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권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소개했다.

니체의 어떤 책들을 읽어야 하는지 궁금한 분들을 위해 포스팅한다. 

* 발췌한 부분을 나름 생략, 편집하였음을 양해바랍니다.


니체가 우리나라에 소개된 지 거의 백 년이 다 돼 간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니체라는 이름과 몇가지 소문들만을 알고 있을 뿐이다.

니체 이해가 어렵다는 건 어디나 마찬가지라고는 하지만, 유행과 이해의 괴리가 우리만큼 큰 곳이 또 있을까.(...)

재작년 니체에 관한 책<니체-천개의 눈, 천개의 글>을 낸 후로 니체를 읽고 싶은 사람들로부터 질문을 자주 받는다. 니체 읽기를 어떻게 시작해야 하느냐, 도대체 무슨 책부터 읽어야 하느냐. 하지만 내가 그 분야 책들을 쫙 꿰고 있는 것도 아니고, 마땅히 기막힌 입문서를 발견한 경험도 없는지라 대부분의 경우 그냥 니체 책들을 직접 읽는 게 좋다고 해왔다.

나역시 어떤 입문서를 읽고 니체를 접한게 아니었다. 우연히 <도덕의 계보학>을 읽다가 '감전'된 터라, 그저 감전될 기회를 기다리라고,(...)

그래도 누가 고집스럽게 묻는다면 내가 권하는 책은 오이겐 핑크와 알렉산더 네하마스의 책 정도였다. - 402쪽



1. 오이겐 핑크(E.Fink), <니이체의 철학 : Neitzsches Philosophie (하기락 옮김, 형설출판사, 1984)



- 1960년에 출간, 국내에 1984년에 번역, 소개되었다. 절판되어 도서관이 아니면 구하기가 쉽지 않다. (역시 알라딘에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다.) 게다가 학술 서적 읽는 것에 능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이 책의 내용이나 문체에 많은 어려움을 느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들을 추천하는 건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다. 하나는 이 책들이 니체의 저서들을 두루 섭렵하면서, 부조가 아닌 환조로서 니체의 상을 조각하고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그렇게 조각된 얼굴이 독특한 표정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핑크는 원래 하이데거의 제자였다. 그러나 그는 하이데거의 해석 "니체는 최후의 형이상학자이자 형이상학의 완성자다"라는 평가에 동의하지 않고 "존재와 생성이 유희로서 파악될 때, 니체는 이미 형이상학에 붙들려 있지 않다"고 한다.


2. 알렉산더 네하마스(A.Nehamas) <니체-문학으로서의 삶 :Nietzsche-Life os Literature (김종갑 옮김, 책세상, 1994)


오~알라딘에 있다.

1985년에 출간, 번역은 1994년에 이루어졌다.

네하마스의 니체는 자신의 책을 읽는 독자들을 끌어들여 공동의 세계를 창조하고 싶어하는 말 그대로의 '작가'이다.

그는 읽는 사람들을 자꾸 동료로 끌어들인다. 이야기를 듣는, 책을 읽는 너의 입장은 무엇인가? 너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내생각은 이렇다. 그렇다면 네 생각은 어떤가? 그것은 니체 자신의 물음이면서, 동시에 세계가 그 속에 살고 있는 인간들에게 던지는 물음이다.

네하마스는 해석을 강조하는 니체에 주목한다.(...)



>>>> 외국 원서를 직접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핑크나 네하마스의 것에 견줄 수 있는 책들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음을 알 것이다.

물론 이들 책에도 아쉬움은 있다. 핑크 책은 번역 문장들이 너무 예스럽고 오역이 제법 있는 편이다. 게다가 구하기까지 어려우니 누군가 재번역을 했으면 싶다. 네하마스 책은 영미 철학의 전통 때문인지, 지식의 상대주의와 절대주의 문제에 너무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고, 그 입장도 다소 어정쩡하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3. 고병권 <니체-천개의 눈, 천개의 길 (소명, 2001)


각 장이 주제별로 뚜렷이 분리되어 있으면서도, 각각의 개념들이 서로 깊은 연관을 맺고 있어 하나의 니체를 구성한다.(...)

저자의 색깔이 강하게 드러나고 있으나, 그것을 감추기 위해 니체로부터 직접 인용의 형식을 많이 취하고 있는 것도 흥미롭다.

이 책에서 니체은 예수, 에피쿠로스, 스피노자, 맑스, 비트겐슈타인, 들뢰즈 등과 소통한다.(...)

