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아프게 하지도 가렵게 하지도 못하고, 구절마다 범범하고 데면데면하여 우유부단하기만 하다면 이런 글을 대체 얻다 쓰겠는가?" 

말하자면 글이란 읽는 이들을 촉발하는 '공명통'이어야 한다.

찬찬이든 증오든 공명을 야기하지 못하는 글은 죽은 것이다. - 133쪽




그럼 과연 연암체란 어떤 것일까. 지금도 수많은 연구자들이 연암의 문장에 대해 분석하고 있지만, 사실 그것은 한 가지로 수렴될 수 없는 '리좀'(rhizom)같은 것이다.

들뢰즈/가타리에 따르면 리좀은 덩이줄기라는 뜻으로, 수목에 대립되는 개념이다.

뿌리를 중심으로 하여 일정한 방향을 향해 가지를 뻗는 것이 수목이라면, 리좀은 뿌리라는 중심이 없을 뿐 아니라 목적도, 방향도 없이 접속하는 대상에 따라 자유롭게 변이하는 특성을 지닌다. 연암의 문체적 특이성을 이 개념보다 더 잘 표현해 주는 것도 없다. - 135쪽




연암체가 과연 그러하다. 그의 글은 소설과 소품, 고문과 변려문 등이 자유자유로 섞이는 한편, 천고의 흥망성쇠를 다룬 거대담론과 시정의 우스갯소리, 잡다하고 황당한 이야기들이 공존하고 있다.

그것은 어떤 하나로 분류되는 순간, 그 그물망을 교묘하게 빠져나가 전혀 다른 표정을 짓곤 한다.

순식간에 얼굴을 바꿔버리는 '변검'처럼. 그리고 그 변화무쌍한 얼굴들의 각축장이 바로 '열하일기'다. -1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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