할 일도 있다. 다만 책임을 다하는 것과 자신을 끊임없이 소모하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바쁘다고 해서 반드시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런 성과가 없다고 해서 그 시간이 무의미한 것도 아니다. 가끔은 멈춰 서서 내가 왜 이렇게까지 애쓰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오래 남은 생각은 이것이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쓸모 있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 온 것은 아닐까. 직장에서든, 가정에서든, 사회에서든 늘 무언가를 해내야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하지만 사람의 가치를 성과나 능력만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아무런 결과를 만들어 내지 못한 날에도, 그저 평범하게 하루를 보낸 날에도 삶의 의미는 있을 것이다.
이제는 조금 다르게 살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일을 잘하려고 애쓰기보다 어떤 일은 적당히 내려놓고, 남들보다 앞서가려고 조급해하기보다 내 속도대로 걸어가는 것... 어쩌면 그런 삶이 게으른 삶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제대로 돌보는 삶일지도 모르겠다.
세 권의 책을 읽고 나서도 여전히 해야 할 일은 많고, 바쁜 일상은 쉽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한 가지는 기억하고 싶다.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애쓰는 것도 좋지만,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 역시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평생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달려왔다면, 이제는 가끔 멈춰 서도 괜찮지 않을까. 그 멈춤이 게으름이 아니라 나 자신을 되찾는 시간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