"니체를 해석하는 일은 그를 재현하는 일이 아니다. 또한 그가 말하고자 했던 바, 그 진정성을 찾아내는 일도 아니다. 니체를 해석하는 일은 니체를 창조하는 일이다"




4. 박찬국 <해체와 창조의 철학자, 니체 (동녘, 2001)>


니체 원문의 맛을 느끼면서 그 해설을 듣고 싶으면 박찬국의 책을 보는 게 좋다.

박찬국은 니체의 책에서 뽑은 잠언들을 주제별로 묶어, 간략하면서도 꼭 필요한 해설들을 담고 있다.(...)

저자 말대로 그 동안 '니체 잠언록'이란 이름으로 여러 권의 책들이 나온 게 사실이지만, 대부분이 단순한 모음집이어서 독자들이 니체를 이해하는 데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하며, 심지어는 황당한 편견까지 조장해 온 게 사실이다.

책에 인용된 니체의 잠언들도 적절하지만, '오버'하지 않으면서 차분히 인정할 수 있는 사실들만을 기록한 점에서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

때문에 책은 무척 검소한 느낌을 준다.



5. 김상환 외 <니체가 뒤흔든 철학 100년 (민음사,2000)>


니체 사상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 그리고 그와 관련된 논쟁들의 지도가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니체 사후 100년을 기념해서 나온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이 책들은 또한 니체와 니체 해석자들에 대한 국내 연구자들의 이해 수준이 얼마나 높아졌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자료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자신감 있는 어투다. 그 동안 우리는 니체의 사상이 어떤 것인지는 고사하고, 저자가 니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그런 작품들을 접해 왔던 것이다.




6. 성진기 외 <니체 이해의 새로운 지평,(철학과 현실사, 2000)


메뉴로 보면 <니체가 뒤흔든 철학 100년>보다 이 책이 훨씬 다양하다.(...)

저자들의 색깔은 <니체가 뒤흔든 철학 100년>보다 덜 두드러지고 문체도 전형적인 학술 논문투다.

하지만 제기된 문제들로 보면 이 책이 훨씬 풍성하다. 각 부마다 짤막하게 번역된 외국 저자들의 글도 아주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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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중요한 니체 해석가들의 글을 직접 읽어보고 싶은 이들을 위한 소개다.

특히 1960년대 이후 '새로운 니체'에 관해 알고 싶다면 하이데거, 들뢰즈, 푸코, 데리다 등의 글을 직접 읽어보는 게 좋다.

(무시무시한 이름들이 나오기 시작한다..그래도 명품들이 이들의 책에서 쏟아지는 것을 감안하면 도전해 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7. 마르틴 하이데거(M.Heidegger) <니체> (김정현 옮김 <니체철학강의 I>, 이성과 현실사, 1991 / 박찬국 옮김 <니체와 니힐리즘>, 지성의샘, 1996)


하이데거 사상의 난해함이나 그 엄청난 분량을 생각하면 도저히 권하고 싶지 않은 책이지만, 중요성을 놓고 보면 읽지 않으면 안 될 책이 분명하다. 하이데거에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그리고 니체를 연구하든 하이데거를 연구하든,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이데거는 인간에게 가르칠 것은 자기 극복의 강화가 아니라(니체의 말), 세계에 대한 감사와 경외심이라고 주장한다.



8. 질 들뢰즈(G.Deluze) <니체와 철학>(이경신 옮김, 민음사, 1998)


이 책은 고병권 작가가 가장 좋아하고 최고로 꼽는 책이다.

1962년 이 책이 출간되자 프랑스에서는 니체에 대한 관심이 크게 일었을 정도다.

국내에는 <니체, 철학의 주사위(신범순,조영복 옮김. 인간사랑)>라는 제목으로 1993년에 번역, 소개되었고 1998년에 <니체와 철학>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번역되었다.

들뢰즈의 니체 해석에서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질적인 차이에 따른 힘의유형화다.(...)

둘째로 들뢰즈는 니체의 비판이 갖는 급진성을 부각시킨다. 그는 오성과 이성의 올바른 사용을 법정에 세웠던 칸트의 비판 기획과 법정 자체를 법정에 세우는 니체의 비판 기획을 대비시킨다.(...)

셋째로 들뢰즈는 니체의 사유를 헤겔의 사유, 특히 변증법과 대립시키고 있다.(...)

넷째로 들뢰즈는 차이의 긍정과 그 생산의 긍정 속에서, 들뢰즈 자신의 철학 개념인 '차이와 반복'을 발견해낸다.


