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부 자유, 자유인˝을 관통하는 문장은 단연코

˝우리의 비극은 자유를 빼앗겼는데,
자유의 이름으로
자유를 빼앗긴 탓에
빼앗긴 자유를 되찾으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 46쪽

라고 생각한다.


거의 한세기전 간디가 사회를 병들게 하는 사회악으로
1. 원칙없는 정치
2. 노동없는 부
3. 양심없는 쾌락
4. 인격없는 지식
5. 도덕없는 상업
6. 인간성없는 과학
7. 헌신없는 신앙
이렇게 7가지를 꼽았다.

우리 대한민국의 현 상황을 보자면, 병든 수준을 넘어 사회악이 판을 친다. 저기 7개 중에 하나라도 자신있게 해당되지 않는다라고 말할 수 있는 조항이 있을까?

특히 우리가 자유를 빼앗긴 이유 중 가장 큰 원인은 두번째 ˝노동없는 부˝라고 생각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자유나 사람됨에는 관심이 별로 없고 그의 소유물과 그가 속한 집단, 계층에 관심이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인간이 아니라 그가 가진 구매력이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의 1차적 관심사는 자신의 은행 잔고˝라는 어느 철학자의 말이 시사하듯이 구매력을 높이거나 유지하기 위한 긴장만 남은 것, 그래서 어떤 존재가 될 것인가라는 물음에는 관심이 없는, 자기 형성의 자유를 일찍부터 내던진 삶을 살아가는 것이 한국 사회 구성원 대다수의 모습이라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 15쪽


우린 대부분 노예로 살고 있다.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괴물의 노예로 말이다.
자본주의는 노예로 편하게 살 수 있다고 속삭인다.
그리고, 좀 더 편한 노예로 살기 위해 경쟁한다
그래서 우린 자유라는 이름으로 자유를 빼앗기고도,
그 자유보다 돈의 속삭임이 더 달콤해서
자유를 되찾으려고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애초에 자유를 빼앗긴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편하고 안락한 삶에 대한 욕망 앞에서 자유의 참된 의미는 점점 더 힘을 잃고 있다.

우린 자유의 조건인 외로움과 불안이 버거워지면 자유로부터 스스로 도피할 위험이 있다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에리히 프롬이 말해듯이, 어딘가에 속해 있지 않고 삶이 어떤 의미와 방향도 갖지 않으면 자신의 존재가 한낱 티끌처럼 느껴지고 무의미하다는 느낌에 압도당하게 된다.(...) 조지 오웰의 <1984>에 ˝자유는 예속˝이라는 구호가 나온다. - 26쪽


우린 집단 속에 안주하고 싶어 하고, 집단 속에서도 다수파에 속하고 싶어 한다.
직장에서나 학교에서도 주체적으로 판단함없이 다수의 그늘에 숨어 안락함을 택한다.
공부잘하는 친구 그룹에, 소위 잘 나가는 상사 밑에, 진급이 빠르고 인정받는 총무과에, 평이 좋은 사람 옆에..
조지오웰의 ˝자유는 예속˝이라는 말을 다시 상기해보면 참으로 명작이었구나. 다시 감탄하게 된다.

여담이지만 언젠가 직장내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가, 평소 안면이 있는 직원이 지나가길래 아는 척을 했다가 같이 대화를 나누는 동료에게 한소리 들었다.
˝저 사람하고 친한 척 하지마, 같이 엮인다˝라고.
동료에게 농담반, 진담반으로 쏘아붙였다.
˝내 친분은 내가 정한다˝라고..
그래놓고 돌아보니 슬쩍 밀려오는 자괴감이라 해야되나..위선이라고 해야되나..

우리가 다수파에 속하고, 좋은 평을 받고 승진을 빨리 하고자 하는 것도 결국에는 금권의 위력에서 나오는 탐욕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탐욕들이 모여 우리의 자유를 내어주고, 한동안 대한민국에 ˝자유˝를 외치던 구호가 ˝민주화˝로 바뀐 것은 이 빼앗긴 자유를 조금이라도 되찾고자 하는 통찰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이른 바 ˝민주화˝의 속에는 ˝경제 민주화˝의 내용을 많이 담고 있기 때문이다.

