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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한정판 더블 커버 에디션)
알랭 드 보통 지음, 김한영 옮김 / 은행나무 / 2016년 8월
평점 :
품절
알랭드보통의 2번째 책이다.
이 책을 집어들게 된 이유는
독서토론모임의 선정책이기도 하거니와
전작 <우리는 사랑일까>를 재미있게 읽은 지 얼마되지 않아
서친 락방님이 리뷰에 별풍선 다섯개를 쏘는 바람에
쾌감을 부르는 '바로주문' 을 클릭할 수 밖에 없었다.
"한때 그가 낭만이라 보았던 것-무언의 직관, 순간적인 갈망, 영혼의 짝에 대한 믿음-이
두 사람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하는지를 배워가는 데 방해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사랑을 유발했던 신비한 열정으로부터 눈을 돌릴 때 사랑이 지속될 수 있음을,
유효한 관계를 위해서는 그 관계에 처음 빠져들게 한 감정들을 포기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에 이를 것이다.
이제 그는 사랑은 열정이라기보다 기술이라는 사실을 배워야만 할 것이다."-16쪽
내가 늘 사랑에 대해 견지하고 있던 생각들이다.
우리는 늘 "사랑"이라는 단어앞에서 현실적이지 못하다.
그리고 늘 사랑은 현실이다 란 말을 애써 외면한다.
남녀의 관계는 본디 인간관계인데 거기다가 "사랑"을 덧씌우면
꾸준히 감내할 수 없는 고귀한 가치들을 강요받는다.
특히나 섹스를 트게 되면(▶저작권은 "다락방"님께 있다는 걸 알려드립니다)
호르몬의 노예가 되어 감정과잉의 단어들을 남발하기 마련이고,
영원히 사랑할 것 같은 착각에 휩싸인다.
하지만
그 순간 정점을 찍고 나서는
무시무시한 내리막길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매스컴에서 보도되는 "사랑의 끝 데이트 폭력"을 떠올리면 가장 쉽지 않을까,
아니면, 3쌍중 1쌍 정도가 헤어지는 이혼은 어떨까)
현실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다'는
전래동화가 아니니 말이다.
블라디미르 나브코프의 <롤리타>의 첫문장을 한번 볼까.
<<롤리타, 내 삶의 빛, 내 몸의 불이여. 나의 죄, 나의
영혼이여.
롤-리-타. 혀끝이 입천장을 따라 세 걸음 걷다가 세 걸음째에 앞니를 가볍게 건드린다.
롤.리.타">>
사랑의 대상이
내 삶에 빛으로 다가와 내 몸에 불을 붙이고
급격히 "나의 죄"로 서로에게 흉터를 남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문장에 "나의 죄"라는 갑작스런 반전이 없었다면
과연 이 짧은 문장이 이토록 깊은 울림을 주겠는가.
나의 영혼을 다 바친 사랑의 대상은
언제나 서로에게 원죄같은 상처를 남긴다.
김정일 작가의 제목처럼 말이다.
이렇게 비관적으로만 글을 쓰니
젊은날에 사랑에 실패를 많이 해봤네~.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글쎄..그럴수도 있겠다.
어쩌면 상처받는 게 두려워서일까.
"상처받고 외로워서 이런 성격이 되었나~
누가 날 꾸지리하고 어둠침침한 성격으로 보면 어쩌지..
애써 밝은 척, 관대한 척 하는 게 얼마나 에너지 소모가 큰지
에라이~지랄하든 말든 내 생각대로 살자"
ㅎㅎ 물론 타고난 성격이 어디 가겠는가.
속을 겉으로 표현하지 않거나
표현하더라도 완곡하게 전달하는 성격탓으로
뒤에서 궁시렁거리는 것만 느는 것 같다.
일이든, 사랑이든, 인간관계든 말이다.
우스개 소리지만
가끔 하는말이 있다.
"로또 맞으면 싸가지 없이 한번 살고 싶다"
말 그대로 속에 있는 말 다 내뱉으면서 말이다..
십년이 넘었나?
나의 마음을 헤아려 준 책이 있었다.
법정스님을 좋아하게 된 구절이다.
내가 평소 사랑에 대해서 냉소적이거나 살짝 비틀어진 마음을 갖고 있는 걸
딱 꼬집어 동의해 주셨다.
<<그러고 보면 사랑한다는 것은
이해가 아니라 상상의 날개에 편승한 찬란한 오해다.
'나는 당신을 죽도록
사랑합니다.'라는 말의 정체는 '나는 당신을 죽도록 오해합니다.'일 것이다.
