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ㅇㅈ님께 선물받은 책입니다. 고맙습니다.


나이가 들어 좋은 점은 그 사람(부모든 누구든 간에)이 나에게 해준 것과 나쁜 것을 분리해서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기대와 실망이 뱅글뱅글 돌며 함께 추는 왈츠와 닮았다. 기대가 한 발 앞으로 나오면 실망이 한 발 뒤로 물러나고 실망이 오른쪽으로 돌면 기대도 함께 돈다. 기대의 동작이 크면 실망의 동작도 커지고 기대의 스텝이 작으면 실망의 스텝도 작다. 큰 실망을 피하기 위해 조금만 기대하는 것이 안전하겠지만 과연 그 춤이 보기에도 좋을까?-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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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반복된다.

1976년 박정희가 기자 회견에서 직접 이야기한, 국민을 기만한
포항 석유설,

이것도 유신체제수호라는
정치적 목적이 없었다면 그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었다.-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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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설에서 읽은 마음에 드는 문장을 옮겨봅니다.


사람들은 새해를 거창한 변화의 시작으로 착각하지만, 실제로 삶을 바꾸는 것은 피하고 싶은 고통을 이겨낸 조용한 반복이다




끝없는 경쟁속에서 자기 삶의 박자를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비교하지 않고 설명하지 않고 스스로의 호흡에만 귀를 기울이는 하루키의 고독한 달리기는 닮고 싶은 삶의 태도다




하루키의 달리기에서 나의 하루하루 달리기에서 나는 인간이 자기 삶을 견디는 방식, 목표보다 리듬을 지키는 삶, 빨기 가는 것보다 그만두지 않는 선택을 배운다. 새해의 시작에서 우리는 무엇을 다짐해야 할까. 더 빨리 가겠다는 결심보다 더 오래 가겠다는 약속, 더 많은 것을 이루겠다는 목표보다 끝까지 가보겠다는 태도, 그러므로 새해는 거창한 출발선이 아니어도 괜찮다, 다만, 다시 운동화 끈을 묶는 시간이다. 조용히, 묵묵히, 자기 삶의 속도로 달리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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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모임에 선정된 책으로 체코 여행 이후 더욱 더 애착이 가는 책입니다.

좋은 기회로 2번째 재독하는 책입니다.


책의 표지는 프란시스 피카비아 <열대>라는 작품입니다.



피카비아의 <열대>는 사랑하는 이들의 고통을 기괴한 아름다움으로, 화려한 색채로 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은 서로 사랑했는데도 상대방에게 하나의 지옥을 선사했다.


내 안의 모든 것 나만 없는 나의 세계, 수많은 눈을 가졌어도 영원히 볼 수 없는 진실, 강렬한 키스, 뜨거운 포옹, 눈부신 태양과 푸른 강 빛나는 열대, 끝없이 자라는 나무, 매혹적인 선인장 가시, 나는 아름다운 괴물을 사랑했다.


여자와 남자는 서로에게 외계인일까? 서로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괴물과 같이.


프란시스 피카비아(1879~1953)는 말했다


나는 바람에게 자신의 비밀을 공유하는 아름다운 괴물이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서 사랑하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일은 가능한가?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인간의 "사랑"에 대해서 생각해 볼 시간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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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가벼움과 무거움 중 p.9 ~40



뒤집어 생각해보면 영원한 회귀가 주장하는 바는, 인생이란 한번 사라지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한낱 그림자 같은 것이고, 그래서 산다는 것에는 아무런 무게도 없고 우리는 처음부터 죽은 것과 다름없어서, 삶이 아무리 잔혹하고 아름답고 혹은 찬란하다 할지라도 그 잔혹함과 아름다움과 찬란함조차도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모든 모순 중에서 무거운 것-가벼운 것의 모순이 가장 신비롭고 가장 미묘하다.



사람이 무엇을 희구해야만 하는가를 안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사람은 한 번 밖에 살지 못하고 전생과 현생을 비교할 수도 없으며 현생과 비교하여 후생을 바로잡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토마시는 독일 속담을 되뇌었다.

einmal ist keinmal.

한 번은 중요치 않다. 한 번뿐인 것은 전혀 없었던 것과 같다. 한 번만 산다는 것은 전혀 살지 않는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손에는 두꺼운 책 한권을 들고 있었다. 톨스토이의 <안나까레리나>였다.



그는 자신은 어떤 여자든간에 한 여자와는 살 수 없고 오로지 독신일 경우에만 자기 자신답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당시 토마시는 은유란 위험한 어떤 것임을 몰랐다. 은유법으로 희롱을 하면 안 된다. 사랑은 단 하나의 은유에서도 생겨날 수 있다. 