9. 미셀푸코(M.Foucault) <니체, 계보학, 역사>(이광래, <미셀푸코>, 민음사, 1989)

알라딘에 검색해 보니 나오지 않는다.

니체의 계보학에 대한 설명으로는 짧은 논문, 이 글이 단연 뛰어나다.

푸코의 글을 통해 우리는 계보학자와 역사학자가 과거의 사실들을 다룸에 있어 얼마나 다른 태도를 견지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니체가 지식이나 도덕 감정의 '기원'을 파헤칠 때, 그는 그것들의 숭고한 기원을 밝히려는 게 아니다. 그는 그런게 없음을 밝히고자 한다.(...)

푸코의 니체는 니체의 여러 얼굴 중 내가 가장 전율하는 얼굴이다.




10. 자크 데리다(J.Derrida) <에쁘롱-니체의 문체들>(김다은,황순희 옮김, 동문선 1998)


'에쁘롱'이란 말은 '돛을 단 범선의 충각'이나 '박차'처럼 뽀죡하게 튀어나온 것을 의미한다. 문체(스타일)란 말 또한 뾰족한 펜 끝을 나타낸다.

데리다는 참 가볍고 경쾌하다. 무게로만 따지면 데리다의 지체가 제일 가벼워 보인다.

심각한 철학자는 쉽게 그의 놀림감이 될 것이다. 그중 '하이데거'가 딱 걸렸다.

데리다의 니체 해석은 하이데거를 겨냥한다.(...)

데리다의 에쁘롱은 <오늘날의 니체>에 기고되었던 논문인데, 1978년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번역이 괜찮다고 <에쁘롱>이 쉽게 읽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상당한 집중력을 요한다.



11. 뤼드거 슈미트(R.Schmidt) & 코르드 슈프레켈젠(C.Spreckelsen) <쉽게 읽는 니이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김미기 옮김,이학사,1999)


이 책은 고병권의 책과 전체적으로 비슷한 구성을 하고 있다. 그리고 상당히 쉽게 쓰였다.(...)

이 책의 미덕은 확실히 니체에 관한 다른 어떤 책보다 쉽다는 것, 그리고 설명도 균형이 잡혀 안정감을 준다. 적은 분량에도 상당히 다양한 메뉴를 준비했다는 것도 장점이라면 장점이다.(...)

하지만 적은 분량에 많은 메뉴는 장점보다는 약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각각의 글들이 말 그대로 메뉴판에 실려 있는 설명 같은 느낌이 든다. 호흡이 짧은 것은 철학책을 읽는 게 서투른 독자들에겐 미덕임에 분명하지만 어쩐히 허전한 느낌이다. 짜라투스트라를 위한 '포켓용 콘사이스 사전'같다고나 할까. 용어설명 있고 용례 있고 하는 식으로.



12. 안네마리 피퍼(A.Pieper) <니이체의 짜라투스트라에 대한 철학적 해석>(정영도 옮김, 이문 출판사. 1996)


니체 생애에 대해서는 이 책이 도움이 될 것이다.

단점은 니체의 성장기에 지나치게 많은 지면을 할애한 점이다.



13. 니체 <이사람을 보라>


이 빨간책은 설명할 필요 없는 책일 것이다.

고병권은 니체의 생애와 관련해서 이 책을 권한다.

이 책에 담겨있는 작품중에 <이 사람을 보라>가 바로 그것이다.

전기란 이렇게 써야 하지 않을까, 인물이나 작품의 배경 지식을 알려주는 게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이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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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팅을 하다보니, 소개된 책들의 면면이 대중적으로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책이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알고자 하는 독자들이 있게 마련이라, 이 글이 도움이 됐으면 한다.

물론 고병권 작가의 책에서 발췌한 소개지만, 소개글만 대충 읽어보아도 니체를 어떻게 만나야 될지 감이 잡힐 것이다.

고병권 작가가 <도덕의 계보학>을 처음 접하고 감전된 것처럼, 나또한 고병권 작가의 책을 읽고 제대로 니체를 만난 듯한 느낌이다.

아마도 개인적으로 부동의 1위 도스토예프스키의 자리를 니체가 꿰차지 않을까.

선악, 신의 죽음, 영원회귀, 위버멘쉬(초인) 등의 주요한 개념들에 대해 정확하고 깊이 알지 못했던 예전에..항상 니체를 거론하기 두려웠었는데, 이젠 적어도 그 용어에 대해 실수는 하지 않을 것이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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