누가 나를 추켜세운다고 해서
우쭐댈 것도 없고 헐뜯는다고 해서 화낼 일도 못 된다.
그건 모두가 한쪽만을 보고
성급하게 판단한 오해이기 때문이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젠장, 그건 말짱
오해라니까." >> - 법정스님의 무소유 中에서
사랑을 하게 되면,
상대방의 '살아온 인생 전체' 를 품는다 하거늘
어찌 그렇게 성급하게 판단하고, 희망하느냐 말이다.
그러니 오해의 일상이 되는 것이다.
난롯가에 앉아 불을 쬘때
다가서면 화상을 입게 되고,
물러나면 쉬이 추워지니
그 적절하게 온기있는 지점을 찾아가는 게
인간관계의 맥이고, 사랑의 현명함이겠다.
하지만 누군가는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건
사랑에 대한 모독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내 이야기는 차라리 사랑을 모독할지언정
사랑하는 상대방을 모독하지 말자는 이야기다.
고등학교때 좋아하는 시의 한구절이 생각난다.
<칼릴지브란-예언자>
아마도 사랑에 대한 상처를 받기 전 이 시를 좋아했는 걸로 봐서는
내 안의 성향자체가
사랑하는 사이끼리는 적절한 거리가 있어야 된다는 지론을 갖고 있었던게 틀림없다.
<<그때에 알미트라가 다시 입을 열어,
"결혼이란 무엇인가요, 스승님?" 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그대들은 함께 태어났고, 그리고 앞으로 영원히 함께 할 것이다.
죽음의 하얀 날개가 그대들의 날들을 사라지게 할 때까지 그대들은 함께 할 것이다.
아아. 그대들은 신의 말없는 기억속에서도 항상 함께 할 것이다.
그러나 그대들의 함께 있음 가운데에
빈 공간이 있게 하고,
그대들 사이에서 하늘의 바람들이 춤추게 하시오
서로 사랑하시오,
그러나 사랑이 속박이 되지 않게 하시오.
차라리 그대들의 영혼의 대지들 사이에 출렁이는 바다가 있게 하시오.
서로 다른 사람의 컵을 채우시오, 그러나 한 컵에서 마시지는 마시오.
서로에게 그대들의 빵을 주시오, 그러나 같은 덩어리를 먹지는 마시오.
함께 노래하고 춤추고, 즐기시오, 그러나 당신들 각자는 홀로 있으시오.
류트의 줄들이 같은 음악을 연주할지라도, 떨어져 있는 것처럼.
서로에게 그대들의 마음들을 주시오.
그러나 각자가 지니고 있는 마음들 속으로 자신의 생각을 밀어 넣지는 마시오
왜냐하면 단지 생명의 신의 손길만이 그대들의 마음을 간직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함께 할지라도 너무 가까이 서있지 마오.
왜냐하면 사원의 기둥들도 떨어져 서있고,
그리고 참나무와 사이프러스 나무도 서로의 그늘 안에서는 자라지 못하기 때문이오.>>
소유하려는 태도는 집착일 뿐이다.
집착은 그저 피곤하다. 나도 상대방도.
알고 있으면서도 문명과 물질문화속에서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고 하는 마음을 버리지 못하고
점입가경으로 사람조차도 소유하려고 한다.
사랑은 서로의 그늘에서 벗어나 완전한 독립체여야
'진정한 사랑을 할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러 책들의 내용들을 소개하며
내 입맛에 맞는 내용들만 발췌해서
이것이 나의 사랑관이다라고만 몰자니
다소 이 글을 읽는 분들이 불편한 구석이 없지 않아 있을 수도 있겠다.
본디 개인의 인생관이나 세계관은
'자아'에서 비롯되니 드넓은 내면의 바다속 그저 한 부분이라고 봐주면 좋겠다.
'겨우 한조각의 관점' 정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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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기혼자들이 주로 겪게 되는 사랑의 변곡점마다 마음속에 내재된 심리와 상처를
과감히 드러내어
"누구나 다 그러하니 너만 특별하게 내리막길을 걷는 게 아니다."란 말로
마음의 상처들을 토닥여 준다.
사랑이 정점에서 추락할 때 적절한 시점에 낙하산을 펼칠 줄도 알고
경사가 급할 땐 브레이크도 밟을 줄 아는 지혜를 얻고자 한다면
비참하게 사랑의 종말을 맞는 비극을 피할 수 있을 것이고,
"그 후로도 오랫동안~"
소울메이트 그남자, 그여자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