그는 여자를 갈망하면서도 두려워했다. 두려움과 갈망 사이에서 어떤 타협점을 찾아야만 했고, 그 타협점을 그는 '에로틱한 우정'이라 불렀다. 그는 애인들에게 이렇게 못을 박았다. 두 사람 중 누구도 상대방의 인생과 자유에 대한 독점권을 내세우지 않는, 감상이 배제된 관계만이 두 사람 모두에게 행복을 줄 수 있다고.



당신은 모든 점에서 키치와는 정반대라서 당신을 사랑하는 거야. 키치의 왕국에서 당신은 괴물이야. 미국 영화나 소련 영화에서 당신 같은 사람은 파렴치한 역할 밖에는 할 수 없을 거야.


토마시는 생각했다. 한 여자와 정사를 나누는 것과 함께 잔다는 것은 서로 다를 뿐 아니라 거의 상충되는 두 가지 열정이라고.

사랑은 정사를 나누고 싶다는 욕망이 아니라(이 욕망은 수많은 여자에게 적용된다), 동반 수면의 욕망으로 발현되는 것이다(이 욕망은 오로지 한 여자에게만 관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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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독을 마치며~


p 156 ~ 277 끝


그 상태에서는 달린다는 행위가 거의 형이상학적인 영역에까지 이르고 있었다. 행위가 먼저 거기에 있고, 그 행위에 딸린 것 같은 존재로서 내가 있다. 나는 달린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오늘의 PICK!!

중요한 것은 시간과의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다. 어느 만큼의 충족감을 가지고 42킬로를 완주할 수 있는가, 얼마만큼 자기 자신을 즐길 수 있는가. 아마도 그것이 이제부터 앞으로의 큰 의미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 아닐까.

수치로 나타나지 않는 것을 나는 즐기며 평가해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제까지와는 약간 다른 성취의 긍지를 모색해가게 될 것이다.



또 하나,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의 번역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중략)

진짜 대단한 소설이다. 몇 번을 다시 읽어도 질리지 않는다. 문학으로서의 깊은 자양분이 넘친다. 읽을 때마다 무엇인가 새롭게 발견할 수 있고, 새롭게 강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특성이 있다. 29세의 약관의 작가가 어떻게 이렇게까지 예리하고 공정하며 마음 따뜻하게 세상의 실상을 읽어낼 수 있었을까?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읽으면 읽을수록 불가사의할 뿐이다.


아무튼 레이스에 출장해서 완주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골인하는 것, 걷지 않는 것, 그리고 레이스를 즐기는 것 이 세가지가 순서대로 내 목표다.


우리의 의식이 미로인 것처럼 우리의 몸 역시 또 하나의 미로인 것이다. 도처에 어둠이 있고, 도처에 사각이 있다. 도처에 무언의 암시가 있고, 도처에 이중성이 기다리고 있다.


무슨 일의 기본을 착실하게 몸에 익히려면 많은 경우 육체적인 아픔이 필요한 것이다.


나는 원칙적으로 마라톤 풀코스를 달리는 것인 1년에 한번으로.


낡은 보스턴백처럼 그것을 둘러메고, 나는 긴 여정을 걸어온 것이다. 좋아서 짊어지고 온 것은 아니다. 내용에 비해 너무 무겁고, 겉모습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군데군데 터진 곳도 보인다. 하지만 그것 외에는 짊어지고 갈 것이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메고 온 것이다. 그러나 그만큼 애착도 간다. 물론.


어떤 경우에는 시간을 들이는 것이 가장 가까운 지름길이 된다.


보통 사람들처럼. 가령 몇 살이 되어도 살아 있는 한, 나라고 하는 인간에 대해서 새로운 발견은 있는 것이다.


효능이 있든 없든, 멋이 있든 없든, 결국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은 대부분의 경우, 눈에는 보이지 않는(그러나 마음으로는 느낄수 있는) 어떤 것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진정으로 가치가 있는 것은 때때로 효율이 나쁜 행위를 통해서만이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비록 공허한 행위가 있었다고 해도, 그것은 결코 어리석은 행위는 아닐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실감으로써, 그리고 경험칙으로써.


개개인의 기록도, 순위도, 겉모습도, 다른 사람이 어떻게 평가하는가도, 모두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와 같은 러너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하나의 결승점을 내 다리고 확실하게 완주해 가는 것이다.


무라카미하루키

작가(그리고 러너)

1949~20**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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