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째 가름(8장)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잘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는다.
뭇 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처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므로 도에 가깝다.
살 때는
낮은 땅에 처하기를 잘하고,
마음 쓸 때는
그윽한 마음가짐을 잘하고,
벗을 사귈 때는
어질기를 잘하고,
말 할 때는
믿음직하기를 잘하고,
일 할 때는
능력있기를 잘하고,
움직일 때는
바른 때를 타기를 잘한다.
대저 오로지
다투지 아니하니
허물이 없어라.



가장 많이 걸려있는 액자 문구를 하나 뽑으라면,
˝상선약수(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라는 구절이 최다득점 금메달 깜이 아닐까 생각한다. 36쪽


쿠데타는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질서라는 명목아래 혼돈을 말살해서는 아니됩니다.
(......)
노자는 혼돈이야말로 선이라고 생각한다. 혼돈은 결코 무질서한 것이 아니다. 혼돈은 질서의 가능태요, 노자철학의 전문술어를 빌리면, 그것은 질서의 허다.
질서는 분명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나 질서가 혼돈의 이면을 갖지 못하고 고착되면, 그것은 질서가 아니라 질곡이다. 바로 김덕빈 선생님은 평범하기 그지 없었던 보성중학교 3학년 도올에게 역사를 바라보는 위대한 지혜를 혁명의 아침에 가르쳐 주셨던 것이다. 그것은 좀 더 유지되었어야만 했던 혼돈이었다!. 그리고 우리의 역사는 창조성이 고갈된 질서속으로 질서속으로 빠져들어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38~40쪽



진리는 항상 우리 주변에서 물 흐르듯 지나가 버린다. 어쩌다 나뭇가지라도 만나면 잠시 걸치는 거품처럼 우리 뇌리를 스치는 모양이다. 인연이 닿지 않으면 망각 속으로 묻힐 뿐이다. 그러나 우리의 옛 스승들은 역사의 장면장면에서 진리를 설할 줄 알았던 것이다. - 39쪽



나는 대학교 때 학교신문에 새마을 운동은 문화박멸운동일 뿐이라는 논지의 글을 발표했다가 뼈아픈 곤욕을 치루기도 하였다. -43쪽


물은 항상 자신을 겸손하게 낮춘다. 항상 위에서 알로 자신을 낮추지만 사실 아니 올라가는 곳이 없다.(...)
물의 이미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부쟁˝이다.(...)
물은 자신을 낮추며 흐른다. 그러다가 암석을 만나도 암석과 다투지 않고, 암석의 자리를 차지할려 하지도 않는다. 점잖게 스윽 비켜지나갈 뿐이다. 그렇지만 결국 물 앞에 당할 것은 없다. 한 방울의 낙숫물이 억만년의 바위를 뚫어 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다음 물의 이미지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물은 만물을 잘 이롭게 한다는 것이다. 즉 다투지 않으면서도 가는 곳마다 모든 것을 이롭게 한다는 것이다(...)
본 장에서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노자>에서 그리고 있는 물의 또 하나의 중요한 모습은 평형작용이다. 그것은 지나가면서, 높은 것을 깎아내고 낮은 것을 돋아준다. 물은 평형의 상징이다.- 45~47쪽



우리가 깊은 물을 쳐다보면 검푸르지만 손바닥에 떠서 보면 무색투명하다. 이것이 물의 청순하고 정미로운 성질이다.(...)
물은 차이가 있을 때는 흐르지 않는 법이 없다. 그러나 평균에 이르게 되면 스스로 멈춘다. 이것이 물의 의로움이다.- 81쪽



우리나라 민중의 철학을 대변한 동학의 성자, 해월 최시형 선생의 이 한말씀을 다시 한번 새겨보자 : ˝ 하늘과 땅이 모두 하나의 물 덩어리다. 물이라는 것이야말로 만물의 어미다. 모든 종교의 제식은 청수 한그릇으로 족하니라!˝ - 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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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도덕경 8장에서 물에 대한 주제로 철학을 논하고 있노라니 예전 읽었던 헤르만헤세의 <싯다르타>의 감명깊은 구절이 떠오른다. 책장에 꼽혀 있는 감동의 책. 오랜만에 펼쳐 발췌한다.






˝남의 말을 귀담아 듣는 것을 나에게 가르쳐 준 것은 강이었어요.(...) 우리는 강으로부터 모든 것을 배울 수 있지요. 보세요, 당신도 이미 강물로부터, 아래를 향하여 나아가는 것, 가라앉는 것, 깊이를 추구하는 것이 좋은 일이라는 것을 배웠어요.˝ - [싯다르타] 중 바주데바의 말 155쪽



그는 강으로부터 무엇보다도 경청하는 법, 그러니까 고요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영혼, 활짝 열린 영혼으로, 격정도, 소원도, 판단도, 견해도 없이 귀기울여 듣는 것을 배웠다. - 1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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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보다 인간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인간에게 덮어씌워진 겉껍데기를 벗고 무전제의 철학의 길만을 고집하며 달려온 도올,
그리고, 인도에서 선교사 생활을 하였으며 인도와 중국의 철학 및 정신세계에 평생 몰두한 아버지 요하네스 헤세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기독교뿐만 아니라 인도의 종교와 정신세계를 배웠고 공자와 노자, 장자 등 중국 철학과 사상에 대해서도 깊이 있었던 헤세가 <싯다르타>에서 어느 종파에도 속하지 않는 극히 개인적인 자신의 독자적 신상을 가진 점.

두 사상가는 이 세상과 자기 자신과 모든 존재를 사랑과 경탄하는 마음과 외경심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는 것, 오직 그것만을 중요시한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헤르만 헤세의 작품을 전작읽기에 도전하여 내 인생에서 어떤 중요한 맥을 가슴에 새겨 왔다면,
도올의 작품을 읽어오며 느낀 점은 헤세가 지향하는 다소 이상향적인 꿈들을 생활에서 어떤 식으로 구체적으로 실천하고 학문의 배움을 어떤 방향으로 평생 익혀야 할 것인지가 그려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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