잘 나가는 인간속에 다수파가 된 개인들은 대부분 달리는 말에서 내리지 못한다.
성찰적 자아가 되기 어려워 반성적 삶을 살지 못하고 지배체제가 요구하는 톱니바퀴의 일상에 충실하게 복무할 위험이 있다고 저자는 경고한다.
그리고 그 유명한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 나오는 ‘악의 평범성‘이 바로 그러한 일상에 갇혀 사유하지 않으면 자신이 무슨 행동을 하는지조차 비판적으로 인식하기 어렵다고 한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개인적으로 재테크라던지, 아니면 주식, 부동산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고 별로 관심이 없다.
이유인 즉슨 원래 자본주의는 돈이 돈을 버는 세상이기 때문에 돈을 벌수 있는 ˝돈˝은 내게 없기 때문이다.
나에게 있는 돈이라는 건 그저 적당히 생활할 만큼이 좋다. 가능성이 아주 작은 일에 몰두해서 내 소중한 자유를 잃어버리기 싫기 때문이다.
물론 나 뿐만 아니라 대부분 사람들의 생각이기도 하다. 그런데 주위에는 왜 그렇게 주식을 하고 재테크에 열을 올리고, 부동산에 대해 목숨을 걸까.
(과도한 분들에 한해서이니 오해없으시길)
자본주의는 그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는
모든 이에게 공평한 자유를 준다고 현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말이다
설령 운이 좋아 대박을 터뜨려도, 필요한 것보다 훨씬 많은 부를 갖고 있어도 더 큰 부에 대한 탐욕을 멈출 수 없기에 또 비슷한 수준의 부류와 끝없는 레이스를 펼치고, 늘 그들만의 리그 안에서 부족함을 느낀다.




˝이반 일리치의 말처럼 ‘스스로 족함을 아는 사람들로 가득 찬 세상은 가난할지라도 구성원 모두가 자유로운 곳‘에서라면 우린 모두 고결해 질 수 있다. - 34쪽 편집



˝오늘날에는 은밀히 노예가 된 경제동물이 양산되고 있다. 전인적 인간이 사라지고 자유 지향도 사라진다. 지배 세력은 자유인들의 생존 조건을 박탈하는 사회경제적 환경을 더욱 노골화하면서 ‘편하게 살려면 굴종하라‘는 명령어를 시대의 화법이 되도록 했다. 경제적 공포는 몰상식과 불의에 굴종하도록 강제하여, 굴종과 자발적 복종은 ‘어쩔 수 없이‘받아 들여아 하는 일에서 ‘당연히‘ 받아들이는 일로 바뀌고 있다.
자유인은 점점 희귀종이 되어갔고, 나에게 불이익이 닥칠 수 있는 작은 가능성조차 다른 사람이 겪는 불의에 침묵하는 합리적 이유가 되었다. 사람들은 사회적 약자, 소수자에 대한 인권 침해, 불의에 분노하지 않고 자신의 불이익에 분노한다.(...) 오늘날의 자유는 물신숭배앞에서 힘을 잃었다.˝ -51쪽




우리가 힘들게 사는 이유는 돈때문이고,
더 힘들게 사는 이유는 돈때문에 잃은 자유 때문이고,
정말 고통스럽게 사는 이유는 ˝자유가 뭐가 중요하냐. 돈이 최고지˝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래서 탄생한 명언은 바로 ˝돈이 자유다˝..라는..

자본주의 아래 신음하는 모든 이에게
죄책감을 심어주는 물신숭배의 끝은 어디일까.
뒷전에 밀려난 밀려나 무시받는 고결한 사회적 가치들은 ˝돈˝이 되지 않는 세상속에서 그 빛을 발휘하기는 당분간 어렵지 않을까.?
바꾸어 말하면 이제 돈으로 매매할 수 없는 것들은 고귀한 가치를 지닌 것이 아니라 가치가 없는 것으로 전락하게 되었다는 의미다.
백번 싸워도 백번 패배하는 돈 앞에서
무색하지만 또 한번 소극적으로 반항해 보는 것도
내 자신을 한번쯤 반성한다는 취지로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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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0-09-13 00: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이 아주 곧아 보입니다 :-)

북프리쿠키 2020-09-13 21:40   좋아요 1 | URL
홍세화님도 아주 곧네요..ㅎ
책 표지의 결 모양은 다양한 사람의 ˝결˝을 표현했다 합니다..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