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 살면서 요즘 영화같은 일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난생 처음 겪는 일일 것입니다.
거리에는 사람도 잘 안 다니고, 차들도 많이 없습니다.
바이러스라는 건 참 묘하네요.
특히나 가벼운 감기 증상만 발현시킨다는 것은 바이러스 입장에서는 전파에 유리한 생존전략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뚜렷한 증상만큼 감염 바이러스 입장에서는 불리한 것이 없으니까요. 제일 흔하고 크게 신경쓰지 않는 감기 증상은 인간을 방심하게 만드는 주효한 전략입니다.
더군다나 환절기때라 혼란스럽습니다.
사실 더이상의 확진을 피하고자 외출을 자제하는 일반인에게 피부로 와닿는 또 하나의 불안은 감기에 걸리는 것일 겁니다.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코로나19를 먼 중국 이야기로 치부하다가 확진자 접촉한 사람이나 장소 등 갑자기 쏟아지는 뉴스를 통해 내가 14일 전에는 어디어디를 다녀왔지 라는 어렴풋한 불안 덩어리를 안고 지내고 있는 것이 실감이 나질 않습니다.
이젠 내 몸 상태가 조금만 감기 증상이 있어도 14일 전의 일상까지 책임져야 되는 두려움이 생깁니다.
가족을 감염시키고, 직장을 폐쇄시키는 어마어마한 민폐를 제가 저지른다고 생각하면 아찔합니다.
확진자나 사망자의 유가족, 격리되어 있는 분들이 감당해야 할 무게는 이렇듯 생사의 기로와 냉담한 사회적 시선 모두를 짊어지고 있기에 더욱 더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국가와 단체에게, 또는 개인에게 비난과 분노, 공포와 두려움에서 비롯되는 책임공방을 이해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밝히고 물어야 할 것은 반드시 그래야겠지만, 지금은 더이상의 바이러스 확산을 방지하고 종식하는 데에만 오로지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요?
˝인류의 역사는 질병의 역사이자 질병에 대한 극복과 좌절의 역사다˝ - <문명과 질병> 13쪽
질병은 나라의 존망을 좌우한 적이 적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사상적 정치경제적으로 역사의 방향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우리는 역사의 비극 가운데서 참혹한 전쟁들을 떠올리지만 질병이 인류에게 주어온 고통에 비하면 그야말로 사소한 것이었다. - 13쪽
˝인간의 질병은 사회와 문명이 만든다. 그리고 질병은 다시 인간의 역사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라는 논지가 이 책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 - 14쪽
다만 병원균이 있기 때문에 저절로 병에 걸리는 것이 아니다. 병원균을 전파, 증식시키는 조건이 더불어 있기 때문에 질병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러한 조건에는 자연적인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인간 자신이 만들어 낸 것, 곧 문명적이고 사회적인 조건이다. - 16쪽
문명의 교류는 질병의 교류이기도 하다.
사람과 물건이 오가면서 질병도 전해진다. 경제와 정치만 질병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사상도 질병을 만든다. 정신병은 시대사조의 굴절된 투영이라고 할 수 있다. 약물피해나 의원병 등, 의학 자체가 질병을 만들기도 한다. 또한 거꾸로 질병은 문명을 변화시키고 사회를 움직인다. 질병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 제국을 멸망케 한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한 가지였다. 중세말 유럽을 덮친 흑사병은 근대 사회를 여는 진통이 되었고, 발진티푸스는 나폴레옹이 러시아에서 패퇴한 결정적 원인이었다. - 17쪽
이처럼 질병은 역사라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질병이 역사적 성격을 갖고 있다면, 과거의 질병을 아는 것은 현재의 질병을 이해하고 미래의 질병을 예측하는 유력한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8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